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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자유'에 해당되는 글 1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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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한 삶이냐, 자유로운 듯 화려한 삶이냐 <이지 걸> 2020.11.24
  • '이상적'인 틀로 '비이상적'이었던 1940년대 할리우드를 그리다 <오, 할리우드> 2020.05.25
  • 재미와 메시지를 만족시키는, 세련된 오락영화 <벌룬> 2020.02.10
  • '특별'한 마녀이자 '평범'한 소녀의 성장과 좌절 <마녀 배달부 키키> 2019.06.28
  • 원작과 같은 듯 또 다른, 충분하고 충분한 영화 <알라딘>(4) 2019.06.24
  • '개인으로서 추구하는 평화' <총구에 핀 꽃> 2019.04.17
  • '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인생에의 지독한 은유 <쇼생크 탈출> 2017.09.01
  • 일본 버블붕괴기 '잃어버린 10년'의 기막힌 변주 <종이 달>(2) 2017.06.02
  • 다른 무엇보다 '나'를 위해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몰타>(1) 2016.01.11
  • 21세기 십 대 혁명 매뉴얼 <리틀 브라더>(4) 2015.11.16

지난한 삶이냐, 자유로운 듯 화려한 삶이냐 <이지 걸>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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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이지 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이지 걸> 포스터. ⓒ넷플릭스



프랑스 칸, 16살 생일을 맞이한 소녀 나이마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무료하게 지내는 중이다. 얼마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고선, 방학을 맞이해 게이 친구 도도와 자주 어울리며 함께 연기 오디션을 준비하기도 하고, 엄마가 일하는 호텔 조리실에서 인턴으로 일해 볼까 싶기도 하다. 그러던 와중, 파리에 사는 사촌 언니 소피아가 나이마의 생일도 축하할 겸 놀러왔다.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언니라 너무 반가웠다. 


그런데 소피아는 조금 달라 보였다.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고 딱히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고는 나이마에게도 명품 가방을 생일선물로 주는 것이었다. 성형 티가 많이 나는 얼굴과 노출 심한 옷차림으로, 나이마와 함께 거리를 활보했다. 해변에서는 반나체로 있으면서 뭇남자들을 유혹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대형 요트를 소유한 부자를 유혹하는 데 성공했고, 나이마와 함께 요트에 올라타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엔 앙드레라는 이름의 부자 명의로 고가의 시계를 사 버리는 그들이었다. 


나이마는 요트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우연히 밤중에 소피아와 앙드레가 섹스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후 나이마는 자신의 삶과 스타일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졌고, 유일한 친구라고 할 만한 도도를 멀리하며 소피아와 가깝게 지낸다. 화려하고 자유분방게 지내면서도 부족함 없이 사는 게 부러웠을 터다. 하지만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엄마가 말하길, 소피아는 '자유'롭지만은 않고 힘들게 '일'하고 있으며 '지쳐' 있다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운 나이마, 그래도 소피아의 삶의 방식을 우선 따라 보고 싶다. 그녀의 방학은 어떻게 끝날까?


프랑스 예술영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이지 걸>은 프랑스 칸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방학을 맞이한 소녀의 성장을 다룬다. 여자로서의 심리를 세세하고 심층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데, 역시 여성 감독의 작품이다. 레베카 즐로토브스키라는 생소한 이름의 감독, 다섯 편의 연출작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두 편이나 극장 개봉을 한 이력이 있다. 프랑스 예술영화계에서 꽤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감독으로 보인다. 


한국에 개봉한 두 편을 들여다보면 눈에 띄는 게 있다. 다름 아닌 주연 여성 배우인데, <그랜드 센트럴>에서는 레아 세이두이고 <플래니테리엄>에서는 나탈리 포트만이었다. 둘 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들로, 레베카 즐로토브스키 감독의 여성을 내세운 연출 감각이 얼마나 출중한 지 반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이지 걸>의 경우 눈에 띄는 배우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소피아 역의 자히아 드하르가 특이한 이력으로 눈길을 끌긴 한다. 그녀는 배우라기보다는 란제리 모델이자 디자이너인데, 미성년이었을 때 성노동자로 일했다고 한다. 고위층만 상대했다는데, 결국 2010년 경찰 단속에 걸려 프랑스의 국보급 축구선수들인 카림 벤제마와 프랑크 리베리와 시드니 고부 등이 체포되었다. 프랑스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장본인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란제리 브랜드를 만들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영화 속 소피아 캐릭터가 전혀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여성의 성장


영화가 시작되며 프롤로그처럼 나오는 장면이 있다. 칸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과 해변을 반나체로 걸어가는 소피아, 그리고 프랑스의 전설적인 철학자 파스칼의 한마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직업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건 우연이 좌우한다."까지. 영화 속 나이마의 성장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영화 밖 자히아 드하르의 인생과 맞닿아 있는 듯하다. 


나이마는 호텔 조리장 인턴과 연기 오디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듯 어쩔 줄 모르는 듯 고민하는 듯하다. 인턴을 한다고 해서 오디션에 붙는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달라지진 않지만, 나름의 갈림길을 눈앞에 둔 이의 입장에서 보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일 수 있다. 그때 우연히도 소피아가 끼어든 것이다. 돌이켜 보면 한 여름밤의 꿈에 가까운 한 방학의 일탈이었을 뿐인 좋은 경험이지만, 당시에는 빨려들어가듯 중심을 잡지 못했을 테다. 엄마의 지난한 삶과 비교되어, 소피아의 자유로운 듯 화려한 삶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하여, 영화 속 소피아는 자체로 빛을 발하는 캐릭터라기보다 나이마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이다. 오히려 소피아는 소피아 역의 자히아 드하르의 삶과 연결되는 것 같다. 연기자의 실제 삶과 캐릭터의 영화 속 삶이 복제 수준으로 비슷하다. 마치 영화 속 삶으로 영화 밖 삶을 변호하는 듯, 겉으론 자유롭고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힘들고 공허하고 지쳐 있었다는 것. 나이마의 드러나는 성장만큼 소피아의 드러나지 않는 성장 또한 찾아볼 만한 여지가 있다. 


나름의 철학


나이마가 직업적 선택에의 성장 과정을 헤쳐나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깨닫게 되는 바가 또 하나 있다. 부류라고 해야 할까, 계급이라고 해야 할까. 딱히 직업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유유자적 대형 요트에서 살아가는 듯싶은 앙드레, 그와 함께 요트 생활을 하며 친구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충실한 손발이 되어 주는 필리프, 음식과 서비스를 담당하는 이들, 그리고 사람들의 멸시와 눈초리를 받지만 부자의 눈에 들어 눈요기와 쾌락의 상대가 되어 주고는 그들의 풍요를 조금 나눠쓰는 소피아 같은 이들이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이 영화가 자못 선정적일 수 있는 소재로 빠지지 않고 세상을 대하는 나름의 철학을 내보이는 핵심이다. 어른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애라고 할 수도 없는 나이의 나이마가 혼란스러워 하는 게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세상의 한 진면목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녀를 다 잡아 준 건, 의외로 소피아가 아닌 앙드레의 친구 필리프였다. 소피아는 그녀를 끌어들였지만 가르쳐 주지 않았고, 필리프는 그녀를 끌어들이지 않으면서 가르쳐 주었다. 진짜 어른이 아닌가 싶다. 


영화는 프랑스 콘텐츠답게 이해하기 힘든 철학을 담고 있는 말을 쉽고 짧은 대사로 치고 빠지곤 한다. 스토리 맥락과 닿아 있는 듯하지만 서사적 맥락을 방해하는 듯한 대사들이 애매모호한 타이밍에 나와 애매모호함을 남기니 난감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허투루하는 말이 아닌 걸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으니 만큼, 곱씹어 보면 좋을 것 같다. 


"아름다움은 만족의 근원이야. 욕심과는 거리가 멀지."

"노화에 저항하는 게 한심하다고요? 아니죠. 오히려 감동적이죠." 

"이건 원칙의 문제가 아니야. 가치에 대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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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어른, 여성, 이지 걸, 인생, 자유, 자히아 드하르, 철학, 프랑스 영화, 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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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틀로 '비이상적'이었던 1940년대 할리우드를 그리다 <오, 할리우드>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5. 2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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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오, 할리우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 할리우드> 포스터. ⓒ넷플릭스



인간은 때때로 자성, 즉 자아성찰의 기간이 필요하다. 오직 앞만 보고 달리다가 문뜩 떠올리는 것이다. 사방을 둘러볼 필요가 있겠다고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더 이상 뭘 할 수 없겠다는 깨달음이 작용한 것이리라. 그럴 땐 주로 과거로 돌아간다. 물론, 상상력을 발휘해 미래로 가거나 현재를 다시 그려볼 수도 있다. 하지만, 미래로도 이어지고 현재와도 맞닿아 있는 과거로 돌아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닌가 싶다. 


미드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글리>,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넷플릭스 <더 폴리티션> 등을 제작하고 연출하며 할리우드 최고의 프로듀서로 손꼽히는 라이언 머피가, '할리우드'라는 오래되고 깊고 넓은 숲을 조망하며 자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넷플릭스와 손잡고 6편 짜리 드라마로 손보였다. <오, 할리우드>라는 제목으로, 할리우드 최고의 황금기라 할 만한 1940년대 후반기를 다루었다.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제작사, 프로듀서, 감독, 작가, 배우들의 열정과 투쟁이 살아숨쉰다. 성정체성, 인종, 성별 등 지금까지도 주요 이슈화되어 익숙하게 느끼는 소재와 주제들이 근간을 이룬다. 록 허드슨, 해티 맥디니얼, 안나 메이 웡 등의 실존인물과 다양한 부류의 가상인물들의 따로 또 같이 극을 이끈다. 주요 등장인물을 연기한 배우들 역시, 촉망받는 신예급과 전설이 되어가는 명배우들이 따로 또 같이 호흡을 맞췄다. 굉장히 이상적인 틀로 굉장히 비이상적이었던 당대 할리우드를 그렸다.


