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책하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권력'에 해당되는 글 20건

제목 날짜
  •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두 거대 인맥 네트워크 집단의 실체 <족벌 두 신문 이야기> 2021.01.15
  • 전미체조협회 팀닥터에게 선고된 175년 형의 전말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2020.06.29
  •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 <킹덤 시즌 2> 2020.03.16
  • 욕망으로 점철된 속물들, '진짜' 속물은 누구인가? <속물들> 2020.01.08
  • 한국사회 현실 단면을 담아내 표현한 한국영화의 한 전형 <부당거래> 2019.09.29
  • 권리를 되찾고 의무를 다한, 여성서사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2019.07.29
  • 권력, 사랑, 여성을 앞세운 요르고스 란티모스식 불편한 비틀기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2019.02.25
  • 권력 투쟁 와중 계약과 모험, 그 사이의 백성들의 운명은? <킹덤> 2019.02.04
  • "거짓은 누가 왜 만들어내고, 대중은 어떻게 거짓에 속는가." <제0호> 2018.11.12
  • 권력을 사유화해 사익을 챙긴 MB의 진면목 <나의 MB재산답사기> 2018.04.23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두 거대 인맥 네트워크 집단의 실체 <족벌 두 신문 이야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1. 1. 15. 12:00
728x90



[신작 영화 리뷰] <족벌 두 신문 이야기>


영화 <족벌 두 신문 이야기> 포스터. ⓒ(주)엣나인필름



2020년은 한국을 '대표하는' 두 신문에게 뜻깊은 해였다. 1920년 3월 5일 창간한 <조선일보>와 1920년 4월 1일 창간한 <동아일보>의 창간 100주년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두 신문은 2019년 한국ABC협회 일간신문 유료부수 통계로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가장 오래된 일간 신문 2, 3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전 KBS 사장 정연주가 <한겨레신문> 논설위원과 논설주간으로 역임할 당시 칼럼을 통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두고 '조중동 조폭언론'이라는 단어를 만들며 한데 묶였다. 여러모로 한국을 대표하는 신문들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신문들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실체다. 각각 '1등 신문'과 '민족정론지'를 자처하는 이들은, 1985년의 어느 날 느닷없이 싸운다. <동아일보>가 창간을 기념하는 기사에서 본인들은 민족지, <조선일보>는 친일 기회주의 신문이라며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이후 두 신문의 격론과 논쟁이 계속될 듯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1988년 일명 '5공 청문회'라 불리는 국회 청문회, 국회 언론청문회에 <조선일보>의 방우영 사장과 <동아일보>의 김상만 명예회장이 불려 나왔다. 그 자리에서 방우영은 '친일'이라는 단어에 격한 반응을 보인다. 뉴스타파함께센터가 기획·제작하고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가 공동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족벌 두 신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 챕터로 진행되는 바, '앞잡이' '밤의 대통령' '악의 축'이다. 두 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큰 세력을 가진 가문의 일족' 즉, '족벌'로 규정하고 그들의 100년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친일의 최전선에서


결단코 '친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주들의 말에 전면으로 반박하면서, 첫 챕터 '앞잡이'가 시작된다. 일제가 제국주의 침략 전쟁 '중일전쟁'을 일으킨 1937년 새해 벽두 <조선일보>는 히로히토 부부 사진을 1면에 대문짝만 하게 게재한다. 이에 질세라 이듬해 새해 벽두 <동아일보>도 히로히토 부부 사진을 1면 정면에 역시 대문짝만 하게 배치한다. 이때부터 두 신문은 1940년 폐간 때까지 치열하게 히로히토 부부 사진을 올린다. 그런가 하면, 일제의 조선인 대상 육군 지원병 제도를 옹호하며 총알받이로 사라져 간 조선의 청년들을 영웅으로 치켜 세웠다. 


오래된 신화 <조선일보> <동아일보> 강제폐간의 진실은 무엇일까. 두 신문이 사이좋게 1940년에 폐간되고 1945년 광복 후 복간된 건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일제는 자신들을 떠받들기 급급한 두 신문을 찍지 못하게 한 걸까? 이 작품의 첫 번째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언문신문통제에 관해 조선총독부가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협의한 최초 경과 개요서를 찾아냈다. 일단, 일방적으로 강제폐간이 된 게 아니라 '협의'를 했다는 게 중요할 것이고 이어 문건에 의하면 두 신문은 폐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조선총독부 측에 막대한 보상금을 받아 냈다는 게 중요하다. 조선총독부로서는 같은 논조의 조선어 신문을 세 개나 둘 필요는 없었다. 다른 하나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조선어 신문 <매일신보>였다. 


물론, 두 신문의 1937년 이전 논조는 이후와 사뭇 다르다. <조선일보>의 경우, 방응모가 사들이기 전에 명망 높은 독립운동가들이 사장을 맡으며 다양한 성향이 복합적으로 오갈 때도 있었다. <동아일보>의 경우, 그 유명한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문제는, 오랜 역사에 이런저런 연유로 옳은 일과 옳지 못한 일을 하고 난 후 제대로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은 데 있겠다. 1988년 국회 언론청문회 당시 두 신문 사주의 억지 주장에 치를 떨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군부 독재를 찬양하며


<조선일보> <동아일보> 두 신문의 여정은 광복 후 비로소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밤의 대통령' 편에서 자세히 엿볼 수 있는 바, 박정희 군부와 전두환 군부를 지나오며 일제히 정권 찬양에 열을 올린 것이다. 박정희의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 지칭하며 합리화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할 때마다 독재 권력을 지지하고 찬양한다. 1972년 유신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이르렀다. 여기서,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는 신문의 의식 있는 기자들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1974년, 심각해져 가는 사태를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었던 <동아일보> 기자들은 언론인으로 그대로 남아 있고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로 하고 출판노조 동아일보 지부를 결성한다. 그 힘으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밀고 나갔고 기자가 기자답게 취재하고 기자답게 보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광고 탄압도 모자라, 자유언론실천협회 핵심 인원들을 해고시켰다. 그런가 하면, <조선일보> 기자들도 사 측의 일방적인 유신독재 찬양 기사에 반박하다가 해고당하기도 했다. 사 측에 반발해 제작을 거부하고 농성하던 수십 명의 기자들 또한 쫓겨났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독재 정권 찬양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달았다. 그 결과로 예상되는 바, <동아일보>의 매출액은 3배 이상 올랐고 <조선일보>의 매출액은 6배 가까이 올랐다. 매출액 기준으로 <조선일보>가 드디어 '1등 신문'이 되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두 신문이 찬양해 마지 않았던 독재 정권을 물리치고 이룩한 1987년 6월 민주항쟁 후 형성된 자유로운 언론 환경에서 두 신문은 훨씬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게 되었다. 두 신문은 향후 어디로 향할까,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 직접 핵심 권력을 형성하게 된다. 


스스로 권력이 되다


1970~80년대 군부 독재 정권을 지지하고 찬양했던 대표 주류 언론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비주류 친서민 노무현 정권에 대대적인 선전포고 후 부정의 융단폭격을 날리기 시작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빌려오면, "지난날의 기득권 세력들은 수구언론과 결탁하여 개혁을 반대하고 진보를 가로막"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민주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해 왔던 수구언론들은 그들 스스로 권력으로 등장하여 민주 세력을 흔들고 수구의 가치를 수호하는 데 앞장선" 것이다. 눈여겨 봐야 할 건 수구언론들이 그들 스스로 권력으로 등장했다는 말일 테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두 신문, 아니 두 '족벌'의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은 가히 방대한 인맥 네트워크에 기반한다. 정계, 재계, 관계의 최상위층을 아우르는 혼맥과 전 세계 언론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주 세습으로 누구도 손 쓰기 힘들 정도로 공고히 하고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차근차근 쌓고 있는 인맥 네트워크는, 비록 문화 환경의 급변으로 두 신문의 영향력과 경제력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게 떨어진 후에도 그들의 뒤를 튼튼하게 받쳐 줄 것이다. 


'악의 축'이라는 제목의 세 번째 챕터야말로 <족벌 두 신문 이야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이자 핵심 메시지가 꽉 들어차 있다. 동시에, 재밌기도 하고 얻은 것도 많다. 앞서 두 챕터의 이야기들, 즉 일제 강점기와 독재 정권 하에서 두 신문이 행했던 짓들은 이미 많이 들어서 알고 있기도 했다. 반면, 마지막 챕터의 인맥 네트워크 이야기는 속속들이 생전 처음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었다. 두 신문이 대단해 보이기보다 새삼 무서움과 두려움 그리고 허탈함이 앞섰다. 권력이란 게 어떻게든 한 번 잡으면 참으로 오랫동안 아니,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작품은, 2시간 30분이 훌쩍 넘는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바 뒷부분에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이자 핵심 메시지가 배치된 것 같아 작품성으로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었을 테지만 두 신문의 치부만을 끊임없이 내 보여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피곤하기도 했다. 또한, 역시 두 신문이 주인공이었기에 이를테면 <동아일보>의 자유언론실천선언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한겨레신문> 창간 같은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아 아쉽기도 했다. 


