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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이혼'에 해당되는 글 5건

제목 날짜
  • 결혼에서 이혼으로 가는 선상의 순간들 <결혼 이야기> 2019.12.06
  • 사랑 없는 세상에서 찾는 사랑 그 자체로 충만한 사랑 <러브리스> 2019.04.26
  • 북한소설 <벗>을 소개합니다(2) 2018.05.07
  • 12년 간의 촬영으로 소년기를 온전히 보여주다 <보이후드> 2016.12.23
  • <덕수리 5형제> 가족 영화인데 가족끼리 볼 수 없는 이유는?(2) 2014.12.26

결혼에서 이혼으로 가는 선상의 순간들 <결혼 이야기>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12. 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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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결혼 이야기>


영화 <결혼 이야기> 포스터. ⓒ넷플릭스



10년, LA에서 잘 나가던 배우 니콜(스칼렛 요한슨 분)이 연극 연출가 찰리(아담 드라이버 분)와 결혼하면서 뉴욕으로 떠나 생활한 세월이다. 그 사이 그들은 아이도 낳고 찰리의 극단에서 연출가와 배우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니콜은 LA로 돌아가고 싶었고 찰리에게 제안했지만 뉴욕 브로드웨이에 입성하는 게 꿈인 찰리는 듣지 않았다.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관계. 


불에 기름 부은 격으로 니콜과의 잠자리를 뜸하게 하던 찰리가 극단 동료와 불륜을 저지른다. 물론 찰리는 원나잇이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때마침 니콜에게 드라마 배우 제안이 들어오고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그녀는 아이와 함께 LA로 향한다. 그들은 자연스레 별거 수순으로 들어가고 이혼 조정 과정에 들어간다. 처음엔 큰 생각하지 않은 듯, 둘 사이의 원만한 조정을 원했다. 


하지만 니콜이 드라마 제작 스텝이자 이혼 선배(?)의 조언을 얻어 실력 좋은 변호사 노라와 이혼 과정을 전담시키면서 국면은 전환된다. 찰리도 어쩔 수 없이 변호사를 구해야 하는 상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뉴욕 아닌 LA에서 변호사를 구해 조정 과정을 진행해야 했다. 곧, 치열하고 치졸하고 치욕스러운 이혼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혼하기 전까진 결혼 생활이 이어지는 만큼 결혼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국 이야기 전문가 노아 바움백의 최고작


영화 <결혼 이야기>는 뉴욕 출신의 미국 이야기 전문가 노아 바움백 감독의 최신작이자 최고작이다. 그는 데뷔 이후 줄곧 블랙 코미디 계열의 드라마를 선보였는데, 한결 같이 청춘과 가족 이야기에 천착했다. 결혼과 이혼 이야기를 전하는 이번 작품은, 그동안의 노아 바움백 작품들을 집대성했거니와 그의 필모상 다음 챕터로 가는 중요 길목으로 비춰진다. 


뉴욕 출신의 블랙 코미디 드라마 전문 감독이 한 명 떠오른다. '우디 앨런', 2000년대 들어 전 세계 대도시를 한 바퀴 돌면서도 끊임없이 뉴욕 이야기를 변주해오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는 위태위태해진 그의 자리를 노아 바움백이 이어받을 모양새이다. '특별한 도시 뉴욕, 보통 사람의 이야기'라는 모토로 <프란시스 하> <위아 영>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그리고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까지 연달아 내놓았다. 


연출 데뷔를 앞뒤로 그는 절친 웨스 앤더슨 감독과 각본으로 비즈니스 연을 맺었는데,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과 <판타스틱 Mr. 폭스>가 그 작품들이다. 노아 바움백 작품의 미장센에서 웨스 앤더슨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런 한편, 노아 바움백이 영향을 준 이도 있는데 그레타 거윅이다. 그들은 <프란시스 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를 함께 했다. 그레타 거윅의 차기작 <바비>를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백 공동 각본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그레타 거윅은 우디 앨런과도, 웨스 앤더슨과도 한 작품씩 한 이력이 있는 만큼 영향을 주고 받는 그들이다. 


이혼 이야기이자 결혼 이야기


영화는 두 갈래 스토리로 이어진다. 이혼이라는 목적에의 과정과 그 자체로 목적이자 과정인 결혼. 니콜과 찰리는 사랑의 결과물로 결혼을 택해 아이를 낳아 과정을 영위했지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인간 대 인간의 어긋남을 이혼으로 결론 맺는다. 하지만 이 사실은 알아야 할 것, 법적으로 이혼이 결정될 때까지 그들은 결혼한 사이이기에 둘이 함께 해야만 하는 일이 많다. 그것도 아주 사소한 일들. 


