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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거룩한 종교의 믿음이 한 아이의 목숨을 휘두를 수 있는가? <더 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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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더 원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원더> 포스터.


1862년, 간호사 립 라이트는 잉글랜드를 떠나 아일랜드로 향한다. 마을 너머에 사는 오도널 가족의 딸 애나를 2주 동안 관찰하는 게 그녀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애나에겐 문제가 있었는데, 4개월 전부터 주님의 성수만 먹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라이트는 수녀 한 명과 교대로 애나를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애나를 찾아가 보니 굉장히 건강한 편이었는데, 하느님의 은총이 보살피는 그녀를 찾아오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다.

애나의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그녀에게 음식을 먹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라이트, 하지만 그녀는 고용된 몸이기에 고용주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라이트는 애나를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관찰하는 와중에, 그녀의 몸이 조금씩 변하는 걸 눈치챈다. 간호사이기에 정확히 아는 바, 그녀는 죽어 가고 있었다. 한편, 라이트는 애나를 둘러싼 어둡고 추악한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애나가 어둡고 추악한 진실의 마수에서 아무도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선 오직 라이트의 치열한 고민과 과감한 결심과 완벽한 행동이 필요하다. 라이트는 관찰에서 그치지 않고 추적하고 개입해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그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바, 또 다른 아픔이 있는 데일리 텔레그래프 기자 윌리엄 번에게 도움을 청한다. 과연 라이트는 번과 함께 애나를 구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애나는 어떻게 4개월 동안 음식 없이 살 수 있었을까? 그들의 시대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들이 믿는 종교란 도대체 무엇인가.

 

완벽한 조합을 자랑하는 영화

 

19세기 중반, 감자를 주식으로 삼던 아일랜드에 감자 품종 전염병이 발생해 이른바 ‘아일랜드 대기근’이 시작된다. 더구나 영국에 착취까지 당하니, 수많은 사람이 아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와중에 수개월 동안 먹지 않고 살아 있다는 소녀가 나타나니, 신의 은총이자 기적의 상징으로 떠받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추악한 비극이 자리잡고 있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원더>는 19세기 중반 아일랜드에 출몰한 기적의 소녀와 영국에서 그녀를 관찰하러 온 간호사의 이야기다. 엠마 도노휴 작가의 동명 원작이 있는데, 그녀는 일찍이 영화화되어 큰 사랑을 받았던 200만 부 베스트셀러이자 맨부커상 후보 작품 <룸>을 쓰기도 했다. <더 원더>나 <룸> 모두 충격적인 사건 이면의 인간에 대한 연민이 주를 이룬다.

이 영화를 이루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감독과 주연배우다. 다수의 언론으로부터 감독과 주연배우 모두 필모 최고의 연출과 연기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은 바, 감독은 <글로리아> <판타스틱 우먼>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세바스찬 렐리오’이고 주연배우는 <작은 아씨들> <블랙 위도우> 등으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나가는 여배우 ‘플로렌스 퓨’다. 여기에 원작자 엠마 도노휴가 직접 각색 작업에 참여해 기대에 걸맞는 완성도를 장착했다. 이보다 완벽할 순 없는 조합이겠다.

 

종교의 믿음이 한 아이의 목숨을 휘두를 수 있는가?

 

이 진중하지만 음습하고 인류애적이지만 섬뜩하고 기괴한 미스터리 드라마 <더 원더>는 스산하기 이를 데 없는 비극을 노래한다. 애나는 어떻게 4개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아 있었는지에서 시작해, 애나는 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죽어 가야 하는지를 지나, 애나를 둘러싼 시대, 종교, 믿음, 신념 등의 의미가 서슬 퍼렇게 짓눌러 온다. 그 중심에 아이를 잃었던 간호사 라이트의 고민과 행동이 있다.

주지했듯 작품의 배경은 대기근이 휩쓸고 지나간 후 여파가 남아 있던 아일랜드, 수백만 명이 음식을 먹지 못해 죽어 나가는 와중에 음식을 먹지 않고도 살아 있는 소녀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의미여야 하는가. 하느님의 기적을 몸소 행하는 희망의 전도사일 것이다, 그래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진실일까? 진짜일까? 진짜라면 어떻게 해야 하고 또 가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혼란스러울 뿐이다.

간호사 라이트는 견디기 힘든 우울의 근원을 파고들며 철저히 본인의 경험에 비춰 사태를 파악하고 깊은 고민 끝에 전격적으로 행동에 나선다. 결코 모두를 위한 길은 아니겠지만 한 아이를 살리는 길이다. 한 아이를 살린다는 건 온 우주를 살리는 것과 같다는 게 그녀의 판단한 진실일 테다. 기적이 뭐기에 희망이 뭐기에 믿음이 뭐기에 한 사람의 목숨이 이리도 쉽게 저당 잡히는가. 거룩한 종교의 믿음이 한 사람의 목숨을 휘두를 수 있는가?

너무나도 큰 질문이 시종일관 작품 전체를 짓누른다. 그렇지만 라이트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만은 지극히 인류애적인 생각과 행동을 견지한다. 그렇게 온 오주의 생기가 다시 살아난다.

 

새장의 안과 밖, 편협하고 좁은 그들만의 세상

 

애나의 기적을 둘러싸고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더 원더>의 이야기와 분위기와 메시지를 구성한다. 하나님의 기적이라고 믿은 위원회 사람들, 청춘의 샘을 발견했다고 좋아하는 의사, 애마의 가족이 사기를 친 거라고 확신하는 션 라이언(라이트를 고용한 자) 등이 판을 이리저리 휘두르려는 와중에 철저하게 현실 그대로를 보려는 라이트와 그녀 곁에서 맴돌며 결국 그녀를 돕는 데일리 텔레그래프 기자 윌리엄 번 등이 흔들리는 판을 지키려 한다.

상황을 따로 또 같이 바라보는 이들이 반목하는 사이, 4개월 동안 나름 멀쩡했던 애나가 갑자기 급격히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라이트와 한 수녀가 교대로 애나를 시종일관 지켜보고 있는 사이 아무도 그녀에게 접근할 수 없게 되자 일어난 일이다. 애나를 둘러싼 이들에게 분명 뭔가 있는 것이다. 그 ‘뭔가’가 뭔지는 당사자인 애나가 직접 말할 수밖에 없는데, 번이 건넨 소마트로프의 그림을 보고 심경의 변화가 생긴다. 거기엔 새장의 안과 밖이 그려져 있다.

애나뿐만 아니라 애나의 가족 그리고 ‘금식 소녀’를 둘러싼 이들의 편협하고 좁은 생각도 새장의 안팎과 결을 같이 한다. 라이트에게 설교하듯 말하는 ‘그들만의 세상’에서 나오면 무고한 생명을 살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 영화가 돌고 돌아 도달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리고 그 지점은 자연스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과 맞닿아 있다.

 

자신만의 세상에 갇힌 채 첨예하게 갈라선 한국 사회, 고민하고 깨달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한 번이라도 자신만의 세상에서 나와 자유를 만끽하며 멀찍이서 조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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