그럼에도, 재밌었고 속 시원했다. 사실만을 전하면서도 블랙 코미디 요소가 다분했던 내레이션이 웃음까지 피식피식 나오게 했다. 진지한 와중에 유머와 풍자를 잊지 말자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그동안의 행적이라면, 그들에게 미래는 없을 것이다. 1970년대 두 신문의 기자들이 사주의 올바르지 않은 짓에 반발했듯, 두 신문에도 진정한 희망의 빛이 다시 한 번 비출 날이 올까. 이 작품을 다 보고 나니, 그 희망이 다시 찾아오길 바라게 된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군부독재, 권력, 노무현, 동아일보, 동아특위, 박정희, 인맥, 일제 강점기, 전두환, 조선일보, 족벌 두 신문 이야기, 친일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전미체조협회 팀닥터에게 선고된 175년 형의 전말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6. 29. 12:00
728x90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포스터. ⓒ넷플릭스



지난 2018년 1월, 미국에서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중요한 판결이 행해졌다. 정골의학 전문가이자 미시간주립대 교수였던 전 미국 국가대표 체조팀 팀닥터 래리 내서에게 최대 175년 형이 선고된 것이다. 그는 이미 아동포르노 소지죄로 6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는데, 지난 30여 년간 치료를 빌미로 160여 명이 넘는 미성년 여성과 성인 여성을 성추생한 혐의가 더해졌다. 실제 피해자는 5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가히 어마어마한 수치들이 나열되어 있는 데에서 판결의 중요성이 느껴지는데, 우리가 이 판결에서 느껴야 하는 건 수치뿐만 아니라 이 판결이 선고되기까지의 과정이다. 이 판결의 시작점이 된다고 할 수 있는 2016년 9월의 고발, 2017년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퍼진 미투 운동, 그리고 2018년 1월의 판결까지의 맥락도 중요하지만 더 심층적이고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권력'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는 2018년 1월의 래리 내서 판결의 전말을 들여다보며 여기에 깊숙히 관여되어 있는 전미체조협회의 사악한 이면과 올림픽과의 관계 그리고 미국 체조의 역사까지 파고든다. 작품의 제목은, 재판 당시 피해를 증언한 '생존자' 카일 스티븐스가 남긴 말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려 돌아온다"에서 가져왔다.


유일하게 위로받을 안식처에서 행해진 악마의 행위


사건의 시작은, 'USA 투데이 네트워크' 산하 <인디애나폴리스 스타>지(이하, <인디 스타>)의 2016년 보도였다. 전미체조협회가 인디애나폴리스 스포츠 센터에 위치해 있었는데, <인디 스타>가 전미체조협회가 협회 내 성 학대 사건을 잘못 대응하는 모습에 대해 보도한 것이다. 그들은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피해자나 그 부모의 서명 혹은 직접 목격자가 없는 한 해당 이야기를 '소문'으로 취급한다고 했다. 성 학대를 당한 아이들이 아닌, 성 학대를 행한 코치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사항이었다.  


해당 기사가 나가고, 바로 레이철 덴홀랜더가 제보를 해 왔다. 그녀는 코치가 아니라 의사에게 성 학대를 당했다고 했다. 이어 2명의 전 체조선수의 연락이어 이어졌다. '래리 낸서'라는 이름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작품 속 생존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래리 낸서는 학대의 다른 말인 고통스러운 훈련으로 힘들고 지친 아이들에게 유일하게 친절한 어른이었다고 한다. 


물리적 치료를 해 주는 건 물론, 심적으로 위로를 해 주고 몰래 먹을 것도 가져다주었다고. 하지만, 그 인지하고 사심 없고 친절하기까지 한 믿을 만한 어른이라는 탈을 쓴 채 수십 년 동안 악마 같은 짓을 일삼아왔던 것이다. 아이들로서는, 지친 심신을 치료받고 위로받을 유일하면서도 최후의 안식처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행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다. 


학대와 다름없는 고통스러운 훈련의 양상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학대와 다름없는 고통스러운 훈련의 양상이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10점 만점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따 전 세계를 놀래킨 루마니아의 체조선수 나디아 코마네치, 벨라와 마르타 카롤리 부부의 작품이었다. 이후 카롤리 부부는 미국으로 망명하여선 미국 체조팀을 맡는다. 그들의 방식은 '잔인함' 그 자체로, 학대와 구분이 되지 않는 가혹한 코치법으로 성공을 일궈낸 것이다. 더불어, 불과 15살의 어리디 어린 나이로 성공한 나디아 코마네치의 사례를 가져와 전 세계 체조선수 평균 나이가 급격히 낮아졌다. 


2010년대 미국 체조팀 수장은 여전히 마르타 카롤리였으며, 어린 선수들을 대상으로 학대가 마찬가지인 가혹한 코치법으로 미국 체조를 세계 최고로 이끌었다. 그녀 아래 전미체조협회의 스티브 페니 회장이 있었고, 그의 보호 아래 아이들에게 성 학대를 일삼는 코치와 팀닥터 래리 낸서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미국 체조의 '성공'만을 위해,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고 수단으로만 생각했다. 이 작품은 래리 낸서의 30여 년간의 아이들 성 학대의 이면에 이런 추악한 진실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보았다.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의 주요한 등장인물이 '매기 니콜스'인데, 그녀는 2015년 6월에 부모님을 통해 래리 낸서에 의한 성 학대 사실을 신고했다. 하지만 전미체조협회는 물론 FBI에서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고 한다. 그 사이, 출중한 실력을 자랑하는 매기 니콜스는 5명이 정식 멤버로 뽑히고 3명이 예비로 뽑히는 2016년 리우 올림픽 대표 선발 대회에서 6위를 하고도 뽑히지 못했다. 주지했듯 마르타 카롤리와 스티브 페니가 좌지우지했는데, 전미체조협회의 팀닥터를 고발한 매기 니콜스를 아니꼽게 본 게 아닌가 하는 심증이 있을 뿐이었다. 


한마음 한뜻으로 뭉친 역사적 판결의 결과


시기상으로, 래리 낸서의 역사적인 판결은 '미투 운동'의 영향권에 있지 않다고 보기 힘들다. 비록 이 판결에서 카일 스티븐스가 남긴 말이 미투 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 문구로 남아 있지만, 애초에 미투 운동이 없었으면 이 판결 자체가 없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미투 운동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이끌었던 운동으로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의 DNA에 각인되어 문화로서 자리잡아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미국 체조와 전미체조협회와 팀닥터 래리 낸서까지 아우르는 이 거대 스캔들을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었던 건 올바름을 향한 많은 이의 '연대'이다. 엄청난 심신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나선 전 체조선수들, 틀린 걸 바로잡는 것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한 신문사와 기자들, 그리고 변호사와 판사와 부모님들까지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쉬워한다. 거대한 악의 소굴에서 '래리 낸서'라는 조무래기 하나만 겨우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비록 스티브 페니 회장을 체포하며 소기의 목표를 실현했지만, 비단 전미체조협회뿐이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정녕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조직에서 얼마나 많은 악마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은밀하게 성적으로 학대하며 즐겨왔겠는가. 시간이 지났다 해도 끊임없이 되살려내야 한다. 다시 한 번 이 말을 전하며 끝맺고자 한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려 돌아온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권력, 래리 낸서, 미투운동, 성공, 성학대,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 전미체조협회, 판결, 훈련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 <킹덤 시즌 2>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3. 16. 12:00
728x90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킹덤> 시즌 2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시즌 2> ⓒ넷플릭스



지난 3월 5일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킹덤> 시즌 2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류승룡이 많은 기사의 메인 카피를 장식할 만한 한마디를 했다. 시즌 1의 만듦새와 인기에 힘입은 시즌 2에의 당찬 포부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과 전혀 동떨어지지 않은 내용이다. 들어보자. 


"음악에 방탄소년단(BTS), 영화에 기생충(봉준호)이 있다면, 스트리밍엔 킹덤이 있다."


한국의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였던 <킹덤> 시즌 1은, 넷플릭스가 지난 2019년 말에 공개한 '2019년 한국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 10선'에서 당당히 그리고 당연한듯 1위를 차지했다. 충무로 기대주 김성훈 감독과 믿고 보는 김은희 작가의 시너지와 주지훈, 류승룡, 배두나를 비롯해 주연급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해 기대를 높였는데,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킹덤> 시즌 2는 시즌 1이 오픈되기도 전에 제작이 확정되었었는데, 1년 2개월 여만에 다시 찾아왔다. 시즌 1의 수많은 떡밥을 '회수'하고, 계속될지 모를 시리즈의 거대한 세계관을 '정립'하며, 헤어나오기 힘든 '재미'를 선사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4시간이 넘게 이어진 6화 내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몰입했다. 반드시 시즌 1을 보고 연달아 시즌 2를 볼 것을 추천한다. 어떤 이야기가 이어졌는지 간략히 들여다보자. 


생사역을 물리치는 한편 조학주를 막아내야 하는 세자 일행


생사역의 진원을 찾아 우여곡절 끝에 상주에 도달해 스승 안현 대감과 합세한 세자 이창 일행, 하지만 곧 믿을 수 없을 만큼 많고 빠르고 힘쎈 생사역 환자 무리 즉 좀비 떼가 들이닥친다. 있는 힘껏,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막아보지만 역부족이다. 겨우겨우 탈출할 수 있었을 뿐이다. 비단 좀비 떼의 습격은 상주뿐만이 아니었다. 전국적으로 막을 방도가 없다시피 한 대전란인 것이다. 


세자 일행은 조학주 일파와 왕이 있는 문경새재로 잠입한다. 반역자로 몰린 세자 일행의 목을 조이고자 문경새재에 내려와 있던 그들이었다. 손쉽게 잠입에 성공한 세자 일행, 하지만 조학주의 간악한 함정이었으니... 세자는 반역자에서 대역죄인으로 몰리게 된다. 손 쓸 방도가 없어지다시피 한 와중에 타개할 방법이 있는 것인가? 누군가의 목숨을 건 희생이 필요해 보인다. 그런고 하니, 세자 일행이 문경새재로 잠입할 걸 조학주가 어떻게 알았을까? 내통자가 있는 게 아닌가. 


한양에서는 의문의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것도 조학주의 딸 중전마마를 둘러싸고 말이다. 어영대장 민치록이 앞장 서 내막을 밝히려 하지만, 궁의 모든 곳에 퍼진 조학주와 중전의 세력 때문에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편, 생사역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의녀 서비는 권력 암투 사이에서 원인을 밝혀내고자 누구보다 힘든 사투를 벌이고 있다. 세자 일행은, 생사역을 물리치는 한편 조학주을 막아내야 하는 이중의 어려움에 처한 것이다. 


여러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하다


<킹덤> 시즌 2는 1화까지만 시즌 1의 김성훈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2화부터 끝까지 박인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김성훈 감독은 제작으로 빠져 전체를 총괄했다. 달라진 점이라면 달라진 점이겠는데, 김성훈 감독이 <끝까지 간다> <터널> 등으로 장르에 장점이 있다면 박인제 감독의 경우 <모비딕> <특별시민> 등으로 사회고발에 장점이 있다 하겠다. 시즌 1과 따로 또 같이 시즌 2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점이다. 물론, 드라마라는 특성상 감독보다 작가가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텐데 다름 아닌 김은희 작가라는 점에서 극대화되었을 테다. 


