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워리어 넌: 신의 뜻대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워리어 넌: 신의 뜻대로> 포스터. ⓒ넷플릭스
7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홀로 살아남아 사지마비 상태로 보육원에서 자란 에이바 실바, 20살 되던 해 어느 날 불분명한 이유로 죽고어 수녀원으로 옮겨진다. 그날, 수녀원에 용병 집단이 쳐들어와 수녀 전사(워리어 넌) 리더 섀넌이 죽고 만다. 그들이 찾던 건 섀넌의 등에 박힌 헤일로, 신비한 힘의 원천으로 수녀 전사들의 비밀 집단 '십자검 결사단'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보물이다. 섀넌이 죽는 현장까지 적이 쳐들어오자, 전투 수녀들은 대항하고 수녀 한 명이 급히 헤일로를 숨기기 위해 죽은 에이바를 이용한다.
헤일로의 힘으로 되살아난 에이바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수녀원을 탈출한다. 수녀원은 발칵 뒤집히고 어쨌든 헤일로를 뒤찾고자 에이바를 쫓는다. 한편, 아크 테크라는 기업의 수장이자 천재 과학자 질리언 샐비어스는 바티칸 기록보관원 출신 크리스천의 조언을 받아 양자 역학으로 영적 세계로 가는 다리를 만들고자 한다. 실상은 아픈 아들을 아프지 않은 세계로 보내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교황청과 전쟁을 선포하며, 헤일로와 함께하게 된 에이바와 이어진다.
에이바는 사지가 멀쩡하게 다시 태어난 세상을 자유롭게 떠돌고, 에이바를 쫓는 수녀원 내부는 세력 다툼으로 파가 갈라진다. 뒤가 구린 추기경의 명을 듣고 에이바를 죽여서 헤일로를 가져와 전통 있는 헤일로 운반자로 하여금 맡게 하자는 파가 있었고, 수녀원을 담당하는 신부와 함께 몇몇 수녀 전사들은 에이바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게 우선이고 헤일로 운반자의 운명을 받아들인다면 그녀를 수련시키면 된다는 파가 있었다. 각자의 복잡다단한 입장들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이야기의 행방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죽음에서 깨어나 힘과 책임을 짊어지게 된 여성의 성장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워리어 넌: 신의 뜻대로>(이하, '워리어 넌')는 죽음에서 깨어나 막강한 힘과 책임을 짊어지게 된 어린 여성의 성장을 다룬다. 아울러,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 다뤄지며 교황청 내 세력 다툼에 휘둘리는 십자검 결사단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흥미가 동할 설정임에 분명한대, 상당히 상이해 보이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짜맞출지 기대도 되지만 조마조마함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이런 설정에서 어린 여성의 성장은 대체로 그녀가 속한 조직과 조직이 속한 선의 세계가 승리하는 과정에 일조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내적 성장이라기 보다 외적 성장이랄까. 특히, 그동안엔 여성으로서 외적 성장이 필요해 보였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결국 외적 성장도 뒤따르겠지만, 정녕 지루하다고 느낄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고 내적 성장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테면, 에이바는 악마의 세력으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워리어 넌의 비밀 집단 십자검 결사단 리더로서 헤일로의 운반자 칭호와 의무를 받아들이는 데 관심이 없다. 그녀는, 살아생전 사지마비로 힘겨운 삶을 살았고 다시 태어나 훨훨 날아다닐 정도로 자유롭고 기분이 좋을 뿐이다. 만끽하는 게 우선이다. 이후, 수녀원과 아크 테크의 회유 및 협박 및 위협 등을 통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알고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충분하고도 넘칠 만한 고민과 한쪽으로서는 배신이라고 할 만한 행동을 하고는 돌고 돌아 길을 정한다. 이제까지의 성장 스토리와는 결이 다른 진짜 현실적인 성장 스토리, 괜찮다 싶었다.
욕망이 대립이 선사하는 선 같은 악, 악 같은 선
종교와 과학의 대립과 교황청 내 세력 다툼을 다루기에 앞서, 작품 속 헤일로의 역사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1000여 년 전 용맹한 여전사이자 최초의 전투 수녀로 신의 믿음으로 끝없는 전투에서 큰 공을 이루며 싸우던 와중 죽음을 맞이한 아레알라, 천사 아드리엘이 강림해 천사의 링 헤일로로 그녀를 부활시킨다. 반면, 아드리엘은 영원한 삶을 포기했다. 이후, 전투 수녀 비밀 집단 십자검 결사단이 꾸려져 헤일로를 지켜 후세로 전하기 위한 처절한 활동이 계속되는 것이다.
천사의 링 헤일로를 몸 안에 심고 특별한 힘과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살아가는 운명의 십자검 결사단 리더이자 헤일로 운반자, 문제는 많은 이가 헤일로를 원한다는 점이다. 짧은 시간밖에 현존하지 못하지만 너무나도 막강한 힘으로 십자검 결사단을 위협하는 악마 타라스크, 종교에의 믿음으로 약속받은 세계로 가는 다리를 막강한 에너지와 함께 과학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아크 테크, 십자검 결사단의 보수적 전통을 지키고자 하지만 동시에 그 조직의 중요성으로 말미암은 권력을 이용해 개인적 영달을 추구하는 추기경.
와중에, 진짜 악마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적으로 선과 악이 불분명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악마 타라스크에겐 추악한 욕망이 보이지 않는 반면, 아크 테크 수장에겐 아픈 아들을 아프지 않은 세계로 데려가고자 하는 추악하다고 할 수 없는 욕망이 있다. 그런가 하면, 확신할 순 없지만 추기경은 세속적 권력과 개인적 영달으로 뒤가 구린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선 같은 악, 악 같은 선.
주인공의 성장과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의 분열과 연대
자못 유치해 보이지만 자못 진지한 분위기의 작품을 확실히 풀어주는 이가 주인공 에이바이다. 그녀는 '병맛'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생각지도 못할 타이밍에 던져,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 짓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요즘 드라마구나' 하는 생각이 따라오게 만드는데, 눈쌀을 찌뿌리게 하지 않고 외려 적절하다고 생각하게 한다. 에이바로 분한 알바 밥티스타의 매력이 큰 몫을 차지하지 않나 싶다. 그녀를 보다 보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지우기 힘든데, 10여 년 전 앳된 제니퍼 로렌스가 겹쳐진다. 앞날이 기대되는 배우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마라 시리즈 표준인 10화에 다다르는, 적지 않은 분량의 작품임에도 확실한 전개와 마무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스토리가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며 시원시원하게 진행되지 않고, 에이바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전체적 설정의 형성 과정과 설명에 상당 부분 투자했기 때문이다. 즉, 시리즈를 절대 시즌 1으로만 끝내지 않을 거라는 담대한 포부를 밝힌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주 괜찮게 보았다. 비슷한 시기에 어린 여성의 성장 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또 다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저주받은 소녀>가 공개되었는데 이 작품이 주인공의 굴곡지지만 직선적인 여정을 중심에 두고 외롭지만 강인한 성장을 다루는 반면, <워리어 넌>은 주인공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성장의 여정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워리어 넌'으로 불리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의 분열과 연대를 아우르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이 시대에 어울리는 적확한 스토리와 메시지 그리고 충분하고도 넘칠 다양한 재미를 선사하기에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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