1940년대 후반 할리우드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할리우드 에이스 스튜디오, 수많은 엑스트라 지원자 중 잭이 있다. 그는 영화배우가 되어 성공해서 가족을 부양하고자 하지만, 잘생긴 외모 하나로는 성공가도를 달리기에 역부족이다. 우연한 기회에 주유소에서 일하게 된 잭, 돈을 벌고자 시작한 일이지만 알고 보니 그곳은 몸을 파는 곳이었다. 그는 주요 고객 중 한 명이 에이스 스튜디오 회장 사모님이라는 걸 이용해 영화 <펙> 주연 스크린 테스트를 보게 되고 열심히 연습하여 배역을 따낸다. 하지만 아내와는 멀어지고 만다. 


한편, 영화 <펙>은 필리핀계의 촉망받는 감독 레이먼드가 맡았는데 우여곡절 끝에 그의 여자친구이자 흑인 여배우 카밀이 주연을 맡는다. 그것도 모자라, 잭과 함께 주유소에서 일했던 아치가 흑인임에도 작가 타이틀을 따냈다. '자유와 평등과 진보'를 내걸고 회사의 사활을 담보로 <펙>을 <멕>으로 바꿔 제작을 강행한 에이스 스튜디오의 결정이었다. 맹렬 인종차별주의자 '에이스' 회장이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난 후, 회사의 중추 고위급들의 각성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할리우드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에이전트 헨리 윌슨은 온갖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며 본인 소속 배우들을 챙기고 또 본인은 <멕>의 책임 프로듀서 자리를 노린다. 한때 영화배우를 꿈꿨던 주유소 사장 어니는, 비록 몸을 파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지만 '꿈'을 위해 <멕> 제작진을 물심양면 지원한다. 


영화를 향해 예상되는 대응과 그에 따른 타격 때문에 터무니 없는 예산이 책정된 영화 <펙>, 비록 역사적으로 의미 깊은 영화로 남을 게 분명하지만 프로듀서, 감독, 작가, 주연배우할 것 없이 신인급으로 꾸려진 이 영화의 앞날이 걱정된다. 과연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을까? 영화 밖의 좋은 의미로만 그치지 않고, 영화 안의 흥행과 비평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할까?


자유와 평등과 진보의 '올바른' 메시지


<오, 할리우드>는 세련되게 1940년대 후반 할리우드를 그린다. 주로 대사와 행동으로 확고부동한 '자유와 평등과 진보'의 메시지를 전한다. 대화하고 토론하고 선언한다. 메시지가 너무 직설적이고 과할 때가 있는데, 못지 않은 파격적인 행동이 수반되기에 그러한 것일 테다. 하여, 용인된다. 그리고 행동으로서 영화 <멕> 제작 과정을 그려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몸소 혼혈 감독과 흑인 작가을 앉히고 제목과 내용과 메시지를 바꾸면서까지 흑인 여배우를 주연으로 발탁하는 것이다. 굉장히 전위적인 방식의 표현법이다.  


백조가 물 밖에선 우아하게 떠다니지만 물 아래에선 쉼없이 발을 저으는 것처럼, '올바른' 메시지를 전하고자 '무슨' 짓이든 하는 모습이 흥미롭게 파격적으로 다가오면서도 '인간 세상이 다 그렇지' 하는 깨달음까지 동반하게 한다.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시선에서 보면, 그 누구 하나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 없고 그 누구 하나 '착한 놈'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없다. 모두 '때'가 묻어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모두 하는 선택이었다는 식이다. '자유와 평등과 진보'의 메시지와 '성공'이라는 개념이 합쳐져 확고부동한 줄기를 형성한다. 


단연 눈에 띄는 건, 성별과 인종의 차별 위에 서 있는 성정체성 차별의 모습이다. 아무래도 남성이 주요 인물일 수밖에 없을 텐데, 최소한 절반 이상이 게이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평생 숨기며 살아야 하기에 드러내지 않으려야 드러내지 않기 힘든 성별과 인종에 비해 더욱더 힘든 삶을 살았다. 이 드라마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여, '1940년대 미국 할리우드'라는 지금 우리와는 하등 상관 없을 것 같은 이야기임에도 끌린다. 분노하고 응원하고, 치를 떨기도 하며 열광하기도 한다. 


시공간을 초월해 공명하는, 영리한 이야기


작품은 아련하다. 할리우드 최고의 성공가도를 완성하는 이들의 이야기임에도, 그 과정의 온갖 더러운 꾸정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련한 공감이 물밀듯 밀려들어온다. 꼭 저렇게 살아야 할까 싶기도 하면서도, 성공만이 아닌 투쟁으로서의 삶의 숭고함이 불쑥 고개를 들기도 한다. 직접적인 공감은 힘들지언정, 마치 같은 공간에서 숨쉬고 생각하고 말하며 '공명'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아련한 여운을 남기기에 이른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영리하다. 삶과 세상을 규정하는 한 가지 또는 몇 가지의 개념과 사상이 아닌, 수많은 인물들의 집합체로서의 아슬아슬한 생각과 행동과 변수들까지 총집합시켜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 버렸다. 하여, 어느 누가 보든 전부 받아들여 버리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나아가, 그런 곳이 할리우드이고 그런 나라가 미국이라는 보다 거대하고 근원적인 의도도 엿보인다. 모든 것이 수용 가능한 곳. 


마지막으로 <오, 할리우드>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재미와 감동은 물론, 사고방식과 사상의 틀을 정립하는 데 도움을 준다. 획기적인 전환을 전하는 게 아닌 논란의 '올바른 쪽'을 대놓고 지지하면서, 지금쯤이면 짚고 넘어갈 수 있다고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한없이 창대하고 행복하다는 전제 아래, 시즌 2는 언제 어떤 형태의 이야기와 메시지를 가지고 찾아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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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메시지를 만족시키는, 세련된 오락영화 <벌룬>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2. 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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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벌룬>


영화 <벌룬> 포스터. ⓒ세미콜론 스튜디오



1976~88년까지 38,000여 명의 동독시민이 서독으로 탈출하려다 실패했고 그중 46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1979년 독일민주공화국(동독) 청소년 헌신의 날 포즈넥 시, 평범해 보이는 피터네 가족은 하늘로 날아간 풍선이 서쪽으로 향하는 걸 보고는 퀸터를 만난다. 벌룬(열기구)도 준비되어 있으니 타기만 하면 독일연방공화국(서독)으로 탈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퀸터는 모든 걸 다 계산해봤는데 너무 위험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결국 퀸터네는 남고 피터네는 탈출을 계획한다. 


어렵지 않게 벌룬을 타고 하늘로 오른 피터네, 문제 없이 탈출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국경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추락하고 만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빠르게 대처해 뒷수습 후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낌새를 눈치챈 비밀경찰이 움직인다. 피터네로서는 시시각각 조여오는 비밀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어떻게든 탈출을 해야 한다. 미국 대사관을 통해 접선해 보지만, 실패하고 만다. 


정말에 빠져 있던 피터네, 언제 찾아올지 모를 비밀경찰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시안부 인생인 것이다. 그때 큰아들이 용기를 불어넣는다. 시간은 턱 없이 부족하지만, 다시 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고 말이다. 늦었지만 늦지 않았다고 말이다. 그들은 퀸터를 다시 찾아가 설득한다. 이번에는 다 같이 탈출하자고. 퀸터는 군에 징집되어 함께 갈 수 없지만, 밤낮 없이 벌룬을 만들어 아내와 아들을 피터네 가족과 함께 탈출시킬 거라 공언한다. 비밀경찰의 좁혀 오는 수사망을 피해 불가능에 가까운 시간 내에 벌룬을 만들어 탈출할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과연 가능할까?


이 영화가 지금 다시 돌아온 이유


독일에서 건너온 영화 <벌룬>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1979년 동독에서 벌룬을 이용해 서독으로 탈출을 시도한 이들이 있었다. 명백한 스포일러가 될 테지만,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지 않았다면 영화가 만들어지진 않았을 테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이미 40여 년 전에 있었으니, 영화 역사상 유일무이한 칸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동시 석권의 델버트 맨 감독 작품 <심야의 탈출>이 그것이다. 


이 영화가 지금 다시, 독일 영화로 돌아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독일에선 2018년에 개봉했고 한국에선 2020년에 개봉했지만, 의미 있는 건 2019년이다. 영화 배경이 되는 해가 1979년이니 만큼 40주년이겠고, 독일 통일의 상징적 사건인 베를린 장벽 붕괴가 1989년에 있었던 만큼 30주년이 되겠다. 독일에선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고, 세계 현대사에서도 가장 극적인 사건이었다. 


영화로 들어가 보면, 정치 사상적 메시지를 내보이려는 우를 범하지 않고 지극히 영화적으로 자연스럽게 내보이려 했다. 제목이 '벌룬'인 게 잘 어울리고 또 잘 통한 것인데, 자유를 위해 탈출하는 모습에 포커스를 맞추고 조여오는 비밀경찰의 수사망과 교차하는 모습에 집중하게끔 하였다. 영화적 재미를 최우선으로 했다는 걸 명백히 하였고 관객은 잘 알아차렸으며 서스펜스 듬뿍 담긴 스토리를 즐길 수 있었다.