이혼에의 과정은 점점 과열되어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힐 때까지 계속되지만, 과정으로서의 결혼 생활은 그럴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들에겐 아이가 있지 않은가. 그들 간의 결혼과 이혼에 아무런 원인 제공을 하지 않은 죄 없는 아이 말이다. 아이를 위해 그들의 결혼 생활은 끝까지 이어져야 하고, 끝나고 나서도 결코 완전히 매듭지어질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하여, 이 영화를 보는 중엔 '이혼 이야기'가 제목에 보다 어울리지 않나 생각하다가 영화를 보고 나면 이래서 '결혼 이야기'이구나 하고 생각을 바꾸거나 혹은 원래대로 돌리게 되는 경험을 할 것이다. 물론, 이는 미국에서도 뉴욕이라는 곳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결혼 이야기>라는 영화의 기법에 기댄 측면이 크다. 영화는 특정된 공간이 아닌 평범하고 한정된 공간에서 현실톤과 연극톤을 오가는 배우들의 연기에 큰 방점을 찍는다. 


결혼에서 이혼으로 가는 선상의 순간포착 모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영화를 통해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는 자탕공인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물론 그들은 일찍이 좋은 연기를 선보였으니, 스칼렛 요한슨은 어벤저스 일원으로 활약하기 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매치 포인트> 등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아담 드라이버는 스타워즈 일원으로 활약하기 전후로 <헝그리 하트> <패터슨> <블랙클랜스맨>을 포함 수많은 '아트 영화'에서 발군의 실력을 선보였다. 한편, 아담 드라이버는 노아 바움백과 <결혼 이야기>로 세 번째 함께 했다. 


그들의 연기로 발현되는 결혼 이야기 속 이혼의 이유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니콜의 말에 따르면 찰리가 니콜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실상 서로가 서로를 가장 좋아했던 최초의 행동이 종국엔 가장 꼴보기 싫은 모습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필연의 양상 때문인 것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 부분이 서로를 가장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을 말하는 걸로 대칭을 이루는 게 백미인데, 결혼에서 이혼으로 가는 선상을 더할 나위 없이 표현했다. 


영화는 기막힌 순간포착의 모음 같이 느껴진다. 누구나 순간포착은 가능하고 순간의 기억과 여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강렬함이 끝없이 이어지면 기가 질릴 만하다. <결혼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는 강렬한 순간포착을 완급조절로 완화시킬 수 있는 노아 바움백 감독의 능력과 원숙미가 함께 걸린 작품이다. 평범한 와중 순간의 극단을 보여줌에 있어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건, 비어 보이지 않는 여백의 미를 깨닫고 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결혼 이야기>는 걸작이고, 이 작품을 비로소 노아 바움백 감독은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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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 넷플릭스, 노아 바움백, 뉴욕, 모모 큐레이터, 미국, 순간, 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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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세상에서 찾는 사랑 그 자체로 충만한 사랑 <러브리스>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4.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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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러브리스>


영화 <러브리스>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전 세계 영화제가 사랑하는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즈비안긴체프, 2003년 장편영화 데뷔작 <리턴>으로 베니스를 석권하며 국내에 개봉되기까지 했다. 이후 2편은 국내에 개봉되지 않았고 2014년작 <리바이어던>으로 다시금 소개되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진정한 거장으로 거듭났다는 평이다. 그리고 2017년 <러브리스>로 다시금 거장의 면모를 선보였다. 우리나라엔 2년 만에 소개되었다. 


안드레이 즈비안긴체프 감독의 <러브리스> 소식은 일찌감치 들어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정식으로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너무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통에 보지 못할 줄 알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차 <러브리스> 개봉 소식은 그 자체로 훌륭하다 말할 수 있겠다. 국내 예술영화 시장이 아직은 존재하고 있구나 하는 반증이랄까. 


가깝지만 먼 나라 러시아의 영화를 접하기가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할리우드의 유수 영화들이야 러시아와 우리나라가 공유하겠지만 왠만한 러시아 영화들을 우리나라가 공유하긴 힘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건 반대도 마찬가지일 듯. 와중에 예술영화라는 카테고리 안에 다양한 외국 영화들이 소개될 수 있다는 건, 영화가 갖는 상업적 속성의 아이러니다. 


이혼 진행 중 부부와 가출한 아이


부부의 이혼과 아이의 가출. 영화 <러브리스>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영화는 눈 쌓인 삭막한 숲 속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숲 속이 아니다. 이어 역시 삭막해 보이는 학교의 전경에서, 수업이 끝나고 쏟아져 나오는 학생 중에 12살 남자아이 알로샤의 모습이 보인다. 소년은 숲 속을 지나 집으로 간다. 집에는 엄마 제냐가 있다. 그녀는 알로샤가 진절머리 나는 것 같다. 안 그래도 남편 보리스와 이혼을 진행 중이다. 