시즌 1과 톤 앤 매너, 결은 다르지 않게 가져가며 주제의식을 다르게 가져갔다. 시즌 2는 여전히 속도감과 박진감이 넘쳤고, 장르적 쾌감을 유지하는 한편 사회고발 및 추적의 메시지까지 적절히 가미했다. 판이 훨씬 커졌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시즌 1에 이어 시즌 2에도 사실상 원탑 주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자 이창의 성장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두 마리 정도가 아닌 참으로 많은 토끼를 잡고자 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고 감히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자 일행과 현장에서 함께 모험했다고 하면 맞을까?


과감함은 한층 배가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건, 매회 <왕좌의 게임>에 비견되는 믿기 힘든 주연급 배우들의 하차에 있다. 스토리를 보다 극적이고 흥미진진하게 끌고가기 위해, 그러면서도 개연성을 잃지 않기 위해 메인급 캐릭터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와, 이 캐릭터가 여기서 이렇게 죽는구나."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안타까움과 함께 통쾌함까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피'에 대한 이야기


시즌 2의 숙명은, 어쩔 수 없이 시즌 1과의 비교 분석에 있다. 다행인 건, <킹덤> 시즌 2가 매우 훌륭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2020년 1/4분기에 내놓은 시즌 2들이 대부분 성공적이었는데, <킹덤>을 비롯해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얼터드 카본> <F1, 본능의 질주> <검은돈> 등이 모두 괜찮았다. 형만 한 아우 없다고 하지만, 시즌 1보다 괜찮은 시즌 2의 시리즈도 있었다. <킹덤> 시즌 2가 대표주자. 


<킹덤> 시즌 1이 보다 좀비들에 중점을 두어 권력놀음에 지쳐 굶주림에 허덕이다 좀비가 되어 끝도 없이 먹을 걸 탐하게 된 민초들로 중심 얼개를 끌고갔다면, 시즌 2는 살아 있는 이들에 중점을 두어 권력사투의 한복판으로 지체 없이 달려나간다. 세자 이창을 중심으로 해 보자면, 시즌 1에서는 주로 도망쳤다면 시즌 2에서는 주로 추격한다는 게 큰 차이점이다. 나라를 바로 잡고자, 조학주 일파를 추격하고 생사역의 진짜 진원을 추격한다. 시즌 1의 어쩔 수 없었을지 모를 도식화를 깨트리고, 작품 본연의 맛을 충실히 내보이고자 한 것이다. 


하여, <킹덤> 시즌 2는 김은희 작가가 밝혔듯 '피'에 대한 이야기다. '진정한 왕이란 무엇인가'에서 파생된 핏줄의 중요성 내지 허무함, 유독 '피'라면 사족을 못 쓰고 훨씬 격렬하게 달려드는 좀비들,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뿌리며 그 위를 밟고 가기에 무념한 '권력'의 개들까지. '인간이라면 아무렴 피에 천착하는 구나' 하는, 서글픈 깨달음이랄까 번뜩이는 깨달음이랄까. 


와중에, 제목이기도 한 '킹덤'에 대한 숙고를 잊지 않는다. 시즌 2에서는 세자 이창의 입으로 다시 한 번 천명된다. 왕국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왕국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말이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 <킹덤> 시즌 2가, 전 세계에 창궐한 코로나19에 맞닿은 '감염'에 천착하지 않고 '나라'의 근본에 천착한 건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근본이 바로 서야 길이 열린다'고 하였다. <킹덤> 시리즈가 계속되길 바라며, 바이러스 감염은 그만되길 바란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권력, 사회고발, 생사역, 세자, 장르, 전염, 킹덤 시즌 2, 피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욕망으로 점철된 속물들, '진짜' 속물은 누구인가? <속물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 8. 08:00
728x90



[신작 영화 리뷰] <속물들>


영화 <속물들> 포스터. ⓒ(주)삼백상회



유명 팝아트 작가 찰스 장의 작품을 대놓고 차용한 '차용미술'로 당당하게 활동하는 미술가 선우정, 제목도 <표절 1> <표절 2> 등이다. 참신하다면 참신하달 수 있는, 나름의 전통과 계보가 있는 미술 방법이랄 수도 있겠지만, 누가 봐도 모사이고 표절이고 베낀 것이다. 결국 그녀는 어렵게 잡은 전시회에 방문한 찰스 장을 가격해 고소를 당한다. 


한편 그녀는 애인 김형중와 동거 중인데, 사실 돈이 없어 얹혀사는 거나 다름 없었다. 고소를 당하든 말든 주저앉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녀 앞에 유민 미술관 큐레이터 팀장 서진호가 나타나 촉망받는 신진 작가들 특별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받아들이는 선우정, 그들은 잠자리까지 갖고 가까워진다. 와중에 느닷없이 선우정의 고교 동창 탁소영이 나타나 선우정, 김형중, 탁소영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유민 미술관 총감독 유지현은 서진호를 내치고 그 자리에 후배 김형중을 앉히려 한다. 기자로 일하고 있는 김형중은 그 제안을 받아 들인다. 서진호는 극구 버티며 김형중과의 기묘한 투 팀장 체제를 이어간다. 선우정은 찰스 장과의 재판에서 패하며 전시회도 끊겨 서진호에게 기댈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하필 서진호와 경쟁하는 이가 애인 김형중이라니... 탁소영은 김형중을 유혹하고, 선우정은 유지현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려 하는데... 이 5명 안에 도사린 욕망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들 관계의 앞날은?


신정아 사건을 모티브로 


영화 <속물들>은 신아가, 이상철 감독 콤비의 2번째 장편영화이다. 2011년 <밍크코트>로 장편 데뷔를 한 그들은, 이듬해 박정범 감독과 함께 옴니버스 영화 <어떤 시선>을 내놓고 실로 오랜만에 뭉친 것이다. 독립영화 치곤 꽤 이름이 있는 배우들이 이름을 올렸는데 유재명, 유다인, 송재림, 심희섭 등이 그들이다. 영화를 향한 신뢰요소를 상당 부분 충족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가 하면,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사건 또한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2007년 당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신정아 사건'이다. 동국대 교수였던 그녀는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하며 '미술계의 신데렐라'로 불렸는데, 하루아침에 학력 위조와 공금 횡령과 정계로비 스캔들로 무너져 모든 걸 잃고 감옥에 간다. 석방 후 자전 에세이 <4001>을 써내 다시 한 번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영화 속 선우정이라는 캐릭터가 신정아에서 나왔을 것이다. 큰 틀에선 미술계 이야기이지만, 다른 건 선우정은 큐레이터가 아닌 미술작가라는 것. 오히려 실제보다 범죄에 중하는 짓을 한 가지 더 붙여놨다. '차용미술'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차용미술은 엄연히 존재하는 방법론이자 사조이다. 단, 그 과정의 끝에 명명백백한 새로운 가치가 생겨나야 하겠다. 영화에선 선우정의 일방적이고 무가치한 주장으로 보인다. 


진짜 속물은 누구인가


영화는 차용미술이라는 이름의 표절 작가 선우정의 우여곡절 치열하고 아득바득 치졸한 욕망의 무분별한 발산과 그녀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보다 더럽고 비열한 욕망의 분출이 큰 두 축을 이룬다. 선우정을 향한 이해불가의 물음과 인색한 조롱의 시선이 점차 여타 인물들을 향한 한숨과 욕지거리로 변하는 걸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레 진짜 '속물'은 누구인가 찾게 된다. 


사실 영화에서 차용미술이니 표절이니 하는 건 수단에 불과하다.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능력이 모자란 미술작가 선우정이라는 캐릭터가 욕망을 발산하는 방법의 하나로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리라. 그녀의 목적은 오직 하나, 미술계에서 살아남아 명성을 얻고 돈을 많이 벌어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발버둥 치는 모습이 남일처럼 느껴지거나 보이지만은 않는다. 


비록 방법은 잘못 되었지만 그녀의 모습은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도와줄 사람도, 끌어줄 사람도, 꽂아줄 사람도 없이 그저 열심히 하며 버티고 있을 뿐, 다른 방도가 없다. 하여, 현실적으론 선우정을 비호할 수 없기는커녕 강력히 매도해야 하지만 영화적으론 왠지 짠해 응원하고 싶어진다. 태생부터 대놓고 속물인 그녀가 다른 속물들보단 차라리 낫지 않겠나 하면서 말이다.


욕망으로 점철된 인물들의 면면


'약자' 선우정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면면을 들여다 보면 가관도 아니다. 두두러지진 않지만 속물의 최종보소와 같은 유지현은 진정 '나쁜 놈'이 아닐까 싶다. 그는 저 위에서 모든 걸 좌지우지하며 본인 손엔 똥도 피도 묻히지 않는다. 성인군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잘 숨겨왔던 선우정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듯한 탁소영 또한 한몫하는 속물이다. 선우정이 본인 스스로 속물임을 드러낸다면, 탁소영은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두고 속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다. 하여, 선우정의 욕망은 탁소영을 향하지 않지만 탁소영의 욕망은 선우정을 향한다. 


여기 은근슬쩍 속물인 두 사람이 있다. 선우정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듯하지만, 유지현에게 놀아나기도 한 김형중과 서진호이다. 그들은 선우정과 연인과 내연 관계로 얽혀 있지만, 사실 유지현의 대변인이자 적대 관계로 얽혀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유지현의 유민 미술관 팀장 자리를 두고 척을 둔 두 사람은, 유지현의 미술 권력 유지 대리전을 치르는 것이다. 