충분히 세련된 오락영화


영화는 투박할 거라 지레짐작해도 충분할 독일과는 거리가 먼 세련됨을 자랑한다. 이야기를 천천히 탄탄하게, 하여 예상 가능하고 지루할 수 있는 계단식 단계를 밟지 않는다. 시작부터 벌룬을 이용한 동독 탈출을 시도한 것도 모자라 실패해 돌아와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불안과 절망 속에서 다시 절치부심, 영화 중반에 보다 심각하게 다시 시작된다. 


'쌈박한' 탈출 영화를 두 편 연달아 본 느낌이다. 비밀경찰의 용의주도한, 또는 연출과 편집으로 만들어낸 용의주도함으로 실패와 성공을 가늠하지 힘들게 한다. 시종일관 긴박감 넘치는 배경음악, 긴박감을 배가 시키는 주변인물들의 의심화, 의심을 현실로 만드는 분위기 조성,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교묘한 교차 편집 등 알게 모르게 영화적 기술을 총동원했다. 


문제는, 이렇게만 보면 영락없는 오락영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목숨 걸고 탈출을 시도한 실화를 가져와, 긴장감과 긴박감과 쫄깃함 등을 오락적 요소로만 사용했을까 하는 점이다. 영화를 보는 흥미를 위해 메시지를 최대한 배제시킨 건 부인하진 않겠다, 아니 부인할 순 없다. 하지만, 곳곳에서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제목부터 자유를 갈망하지 않는가. 


자유, 진실, 희망


오직 국가를 위한 충실한 일꾼으로 살아가며, 국가가 모든 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당시 동독의 전체주의 사상이다. 개인과 사조직의 권리는 없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자유를 갈망하지 않는가, 의무를 실행하는 만큼 권리도 가지고 싶지 않는가. 일반인들에겐 민주주의라든지, 사회주의라든지 하는 개념이 하등 필요하지 않았을 테다. 


자유를 향한 갈망과 곁가지로 뻗어나가는 개념이 있다. 그들의 탈출에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것들, 진실과 희망이 그것들이다. 그들이 사는 나라는, 국가의 통제 아래에서 만들어진 진실이 진실한 진실을 대체한다. 인지하고도 남으면서도 폭거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진실을 알고 또 말하고 싶고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희망이 그들을 부추긴다. 갈망과 열망이 지대해도 희망이 없다면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올바른 건 끊임없는 되새김이 필요하다. 지금도 올바름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메시지 전달에 힘 쓴 영화들보다 오히려 더 잘 와 닿았다고 본다. 간간이 찾아오는, 미국 아닌 제3세계 영화들을 기대해본다. 훌륭한 재미와 메시지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충분한 결실을 본 영화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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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벌룬, 서독, 오락영화, 자유, 진실, 탈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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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마녀이자 '평범'한 소녀의 성장과 좌절 <마녀 배달부 키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6. 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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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마녀 배달부 키키>


<마녀 배달부 키키> 포스터. ⓒ스마일이엔티



'마녀'가 되기 위해선 13살에 고향 마을을 떠나 1년간 다른 곳에서 정착해 수행해야 한다. 13살 견습마녀 키키는 검은 고양이 지지와 함께 아직 제대로 타지도 못하는 빗자루를 타고 길을 나선다. 바다를 낀 거대한 마을에 도착한 키키와 지지, 하지만 환영받지 못한다. 풀이 죽어 길을 돌아다니다가 빵집의 오소노 아줌마를 도와주게 되고, 이내 오소노의 도움으로 머물 곳을 마련한다. 


빵집에서 머물며 빵집 일도 도와주고 날아다니는 능력을 이용해 배달부 일도 한다. 성심성의껏 고객들을 응대하며 마녀로서의 수행도 하고 마을에도 적응해 나간다. 하지만, 키키에게는 이 거대한 마을에 도착했을 때부터 계속되어온 못마땅함이 자리잡고 있다. 시골 고향 마을에서 출발하면서 돈 몇 푼에 무채색 칙칙한 옷 한 벌 정도만 여분으로 가져온 점이다. 이곳에 와서 보니 또래 친구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게 아닌가. 


마녀로서의 수행과 성장이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키키는 알지 못한다. 우선 자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하고, 또래 도시 친구들처럼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꾸미고 놀 수가 없다. 이 자괴감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키키는 마녀라는 특별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13살에 불과한 소녀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빵집 오소노 아줌마, 숲속 화가 우르슬라, 도시 친구 톰보는 그녀를 특별하게 여긴다. 


30주년 기념 재개봉 <마녀 배달부 키키>


30주년 기념으로 재개봉하는 <마녀 배달부 키키>의 한 장면. ⓒ스마일이엔티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의 다섯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가 2019년 30주년을 맞이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브리 설립 이전에 <루팡 3세>가 첫 번째 장편이고, 지브리 스튜디오는 <반딧불의 묘>가 네 번째 장편이다.) 앞서 6월 6일에 재개봉한 <이웃집 토토로>와 불과 20일을 두고 재개봉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성기는 2000년대라 할 만하지만,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80년대를 수놓은 작품들이 긴 세월을 건너 다시 찾아온 것이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따로 있는 원작을 바탕으로 연출한 첫 번째 작품이다. 하여, 기본적인 골조와 메시지는 그가 추구하는 세계관과 일맥상통하지만 특유의 핵심 주제와 분위기는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와 지브리가 내놓은 수많은 명작들을 굳이 나누자면, 이 작품은 하급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렇지만, 한없이 귀여운 캐릭터 키키와 지지, 몽글몽글하고 편안한 분위기, 부담없는 주제 등이 어우러져 개봉 당시 큰 흥행을 이끌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비로소 대중과 연결시킨 작품인 것이다. 다만, 그리 잘 나가지 않았던 지브리 스튜디오 초창기의 애매함과 미야자키 하야오 개인의 네임벨류가 완벽히 상통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제작과정에서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줄 안다. 


특별한 듯 특별할 것 없는 존재


특별한 듯 특별할 것 없는 존재, 마녀 키키. <마녀 배달부 키키>의 한 장면. ⓒ스마일이엔티



영화의 배경은 시간적, 공간적, 인종적으로 일본 아닌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유럽인 듯 보인다. 원작가와 연출가의 기획에 따른 결과였을 텐데, 마녀라는 특별한 존재를 특별한 듯 별다르지 않게 대하는 시대를 상정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바로 전작인 <이웃집 토토로>가 아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특별한 존재를 자못 비밀스럽고 환상적으로 내보이는 것과 다르게, <마녀 배달부 키키>는 모든 이들의 눈에 보일 뿐더러 어울려 살기에 하등 이상할 게 없는 특별한 듯 특별할 것 없는 존재를 내보이는 것이다. 


중년인 듯한 동네 주민들이 '요즘엔 마녀를 잘 볼 수 없다'는 둥 '들었던 대로 날아다닌다'는 둥 하는 걸 보니, 마녀를 이제는 잘 보기 힘든 지나간 구시대의 신기한 존재처럼 취급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키키 본인은 조금 서글플지 모르지만, '키키'라는 주체가 아닌 '마녀'라는 객체이자 대상이 되어 전시되는 것보단 훨씬 건강해 보인다. 그녀가 그녀로서도 마녀로서도 성장과 좌절을 경험할 수 있는 건, 이런 건강한 기반이 구축되어 있는 덕분이겠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확장된 동심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로 이(異)세계라고 해도 무방한 곳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이 거리낌 없이 더불어 살고 있는 모습에 감탄을 보낸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게 최대 미덕이라고 하는 지금이지만, 여전히 '획일화'라는 괴물과의 사투를 계속하고 그 사투에서 이기지 못하는 면면을 보고 느끼고 있노라면 그 감탄의 무게는 무겁기 짝이 없다. 


특별한 마녀이자 평범한 소녀의 성장과 좌절


특별한 마녀이자 평범한 소녀의 성장과 좌절을 그린다. <마녀 배달부 키키>의 한 장면. ⓒ스마일이엔티



특이하기도, 귀엽기도, 부럽기도 한 세계, 그러나 주지한 것처럼 건강한 기반을 갖춘 곳에서 '소녀'이자 '마녀'인 키키가 겪는 성장과 좌절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성장이 마녀만의 능력을 이용하지만 소녀로서의 능력에서 벗어나기 힘든 억척스러운 현실을 반영했다면, 좌절 또한 (사춘기) 소녀로서의 복잡미묘한 심리에서 비롯되지만 역시 마녀로서의 기본 능력이 함께 저하되는 현상도 반영한 것이다. 