제냐와 보리스는 만날 때마다 싸운다. 서로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다. 특히 제냐는 보리스를 사랑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아이를 갖고 결혼하여 13년을 지내왔다는, 그래서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알로샤는 어느 날 저녁 그 얘기를 듣고 정말에 차서 울다 잠이 든다. 자신이 아빠와 엄마의 사랑의 결실은커녕 불행의 씨앗이었다니. 다음 날 아침 알로샤는 집을 튀쳐나가다시피 한다. 학교에 간 것인지?


제냐와 보리스는 알로샤는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각자의 '사랑'을 키우는 중이다. 보리스는 이미 그 사랑과 아이까지 가진 상태이다. 이틀 후, 알로샤가 이틀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는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는 제냐와 보리스는 알로샤를 찾아 나선다. 곧 경찰에 신고해 조사를 시작하지만, 담당 경찰의 말마따라 제대로 된 조사와 수색을 기대할 수 없다. 


경찰은 수색구조팀에 연락해 보라고 한다. 그들은 자원봉사자 집단으로, 정부에서 하는 일이 아니기에 관료주의도 없고 24시간 무료라고 전해준다. 제냐와 보리스는 수색구조팀과 함께 체계적으로 꼼꼼하게 알로샤를 찾아나선다. 하지만 쉽지 않은 듯하다. 문제는, 제냐와 보리스가 진실로 알로샤를 찾을 마음이 있는가이다. 그들의 말과 표정과 행동을 보면 의무감으로 하는 것 같다. 찾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정된 이야기에서 보편적인 이야기로


한 가족의 한정된 이야기는, 시대의 보편적 이야기로 발전된다. 영화 <러브리스>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러브리스>는 별거 아닌 소재와 고급스러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소재와 구조가 이원화 아닌 일원화되어 있다. '이혼을 앞두고 있는 부부, 걸림돌이라 생각하는 아들의 가출'이 곧 소재이자 구조인 것이다. '별거 아닌' 이유는 요즘 시대에 이혼과 가출이 큰 일이 아니라는 점이고, '고급스러운' 이유는 별거 아닌 소재 두 개를 투 트렉으로 사회 나아가 시대까지 조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제목이 직설적이다. 'Loveless', 사랑이 없다는 뜻이다. 이혼을 앞둔 부부는 물론, 부부가 아들을 대하는 태도와 부부가 각각의 새로운 상대와 함께 그들의 부모를 대하는 태도에서 사랑 비슷한 것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제냐와 보리스가 각자의 새로운 '사랑'을 키우는 상대와도 결국은 어떤 결말을 겪을지 상상이 간다.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가 될 테지만, 알로샤가 집에 돌아올 것 같지도 않다. 


이혼과 가출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때 먼저 드는 생각이 씁쓸함이다. 어쩌다가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 하는 도의적 생각의 연장. 곧바로 수긍이 가면서 공허함이 대신 그 자리를 채운다. 결국은 내가 우선이 되어야 하는 시대적 조류와 인간적 본능의 결합 이후, 사랑을 사랑으로 채우는 불합리성의 역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곤 제냐와 보리스로 상징되는 당사자들이 아닌 알로샤로 상징되는 '피해자'를 향한 안타까움이 남는다. 알로샤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나 자신을 태어나게 한 사람들한테 괴롭힘을 당하며 존재까지 부정당해야 하는가. 


이 감정의 흐름은, 영화를 보면서 드는 감정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분명 러시아라는 한정된 나라 안 한정된 지역의 한 부부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고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을 것이다. 그건 인종과 나라와 지역과 나이를 막론하고 이 영화를 보는 누구라도 느낄 만한 감정이다. 한정에서 보편으로 이르는 흐름 또한 이 영화의 특징이다. 


사랑 그 자체로 충만한 사랑에의 희망


사랑 없는 세상에서, 사랑이란? 영화 <러브리스>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사랑과 행복과 희망을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이 영화에서 유일한 희망은 자원봉사자 집단 수색구조팀이다. 영화는 경찰의 입을 통해 간략하게 설명해줄 뿐, 사실상 그들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전해주지 않는다. 그건 극 중 그들이 행하는 무조건적인 자원봉사의 입장과도 일치한다 하겠는데, 이는 곧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사랑 없는 이 시대의 해법이 아닌가 싶다. 


사랑으로 대체하는 사랑, 후회하는 사랑, 조건 있는 사랑 등 이 시대를 지탱하는 사랑의 방식은, 여러 유형이 있고 선택의 여지가 많으며 보다 개인의 삶에 나은 쪽으로 발전해가는 것 같다. 그래서 굉장히 민주주의적이고 '좋은' 쪽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랑 그 자체로 충만한 사랑 말이다. 다른 무엇도, 어떤 수식어도 불필요한 사랑. 