영화는 진중한 드라마로 욕망의 치열함을 최대한 발휘시키는 대신, 블랙코미디 요소를 적절히 섞어 욕망의 치졸함을 최대한 발휘시킨다. 고로,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으니 의도는 성공적으로 보였다고 할 수 있겠다. 허무하면서도 찰진 대사와 보는 사람만 웃기게 하는 무표정한 표정이 압권이다. 욕망이란 게 하등 진지할 것 없이 이리도 하찮은 것이구나 하고 저절로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린 누구나 속물일 테지만 누구도 스스로 인지하고 있지 못하지 않나. 이 욕망의 화신인 속물들의 면면들을 재밌게 대하며 은근히 인지하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권력, 미술계, 속물들, 신정아, 욕망, 차용미술, 표절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한국사회 현실 단면을 담아내 표현한 한국영화의 한 전형 <부당거래>

오래된 리뷰 2019. 9. 29. 08:00
728x90



[오래된 리뷰] <부당거래>


영화 <부당거래>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2000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화려하게 데뷔한 류승완 감독, 2000년대 내내 자그마치 6편이나 스타일 확실한 영화를 연출하며 '류승완표 영화 스타일'을 확실히 한다. 하지만 이 시기 나온 작품들이 적어도 흥행에서는 애매했던지라 류승완 감독의 연출 인생에서 확실한 발돋움을 하진 못했다고 평할 수 있겠다. 2010년대 들어서 비로소 획기적인 발돋움을 할 수 있었다. 


2000년대 류승완표 영화 스타일은 액션과 코미디가 주를 이룬다. 크게 탈피하지 않은 건, 스타일을 정립하기 위함일 수도 있고 나름의 성과를 얻고 있었기에 탈피할 이유가 없었을 수도 있으며 '알'을 까고 나오는 게 힘든 만큼 자신의 스타일을 탈피하기가 힘들었을 수도 있다. 2010년작 <부당거래>는 류승완 감독이 지난 10년간 정립한 스타일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차원에서 성공적으로 탈피한 작품이다. 


<부당거래>는 류승완 감독 개인 필모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계의 사회파 범죄 영화를 한 단계 진일보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현실감 투철하고 탄탄한 각본과 찰진 대사로 무장한 캐릭터들, 그리고 거시적 관계 구도와 미시적 표현들이 유기적으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들어 맞았다. 한국사회 현실 단면을 담아내 표현한 한국영화의 한 전형이라 하겠다. 


대국민 조작 사건의 전말


어린이 연쇄 살인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니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수사를 종용한다. 와중에 유력 용의자가 경찰의 손에 사망하자 경찰은 어떻게든 범인을 잡아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에 광역수사대 에이스 최철기가 투입된다. 그는 경찰대 출신이 아니었고 뒤가 구렸으며 팀 형사들이 뇌물을 받은 전력도 있어 일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경찰 윗선에선 일처리가 확실하지만 뒤탈도 없는 최철기 투입이었고, 최철기 입장에선 어쩔 수 없이 낚였으나 위로 올라가기 위한 유일한 방편이기도 했다. 


최철기는 가짜 범인 이동석을 골라선 은밀히 연결되어 있는 조폭 출신 해동건설 대표 장석구를 시켜 엮어들어가는 데 뒤탈없게끔 한다. 처음엔 거절했던 장석구이지만 태경그룹 회장 김양수에게 큰 공사 건을 뺏길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받아들인다. 한편 검사 주양은 스폰을 해주는 김양수 회장의 비리사건을 두 번이나 주도한 최철기를 주시하기 시작한다. '검찰' 주앙은 '경찰' 최철기의 자신만만함에 부아가 치미는 한편, 최철기가 조작한 가짜 범인 이동석을 넘겨 받는다. 


와중에 장석구는 김양수를 청부살인하고 함께 골프를 치던 주양의 사진을 찍어 최철기와 주양에게 보낸다. 장석구가 최철기 편인 듯 사실 최철기와 주양을 쥐고 흔드는 모양새를 취하는 동시에, 최철기와 주양의 관계가 극단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최철기로선 장석구도 모자라 주양까지 상대해야 하는 판이 된 것이다. 사건이 이상하게 꼬인다. 이 대국민 조작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내리권력의 견고함


<부당거래> 속 대국민 조작은 윗선에서 시작된다. 나라의 수장 대통령의 압박 퍼포먼스(영화 속 모티브가 되는 대통령은 이명박이다)를 보고는 경찰청장 이하 경찰 고위급들에서 시작된 조작의 흐름이 선을 타고 아래로 내려와 해당 사건과는 무관한 금치산자까지 가닿는 것이다. 극중 최철기 반장부턴 엄연한 선이 그어지는 게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지극히 영화적인 설정이다. 


그런가 하면 주양 검사는 영화의 주요 맥락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 인물이다. 어린이 연쇄 살인 사건 범인 조작 중 최절기, 장석구와 닿아 있는 김양수가 스폰을 서는 검사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의도치 않게 해당 사건을 맡게 된 것이고. 그렇지만 그야말로 자신도 모르게 이 사건의 핵심으로 떠오른다. 검찰의 검사라는 권력에 장인어른 백까지 가진 완전집합체이기 때문이다. 하필 그를 잘못 건드린 겁 없고 백도 없는 최철기. 


영화에 '나쁜놈' 아닌 사람을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들다. 주요 3인방 최철기, 주양, 장석구는 물론 모든 인물이 앞뒤 할 것 없이 구린 구석이 있다. 다만, 더 나쁜 것 같은 짓을 일삼는 이들은 출신성분이 하찮은 이들과 가진 것 없이 올라와 더 오르고 싶은 이들이다. 그들은 출신 빵빵하고 가진 것 많은 이들이 내려준 동아줄 하나에 주렁주렁 매달려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척 경계한다. 


그러니, 영화는 꼬이고 꼬인 관계 속 명확한 선에 의한 관계 구성도를 보이는 것이다. 위와 아래. 하여 우린 비교적 쉽게 용서받지 못할 자를 선별해낼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도 위는 견고하고 아래는 무너지는 영화 속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모르고 지나쳤을 걸 하는 자괴감이 든다. 내리폭력이라는 사슬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끊어낼 수 있지만, 내리권력이라는 사슬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보다 견고해진다. 


모자람 없이 적절하다


영화는 주지한 거시적 관계 구도에서 오는 현실적이면서도 영화적 흥미 요소 이외에도 우리를 흥분시킬 만한 구성 요소들이 참으로 많다. "검찰이 경찰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되지! 아주 큰 실수를 할 뻔 했어 내가"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남자가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지. 어깨 쭉 펴!" 등 영화 한 편에 나올 만한 질과 양을 뛰어넘는 명대사의 향연이 눈부시다. 또한 명대사들이 하나같이 한국사회를 시사하고 있다는 게 절절하다. 


한편 한국사회의 지옥도를 디테일하게 표현한 장면들도 눈에 띈다. 너무나 현실적이라 코미디적 요소가 깔려 있다고 느낄 만한대, 비가 엄청나게 쏟아붇고 있는 와중에 가게 안에서 반장과 국장이 독대하고 팀 식구들은 밖에서 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나 엄청난 백을 등에 엎고 빅이슈 건을 맡게 된 주양 검사가 일이 잘 풀리지 않자 동료 검사들이 겉으론 덕담을 건네고 실제론 비웃는 장면 등이 그러하다. 


류승완 감독 스타일에서 성공적으로 탈피했다곤 하지만 '액션'에 있어서는 고수했다고 본다. 중반과 후반 최철기가 주도한 길지 않은 1 대 1 액션신은 매우 현실감 넘친다. 화려함, 빠름, 현란함은 쏙 빼고 단단함, 단백함, 투박함, 정확함 등을 투여했다. 오로지 몸과 몸이 부딪혀 자아낸 액션으로, 액션에도 감정이입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까지 받는다. 


전체적으로 모자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넘치지도 않았다. 적재적소에 굳더더기 없이 알맞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연출, 연기, 각본이 서로를 침범하지 안으면서도 서로를 바라본 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다. 완벽할 순 없겠지만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았다는 걸 두고 <부당거래>를 내세워도 크게 밑보이지 않을 것이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관계, 권력, 류승완, 범죄, 부당거래, 조작, 한국사회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권리를 되찾고 의무를 다한, 여성서사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7. 29. 12:20
728x90



[리뷰]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포스터. ⓒ (주)디스테이션



고립되고 오래된 저택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의 사건을 다루는 '고딕 미스터리' 장르, 20세기 미국 소설가 셜리 잭슨이 선구자격으로 대표적이다. 그녀의 이름을 딴 셜리 잭슨상이 2007년에 재정되어 2017년 편혜영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는 쾌거를 얻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대표작이라 할 만한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제비뽑기> <힐 하우스의 유령>이 번역출간된 바 있다. 


1965년에 사망한 셜리 잭슨의 마지막 소설 작품은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로, 2018년 영화로 개봉하였고 2019년 7월 한국을 찾아왔다. 이 소설 작품 역시 고딕 미스터리의 대가다운 필치와 분위기로 유명한데, 영화에서 어떻게 살렸을지 혹은 죽였을지 궁금하다.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걸 극대화시켰을지,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걸 극대화시키는 데 몰두했을지, 더할 건 더하고 집중할 건 집중하고 뺄 건 빼면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했을지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자 했다. 고딕 미스터리 특유의 음울하고 불안하고 처진 분위기를 시각적 미장센으로 표현해냈다. 화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의도를 어느 정도 간파할 수 있다. 대신, 스토리나 캐릭터나 사건 등이 상대적으로 묻히는 경향이 있다. 가장 큰 허점은 간접적 아닌 직접적 '이해불가'에 있다. 본래는 극중에서 주인공들의 행동과 말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하는데, 초중반까지는 '극중'이 아닌 '극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저택과 마을, 불쑥 찾아온 찰스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의 한 장면. ⓒ (주)디스테이션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대저택, 블랙우드 가족이 대대로 살아온 그곳엔 이젠 어린 두 자매와 삼촌만 살고 있다. 6년 전 자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명 '비소 살인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용의자로 큰 딸 콘스탄스가 지목되어 재판을 받았지만 무죄로 풀려난 바 있다. 그녀는 이후로 집밖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는데, 대신 동생 메리캣이 한 주에 한 번 날을 잡아 마을로 나가 먹을 걸 사는 등 볼 일을 본다. 한편 삼촌 줄리안은 그날 그 사건에 매몰되어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그 사건을 소설로 옮기는 데만 몰두하며 살아가고 있다. 