특별한 마녀와 평범한 소녀라는 대척점과 거기서 비롯된 상징적 대립 하에서의 성장과 좌절은, 사실 우리 모두 한 번쯤 느껴보고 겪어봤음직 하다. 그건 평생 계속된다. 단순하게든 복잡하게든, 누구든 자신이 때론 특별하게 또는 대단하게 때론 평범하게 또는 하찮게 느껴지는 법이다. 언제든 중심을 잃지 않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단, 더불어 사는 세상인 만큼 내가 남을 알아봐주고 남이 나를 알아봐주는 특별하든 평범하든 개의치 않고 진가를 알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키키에게는 고향 마을에서 그녀를 응원하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말이 통하는 검은 고양이 지지가 있고, 그녀를 마녀로서뿐만 아니라 소녀로서도 알아주는 톰보와 우르슬라도 있으며, 그녀의 성실함과 친절함에 반해 인간적으로 교감하게 된 고객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도 키키라는 존재가 있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회가 곧 개인이 각자도생하는 사회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세상은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절대적으로 상부상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시, 절대적으로 혼자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으며 살아갈 거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서 도움과 인정을 주고 받는 데 인색함이 없는 삶과 세상이 되길 바란다. <마녀 배달부 키키>가 보여주는 삶과 세상이 바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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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마녀 배달부 키키, 미야자키 하야오, 자유, 지브리 스튜디오, 특별, 평범, 획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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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같은 듯 또 다른, 충분하고 충분한 영화 <알라딘>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6. 2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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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알라딘>


영화 <알라딘> 포스터.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지난 2014년 <말레피센트>로 '디즈니 실사영화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1년에 한 편 이상씩 선보였는데, <신데렐라> <정글북> <미녀와 야수>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 <덤보>까지 이어졌다. <정글북>과 <미녀와 야수>의 기록적 흥행으로 힘을 받아 2018년, 2019년 2편 이상을 선보일 계획을 세웠지만 2018년에는 망했고 2019년 첫 주자 <덤보>도 맥을 못추렸다. 


하지만 '필살기'가 있었으니 2019년 7월 개봉 <라이온 킹>으로, <아이언맨> <정글북>의 존 파브로 감독이 또 한 번의 역대급 대박을 준비하고 있다. 그 바로 전 6월에는 <알라딘>이 개봉했는데, <라이온 킹>의 개봉 전 이벤트격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감독은 가이 리치로, 20여 년 전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스내치>로 데뷔와 동시에 할리우드 최고 기대주가 되면서 10살 연상 마돈나와 결혼까지 했지만 곧바로 추락한 이력이 있다. 2010년대에 들어 <셜록 홈즈> 시리즈로 재기했지만 최근 다시 추락하고 있다. 


거기에 주연은 어떤가. 지니 역의 윌 스미스, 1990~2000년대 최고 스타였지만 2010년대 거짓말처럼 추락해 나오는 영화마다 융단폭력을 당했고 당하고 있으며 당할 게 자명해 보였다. 알라딘 역의 메나 마수드,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보는 얼굴이고 실제로도 <알라딘>을 포함해 단 두 편의 영화를 찍었을 뿐이다. 자스민 공주 역의 나오미 스콧, 역시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보는 얼굴인데 메나 마수드보다는 이력이 조금 더 풍부하다. 디즈니 라이브액션 프로젝트의 하나라는 점과 '알라딘'이라는 타이틀을 제외하면 기대를 할 여지가 거의 없다 하겠다. 


뚜껑을 열어보니, 이토록 뻔하지만 마음을 들썩이게 만드는 재주는 역시 디즈니를 따라갈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그건 디즈니와 경쟁하는 할리우드의 메이저 제작배급사는 물론이고 관객들도 마찬가지이겠다. 원작을 철저히 답습한다는 점에선 별다를 게 없거니와 시덥잖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현대적으로 업그레이드된 메시지와 OST 그리고 싱크로율과 윌 스미스의 연기 등이 자잘하게 역할을 했다. 


아그라바 왕국, 알라딘과 자스민 공주와 지니


영화 <알라딘>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원작을 봤다면 굳이 줄거리에 눈길을 두지 않아도 되겠지만, 혹시 본 적이 없거나 필자같이 봤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면 줄거리에 눈길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사막 속 아그라바 왕국, 좀도둑 알라딘은 원숭이 아부와 함께 여지없이 소소하게 훔치고 도망다니고 있다. 와중에 자스민 공주를 곤경에서 구해준다. 공주는 처음엔 자신을 공주의 시녀 자스민이라고 속인다. 하지만 곧 이웃나라에서 왕자가 방문하고 공주는 궁으로 돌아간다. 알라딘은 아부가 훔친 달리아의 팔찌를 돌려주러 궁으로 향해 결국 공주를 만난다. 


한편, 아그라바 왕국에는 술탄이 나라를 다스린다. 그의 슬하엔 자스민 공주밖에 없기에 하루빨리 공주를 다른 나라 왕자와 결혼시키려 한다. 이에 자스민은 본인이 술탄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하지만, 여자는 술탄에 오르지 못한다는 법과 1000년 역사에 전례가 없는 율령에 의해 모두가 반대한다. 재상 자파는 밑바닥에서 산전수전을 겪고 그 자리에 오른 인물로 2인자에 머물 마음 없이 술탄의 자리에 오르려 한다. 


자파는 신비의 동굴 속 마법의 램프를 찾고자 한다.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가 사는 램프를 찾기만 하면 술탄의 자리에 오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동굴은 죽음이 상존하는 매우 위험한 곳, 자파는 알라딘을 꿰어내 공주도 좋아할 만한 재력의 부자로 만들어줄 수 있다며 신비의 동굴로 가 마법의 램프를 가져오라고 한다. 알라딘은 바로 동굴로 향하는데... 알라딘은 무사히 램프를 가져올 수 있을까? 자파에게 줄까, 본인이 직접 지니를 불러낼까? 자스민 공주와 잘 될까? 아그라바 왕국은 어떻게 될까?


가치, 자유, 침묵


영화 <알라딘>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알라딘>은 디즈니 영화답게 균형감을 중심에 두고 뒤탈 없을 만큼 적당하고 누구나 알아듣기 쉬울 만한 메시지들을 주요 캐릭터들의 삶과 생각에 맞게 배치시켜 풍성하게 마무리한다. 이번에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진실'이라는 메시지를 중심에 두고, 알라딘에게는 '가치'를 지니에게는 '자유'를 자스민 공주에게는 '침묵'이라는 메시지를 부여했다. 영화는 알라딘에 치중하지 않고 주요 캐릭터들에 고루고루 시선을 분산해 고유의 신조를 발산하게 했다. 균형감이 풍성함으로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었다. 


일찍이 고아가 된 알라딘은 좀도둑으로 빌어먹고 있지만 자신에겐 자신만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정작 그가 잘하는 건 쥐도 새도 모르게 자잘한 물건들을 훔치는 것과 좀도둑다운 날렵한 몸놀림으로 도망가는 것뿐인 듯하다. 하지만 그에게도 이타적 마음이라는 가치가 있다. 그게 매력으로도 발산해 동네 사람들이 좀도둑에 불과한 그를 이리저리 돕는 게 아니겠는가. 비록 내면적 가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자신은 물론 남들은 더욱더 발견하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만 년을 살면서 지난 천 년 동안은 램프에서 나올 일이 없었던 지니, 그의 소원은 의외로 자유를 찾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그이지만, 두 팔목에 장착된 족쇄 때문에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더욱이 램프를 문질러 그에게 소원을 비는 주인님이 아니면 램프에서 나올 수도 없다. 그래서 지니는 족쇄를 풀고 영원히 사는 삶에서 벗어나 인간이 되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 그건 오직 주인님의 소원으로만 가능하다. 지난 만 년 동안 그런 소원을 빌어준 주인은 당연히 한 명도 없었다. 


아그라바 왕국의 유일한 상속자 자스민 공주, 하지만 법으로 정해진 바 그녀는 술탄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남자보다 출중한 문무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술탄은 법을 바꿀 수 있기에 아버지 술탄이 바꾸면 가능하지만 왕국이 새워진 이래 1000년 동안 그런 전례가 없었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자스민 공주는 그저 공주라는 신분에 만족한 채 침묵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으려 한다. 나라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술탄으로서의 능력을 두루 갖춘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OST 그리고 윌 스미스의 끼


영화 <알라딘>의 한 장면. ⓒ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주지한 여러 메시지 중 자스민 공주의 경우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현재 추세상 매우 적합했는데, 예상했지만 역시 업그레이드된 신선함을 느꼈다. 특히 파워풀한 노래 speechless로 지금의 심정과 앞으로의 행동을 내보인 게 인상적이었는데, 아주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잘 살려냈다. OST의 준수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원작 때부터 유명했던 A whole new world은 추억 어린 감동을 다시 한 번 불러일으켰고, 지니가 주측이 되어 힙합 스웩 다분하게 끼를 발산한 Friend like me는 흥을 돋우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OST조차 주요 세 캐릭터에 골고루 분산시키는 전략을 짠 <알라딘>, 균형 분산은 이뿐만이 아니다. 알라딘에게는 원숭이를 자스민 공주에게는 호랑이를 자파에게는 앵무새를 붙여놓아 또 다른 종류의 보는 즐거움과 요밀조밀세밀한 맛을 느끼게 했다. 들여다보면 알겠지만 오히려 알라딘에게 가장 적은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는데, 그 덕분에 그와 함께 다니는 원숭이 아부와 날으는 마법 양탄자가 부각되어 균형을 맞췄다. 