말이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러브리스>는 그 말이 안 되는 소리를 전하고 있다. 자원봉사자 집단 수색구조팀의 무료, 무조건적인 활동이라는 소재로 특이하다면 특이하게, 고급스럽다면 고급스럽게 말이다. 수시로 생각해본다. 나와 아내는 '사랑'을 하고 있는가, 그게 아니면 무엇일까. 이게 '사랑'이라는 것인가,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지금은 사랑을 하더라도 나중엔 사랑을 하지 않게 될까. 사랑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을까. 꼭 사랑을 하는 것만이 정답일까. 


그야말로 중구난방 횡설수설, 사랑을 생각할 때는 이렇게 되고 마는 것 같다. <러브리스>가 보여주는 이 시대의 사랑과 행복과 희망, 그 단면은 결코 전부라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보편적으로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생각이 많아지며 눈썹을 지푸리고 있다면, 결코 단면일 뿐이라고 안심할 순 없다. 우린 사랑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게 맞다. 사랑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영화 한 편을 추천해주시길 바란다. 단, 특별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보편적 사랑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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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러브리스, 러시아 영화, 사랑, 이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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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소설 <벗>을 소개합니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8. 5. 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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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북한소설 <벗>


북한소설 <벗> 표지 ⓒ아시아



4.27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판문점선언은 대한민국이, 아니 한반도가 65년만에 진정한 평화를 되찾는 첫걸음이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도 바라마지 않을 한반도 평화를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염원하고 실천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선 먼저 해야 할 건 북한에 대해 알아가는 게 아닐까요. 


'먼나라 이웃나라'는 아주 유명한 학습만화의 제목이기도 하지만, 이웃해 있는 나라가 오히려 가장 먼 나라일 수 있다는 아이러니의 명구이기도 합니다. 우린 일본, 중국, 러시아와 굉장히 가깝지만 그들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다른 나라, 인종, 문화, 역사를 가졌기에 모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떨까요. 반만 년의 유구한 역사 동안 한 민족으로서 동일한 문화를 영위했던 한반도는 65년 전 한국전쟁 휴전 이후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었습니다. 여러 면에서 세상에서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두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당연히 세상 누구보다 서로를 모릅니다. 


남북 해빙 시기, 북한소설을 소개하다


문화의 총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문학'은, 상대적으로 소개되기 쉬울 수 있습니다. 의외로 북한소설은 1980~90년대 우리나라에 상당히 많이 소개되었죠. 당시 서슬 퍼런 군부독재 하에서 운동권을 중심으로 많이 읽혔는데, 그중 북한에서도 당시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백남룡, 남대현 작가의 책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 버금가는 판매고를 올렸다고 합니다. 


백남룡 작가의 <벗>, <60년 후>, 남대현 작가의 <청춘송가>가 그것들인데, 우리 아시아 출판사에서는 몇 년 전부터 복간을 준비해왔습니다. 하지만 군부독재 시절에도 소개했던 '북한' 소설을 몇 년 전 당시에 소개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았다는 건 당시에도 지금에도 명약관화한 일이죠. 그리고 이 날이 왔습니다. 


남북 해빙 시기가 곧 도래할 것이라 확신한 저희는 빠르고 면밀한 내부검토를 거친 후 남북정상회담 즈음을 목표로 북한소설 복간 프로젝트에 들어갔습니다. 다른 모든 걸 뒤로 하고 책 구입, 필사, 대조, 교정교열, 해설(발문), 디자인 순으로 일사천리 진행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첫 책 백남룡 작가의 <벗>을 때맞춰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겨레말큰사전사업회' 상임이사이자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결성한 남북작가 모임인 '6.15민족문학인' 남측협회 집행위원장인 정도상 작가께서 발문을 써 주시는 등 다방면에서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특히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겨레말'들의 뜻풀이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주셨습니다. 정도상 작가님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 책이 출간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받은 도움은 책의 맨 뒤에 '단어 표기와 뜻풀이'라 하여, 남한어와 북한어를 나란히 두어 겨레말을 이해해 나가는 데 도움을 주고자 마련해 두었습니다. 일종의 '겨레말소사전'이 아닐까 싶은데, 간혹 틀린 풀이도 있을 줄 알며 추후 계속 수정 및 추가를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북한의 사랑, 결혼, 이혼


<벗>은 북한의 사랑, 결혼, 이혼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한 예술단 여가수 채순희와 공장 선방공 리석춘의 이혼 갈등을 중심으로 하여, 그들의 이혼 상담을 주관하는 인민재판소 판사 정진우가 주인공으로 나서 극을 이끕니다. 북한에서 이혼이라... 다른 건 몰라도 북한에서 이혼은 절대불가일 것 같은데, 이 소설로 우리는 북한에서의 이혼이 가능은 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것도 이미 30년 전에 말이죠. 