불안하고 불편하고 불쾌하지만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그들 앞에 낯선 젊은 남자 한 명이 찾아온다. 찰스라는 이름의 그는 자신을 먼 친척이라고 밝히고는 대저택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하는 말과 행동을 보니 아무래도 돈이 목적인 듯싶다. 메리캣이 집과 가족을 지킨다는 일념으로 거금과 고가품을 가지고 벌이는 일련의 주술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금지 시키려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콘스탄스를 상대로 음흉한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으니 친척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이기까지 한 게 아닌가. 


하지만 한없이 착하고 무르기만 한 콘스탄스는 그를 멀리하기가 힘들다. 대신 줄리안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찰스를 향해 소리치며 집을 나가줄 것을 요구하고, 메리캣도 마찬가지로 그의 추방을 위해 말과 행동을 병행한다. 마을 사람들은 블랙우드 가족의 악랄한 소문을 발판 삼아 찰스가 곧 죽을 거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한다. 물론, 찰스는 꼼짝도 하지 않고 블랙우드 대저택의 중심으로 다가가려 한다. 


마을 사람들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의 한 장면. ⓒ (주)디스테이션



'딸이 부모님을 살해했다 하여 재판을 받았지만 무죄로 풀려났는데 마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의 기본 배경은 기시감이 있다. 올해 초 개봉했던 영화 <리지>의 모티브가 되는 '리지 보든 살인사건' 말이다. 1892년 미국 메사추세츠에서 보든 일가의 부부가 도끼로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용의자로 둘째 딸 리지 보든이 지목된 것이다. 그녀는 재판에 넘겨졌지만 무죄로 풀려났다. 하지만 워낙 유명해져서 동요로까지 만들어졌고 10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불리고 있다고 한다. 


셜리 잭슨이 소설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를 지을 때 이 실화 사건을 참조했을 거라는 짐작이 간다. 사실 리지 보든 살인사건은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수많은 콘텐츠에 영향을 미쳐 왔으니 이상할 건 전혀 없다. 이 영화를 리지 보든 살인사건 이후의 이야기로 생각하고 봐도 문제가 되기는커녕 또 다른 소구점을 줄 수도 있겠다. 본래의 소구점에는, 성에 사는 두 자매가 아닌 성 밖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관점이 주가 된다. 또 다른 소구점에는, 성에 사는 두 자매 중 메리캣이 주체가 되어 여성서사에의 관점으로까지 나아간다. 


원작자 셜리 잭슨이 의도한 바일 텐데, 평범하고 일상적인 악이 당연한 듯 마을을 잠식하고 있는 모습이 섬뜩하다. 메리캣의 말에 따르면 블랙우드 가족은 마을과 멀리 떨어져 살며 그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은 대저택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빌미로 두 자매를 포함 블랙우드 가족 자체에 마녀사냥식 융단폭격의 폭언과 폭력을 퍼붓는 것이다. 그들에게 자매는 달라서 틀린 존재이고 두려운 만큼 적이자 악의 존재이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마을 사람들이 훨씬 다수이고 고로 강자이다. 그들로 하여금 자매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만큼, 마을 사람들이 비록 대저택이라고 하지만 자매를 가두었다고 할 수도 있다. 자매도 그런 사정을 잘 인지하고 있는 모양새이고. 그럼에도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틀린 존재이자 적과 악의 존재로 보고 있는 이면에 이질적이고 두려운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걸린다. 결국, 강자와 약자는 다수와 소수, 가둔 자와 갇힌 자, 행하는 자와 당하는 자에 따라 갈리는 게 아니란 말인가. 


두 자매


영화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의 한 장면. ⓒ (주)디스테이션



두 자매, 그중에서도 메리캣의 관점에서 들여다보자. 메리캣은 18세의 소녀로 항상 불안에 차 있는 눈빛과 행동과 말로 다닌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그런 모습이 불쾌하고 그 이면에 있을 블랙우드 가족의 참혹함이 불안하다. 나아가 결국 홀로 고고히 중세 시대 영주의 성처럼 있는 블랙우드 대저택이 불편하다. 메리캣은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으나, 메리캣 자매가 마을 사람들을 두렵고 무서워하는 것보다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더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차치하고서라도 메리캣이 행하는 일련의 주술행위나 특유의 말과 행동은 굉장히 방어적이다. 저택과 가족을 지키려는 의도로 '가진 게' 많은 이의 보수적 행동, 그 전형이다. 자매가 생각하지 못하는 게 바로 그 지점일 텐데, 사실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 궁극적 지점이 그들 가족의 참혹한 이력이 아니라 그들 가족의 독보적인 막대한 부일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다시피 한 어린 자매이기에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얘기가 여기까지 흘러왔다면, 메리캣의 여성서사적 행동 관점을 들여다보는 게 무슨 의미랴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찰스에 대항하는 유일한 일원이라는 점과 대항 행동이 마을 사람들을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르게 당당하다는 점이 와 닿는다. 사실상 블랙우드 가 대저택을 수호하는 '가장'으로서 절대 권력을 넘길 수 없다는 철칙의 일환일 수도 있지만, 그녀가 '권력'의 추악한 면모를 보인 일이 전혀 없다는 것에서 달리 생각해야 할 이유가 보인다. 


자신들을 억압하지도 자신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는 삼촌을 해할 필요는 전혀 없는 것처럼, 그러기는커녕 정신병인 게 분명한 그를 병원으로 보내지 않고 직접 모시고 있는 것처럼, 찰스는 비록 젊고 잘생기고 가족의 일원으로 줄리안보다 훨씬 큰 일을 할 수 있음에도 자신들을 억압하고 급기야 자신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두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두 자매는 그저 자신의 권리를 찾고 의무를 다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게 봐야 하지 않는가?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권력, 대저택, 마녀사냥, 마을, 살인사건, 셜리 잭슨, 여성서사,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권력, 사랑, 여성을 앞세운 요르고스 란티모스식 불편한 비틀기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2. 25. 08:47
728x90



[리뷰]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포스터. ⓒ이십세기폭스코리아



18세기 영국, 프랑스와의 전쟁을 계속 해야 하는지 화친해야 하는지를 두고 국정이 둘로 나뉘어 치열하게 대립 중이다. 절대권력 여왕 앤(올리비아 콜맨 분)은 죽 끓듯 하는 변덕을 내뿜을 뿐 국정에 이렇다할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조력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여왕의 조력자 사라(레이첼 와이즈 분)는 어릴 적 앤 여왕을 구해준 후 궁전에 들어와 여왕과 우정을 나누며 비선실세로 사실상 권력의 최정점에서 군림하고 있다. 그녀의 당면한 과제는, 프랑스와의 전쟁을 계속하여 사령관인 남편 말버러 공작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사라에게 친척이라며 몰락한 귀족 여인 애비게일(엠마 스톤 분)이 찾아온다. 궁전 하녀부터 시작하는 그녀, 사라 몰래 여왕의 통풍을 완화시켜줄 약초를 캐와 눈에 들고는 사라의 전속 하녀가 된다. 이후 애비게일은 차츰 본색을 드러내 사라 아닌 여왕의 눈에 들고자 발악하는데...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이하, '더 페이버릿')는 한 나라, 아니 한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궁전에서 벌어지는 치열하고 치졸하고 치밀한 세 여인의 암투를 담았다. 거기에는 국정, 권력, 사랑, 진실, 질투, 욕망, 거짓 등의 온갖 것들이 판을 친다. 


'불편'이 깔려 있는 비틀기


요르고스 란티모스 특유의 '불편'이 기저에 깔려 있는 비틸기가 십분 발휘되었다.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더 페이버릿>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신작이다. 또 요르고스 란티모스다. 불과 몇 개월 전 <킬링 디어>로 찾아와 '역시 역시는 역시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깔끔한 각본으로 명성을 잇더니,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찾아와 전 세계 시네필을 열광시켰다. 


그런데 이 영화, 이때까지의 란티모스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듯하다. 아니, 상당히 다르다. 란티모스 하면, 특유의 상상력을 극대화해 완벽한 신화적 비틀기를 완성시킨 대가가 아닌가. 그래서 영화보다 연극에 더 알맞는 듯한 영화들을 선보여 왔었다. 


반면 <더 페이버릿>은 스토리 라인 자체로는 별 얘깃거리가 되지 않는 권력 치정기를 내세우는 대신, 수많은 단편적 메시지들과 영화라는 형식으로만 활용될 수 있을 듯한 상상력 충만 비틀기를 시도했다. 그동안의 작품들과 다르지 않은 게 있다면, 기저에 '불편'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스토리 내적으로 들어가기 전, 외적인 요소들인 카메라 구도, 카메라 렌즈 활용, 슬로우 모션, OST, 문자 정렬 등만 봐도 알 수 있다. 인물을 아래에서 위로 비추는 구도, 광각과 어안 렌즈를 활용한 화면 비틀기, 슬로우 모션 후 동일한 장면을 제대로 된 플레임으로 보여주기, 신경을 긁는 듯한 현악기 위주의 OST, 영화의 제목과 챕터 제목과 엔딩 크레딧을 장식하는 '균등 분할'의 문자 정렬 방식까지 하나 같이 불편하기 그지없다. 감독은 왜 굳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일까. 


권력


'권력'이라는 키워드.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스토리 외적인 영화 장치적 요소들의 불편한 비틀기는, 자연스레 스토리 내적으로 이어져 숨막히고 내밀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궁전' 공간의 실상을 보여주는 데 일조한다. '여기는 이런 곳이고 이런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하며 살고 있어.' 


영화는 '권력'이라는 키워드에서 시작한다. 당면한 가장 큰 과제인 프랑스와의 전쟁은 수단일 뿐이다. 이 과제를 놓고 여당인 휘그당과 야당인 토리당이 격전을 벌이는 와중, 앤 여왕과 조력자 사라는 당연히 여당과 긴밀하게 조우하고 있다. 