이 영화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 이 영화의 흥행 성공에 절대적 지분을 차지하는 것, 지니로 분한 윌 스미스의 연기다. 아니, 연기라기 보다 '끼'의 분출이라고 해야 맞을까. 1990~2000년대 전성기의 윌 스미스 그 이상의 빨려들어갈 것 같은 끼를 선보였다. 시쳇말로 '약 빤 연기'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그 모습에 '윌 스미스가 다시 돌아왔구나' 하는 느낌마저 든다. 한편, 그런 윌 스미스의 지니가 원작과 싱크로율이 그리 맞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외에 대부분의 장면장면이 원작을 답습한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똑같다.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보는 메리트를 확실히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의외의 성공을 이룩하였고, 의외의 성공작으로 분류되어 길이남을 영화 <알라딘>. 비록 전체적으론 별다른 특이점을 찾기 힘들고 자못 유치했지만, 대상이 어린과 아이 모두라는 점을 인정했을 때 명백한 건 보는 내내 행복했다는 것이다.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없이 힐링되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걸로 충분하다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충분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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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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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여강여호
    2019.06.24 17:30 신고

    사실 저도 가물거려서 줄거리만 내내 읽고 갑니다. .ㅎㅎ..

    • BlogIcon singenv
      2019.06.24 17:55 신고

      다른 건 몰라도, 디즈니 특유의 재미는 확실히 있었어요 ㅎ

  • 김성회
    2019.06.25 19:12

    정말 IMAX로 보시길 강추! 그럼 감동 백배!

    • BlogIcon singenv
      2019.06.25 19:16 신고

      아쉽게도 IMAX로 못봤어요ㅠ IMAX는 아예 다른 영화에 가깝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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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으로서 추구하는 평화' <총구에 핀 꽃>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9. 4.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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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총구에 핀 꽃>


<총구에 핀 꽃> 표지. ⓒ아시아



'평화'의 시대다. 밑도 끝도 없이 에둘러서 이렇게 표현하는 건, 평화를 염원하고 있지만 평화가 도래하진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불과 30여 년 전까지 전 세계가 둘로 나뉘어 수많은 비극을 탄생시켰던 것처럼 지금도 그리하고 있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전 세계 곳곳에서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사태는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평화'는 요원하다. 철학적인 의미로 한정했을 때 무력 항쟁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한다면 인류 역사에서 이전에도 지금도 이후에도 평화는 절대적으로 요원하였고 요원하며 요원할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평화를 서원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위해 살고 왜 살겠는가. 영원히 끌어안을 수 없는 평화이지만 영원히 끌어안으려 발버둥칠 것이다.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소설이 나왔다. 1980년 데뷔 이래 한국 현대사의 다양한 문제를 치열하게 짚어온 이대환 소설가, 데뷔 40주년을 앞두고 실존인물 '김진수'를 모델로 한 장편소설 <총구에 핀 꽃>을 들고 왔다. 김진수는 한국전쟁 중 부모를 잃고 미군에 의해 입양되었다가 본인이 미군이 되어 베트남에 파병된다. 휴가를 맞이해 일본에 왔다가 탈영하여 주일쿠바대사관과 베헤이렌 활동가의 집에 머물다가 소련으로 간다. 다시 스웨덴으로 가서는 소식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작가는 소설의 주인공 손진호로 실존인물 김진수를 형상화한다. 


'작가'로서 탐구하는 진실


소설은 액자소설 형식을 취한다. '나' 손기정이 아버지 손진호와 함께 한국과 일본을 여행하는 현재가 한 축을 이루고, '나' 손기정이 학위논문을 대체하고자 아버지 손진호의 파란만장 과거에 대해 쓴 소설이 한 축을 이룬다. 우리가 이 소설을 통해 주로 접하고 또 방대하고 촘촘한 의미를 받아들여 축적하게 되는 건, 손기정이 손진호에 대해 쓴 소설일 것이다. 


<박태준 평전>을 집필한 적도 있는 작가는 왜 <김진수 평전>이 아닌 소설 <총구에 핀 꽃>을 내놓은 것일까. 작 중 손기정의 입을 통해 말했듯, '그 그릇이 최후로 담아내야 하는 실체는 어떤 사실들의 배후를 관장하는 진실과 그 진실의 핵을 이루는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걸고 진실을 탐구하고자 한 것이다. 


손진호의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삶의 궤적은 당연히 김진수와 거의 일치한다. 다만, 소설은 사유를 위해 서사를 창조했다. 손진호는 한국전쟁 중 부모를 잃고 떠돌다가 포항의 송정원으로 가 어린 시절을 보낸다. 미군에 입양되어 히피문화에 깊이 빠져들기도 했던 손진호는, 미군에 입대하여 베트남으로 파병된다. 


어린 시절 한국전쟁에서 경험한 어머니의 죽음이 떠올라 총을 들 수 없게된 손진호는 일본으로 휴가를 나와선 탈영한다. 이후 주일쿠바대사관과 베헤이렌(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 활동가의 집에서 머물다가 그들의 도움으로 소련을 거쳐 스웨덴으로 간다. 백인 여자와 결혼한 뒤 낳은 아들이 장성해 한국으로 유학을 와 아버지의 일대기를 소설로 써서 학위를 받으려 한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 손진호를 초청해 함께 일본과 한국을 여행한다.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자료의 '사실'을 말하면, 아버지는 오류를 바로잡고자 '진실'을 말해준다. 


개인과 평화


작가는 2000년대 초반, 1960년대 베트남전 기간에 베헤이렌을 이끌었던 오다 마코토를 몇 차례 만나 '김진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후 15년여 동안 김진수를 소설에서도 살아가게 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베트남전쟁을 반대하고, 미국, 일본도 소련, 북한도 선택하지 않은 채, 제3국 스웨덴으로 망명한 한국 출신 김진수의 삶이 50년을 훌쩍 지난 지금에도 소구점이 있을 거라 확신한 듯하다. 


자연스레 생각나는 건 최인훈의 <광장>이다. 한국전쟁 전 이명준은 광장은 없고 밀실만 남았지만 진정한 개인의 밀실은 존재하지 않는 남한과 그런 남한에 반(反)해 이상적인 광장을 꿈꾸며 향했지만 사회적 광장만 존재할 뿐 역시 진정한 개인의 밀실은 존재하지 않는 북한을 경험한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참전하는데 포로로 잡히게 된다. 정전 후 제3국을 택해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에서 투신자살한다. 


타락한 밀실(개인)과 타락한 광장(사회)에 모두 실망한 이명준이 택한 선택은 제3국도 아닌 무(無)였다. 반면, 손진호는 입양되어 겪는 자기정체성 확립 문제에서 국가와 개인(나)에 대해 깊게 고민하며 국가보다 개인에게 더 큰 가치를 부여했을 뿐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 즉 어머니를 잃은 경험이 크게 작용하여 베트남전쟁을 벗어나 탈영을 결심, 결행한다. 


한편, 작중에서 '평화'를 상징하는 건 다름 아닌 송정원이다. 손진호가 생각하는 어린 시절, 전쟁의 끔찍한 상처와 더불어 천국과도 같았던 송정원 생활이다. 부모의 부재가 촉발한 생활이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라는 아이러니가 존재하지만, 작가가 창조한 여러 일화들은 헤어나오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제공한다. 


이 시대의 평화


국가와 대비되는 개인, 개인으로서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 즉 '개인으로서 추구하는 평화'는 결코 50여 년 전 어느 일개 개인의 돌출되고 돌발적인 바람과 행동이 아니다. 평화가 최대 화두로 떠오른 지금, 가장 중점에 두고 생각해봐야 할 주제이다. 평화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하는가. 물론, 그전에 평화란 게 무엇인지, '이 시대'의 평화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아는 게 우선일 것이다. 


작중 '송정원'에서 한 측면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총구에 핀 꽃>에서 거의 모든 인물이 이름을 가지고 있는 반면, 송정원을 이끄는 '흰 수염 푸른 눈 신부'는 이름이 거론되지 않는다. 이 신부야말로 소설의 사유와 서사 핵심을 이루는 인물인데 이름이 없다는 건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해설을 쓴 이경재 문학평론가는 '국가라는 상징계를 벗어난 절대적인 존재를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라고 했다. 이어 '흰 수염 푸른 눈 신부'가 송정원 아이를 특정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선 통곡하는 장면에선 '국가와 같은 공동체에 얽매인 도덕이 아니라 전인류적 차원의 윤리를 지향'한다고 보았다. 


작가는 소설을 빌려 이 시대의 평화란 국가 아닌 인류에 속한 개인으로서 영혼을 구원해주는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거라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오다 마코토가 이끌었던 베헤이렌 활동가가 생각하는 '작은 인간'이 세계평화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알갱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이 시대의 평화는 개인과 맞닿아 있다.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은 <데모스 여행>이었다. 작중에서도 언급되는 '데모스'는 다수 또는 대중이지만 결국 작은 인간들이란 뜻으로 개인이 없으면 데모스도 없다는 것이다. 작가는 손진호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작은 인간들의 여행으로 치환한 것이다. 즉, 본래 이 소설은 평화보다 개인을 중점에 두었다. 이후 최종 제목을 <총구에 핀 꽃>으로 결정한 바, 개인보다 평화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총구에 꽃을 꽂은 퍼포머스를 펼친 손진호 자신이 지극히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작은 인간'인 바, 개인이 곧 평화이고 평화가 곧 개인이라 하겠다. 