정진우 판사는 채순희와 리석춘의 이혼을 부추기는 인물을 배척하고 교화시키려는 한편, 판사 아닌 '벗'으로서 위기의 부부 주위에 있는 이들을 챙깁니다. 채순희와 리석춘 부부, 그들의 아들 리호남은 물론, 채순희가 속한 예술단의 부단장과 리석춘이 속한 공장의 기능공 아바이, 그리고 본인의 아내 한은옥과도 벗이 되는 그다. 정도상 작가는 발문을 통해 '백남룡은 북한 사회에 만연해 있는 관료주의와 권위주의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을 것이다'라고 평합니다. 


더불어 정진우 판사는 북한 사회가 요구하는 공동체적 인간형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모로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인데, <벗>이라는 소설 자체가 북한소설이 흔히 보여주는 비약적인 서사적 흐름과 결말에서 크게 벗어나 나름의 확고한 흐름과 결말을 보여주어 그 속에서 소설미학적 활약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네요. 


북한을 알아가는 방법


저희는 백남룡 작가의 <벗>을 필두로, 같은 작가의 <60년 후> 그리고 남대현 작가의 <청춘송가>도 곧이어 선보일 예정입니다. <벗>이 사랑과 '이혼' 이야기였다면, <60년 후>는 노동과 '노년'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청춘송가>는 북한의 '연애교과서'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또한 북한의 명단편소설들을 추려 <북한단편소설선>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북한을 아는 수많은 방법,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을 방법 중 '북한 소설'을 통해 그들의 기민한 일상을 접해보심이 어떨까요. 물론 소설 자체로 문학적 의미뿐만 아니라 문학적 재미가 담보(보장)되지 않았다면 애초에 소개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곧 어떤 식으로든 북한을 알아야 할 시기가 도래할 텐데, 이미 도래했을지도 모르는데, 이 소설들로 최소한의 맛보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북한에서는 남한의 소설을 접하고 있을까요. 자못 궁금합니다. 북한에서의 외부로의 반출보다 외부에서의 북한으로의 반입이 훨씬 더 어려울 것 같은데 말이죠. 당장의 완전한 자유왕래는 아닐지라도 당장의 영구평화를 기조로 한 종전과 자유왕래와 경제협조가 시행되길 바랍니다. 남과 북이, 북과 남이 진정한 '벗'으로 첫걸음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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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겨레말, 남북정상회담, 백남룡, 벗, 북한소설, 사랑, 이혼
  • BlogIcon 여강여호
    2018.05.08 06:37 신고

    오래전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지금도 책장에 꽂혀 있고요. 이번 기회에 남북의 문학 교류도 물꼬가 트였으면 좋겠네요.

    • BlogIcon singenv
      2018.05.08 07:06 신고

      저도 그러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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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간의 촬영으로 소년기를 온전히 보여주다 <보이후드>

오래된 리뷰 2016. 12.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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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12년 촬영의 위대한 결과물 <보이후드>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한 점 부담이 없을 영화 <보이후드>. 6~18세의 소년기를 정녕 그대로 보여준다. ⓒUPI코리아



우리는 '최고'라는 수식어는 수없이 본다. 또 쓰기도 한다. 자신이 느끼기에 최고이면 되는 것이다. 상당히 주관적인 인식이 깔려 있다. 반면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는 함부로 붙일 수 없다. 만약 신이 있다면 신에게나 붙일 수 있을 것이고, 인간에게라면 극소수만 허락될 것이다. 그런 사항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이 영화 <보이후드>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보이후드(boyhood)'라고 하면 '소년기'를 뜻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만 열두 살부터 스무 살까지로 잡는 반면 서양에서는 여섯 살부터 열여덟 살을 잡는다. 프로이트의 심리성적 발달단계,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 등에서 공통적으로 이 시기를 소년기로 잡는다. 인생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는 보이후드, 이 시기를 그려내고자 하는 노력은 참으로 많았다. 소설만 보아도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 등의 위대한 작품이 있다. 영화는? <보이후드>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여섯 살부터 열여덟 살의 12년을 영화로 보여주는 건 쉽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쉬울 수 있다.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방법은 너무나 다양하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이들은 그런 것에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12년을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일단 촬영 기간만 12년이 걸릴 것이다. 감독 이하 스탭들과 등장인물들은 12년 동안 촬영에 임해야 한다. 무엇보다 12년의 기간 동안 질주하는 영화 관련 기술들의 발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영화의 처음과 끝이 다르면 안 되겠는데. 