하지만, 앤은 죽 끓는 듯하는 변덕을 국정에서도 가감없이 흩뿌리곤 하는데 사라의 조언과 협박도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앤도 사람인 바, '절대권력'이라는 수식어에 걸맞는 권력을 휘두르고 싶을 것이다. 언제나 그녀의 곁에서 나라를 위한 조언이라는 미명 하에 '실질권력'을 휘두르는 사라 대신 말이다. 그때 나타난 애비게일의 존재는 앤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다. 


애비게일은 욕망의 화신이다. 귀족에서 천민으로 굴러떨어진 후 제자리를 찾으려는 욕망은 누구도 주체할 수 없다. 앤은 허울 뿐인 절대권력 대신 진실한 실질권력을 갖고자 애비게일을 이용하고, 애비게일은 사라를 대신해 실질권력의 자리에 오르고자 한다. 얼핏 둘의 합은 굉장히 잘 맞을 것 같은데, 여기에 또 다른 키워드 '사랑'이 있기에 쉽지만은 않다. 


사랑


'사랑'이라는 키워드.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앤과 사라는 사랑하는 사이다. 사라의 앤에 대한 사랑은 권력과 맞바꾼 필요조건처럼 보이지만, 우여곡절 끝에 어릴 때 왕이 되어 변덕과 후회와 슬픔만 남은 앤에게 사라는 사랑적 필요조건이다. 


그렇다고 사라의 앤에 대한 사랑이 권력으로만 치환될 순 없는 것이, 군사령관으로서 항상 멀리 떠나 죽음을 옆에 두고 사는 말버러 공작을 남편으로 둔 사라에게도 앤은 유일무이하게 모든 걸 나눌 수 있는 대상이라 하겠다. 역시 사랑적 필요조건이다. 


서로 사랑적 필요충분조건이 충만한 앤과 사라 사이에 애비게일이 껴들 수 있는 요소는 사랑 아닌 권력이 먼저겠다. 그녀는 그 둘 사이를 내외적 권력 요소로 흔들고는 이후에 사랑으로 다가간다. 물론 오직 욕망으로 점철된 거짓 사랑이라는 게 함정. 


사라는 앤에게 '화장한 얼굴이 오소리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비록 권력이라는 어쩔 수 없는 등가교환 요소가 언제나 따라붙었지만, 그들 사이는 오랜 우정에의 믿음과 진실에 바탕한 냉정이 함께 했는데 말이다. 권력이 먼저인가 사랑이 먼저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여성


'여성'이라는 키워드. 그리고...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자세히 들여다볼 것도 없이 <더 페이버릿>을 지배하는 건 남성 아닌 '여성'이다. 극을 좌지우지하는 세 명의 여인, 앤과 사라와 애비게일이 그들이다. '그밖에' 휘그당 당수이자 총리인 고돌핀과 토리당 당수 할리와 애비게일을 따라다니는 마샴 대령이 있다. 


국정과 욕망의 암투가 판 치는 권력에의 향연, 진실과 질투의 치정적 요소 충만한 사랑, 그리고 이 모든 걸 아우르는 궁전을 오직 이 세 명의 여인만이 판을 짜고 휘두르고 좌지우지하고 있다. 또한 할 수 있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가 몇몇 있다. 앤 여왕의 '난 여왕이야', 할리의 '남자는 항상 예뻐야 해.', 사라의 '(할리를 향해) 마스카라 번졌네. 화장 고치고 올래요?', 애비게일의 '사내새끼가 어딜 감히 여자를 놀려요?' 


영화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워 18세기 영국 궁전의 고증을 완벽히 해냈다. 궁전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복장은 물론, 궁전 내의 공간과 가구들에서 전혀 이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어떨 땐 그 완벽함이 인물들을 집어삼킬 듯, 즉 인물들이 공간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권력과 사랑을 가지고 사투를 벌이는 여성들, 남성들을 앞도하는 절대권력을 향한 그들만의 인생을 건 치열함은 그러나 궁전이라는 한 나라의 한 세계의 역사 일부일 뿐이다. 이 나라와 이 세계가 그들로 인해 돌아가고 그들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을 것 같지만, 누구든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고 대체할 것이다. 역사를 움직인 게 아니라 역사가 움직인 일부분으로 남을 것이다. 

Posted by singenv
궁전, 권력,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불편, 사랑, 여성, 역사, 요르고스 란티모스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권력 투쟁 와중 계약과 모험, 그 사이의 백성들의 운명은? <킹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19. 2. 4. 08:00
728x90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시즌 1>


국내 최초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시즌 1 포스터. ⓒ넷플릭스



국내 최초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기억될 <킹덤 시즌 1>(이하 "킹덤", 킹덤 시즌 1이 선보이기도 전에 시즌 2 제작이 확정되었다.), 지난 1월 25일 전 세계에 선보이기 한참 전부터 기대가 만발했던 작품이다. 영화는 연출, 드라마는 대본이 작품을 좌지우지한다고 할 만큼 드라마에서 작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한데, 다름 아닌 김은희 작가가 아닌가. 


그녀는 내놓는 작품마다 시청률 이상의 화제를 일으켰는데, <싸인> <유령> <씨그널> 등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전문적 소재들을 서스펜스 충만하고 짜임새 있게 선보이는 와중에도 사회정치적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해왔다. 


김은희 작가는 지난 2014년 웹툰 <신의 나라>로 만화 스토리 작가 데뷔를 하였는데, 다름 아닌 <킹덤>의 원작으로 그녀의 오랜 숙원이었던 조선의 좀비 즉 과거 시대 배경과 현대 소재의 만남을 구체화시킨 작품이었다. 하지만 잔인하디 잔인한 작품의 특색상 국내에선 드라마로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 미뤄졌던 것이다. 넷플릭스를 만나 숙원을 풀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끝까지 간다> <터널>로 충무로를 대표하는 감독이 된 김성훈 감독이 연출을 맡아 기대치를 최대치로 올렸다. 그는 맡은 영화에서 연출뿐만 아니라 각본도 도맡아 해왔는데, 이번엔 김은희 작가에게 각본을 도맡기고 연출만 했으니 그 시너지는 한도 끝도 없다 하겠다. 


왕가 내부 권력 투쟁과 좀비가 된 굶주린 민초


드라마 <킹덤> 시즌 1의 한 장면. ⓒ넷플릭스



양란을 거친 3년 후 조선, 왕이 붕어하셨다는 흉흉한 소문이 돈다. 하지만 영의정 조학주(류승룡 분)와 그의 딸이자 중전 계비 조씨만 왕을 알현할 수 있을 뿐 세자 이창(주지훈 분)조차 불가능하다. 이에 이창은 이상함과 위협을 느끼고 호위무사 무영(김상호 분)과 함께 동래로 향한다. 왕을 알현했던 전 어의 출신 이승희 의원을 찾아 진위여부를 알기 위해서이다. 


한편, 이 의원은 왕을 알현했다가 왕에게 물려 죽은(?) 제자를 데리고 동래 지율헌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의녀 서비(배두나 분)는 생사초를 캐다가 돌아와서는 사람들이 고기를 먹고 있는 생소한 모습을 발견하는데 영신이 사슴을 잡아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곧 그 고기가 다름 아닌 왕에게 물려 죽은 이승희 의원의 제자였다는 게 밝혀지고, 충격과 공포와 분노를 넘어 곧 고기를 먹은 모든 이들이 죽어 다시 살아나 괴물이 되는 광경을 목격한다. 


괴질 역병이라고 하지만 실상 좀비인 이 괴물들의 탄생 원흉은 영신에게 있겠지만, 실상 좀비의 시작은 왕인데 죽은 왕을 되살리려는 조학주의 계략에 따라 왕에게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생사초를 먹인 결과였다. 계비 조씨가 임신한 상황에서, 세자 이창이 아닌 반드시 태어나야 할 조학주의 손자가 세자의 자리에 앉을 때까지 왕은 죽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씨 위에 조씨 있다'는 말처럼 조선을 송두리째 점령하다시피 한 해원 조씨 수장 조학주의 계략, 힘없이 허울 뿐인 세자 자리에 있다가 계비 조씨의 아들이 태어나면 역적으로 몰려 죽을 운명인 이창의 모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사람을 먹고 괴물이 되어 오직 먹는 것만 탐하게 된 백성들의 무서움과 나약함과 슬픔. 이창은 나라를 되찾을 수 있을지, 조학주는 나라를 빼앗을 수 있을지, 그 사이에서 백성들의 운명은?


지금 바로 여기를 향하는, <킹덤>의 사회정치적 메시지


드라마 <킹덤> 시즌 1의 한 장면. ⓒ넷플릭스



<킹덤>은 과거의 실제적 이야기를 과거의 배경으로 보여주며 현재의 실제적 이야기를 알레고리화하여 배치함으로써 여러 이야깃거리와 볼 거리 그리고 해석까지 가능하게 만든 수작이다. 비록 시즌 1로써 보여줄 수 있는 한계들, 이를 테면 시즌 2를 위한 사전 소개와 복선 정도로 그친 점과 아직 확고하게 갈피와 방향을 정하지 못한 듯한 연기들이 문제점으로 암약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비록 양란을 거치며 무능을 만천하에 떨친 왕가에 반(反)해 강력한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우지만 명백히 조선이라는 나라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왕과 세자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해원 조씨는 지난 정권을 한 손에 쥐고 흔들었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연상케 하고, 양란을 거치며 굶주림에 죽은 사람까지 먹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백성 민초들의 모습은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네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게 한다. 


김은희 작가 특유의 서스펜스가 '좀비물'이라는 소재를 만나 완벽에 가깝게 구현되는 가운데, 역시 그녀 특유의 처절하게 암담한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보여주어 더욱 부각시켜 놓은 다음 인정사정 없이 강펀치를 날려 통쾌함 정도는 주고는 소소하게나마 변하는 와중에 변함없는 지금을 보여주는 씁쓸함 남는 전개 방식 또한 100% 구현되었다. <킹덤>의 사회정치적 메시지는 지금 바로 여기를 향한다. 