1961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취임 연설에서 "국가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라고 외쳤다. 이를 빌어, "국민이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 전에 국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라고 외칠 수 있을까? 아니, <총구에 핀 꽃>에서 개인은 국민을 뜻하지 않을 테다. 대입이 되지 않는다.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빅브라더의 슬로건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 여기에 맞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태의 반전이 주는 충격을 뒤로 하고 다시 이상적인 형태로 돌려놓으면 곧 <총구에 핀 꽃>의 주제가 될 듯하다. 평화, 자유, 지(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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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이대환, 자유, 작은 인간, 전쟁, 총구에 핀 꽃, 편집자가 독자에게,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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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인생에의 지독한 은유 <쇼생크 탈출>

오래된 리뷰 2017. 9.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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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쇼생크 탈출>


어느덧 개봉 20년이 훌쩍 넘은 자타공인 최고의 영화 <쇼생크 탈출>. Best of Best다. ⓒ더 픽쳐스



평생 가장 많이 본 소설은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접하곤 1년마다 꼭 한 번씩은 봐서 최소 10번은 족히 봐왔다. 한국어는 물론 영어로도 중국어로도 봤고, 일본어로는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요즘 몇 년 동안엔 못 보고 있는데, 여전히 내 생애 최고의 소설로 남아 있다. 드라마도 있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하얀 거탑> <하이킥 시리즈> <응답하라 시리즈> 등. 


영화는 어떨까. 한국과 미국 것이 나눠진다.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를 참 많이 봤다. 군대 경험이 있는 한국 남자라면 뿜어져 나오는 웃음과 평생 남을 트라우마의 역설로 괴로워하면서 재밌게 볼 것이다. 그리고 스티븐 킹 원작,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쇼생크 탈출>이다. 


스티븐 킹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은 미드의 새로운 신기원을 이룩한 <워킹데드 시리즈> 초창기를 진두지휘한 이로 유명하다. 모르긴 몰라도 많은 이들이 가장 많이 본 영화로 <쇼생크 탈출>을 뽑지 않을까 싶다. TV에서 잊을 만하면 방영되는 결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수많은 명작을 제치고 '네이버 평점'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명작 중의 명작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쇼생크 탈출'의 의미는 무엇일까?


주인공 앤디에게 탈옥, 즉 '쇼생크 탈출'은 자유 그 자체다. 뭐가 더 있겠나. ⓒ더 픽쳐스



영화는 1947년 미국, 전도유망한 은행 부지점장 앤디(팀 로빈슨 분)가 바람난 아내와 그 애인을 총으로 쏴죽인 혐의로 종신형을 언도 받고 '쇼생크' 교도소에 갇히면서 시작된다. 다음날 입소 동기 중 한 명이 잘못 보여 간수장에게 얻어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건 으레 있는 일로 치부된다. 이곳의 갇힌 죄수들은 인간 이하 취급을 받으며 소장과 간수장 이하 간수들은 절대적 권력의 소유자들이다. 


교도소에 갇힌 죄수들 모두가 그리 주장하듯이 앤디도 한사코 무죄를 주장한다. 자신은 아내와 그 애인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코 죽이진 않았다는 것. 곧 쓰러질 것 같이 비리비리한 앤디의 첫인상을 좋지 않게 보았지만 점점 그 결기랄까 아우라랄까에 빠져든 레드(모건 프리먼 분), 그는 이미 20년째 복역 중인 종신형수로 구하지 못하는 물건이 없는 이다. 앤디는 그에게 상식 밖의 물건들을 요청하곤 한다. 


앤디는 오래지 않아 간수장과 소장의 눈에 띈다. 은행원이라는 점을 이용해 간수장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주고 이어 소장의 회계 비서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그건 곧 소장의 비리를, 즉 돈세탁과 세금포탈을 맡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앤디는 우연히 자신의 혐의가 벗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소장이 이를 가로막는다. 어느날 앤디는 방에서 감쪽 같이 사라지는데... '쇼생크 탈출'을 감행한 것일까. 


자유에의 희망


앤디가 역설한다. '자유' 그 자체보다 더 필요한 건 자유에의 '희망'이라고. ⓒ더 픽쳐스



원작자 스티븐 킹은 스릴러공포 장르로 유명하고 또한 정평이 나 있다. 소설도 소설이지만 영화로 나와 엄청난 인기를 얻었는데, <캐리> <샤이닝> <미저리>라는 공포스릴러의 대명사급 영화들이 그것이다. 반면 생각 외로 공포와는 거리가 먼 드라마 장르로도 우리를 설레게 했다. <쇼생크 탈출>을 필두로 <그린 마일> <스탠 바이 미> 등의 영화들이 그것이다. 그는 정녕 장르를 가리지 않는 이야기꾼인 것이다. 


<쇼생크 탈출>은 제목에서도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듯 <몬테크리스토 백작> 이후 '감옥 탈출'이라는 오래되었지만 엄청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모토를 가져왔다. 우리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어떻게' 탈출할지 노심초사, 학수고대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얼마나 기상천외한 방법을 선보일까?


하지만 이 영화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한 것들을 우리에게 선보인다. 그건 '왜' 탈출해야 하는지와 맞물려 있는데, 영화는 시종일관 단순명쾌하게 '자유에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 모습은 전적으로 앤디의 행동과 그 행동으로 레드가 유추하는 바를 통해서다. 그리고 몇몇 죄수들의 에피소드들까지. 


앤디는 간수장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신 함께 땡볕 아래서 일하는 동료 죄수들에게 '맥주' 2캔씩을 부탁하고, 한창 소장 밑에서 잘나가고 있을 때 모든 죄수들에게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선사하곤 독방으로 직행한다. 레드에게는 반드시 탈옥하여 완벽한 자유를 선사할 멕시코의 어느 해변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이름으로 함께 사업할 것을 약속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자유'로 수렴된다. 그 장면들이 하나같이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들이다.


'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인생에의 지독한 은유


그렇지만, 희망에의 과정은 너무 가혹하다. 그리고, 자유에의 결과는 더욱 가혹하다. ⓒ더 픽쳐스



마냥 좋을 것만 같은 '자유'의 역설도 잊지 않는다. 장장 50년 동안 교도소에서 생활하다가 이제는 자신의 죄를 완전히 뉘우치고 사회생활을 해도 되겠다고 판단해 풀어준 죄수가 있다. 그는 교도소 내에서 도서관 사서로 꽤 중요한 일을 하며 간수와 죄수 모두에게 두루 신뢰를 얻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밖에 나가면?


죄수들 중에서야 중요하고 신망이 두텁지 일반인 중에서는 죄수 출신 늙은이일 뿐이다. 그는 교도소에서 나가기 전에 사고를 일으켜 형을 연장하고자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교도소를 나가서도 사고를 일으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너무 늦었음을 직감했다. 결국 그가 그가 할 일은 생을 마감하는 것밖에 없었다. 자유를 진정 바라고 그에 준비된 사람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역설을 몸소 보여준 에피소드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딜까, '내가 있고자 하는 곳'은 어딜까. 나에게 자유가 없을 때 과연 끝없이 자유를 탐할 수 있을까. 본래 자유로운 몸이었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로 오랫동안 자유가 주어지지 않을 때도 여전히 자유를 탐할까, 오히려 자유가 없는 그곳이 더 자유롭다는 역설이 가능하지 않을까. 


문제는 그럼에도 강제로 자유가 주어졌을 때다. 강제로 자유를 빼앗고 다시 강제로 자유를 부여하고. 그보다 더 '강제'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말한다. 희망을 절대 버리지 말라고. 여기서는 '언젠가 반드시 풀려날 거라는' 직접적 희망이겠다. 인생의 부분부분들에 대한 지독한 은유인데, 살면서 진정 자유롭다고 생각할 때가 언제인지, 과연 그런 때가 있긴 한 건지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실제 감옥을 탈출해서는 안 되겠지만, 인생 감옥에서는 탈출을 꿈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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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생크 탈출, 스티븐 킹, 인생, 자유, 탈옥,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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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버블붕괴기 '잃어버린 10년'의 기막힌 변주 <종이 달>

오래된 리뷰 2017. 6.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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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종이 달>


한 평범한 가정 주부의 기막힌 일탈, 횡령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며 밀회를 즐긴다. 그건 일본 잃어버린 10년의 변주다. ⓒ영화사 오원



일본의 고도성장기와 버블경제기는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많은 영향을 끼친 유명한 키워드다. 특히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버블붕괴기는 현대 일본을 이야기하는 데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시기이다. 2000년대에도 나아질 또는 예전으로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아 '잃어버린 20년'으로 통용되기도 하는 바, 참으로 많은 콘텐츠에서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일본이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고 그 지위를 굳히자마자 앓게 된 숙명적 병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 병은 나라에서 사회로 가정으로 개인으로 전염되었고, 결국 최종적으로 개개인들이 뒤짚어쓰다시피 했다. 많은 사회파 소설과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걸작 소설로 회자되는 작품을 영화화한 <종이 달>은 드라마를 기본으로 한 심리와 상황적 서스펜스 장르를 앞세워 숨막히는 현실감을 선사한다. 199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잃어버린 10년의 진중한 변주가 엿보인다. 그런 한편 지극히 개인적인 요소도 가미해 소설과 영화만이 가지는 예술적 특성의 발현도 만끽할 수 있다. 


일본 버블붕괴기의 변주


이 영화는 시종일관 불안하다. 리카의 삶이 불안하고, 보고 있는 내가 불안하며, 이 세계까지 불안해 보인다. ⓒ영화사 오원



그리 모자를 것 없는 가정에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아가던 리카(미야자와 리에 분)는 우연한 기회에 별 생각 없이 지원해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된 은행에서 어느새 4년차 계약직원이 되었다. 어느 날 외근을 마치고 퇴근하던 중 충동적으로 화장품을 사게 되는데 만 엔이 부족하길래 고객의 예금에서 꺼내 쓰고 나중에 채워놓는다. 채워놨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을 테다. 이 한 번의 행위가 시작이었으니...