12년 간의 촬영으로 소년기를 온전히 보여주다



이 영화의 위대함은 소년기의 12년에 해당하는 기간을 촬영했다는 점이다.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하고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것을 해냈다. ⓒUPI코리아


영화 <보이후드>는 여섯 살부터 열여덟 살의 소년기를 온전히 영화로 보여주기 위해 실제로 12년 간의 촬영을 감행했다. 이런 무모하지만 위대한 생각을 한 이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비포 미드나잇> 그리고 <스쿨 오브 락>으로 유명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다. 그는 현실성을 극도로 강조하기로 유명한데, <비포> 시리즈뿐만 아니라 <보이후드>도 영화적 시간과 현실적 시간을 가능한 일치시키려 노력했다. 12년 동안 매년 15분씩 만나 촬영을 했다고 하는데, 러닝타임이 160분을 상회하니 만큼 거의 비슷하다. 


6살 메이슨은 누나 사만다, 엄마 올리비아와 함께 텍사스에서 살고 있다. 아빠 메이슨과는 주말마다 만나고 휴가도 함께 보내면서 항상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같이 살진 않는다. 십대 후반의 이른 나이에 사고를 쳐 아이를 낳고는 오래지 않아 헤어진 것 같다. 올리비아에게는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고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던지는 삶에 대한 설움이 있다. 어린 메이슨은 엄마의 절규에 가까운 성토를 엿듣는다. 


감수성이 특별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 환경에 절대적으로 휘둘릴 수밖에 없는 소년기의 한 가운데, 어린 메이슨은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나름대로 헤쳐나간다. 방황은 어른들에게도 찾아간다. 특히 올리비아. 그녀는 아이를 키우느라 하지 못했던 공부를 뒤늦게나마 시작해 승승장구하지만, 결혼 생활은 정반대이다.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피해가 가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더 있겠는가?


어린 메이슨의 12년 소년기는 그 어떤 영화가 주는 현실성보다 더 현실적이다. 얼마나 현실적이고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면, 그래서 중간중간 안 봐도 될 만하다고 생각되는 장면이 있었겠는가. 덕분에 종종 밀려오는 졸음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위대한 영화에게 큰 결례인 바 반드시 또 보도록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추구하는 것이 인생 그 자체이기에, 영화보면서 조는 실수도 감싸주지 않을까?


이혼한 가정의 소년이 겪은 소년기의 전형


이혼한 가정의 소년은 어떤 삶을 살까. 이혼이 아무리 흔하다지만, 그래도 특별한 일일 거다. 그의 소년기는 내 이야기같아 공감가지만, 너무 기구해 영화 같기도 하다. ⓒUPI코리아



나의 여섯 살을 회상해본다. 솔직히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사진으로 남아 있어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모르겠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어린 메이슨의 여섯 살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에게는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요즘 세상에서는 특별할 것 없지만 그래도 특별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이후의 또 다른 결혼 생활도 좋지 못했고.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이혼한 가정의 소년이 겪은 소년기의 전형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여느 가정과 크게 다르진 않을 거다. 주로 바깥 일을 하는 아빠와는 거리가 있는 반면 부딪히는 일도 별로 없을 테지만, 주로 집안 일을 하는 엄마와는 가까운 반면 부딪히는 일도 많다. 어린 메이슨의 엄마가 바깥 일도 하고 집안 일도 하며 아이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게 좀 다르지만, 보이는 모습이 다를 뿐 본질은 같다. 


피를 나눈 누나와는 가장 많이 부딪히지만 또 가장 의지가 되기도 한다. 친구나 형, 동생과는 다시 없이 좋은 때를 보내지만, 다른 학교로 가거나 이사를 가면 훌쩍 떠나 기억에서 잊히고 만다. 새 친구를 사귀는 건 참으로 고역이고 귀찮고 때론 두렵기까지 한 일이지만, 언제 그랬나 싶다. 