이 드라마에서의 좀비가,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그 어떤 좀비보다도 처절하게 다가오고 슬프게조차 느껴지는 게 바로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 어떤 좀비물에서든 좀비는 타자가 아닌 타자화된 자아지만 그래서 좀비를 대할 때 개인적 대상화로 인한 슬픔과 절망을 느끼지만, <킹덤>에서 좀비를 대할 때는 그 결이 다르다. 좀비의 시작은 왕이지만 왕을 그렇게 만든 건 왕 위에 군림하는 권력이고, 그 절망적 수혜자는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헐벗고 굶주린 민초인 것이다. 완벽히 타자화된 자아이자만, 개인적 아닌 집단사회적 대상화이다. 


'킹덤', 그들은 주체가 아닌 객체에 불과하다


제목은 왜 '킹덤(kingdom)'일까. 특정한 사람이 절대적이고 독점적인 지위를 갖는 왕국 말이다. 왕국에서 '왕'은 스스로에겐 영원불변의 절대적 주체일 것이다.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권력. 하지만 일반 백성에겐 아이러니하게도 객체에 불과하다. 그들에겐 왕은 왕일 뿐, 이씨의 누구이건 조씨의 누구이건 사실 큰 상관도 관심도 없다. 그저 나라를 잘 다스리길 바랄 뿐, 그래서 굶주리거나 목숨에 위협이 가지 않길 원할 뿐. 


이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킹덤도 주체 아닌 객체일 것이다. 왕국이기 때문에 절대적이고 독점적인 지위를 갖는 건 당연할 일, 하지만 그 지위를 이용해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자신들의 위신만 챙기는 건 당연한 게 아니다. 그건 한갖 객체로서의 왕국이, 왕이, 왕족이, 귀족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부 권력 투쟁이 필수불가결한 일이라고 해서, 그것으로 인해 외부가 피해를 봐선 안 되는 것이다. 백성들이 굶주리는 킹덤은 더 이상 킹덤이 아니라고 해도 지극히 맞는 말이 된다. 


하지만, 좀비=민초의 방정식을 너무 지극히 받아들이고 보여주고 답습하면 그 자체로 이 드라마가 전달하려는 정치사회적 메시지에 수단으로서만 매몰될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다. 아니, 다분해 보인다. 더군다나 적어도 이 드라마에선 좀비가 주체가 될 요량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좀비가 그저 민초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메타적 객체로 수단화된다면, 민초가 그저 '왕국'에서의 내부 권력 투쟁의 명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전 정권이 민중 혁명에 의해 물러나고 민중의 목소리를 받든다는 명분으로 이 자리에 오른 현 정권, 적폐청산과 평화와 경제의 삼위일체를 실현하려고 결초보은의 자세로 나아가야 하는 마당에 여러 목소리들이 들린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주체가 아니다. 객체이다. 왕국 아닌 민주주의 사회에서 100%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다. 혹여 국민의 목소리를 수단 삼아 그저 명분으로 치부해버린다면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짓이다. <킹덤> 시즌 2를 기다리며, 결을 같이 하여 우리가 세운 지금 이 정권이 나아가야 할 길을 함께 모색해봐야 할 것이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굶주림, 권력, 김은희, 넷플릭스, 민초, 좀비, 킹덤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거짓은 누가 왜 만들어내고, 대중은 어떻게 거짓에 속는가." <제0호>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8. 11. 12. 12:45
728x90



[서평]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 <제0호>


움베르토 에코의 마지막 소설 <제0호> 표지 ⓒ열린책들



움베르토 에코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대학교 1학년 때, 그러니까 15년 전에 그의 데뷔작이기도 한 소설 <장미의 이름>을 열렬히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도 주로 등하교(출퇴근)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책을 읽었더랬는데, 그 유명한 <장미의 이름> 서문을 읽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이후 본격적인 사건에 돌입했을 때는 그 어렵고 어려운 지식의 향연 속에서도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지만, 에코의 소설을 처음 접하게 되는 서문은 충격적이었다.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이 서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점이다. 지금에야 이 서문이 가짜를 진짜처럼 쓴 '너스레' 떠는 기법이라는 걸 알지만 말이다. 


그의 소설에는 수많은 진짜 같은 가짜들이 있다. 중세를 기반으로 근현대까지 총망라 하는 각종 음모론이 넘쳐 난다. '소설'인 걸 알지만, '가짜'인 걸 알지만, '창조'인 걸 알지만, 그걸 머리로만 인지하게 될 뿐이다. 믿을 수 없게 장대하고 매혹적이지만 믿을 수 없는, 그렇지만 믿게 되는 이야기 끝에 사실이 아님을 밝히는 <바우돌리노>(열린책들)는 그 절정이다. 에코는 사실 아닌 것을 통해 진실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1980년에 <장미의 이름>(열린책들)으로 데뷔해서 2015년 <제0호>(열린책들)를 마지막으로 내놓은 움베르토 에코, <제0호>는 그의 소설 중 가장 가볍다고 할 만하지만 평생을 두고 공부하고 고민했던 질문을 압축적으로 던진다. "거짓은 누가 왜 만들어내고, 대중은 어떻게 거짓에 속는가."


뉴스를 '창조'하는 언론의 작태


1992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신생 신문사. 실패한 글쟁이이자 대필 전문가 콜론나가 시메이 주필의 초청에 합류한다. 그는 겉으로는 시메이 다음 가는 데스크이지만, 실상 시메이의 이름으로 출간될 책의 대필 작가이다. 끝내 창간되지 않을 신문 <도마니>의 창간 준비 1년의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도마니>에 콜론나와 함께 합류한 기자들은 6명이다. 이런저런 언론사에서 이런저런 일을 도맡아 해왔던 이들로 창간 준비를 함께 하게 되었다. 이 사업에 출자하는 발행인은 비메르카테라는 기업인이다. 호텔, 요양원, TV채널, 간행물 등을 소유했다. 그는 <도마니>를 통해 큰 신문을 이끄는 엘리트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결국 그들의 성역에 들어가고자 한다. 


시메이와 콜론나를 중심으로 <도마니> 창간 예비 판 '제0호'를 만들 준비에 들어간다. 편집 회의에서 그들이 하는 얘기들은 가관이다. 저널리즘의 본보기라고 하지만, 실상은 썩은 생선 냄새 나는 뉴스 짜깁기일 뿐이다. 황색언론의 표본,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원시적 본능을 자극하는 선정적 기사들의 촘촘하고도 지능적인 나열. 


시메이의 자칭 '멋진' 표현이 한마디로 규정한다. '우리는 뉴스를 만들어야 하고, 행간에서 뉴스가 튀어나오게 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뉴스가 나오는 게 아닌, 거기에 허구와 거짓을 곁들여 뉴스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 소설에서 기억해야 할 건 거의 없다


<제0호>는 움베르토 에코 소설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감을 자랑(?)한다. 본인이 밝힌대로 그의 이전 소설들이 교향곡이라면 이 마지막 소설은 재즈에 가까운 것이다. 소설을 읽는 게 아닌 소설이 읽히는 거라고 할까. 또한 그의 이전 소설들이 가히 찬란하게 어려운 문체를 내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이 소설은 건조한 현대 저널리스트의 그것을 내보인다. 


이 소설이 잘 읽히는 진짜 이유는 소설의 주제, 그리고 에코가 평생 천착한 주제와 맞닿아 있다. '제0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창조해낸 뉴스들에 많은 공력을 쏟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내용을 기억할 필요도 없고 어떤 것들은 기억하지 말아야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소설에서 기억해야 할 건 거의 없다. 


이 소설은 그런 면에서 기억하지 말아야 할 만큼 딱 기억해야 한다.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거짓을 만들어낸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못 본 체하고 지나가며 자세히는커녕 겉핥기 식으로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 터무니 없는 음모론이라고 치부하면 끝나는 것이다. 에코는 천하무적 혈혈단신으로 그 음모론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본인 그 누구보다 수많은 음모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히 꿰고는, 다각도로 직접 음모론를 가지치고 또 직접 가지를 잘라낸다. 그 과정을 여과없이 소설에 녹여내어 대중들로 하여금 속지 않게 하는 것이다. 에코는 평생 고민하고 천착하고 행동에 옮겨왔다. <제0호>는 가장 무게를 덜 잡으며 가장 지식을 덜 드러내면서도 그의 연구를 효과적으로 전달해냈다. 


언론은, 의무를 다할 때만 주체가 되어야 한다


언론은 그 강함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 힘을 좋은 쪽으로 써서 정의를 실현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고, 좋지 않은 쪽으로 써서 권력의 도구 또는 그 자체로 권력이 될 수도 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완벽한 빛의 수호자, 완벽한 어둠의 수호자가 되는 것이다. 


지난 2015년 개봉해 엄청난 호평 속 흥행을 선보였던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국일보 이강희 주필이 참으로 '주옥 같은' 대사를 읊었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뭐하러 개, 돼지들한테 신경쓰고 계십니까? 그들은 술자리, 인터넷에서 씹어댈 안줏거리가 필요한 겁니다. 어차피 그들이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닙니다. 고민하고 싶은 이에게 고민거리를, 울고 싶은 이에게 울거리를, 욕하고 싶어하는 이에게 욕할 거리를 주면 됩니다."


<제0호>에서는 제0호 시메이 주필이 비슷한 대사를 읊는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말들을 모아서, 전할 만한 사람에게 전해 주는 데 비상한 재주가 있어 보여서요." "뉴스들이 신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문이 뉴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뉴스거리가 없는 사건에서, 또는 사람들이 뉴스의 가치를 보지 못하는 사건에서 뉴스를 만들어 내게 될 것입니다."


언론은 주체가 되어야 한다. 다만,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진실을 알릴 의무를 다할 때만이다. 권력의 압력으로부터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때만이다. 언론이 그 자체로 권력이 될 때나 권력의 하수인이 되었을 때도 언론은 주체가 되어야 한다. 언론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기에 반드시 스스로 내외부의 자정 작용으로 바꿔야만 한다.