이번에도 어느 날 외근을 마치고 퇴근하던 중이었다. 껄끄럽지만 대형 고객의 손자 코타와 마주친다. 일전에 집에 찾아 갔다가 도움 아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리카의 충동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코타와의 밀회가 시작되는 것이다. 한편 리카의 남편은 상하이로 장기출장을 가는데, 리카는 코타와의 밀회를 계속하면서 홀로 남는다. 그리고 코타가 대학등록금을 내기 위해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되는데...


그를 위해 리카의 충동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대형 고객의 예금에 손을 댄 것이다. 이전에 잠깐 쓰고 채워놓은 만 엔 정도가 아닌, 200만 엔의 거금이다. 당장 채워놓을 생각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그런데 그녀는 오히려 더 많은 고객 예금에 손을 대는 게 아닌가? 엄청난 돈을 쓰는 호화로운 생활에 취해버린 것 같다. 그녀의 앞날은 어떨까.


1990년대 중반 일본, 가정주부 출신, 은행, 대형 고객, 횡령, 밀회, 자유. 영화 <종이 달>을 형성하는 키워드들이다. 동일선상의 층위라고 할 순 없지만, 1990년대 일본 버블붕괴기의 여러 변주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 횡령과 밀회와 자유의 상관 관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요소와 개인적 요소를 합리적으로 이어주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횡령에 의한 호화생활, 그 모든 게 신기루이자 가짜


제목 '종이달'은 신기루이자 가짜의 상징이다. 리카가 횡령으로 호화생활을 하고 밀회를 즐기는 게 모두 그렇다는 것.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라. ⓒ영화사 오원



뭐니뭐니 해도 영화의 중심엔 리카의 횡령이 있다. 그녀가 상대하는 대형고객들은 망령든 일본 사회가 흩뿌린 마지막 행운을 움켜쥔 운좋은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버블경제의 수혜자들이다. 그들은 버블경제가 곤두박칠 치기 직전 땅값과 주가가 폭등할 때 한몫 챙겼을 것이다. 이후 모두가 허덕일 때 홀로 자가증식했고 은행의 최대고객이 되었다. 


리카가 그들의 예금을 빼돌려 내연남과 함께 분수에 맞지 않은 호화 생활을 한 건, 그러면서도 그들의 대한 죄책감 하나 가지지 않았던 건, 그들이 아닌 버블경제가 낳은 '버블'이라는 쓰레기를 조롱하며 그 또한 언젠가 사라질 신기루이거나 이미 진짜 아닌 가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통렬한 비판이다. 


그렇지만, 리카는 달리 말한다. 왜 횡령을 일삼았냐는 질문에 그녀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그 앞에 '가짜로서의'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그녀 입으로 직접 대형고객들의 예금을 빼돌려 호화 생활을 한 게 전부 '가짜로서의 자유'를 만끽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돈 모두 버블에 지나지 않은 신기루라고 못을 박고 있는 것이다. 


리카는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빼돌린 돈으로 호화 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보이는 그녀의 공허한 표정은 앞으로 다가올 예정된 비극을 암시한다. 그녀의 앞날은 어찌될 것인가. 죗값을 달게 받을까. 그건 이 변주의 정석적인 마무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죗값을 받지 않는다면 그건 이 변주의 훌륭한 마무리가 될 것이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으로 죗값을 받고 있지만, 정작 버블을 일으킨 당사자들은 죗값을 받기는커녕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원을 달리하는, 나라를 이끄는 이들의 무감각


'가짜'와 '자유'를 운운하는 그녀의 횡령범죄, 진짜 문제는 그리고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건 나라를 그 꼴로 만든 이들의 무능력과 무감각과 무탈함일 것이다. ⓒ영화사 오원



시대의 소시민이라 할 수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 출신의 리카가 벌인 희대의 범죄 행각은, 그 평범함이 주는 무감각만큼 불쾌하고 불안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횡령은 그 어느 누구라도 실행 가능한 범죄이며, 그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범죄다. 무엇보다 한 번 시작하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부자의 돈이라며 자기합리화하고, 다시 채워넣으면 된다고 자기최면을 건다. 


더 큰 문제이자 더 불쾌하고 불안하고 무섭게 다가오는 건, 나라를 이끄는 이들의 무감각이다. 횡령을 비롯한 그들의 범죄는 전국민 누구나 알게 되어 공론화 되지만, 전국민 누구도 그 자세한 사항과 비하인드 스토리와 이후의 일들을 알지 못한다. 회자되고 비난받고 역사에 그 이름이 남을지 모르지만, 정작 그들 자신의 삶은 이전과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소시민의 평범한 범죄가 주는 소름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진정한 범죄가 아닌가. 


일본의 버블붕괴, 한국의 IMF사태, 미국의 금융위기와 같은 초국가적 경제 위기는 모두 나라를 이끄는 이들의 비상식적이고 의도된 무감각에서 비롯되었다. 거기에 비하면 리카의 '자유'와 '가짜' 운운하는 횡령 범죄는 비록 그 평범함 때문에 더 깊숙이 와 닿아 더 치를 떨고 지켜보게 되지만, 그럼에도 차라리 귀엽다고 하겠다. 한편, 리카가 말하는 자유와 가짜가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이들에게 던지는 말이니 만큼 아니러니하다 하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계속 생각했다. 범죄를 저지르는 건 한순간이기에 '나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라는 건 통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 이후에 해당된다. 돈을 채워놓지 않는 한 반드시 들통 나게 되어 있다. 그렇지만 채워놓을 마음도 없고 능력도 없으니, 결국 들통 난 이후에 해당될 것이다. 죗값을 받을까? 도망갈까? 여기에서의 선택은 보다 개인적이고 예술적인 영역인 바, 도망을 택하겠다. 리카는 어떻게 했을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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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무감각, 일본 거품경제, 잃어버린 10년, 자유, 종이 달, 횡령

  • 2017.06.03 11:01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singenv
      2017.06.03 11:16 신고

      아이구, 감사합니다^^ '오마이뉴스'에서 연재도 하고 있으니, 거기에서도 보실 수 있어요ㅋ 블로그에는 월수금 올리고 있구요ㅋ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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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무엇보다 '나'를 위해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몰타>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6. 1.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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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몰타>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몰타> 표지 ⓒ책미래


족히 10년은 된 듯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얻어 호주를 1년 다녀왔다. 열심히 일하고 영어를 공부한 다음, 열심히 놀려고 했다. 그 모든 게 다 내 평생 다시 없을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호주에 온 다음 날, 하늘에 뜬 비행기를 보고 집에 가고 싶었다. 도착하자마자 적응도 채 하지 못한 채 일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론 두려웠던 것 같다. 낯선 땅이 아닌, 낯선 자유가. 


큰 기억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설픈 느낌만 남았을 뿐이었다. 자유인지 고독인지 모를 이상한 느낌이었다. 2년 뒤 다시 외국에 나갔다. 이번엔 중국으로, 많은 이들과 함께. 오히려 그곳에서 자유 비슷한 걸 느낄 수 있었다. 왜 한국인들과 함께 있는데 자유를 느끼는 것인가. 그것도 자유는 아니었나? 


생각해보니, 나에게 자유는 고독과 다름 아니었던 것 같다. 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나에겐 자유보다 울타리 안에서의 안정이 더 맞다. 장소가 아닌 사람이 중요한 거라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그래서 자유를 알고 자유를 외치고 자유를 만끽할 줄 아는 사람이 부럽다.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몰타>(이하 '몰타')는 내가 참으로 먼 이야기지만, 정녕 부러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나라에 가서 살 생각을 하다니. 그곳에서 자유롭게 사는 걸 그렇게도 즐길 수 있는지. 나라면 못할 거다. 


아무도 모르는 세계 최고의 파라다이스 '몰타'


하루에 한 번은 되뇐다. 벗어나고 싶다고. 돈 많이 모아서 나중에 세계 여행을 떠날 거라고. 동시에 드는 생각은, 아마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거다. 20대 때 여기저기 다녀왔으면 된 거 아니냐고 자문하면서. <몰타>의 저자가 나랑 다른 건, 후자의 생각을 애써 무시했든 점점 줄여나갔든 전자의 생각을 선택했다는 거다. 직장을 다니고 있는 처지임에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자신을 잘 알고 자신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고민을 해본 게 아닌가 싶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생각하자고. 


그렇게 선택한 게 '몰타'라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이름이나 위치를 나름 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몰타는 잘 알지 못했다. 이름만 어설프게 들어 보았을 뿐, 나라의 위치도 동남아시아 쪽으로 알고 있었고 나라가 아닌 조그마한 휴양 도시 쯤으로 잘 못 알고 있었다. 몰타는 유럽의 이탈리아 남쪽 지중해상에 위치한 섬나라로, 나라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유명한 곳이다. 연영방에 속하는 나라라서 영어가 주요 언어 중 하나이다. 저자가 몰타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그것인데, 저렴한 물가에 영어공부를 하며 유럽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몰타라서 그럴 수 있었던 건지, 저자가 그런 사람이라서 그럴 수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몰타와 저자이기 때문이라서 그럴 수 있었던 거겠지. 저자는 몰타라는 파라다이스를 제대로 만끽한다. 기가 막힌 자연과 문화유산이 선사한 선물에 술과 파티가 빠져선 안 되겠지. 그리고 스페인에만 있는 줄 알았던 시에스타(낮잠 시간)가 몰타에도 있는 게 아닌가. 