한편 거리가 있는 아빠지만, 또 엄마한테는 말 못할 비밀을 공유하기도 하는 존재다. 그렇지만 가장 무서운 존재도 아빠인 바, 집 안에서 가장 힘이 세고 발언권이 강한 가장이 폭력을 쓰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집이 파탄을 맞이하는 건 정말 한순간이다. 그렇게 파탄난 가정을 되돌리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고 난 후 금이 가고 깨어지는 건 돌이키기 힘들다. 어린 메이슨이 겪는 일들은 참으로 기구하다. 대부분 내 이야기 같아 공감하지만, 때론 너무 기구해 응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누구나 한 시기가 지나고 새로운 시기가 찾아온다


영화의 마지막은 예고되어 있다. 소년기의 마지막, 다음 시기로 가야 하는 소년. 그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저 받아들이면 될 것. ⓒUPI코리아



이러저러 해도 어린 메이슨이 겪는 소년기는 별 다를 게 없다. 아무리 즐거워도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슬퍼도 크나큰 사건이나 전환점 없이 물 흐르듯 흘러간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는 것 같다. 그저 그렇게 흐르고 흘러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할까. 영화 막바지, 메이슨이 독립을 하려고 짐을 싸 나가려는 순간 엄마 올리비아가 울면서 말하는 대사가 가슴을 찌르고 들어온다. 


"오늘은 내 인생 최악의 날이야. 떠날 건 알았지만 이렇게 신이 나서 갈 줄은 몰랐다. 결국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거야.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결혼하고 애 낳고 이혼하면서. 네가 난독증일까 애 태웠던 일, 처음 자전거를 가르쳤던 추억. 그 뒤로 또 이혼하고, 석사학위 따고, 원하던 교수가 되고, 사만다를 대학에 보내고, 너도 대학 보내고... 이젠 뭐가 남았는지 알아? 내 장례식만 남았어! 난 그냥...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다는 올리비아의 말, 메이슨이 온전히 소년기를 겪을 때 그의 주위 사람들도 온전히 그들만의 '소년기'를 겪는다는 걸 나타내는 단적인 대사다. 소년기가 끝나고 새로운 시기와 맞닥뜨리게 되는 아이들을 떼놓으려고 매몰차게 대하는 엄마의 모습이 바로 전 시퀀스에서 비춰져 올리비아의 대사와 행동이 더욱 와 닿는다. 우리 부모님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고 하지만, 내 인생은 나만의 것이 절대 아니다. 


그렇게 길고 긴 한 시기가 지나고 새로운 시기가 찾아온다. 누구나에게도 찾아올 것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도, 나라도, 인류에게도 찾아온다. 그 경계가 언제인지는 잘 모른다. 기억 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기억이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그때를 생각하는 기억이 아니라, 지금은 알 도리가 없지만 그때 당시의 '지금'을 인지하고 당시의 '순간'을 맛보았으면 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찾아올 거다. 어떤 기나긴 시기의 시간, 그리고 다음 시기로의 길, 또 다른 어떤 기나긴 시기의 시간. 그 순간들을 억지로 잡으려 할 필요는 없다. 메이슨의 말대로 그 순간들이 우리를 잡으려 할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려는 마음만 가지면 된다. 순간은 우리를 스쳐 지나가며 손짓하며 인사할 것이다. 순간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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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리 5형제> 가족 영화인데 가족끼리 볼 수 없는 이유는?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4. 12.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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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덕수리 5형제>


영화 <덕수리 5형제>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누가 봐도 만화 '독수리 5형제'를 패러디한 제목의 영화 <덕수리 5형제>. 포스터를 보니 전혀 무겁지 않은 싼 느낌까지 나는 코미디 영화로 보인다. '덕수리'는 뭘 뜻하는 지 모르겠지만 5형제가 뭉쳐 무슨 일을 벌이는 것 만은 분명하다. 


영화를 보기 전의 느낌 상으로는 <덤 앤 더머>의 형제들처럼 진저리가 나도록 바보 같은 짓을 일삼으며 수많은 문제들을 일으키지만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듯하다. 해피엔딩은 당연히 5형제의 우애에 관련될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소박한' 예상은 완벽하게 배신 당한다. 


'덕수리'와 '5형제'의 정체는?


먼저 '덕수리'는 충남 태안군 이원면 덕수리의 덕수리이다. 그러니까 덕수리라는 동네의 5형제를 그린 영화인 것이다. 여기까지는 하등 나쁠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좋다. 시골의 좁은 동네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은 이야기의 짜임새를 더 촘촘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5형제'의 정체는 무엇일까?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이 5형제의 정체를 아주 친절하게 하나 하나 보여준다. 이들 형제에겐 당연히 부모님이 있을 터. 이들에겐 재혼한 부모님이 계신다. 첫째(윤상현 분)와 넷째(황찬성 분)의 아버지, 둘째(송새벽 분)와 셋째(이아이 분)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재혼한 후 태어난 늦둥이 다섯째(김지민 분). 



영화 <덕수리 5형제>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첫째부터 차례대로 읊자면 윤리 선생님, 조폭 전문 타투이스트, 폴 댄서, 경찰 지망생, 중학생이다. 이들은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 명절 때에도 부모님을 뵈러 가지 않는다. 그러던 재혼 15주년 때 다섯째가 꾀를 내어 모두를 모이게 한다. 부모님이 굉장히 아프시다는 거짓말을 친 것이다. 모든 걸 내팽개치고 아픈 부모님을 뵐 요량으로 하나둘 모인다. 여지없이 만나자마자 으르렁 대는 이들. 