제0호 - 10점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열린책들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거짓, 권력, 뉴스, 언론, 움베르토 에코, 음모론, 제0호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권력을 사유화해 사익을 챙긴 MB의 진면목 <나의 MB재산답사기>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8. 4. 23. 08:00
728x90



[서평] <나의 MB재산답사기>




지난해 10월경부터 전국민을 강타한 유행어가 있다. "다스는 누구겁니까?" 2017년 10월 13일, 인기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 이스'에 주진우 기자가 나와 "이제부터 '다스는 누구 거예요?'를 계속 물어봐 달라"라며 요청한 후로 정녕 인터넷을 도배되다시피 한 이 어구는 이제는 누구나 알듯이 이명박 전 대통령(MB)을 겨냥한 말이다. 


2016년 10월 말부터 시작된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퇴진과 최순실 등 국정농단 세력 축출에 큰 역할을 한 국민의 시선은 '이명박근혜'의 한 축인 MB로 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 박근혜보다 MB로의 100% 가까운 확실한 의혹에 가득찬 시선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를 향해 있었다. 


그 유명한 '나꼼수' 일원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MB의 갖가지 의혹에 관해 수없이 많은, 그리고 더없이 촘촘하고 꼼꼼한 증거들을 포착해 소개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우린 도곡동 땅, 다스, BBK로 이어지는 MB의 실소유주 논란을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략' 알고 있기 때문에, '권력을 사유화해 사익을 챙긴' MB의 진면목을 잘 모른다. 그저 역대 대통령들도 다 각각의 잘못이 있듯이 MB도 잘못을 했구나 하는 정도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MB 저격수'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과 베테랑 탐사보도 전문 기자 구영식의 <나의 MB재산답사기>(비아북)는 맞춤 제격인 책이다. 그가 '돈'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그 장황한 정보를 정확하게 취득해보자.


MB 재산을 추적하고 답사하는 이유


MB의 재산을 추적하고 답사하기 전에 우선 그 의미부터 확립하는 게 좋겠다. 저자는 말한다. 군사정권이 종식된 후 우리 사회가 점점 더 투명해졌는데 MB가 집권하고는 다시금 부정과 부패, 비리, 탄압과 속임수로 우리 사회를 물들게 했다고 말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퇴행시킨 죄인이라는 것이다. 또한 세금과 공기업 자금을 사유화 하고, 권력을 남용해 이를 착복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즉, MB 재산을 추적하는 건 그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기보다 MB의 은닉 재산 의혹을 추적해서 진상을 밝히고 법적 처벌을 받도록 해 그 어떤 권력자라도 그 권력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면 반드시 처벌을 받는다는 사례를 남기는 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 부여 없이 MB의 재산을 추적 답사하는 건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라 하겠다. 


최초에 도곡동 땅이 있었다고 한다. 1985년 MB의 처남 김재정과 큰형 이상은 명의로 소유권 등록을 한 땅을 말하는데, 당시 현대건설 사장으로 재직 중이던 MB가 회사 안팎의 보는 눈을 의식하여 차명으로 구입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 MB의 '차명 인생'을 살게 한 잘못 끼운 첫 단추라 한다. 


이 도곡동 땅은 이후 대규모 차익을 남기면서 263억 원에 팔리고 그중 190억 원이 다스로 들어갔으며 그 돈 190억 원이 다시 BBK로 들어가 옵셔널벤처스의 주가조작 자금원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이 주가조작 사건은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의 가정을 파탄시키고 자살로 몰고 간 대형 범죄 사건이다. 


MB의 재산을 위한 나라


다스는 1987년 대부기공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최초에는 김재정 명의로, 곧이어 이상은과 친구 김창대가 지분 일부를 인수 양도해 세 명이서 한 명이 과반을 지니지 않게 구도가 짜여졌다. 저자는 다스 설립 자금이 다름 아닌 도곡동 땅 매매대금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결정적으로 다스에 많은 돈을 투입한 김재정은 현대 건설을 퇴사한 후 MB의 재산 관리와 집사 역할을 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수입이 없었다. 


2010년 김재정이 예상치 못하게 사망한 후 거의 즉시 공교롭게도 경력이 일천한 MB의 장남 이시형이 해외영업팀 과장으로 입사한다. 이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2017년에는 회계 재무책임자의 자리까지 오른다. 저자는 이런 일련의 모습이 MB가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한편, BBK는 1999년 MB가 김경준과 함께 직접 세운 회사이다. 다스는 BBK에 190억 원을 투자했는데 회사 등록 실패로 인해 100% 돌려받아야 했을 테지만 최초에는 50억 원밖에 돌려받지 못했다. 김경준은 BBK와 다스가 모두 MB의 것으로 190억 원은 투자금이 아니라 자본금으로 쓰였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결국 주가조작 사건으로 김경준은 실형을 살았지만 MB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고 나중에는 140억 원까지 돌려받아 내었다. 


사실 대선 직전 2007년 말 BBK 사건 수사와 대선 직후 2008년 초의 정호영 특검으로 MB를 향한 검찰의 칼날이 꽤나 날카로운 듯 보인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 칼날은 무디기 짝이 없었고 MB에게 완벽한 면죄부까지 주고 말았다. 그야말로 지난 세월은 MB의 재산의, 재산에 의한, 재산을 위한 나라가 아니고 무엇이었나 생각해본다. 


<나의 MB재산답사기>는 MB가 은닉한 재산을 추적하는 데, 아니 추적해놓은 길을 탐사하는 데 완벽한 책이다. 비록 MB가 현재 구속 당한 상태이지만,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의혹'이고 '추정'일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보다 중요한 건 그 의혹과 추정을 '확실'로 바꾸는 '확신'이 이 책이, 이 저자가 나아간 추적과 우리가 따라가는 답사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일 게다. 다시 한 번 대다수 국민(일 거라 믿는다)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하루 빨리 오기를.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Posted by singenv
bbk, 권력, 나의 MB재산답사기, 다스, 도곡동 땅, 이명박

트랙백

※ 스팸 트랙백 차단중 ...{ ?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블로그 이미지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by singenv

공지사항

  • 댓글에 대한 공지
  • [책으로 책하다 도서 목록]
  • <오마이뉴스> 서평/리뷰 송고 방침
  • 모든 이미지는 인용 목적으로 사용⋯

    최근...

  • 포스트
  • 댓글
  • 트랙백
  • '삶'이라는 거대한 벽, 풀리지 않⋯
  • 수많은 마약 중독자들을 살린 그,⋯
  • 홀로 이편에서 슬픔의 나락과 절망⋯
  •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두 거대 인맥⋯
  • 역사에 길이 남을 연쇄 살인마 '요⋯
  • 더 보기
  • 감사합니다~ 시즌3를 기대하고 있⋯
    singenv ㆍ 2020
  • 재미있게 읽었어요 지금 시즌2 보⋯
    개구리 ㆍ 2020
  • 감사합니다! 맞구독합니다~
    singenv ㆍ 2020
  • 구독과 하트 누르고 갑니다 맞구독⋯
    아마추어 리뷰어 ㆍ 2020
  •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래 전 서평⋯
    singenv ㆍ 2020

태그

  • 연기
  • 청춘
  • 아포리즘
  • 죽음
  • 넷플릭스
  • 관계
  • 영화
  • 성장
  • 책
  • 여성
  • 재미
  • 만화
  • 제2차 세계대전
  • 천재
  • 중국
  • 일본
  • 책으로 책하다
  • 미국
  • 희망
  • 욕망
  • 삶
  • 피해자
  • 역사
  • 캐릭터
  • 전쟁
  • 소설
  • 현실
  • 가족
  • 인간
  • 사랑

글 보관함


  • 2021/01
    (9)

  • 2020/12
    (13)

  • 2020/11
    (11)
«   2021/01   »
일 월 화 수 목 금 토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링크

카테고리

다양한 시선 (1412)N
신작 열전 (603)N
신작 도서 (303)
신작 영화 (300) N
넷플릭스 오리지널 (132)N
모모 큐레이터'S PICK (36)
지나간 책 다시읽기 (108)
한국 대표 소설 읽기 (11)
오래된 리뷰 (202)
생각하다 (231)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 연재 (5)
그대 그리고 나 (17)
서양 음악 사조 (8)
인권 선언 문서 (4)
조선경국전 (5)
중국 영화사 개괄 (5)
출판계 살리기 프로젝트 (3)
카프카의 편지 (6)
팡세 다시읽기 (14)
명상록 다시읽기 (12)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46)
감독과 배우 콤비 (10)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6)
궁극의 리스트 (8)
제9의 예술, 만화 (14)
독립영화의 힘 (4)
생생 스포츠 (10)
내맘대로 신작 수다 (17)
첫 문장-아포리즘 (8)

카운터

Total
2,072,010
Today
33
Yesterday
151
방명록 : 관리자 : 글쓰기
singenv's Blog is powered by daumkakao
Skin info material T Mark3 by 뭐하라
favicon

책으로 책하다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 태그
  • 링크 추가
  • 방명록

관리자 메뉴

  • 관리자 모드
  • 글쓰기
  • 다양한 시선 (1412) N
    • 신작 열전 (603) N
      • 신작 도서 (303)
      • 신작 영화 (300) N
    • 넷플릭스 오리지널 (132) N
    • 모모 큐레이터'S PICK (36)
    • 지나간 책 다시읽기 (108)
      • 한국 대표 소설 읽기 (11)
    • 오래된 리뷰 (202)
    • 생각하다 (231)
      • 황창연 신부의 삶 껴안기 연재 (5)
      • 그대 그리고 나 (17)
      • 서양 음악 사조 (8)
      • 인권 선언 문서 (4)
      • 조선경국전 (5)
      • 중국 영화사 개괄 (5)
      • 출판계 살리기 프로젝트 (3)
      • 카프카의 편지 (6)
      • 팡세 다시읽기 (14)
      • 명상록 다시읽기 (12)
    •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46)
      • 감독과 배우 콤비 (10)
      •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6)
      • 궁극의 리스트 (8)
    • 제9의 예술, 만화 (14)
    • 독립영화의 힘 (4)
    • 생생 스포츠 (10)
    • 내맘대로 신작 수다 (17)
    • 첫 문장-아포리즘 (8)

카테고리

PC화면 보기 티스토리 Daum

티스토리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