그렇지만 무엇보다 사람이다. 내가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던 '좋은 장소보다 좋은 사람'. 몰타에는 '좋은 분위기'도 만연해 있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다. 장소와 사람과 분위기가 일체 되어야 하겠는데, 이 중 하나라도 만족하지 않으면, 다른 두 개 또한 존속하기 힘들다. 저자는 운이 좋은 건가? 나는 운이 나쁜 거고? 나도 나름 좋은 장소의 좋은 분위기에서 좋은 사람과 함께 있었는데도?


'나'를 위해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저자가 중요시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몰타라는 파라다이스를 제일 중요시 했을까? 그곳에서 만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중요시 했을까? 파라다이스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린 그 시간과 분위기를 중요시 했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것들도 중요시 했지만, 정작 그가 중요시 했던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던 것 같다. 나의 시간을 갖기 위해, 나를 찾기 위해 간 여행이었으니까. 내가 그곳에 있다는 거, 내가 그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거, 내가 그 좋은 시간을 보냈다는 게 중요한 거다. 


전 세계의 누군가는 한국이 평생 잊지 못할 자유와 청춘의 중요 기착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소가 그렇게 중요할까? 아니다. 1순위는 아니다. 다만 '몰타'라는 곳은 특별할 수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통상적으로 '아무도 모른다'고 할 수 있을 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가고자 하는 곳은 다른 사람에 눈에 비치는 내가 아닌 그냥 나일 수 있게 해주지 못하는 데 반해, 이런 곳은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 


책에 소개된 저자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몰타가 아니더라도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해봤을 것 같은 일들이다. 그래서 따로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것보단 저자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접하는 게 더 중요하다 판단했기 때문이다. 몰타 같은 파라다이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곳이 아니어도 나쁠 건 없다. 어딜 가든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나'의 생각을 잘 알아, '나'를 위해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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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나, 몰타, 분위기, 사람, 아무도 모르는 누군가의 몰타, 여행, 자유, 장소, 파라다이스
  • BlogIcon 조아하자
    2016.01.11 22:39 신고

    부... 부럽... 사실 낮선 환경에 가면 진짜 두려운게 있어요...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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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십 대 혁명 매뉴얼 <리틀 브라더>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5. 11.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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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틀 브라더>



<리틀 브라더> 표지 ⓒ아작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를 잇는 베이교가 처참하게 폭발했다. 미국은 9.11을 능가하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라고 규정한다. 그러곤 대 테러 단체인 국토안보부로 하여금 용의자를 색출하게 한다. 운 나쁘게도 테러가 있었던 곳에서 가장 가까이에 마커스 얄로우를 비롯한 네 명의 '십 대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공교롭게도 국토안보부가 판단하기에 의심스러운 기기가 있었다. 


마커스는 학교 방화벽을 젖은 휴지처럼 뚫어버리고, 보조 인식 소프트웨어를 속이고, 학교가 그를 추적하기 위해 심어 놓은 감시칩을 박살 내기도 한다. 그는 컴퓨터와 인터넷에 천재적인 관심과 능력을 보여준다. 테러가 일어났을 때 그와 친구들은 <하라주쿠 펀 매드니스>라는 대체현실게임을 하는 중이었고, 위에서 말했던 능력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의심스러운' 기기들을 지니고 있었다. 국토안보부는 그 자리에서 그들을 체포한다. 게임을 하던 이 십 대 아이들은 졸지 테러리스트 용의자가 된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이 소설은 <리틀 브라더>라는 제목을 취했다. 어쩔 수 없이 어떤 소설이 생각나게 한다. 다름 아닌 조지 오웰의 <1984>. 그 소설에 나오는 '빅 브라더'. 통칭 '감시자'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어디서 무엇을 하든 빅 브라더가 지켜보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시스템이다. 만약 이 소설이 <1984>와 결을 같이 한다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감이 잡힌다. 빅 브라더가 되려는 국토안보부를 위시한 정부와 자유를 되찾기 위한 십 대 아이들(마커스를 위시한)의 대결이 되지 않을까 싶다. 


소설 속 내용이 현실로


얼마 전 프랑스 파리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악의 연쇄 테러가 발생했다. 6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으며 수백 명이 죽거나 다쳤다. 테러의 배후가 명확하진 않지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농후해, 미국 오바마 정부의 '대 IS 격퇴'에 대한 미온적 대응이 다시금 수면 위로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은 지상군 투입 절대 불가를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빅 브라더 시대로의 이행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언제 어디서 무고한 시민들을 위협하는 테러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9.11을 능가하는 테러가 실제로 발생했으니, 감시는 더 철저해 질 것이며 인권 및 기본권 침해를 간단히 무시하는 상위의 법이 만들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 그야말로 소설 <리틀 브라더>의 내용이 실제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우연찮게 하루를 시간 차로 우리나라 광화문에서는 '민중총궐기 투쟁대회'가 있었다. 2008년 촛불 집회 이후 최대 규모였다고 한다. 어김없이 정부는 물대포와 함께 캡사이신까지 분사했다. 이 모습 또한 <리틀 브라더>에 나오는 모습과 판박이다. 소설 속에서는 뮤직 페스티벌을 열어 '25살 이상은 아무도 믿지마!'라는 구호와 함께 자유를 울부짖었다. 정부는 이를 불법집회라 규정하고 해산을 요구하지만 응하지 않자 캡사이신을 분사하며 수백 명을 체포한다.


테러, 감시, 그리고 자유


한편 마커스는 국토안보부에 의해 개인 안보에 대한 모든 것을 탈탈 털린다. 국토안보부는 그를 용의자로 점찍고 그러하기에 그에 대해 모든 걸 알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반면 마커스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 자신만의 개인 자료를 넘겨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모든 걸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그는 그곳에서 영원히 풀려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가까스로 풀려 나온 마커스는 복수를 꿈꾼다. 언제 어디서나 그를 지켜볼 거라는 협박과 만약 잡혀갔던 사실을 발설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할 거라는 협박을 이겨내면서 그는 자신의 장기를 이용해 그들에게 복수할 방법을 강구한다. 그러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들을 향한 복수의 길을. 그는 단지 자유를 되찾고 싶어한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큰 힘이 되어준다.


"이런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류가 정부를 조직했으므로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피통치자의 동의에서 비롯한다. 또 어떤 형태의 정부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인민은 정부를 바꾸거나 폐지하고,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원리를 바탕으로 그런 형태의 권력을 조직해서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본문 중에서)


이 소설은 테러로 시작되지만 전체적으로는 테러 이후에 자행 되는 무자비한 대 테러 작전이 주를 이룬다. 작전의 일환으로 감시 체제가 전에 없이 심화되었고 그로 인해 무고한 이들이 피해를 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마커스와 그의 친구들인 것이다. 자유로운 세상에서 자유는 마치 공기와 같아서 느껴지지도 않지만, 그 자유가 떨어져 나가버리면 참을 수 없을 때가 온다. 그렇지만 복종은 때로 굉장히 달콤하다. 마커스는 그 달콤한 복종에 대항해 힘겨운 자유로의 싸움을 계속해나간다. 


한편 이 감시 체제를 환영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마커스 학교의 교감, 마커스의 아버지, 마커스의 친구 찰스 등이다. 이들에게는 수천 명의 인명을 희생 시킨 테러리스트 체포가 그 어떤 것보다 위에 있다. 본래 이들은 자유보다 복종과 권력을 중요시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들 중 마커스의 아버지는 젊었을 적에 엄청나게 급진적인 활동을 했었지만 '꼰대'가 되면서 지키는 것에만 급급하게 되었다. 


21세기 십 대 혁명 매뉴얼


모르긴 몰라도 마커스와 친구들, 그리고 자유를 추종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국토안보부와 정부에 대항해도 이길 순 없을 것 같다. 그들은 너무 견고하고 거대하다. 설령 가까스로 국토안보부를 파쇄한다고 해도 테러가 계속되는 한 정부는 대책으로 또 다른 무엇을 획책할 것이다. 그건 국토안보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을 수 없지 않겠는가? 또 다른 보는 눈들이 있다. 


그렇지만 이들은 십 대다. 우리네 역사의 큰 분수령이었던 4.19 혁명의 주체가 십 대 였듯이. 그들이 못하면 아무도 못한다. 소설은 십 대만이 할 수 있는 혁명의 방식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며 중간 중간 소설 답지 않은 행태(?)를 보이는데, 도무지 알기 힘들고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한 전문가급 지식들의 향연이 그것이다. 21세기 십 대 혁명 매뉴얼 같다. 


그러하기에 이 소설은 유쾌 통쾌 상쾌하다. 암울한 세상이지만 십 대의 상상력이 뿜어내는 열기는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게 한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바꾼다. 바뀐 세상은 그들의 것이고, 나는 그 세상을 응원한다. 앞으로도, 꼰대가 되어서도, 그들을 응원하길 바란다. 그들의 세상이 행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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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1984, 국토안보부, 꼰대, 리틀 브라더, 빅 브라더, 십 대, 인터넷, 자유, 컴퓨터, 테러, 혁명
  • BlogIcon 空空(공공)
    2015.11.16 11:08 신고

    영화로도 나올만 하군요
    영화,소설이 아닌 현실에서의 테러는 절대 안 될일입니다

    • BlogIcon singenv
      2015.11.29 17:11 신고

      영화로 나온다고 하네요 ㅋ

  • BlogIcon supersystem
    2015.11.16 14:59 신고

    좋은정보 잘보고 갑니다^^

    • BlogIcon singenv
      2015.11.29 17:11 신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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