영화는 그렇게 한동안 첫째, 넷째 vs 둘째, 셋째 그리고 이들을 한심스럽게 쳐다보는 다섯째의 구도로 진행된다. 문제는 그 한동안이 굉장히 길다는 것. 영화의 절반 가까이를 이들의 대결 구도로 끌고 간다. 영화는 이 부분을 코믹스럽게 연출하며 절반의 코미디를 완성한다. 하지만 딱히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재미도 재미지만, 이 부분에서 과도하게 이들의 대립을 설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계속되는 것이다. 연기는 둘째 치고 시나리오 상의 문제인 듯하다. 


크레디트에 나오는 까메오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절반 가량이 남은 영화는 이제 5형제의 대립을 완화 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함이었는지 설정을 추가 시킨다. 부모님의 실종이라는 설정. 부모님이 아픈 줄만 알았더만 실종이라니. 다섯째와의 마지막 통화 내용을 들어보니 부모님은 돈 3000만원을 갚으러 가는 중이었다. 5형제는 3000만원에 중점을 두고 추적해나간다. 그렇게 해서 찾은 용팔이. 용팔이와의 우여곡절 싸움 끝에 그의 창고에서 발견되는 여자의 시체. 그리고 곧 이어 발견되는 부모님의 시체. 


연달아 발견되는 시체들로 영화는 코미디에서 공포 스릴러 장르로 넘어간다. 아무래도 여자와 부모님을 죽인 범인이 동일인물 인듯. 일단 강력한 용의자로 용팔이를 잡아 넣는다. 하지만 파키스탄에서 온 모야가 왠지 수상하다. 동네 유일 파출소의 박 순경(이광수 분)이 그를 쫓는다. 그러나 이 뒤에는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부모님을 무차별 살인한 범인은 누구인가? 5형제는 그를 잡을 수 있을까? 


재혼한 부모님의 형제들이 처음엔 사이가 좋지 않다가 부모님의 실종 사건을 해결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결국에는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는 스토리다. 장르는 코미디와 스릴러의 융합. 영화는 다양한 사회 메시지를 던지고자 노력한다. 이혼, 이주 노동자, 무차별 살인, 현대인의 불신, 시골 동네 치안의 취약함 등등. 그렇지만 이 모든 것에서 어느 것 하나 성공했다고 할 수 없다. 



영화 <덕수리 5형제>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특히 절반의 코미디와 절반의 스릴러가 너무 명확하게 갈려 이질감이 들었다. 그만큼 서두가 길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영화는 캐릭터도 부각 시키고 장르도 융합 시키며 메시지도 던지고자 했다. 이 중에 하나를 택해 제대로 부각 시켰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제목이 <덕수리 5형제>인 만큼 캐릭터를 확실히 살려 영화를 이끌어 나갔으면 어땠는지. 후반부로 갈수록 캐릭터들의 힘이 현저히 떨어져 영화를 견인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영화 크레디트에 나오는 까메오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가족 영화인데, 가족끼리 볼 수 있을까?


지극히 가족적인 가족 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정작 이 영화를 가족끼리 모여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코미디 부분인 초반부터 대립하는 5형제들 사이에서는 온갖 욕지거리가 난무하고, 스릴러 부분인 후반은 또 은근히 잔인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살인 당했다는 것 자체가 그러지 않는가. 



영화 <덕수리 5형제>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소소한 재미와 볼거리, 그리고 은근한 반전까지 있지만 이것들을 알맞게 품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그래도 그나마 볼만했다고 생각하는 건 몇몇 주연들의 연기지 않을까. 그 중에서도 둘째의 송새벽, 박 순경의 이광수가 눈에 띈다. 특히 이광수는 후반부로 갈수록 역이 커지며 5형제를 압도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이처럼 소소한 재미를 그것도 직접 찾아가며 보고자 하는 이라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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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5형제, 가족, 가족 영화, 덕수리, 덕수리 5형제, 불신, 살인 사건, 이주 노동자, 이혼, 치안
  • BlogIcon Mu-jang
    2014.12.29 09:51 신고

    쓰신 글을 보니
    영화가 이래저래 중심을 못 잡고
    비틀거리다가 허무하게 끝날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한번 신나게 웃어볼 만한
    영화인가 싶었는데, 멈칫하게 되네요

    • BlogIcon singenv
      2014.12.31 13:08 신고

      신나게는 아니고
      풋웃음과 함께 비웃음을 지어볼 수 있을 듯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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