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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감성'에 해당되는 글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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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 딸을 냉동 보존하기로 한 어느 과학자 가족의 사연 <희망을 얼리다> 2020.10.21
  • '그때 그 시절'의 남녀가 아닌, 그때 그 시절의 '남녀' <유열의 음악앨범> 2019.10.07
  • 왜 공주가 도망쳐야 하나,잘못한 게 없는데... <한공주> 2017.01.25
  • <원미동 시인> 여성 특유의 감성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그리다(2) 2015.05.22
  • <수업시간 그녀> 단숨에 읽히는 젊은 날의 기억(12) 2013.12.23
  • <집으로 가는 길> 통속적이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18) 2013.12.16

어린 딸을 냉동 보존하기로 한 어느 과학자 가족의 사연 <희망을 얼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0. 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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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희망을 얼리다: 환생을 향하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희망을 얼리다> 포스터. ⓒ넷플릭스



불과 얼마전인 2020년 5월, 국내 첫 '냉동인간'이 나왔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본사를 둔 '크리오러스'와 국내에 냉동인간 서비스를 론칭한 '크리오아시아'라는 업체를 통해 체세포 보존 형태가 아닌 전신 냉동 보존 형태였다. 해당자는 경기도에 사는 80대 여성으로, 숨진 직후 영하 20도로 냉동해 러시아 모스크바로 급파했다고 한다. 국내에는 아직 냉동인간 보존에 대한 법적·행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러시아로 보내 그곳에서 전신 냉동 보존 처리가 시행되었다. 1억 원 이상의 돈이 들었다고 한다. 


5년 전인 2015년, 태국의 어느 과학자 가족이 크나큰 결단을 내린다. 정확히는 가족의 가장 사하똔 박사의 결단으로, 뇌암으로 죽은 2살 배기 딸 아인즈를 전신 냉동 보존하기로 한 것이다. 태국 굴지의 대학인 쭐라롱꼰 대학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사하똔 박사는, 과학자의 시선과 딸을 보낼 수 없는 마음과 진보하는 과학의 미래를 믿으며 가족을 설득하고 주위의 반대를 무릎쓰며 전 세계 언론의 집중포화를 견딘 채 진행한다. 아시아에선 최초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어린 나이의 사례라고 한다. 


아인즈를 전신 냉동 보존하기로 한 태국 과학자 가족의 이야기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희망을 얼리다: 환생을 향하여>로 만들어졌다. 아시아 최초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어린 나이의 사례일 뿐만 아니라 불교가 약 95%를 차지하는 절대 불교 국가인 태국에서 행한 냉동인간 이야기이기 때문에 대대적으로 이슈화되었을 것이고, 다큐멘터리까지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채 한시간 반도 안 되는 러닝타임으로 짧다면 짧을 작품은, 굉장히 과학적인 동시에 굉장히 뭉클하고 생각도 많이 하게 한다. 


낯설지만은 않은 '냉동인간'


냉동인간은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수많은 매체에서, 수십 년 전부터 익히 봐 왔던 설정이기 때문이다. 최근 기억나는 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대표 캐릭터 '캡틴 아메리카'로 그 자신이 빙하에 갇혔다가 살아돌아왔고 빌런 '윈터 솔저'가 70여 년간 냉동과 해동을 거치며 암살자로 쓰였다. 그런가 하면, 1979년 시작된 <에일리언> 시리즈에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우주 여행 시 승무원들은 냉동수면이 필수적이다. 


실제로 넘어와, 세계 최초의 냉동인간은 자그마치 55여 년 전인 1967년 암으로 숨진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이자 생물냉동학재단 설립자 제임스 베드포드였다. 그의 인체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알코르 생명연장재단에 보관되어 있다. '알코르'는 1972년 설립된 재단으로 <희망을 얼리다>에서 사하똔 박사가 딸 아인즈의 전신 냉동 보존을 맡긴 곳이기도 하다. 


현재 기술에서 전신 냉동 보존은,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말 그대로 전신을 있는 그대로 냉동 보존하는 것이 아니다. 장기를 모두 제거하고 피를 모두 뽑아낸 뒤 부동액으로 채워넣은 방법이다. 하여, 지금으로선 보존은 할지언정 되살릴 방법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먼 미래에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터, 사하똔 박사가 거는 기대는 지금이 아닌 미래에 있다. 과학은 계속 진보할 것이라는 믿음 아래. 


'과학자'의 시선으로 봐 주었으면...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은 계속 변화해 왔다. 나라와 부족의 문화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우리나라만 해도 묘지 매장이 당연했지만, 화장 후 재를 뿌리기도 하고 이제는 봉안당에 안치시키는 게 익숙해졌다. 작품을 보며, 머지 않아 냉동 보존이 시신을 모시는 주요 방법의 하나라 자리잡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으로선 2억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먼훗날 언젠가 다시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투자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할 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본인 또한 '과학자'의 시선으로 생각하고 보게 된다고 하고, 본인의 이야기를 '과학자' 또는 '과학자 가족'의 시선으로 봐 주었으면 한다는 사하똔 박사와 가족들. 감정을 싹 거두고 이성적으로만 다가가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냉동인간 보존. 그렇지만, 어떻게 감정 없이 이성적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사하똔 박사의 아내를 보고 있자면 말이다. 


그녀는 말한다, 냉동인간 보존술에 대해 지식이 전무하더라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남편의 과학자적인 시선과 과학에의 믿음(물론 그 또한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있을 것이다)과 달리 아내가 냉동인간 보존을 대하는 것에는 아이를 한없이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이성과 감성의 슬프고도 고귀한 조화이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영화를 보면 빌런으로서의 '미친 과학자'가 종종 나온다. 엄청난 지식과 빙퉁그러진 신념 그리고 가슴 아픈 사연이 뒤섞여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힘을 지니게 된 과학자 말이다. 이 작품에서 사하똔 박사의 첫째 아들 매트릭스가 아빠를 '미친 과학자'라고 칭하는 게 그리 위화감이 들지 않는 이유다. 이를테면, 딸의 암세포를 가져와 배양해 치료약을 만들려고 하는 행동 말이다. 과학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과 딸을 향한 끔찍한 사랑이 빚어 낸, 출중한 실력을 지닌 과학자의 미친 이야기. 다행이도(?), 그는 거기서 멈췄다. 


인생에서 그만큼의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는 매트릭스, 즉 오랜 시간 혼자였다가 생긴 여동생 아인즈를 향한 사랑이 그녀의 죽음으로 과학적 동기가 되어 아빠를 뒤이어 과학자가 되기로 했다고 한다. 살아생전 아인즈를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과학적이지만 한편 종교적이면서도 미신적인 믿음. 그야말로 아빠의 이성과 엄마의 감성을 조화롭게 이어받았다. 


신기하다, 불교는 내세를 믿을진대 이들 과학자 가족 또한 내세를 믿는 불교신자이다. 즉,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육체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거나 불필요한 게 아닌가? 그들에게 집중포화식으로 쏟아진 질문, '아인즈의 영혼이 쉴 수 없게 막는 것 아니냐' '아인즈의 영혼을 가둔 게 아니냐'에 어떻게 답할 수 있겠는가. 사하똔 박사는 아이의 영혼을 가둔 게 아니라고, 아이를 보낼 수 없었을 뿐이라고, 아이에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답한다. 맞는 답인지, 올바른 답인지 알 순 없다, 판단할 수도 없다. 


'죽음'을 거스를 수 없고 거슬러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자 말로 당사자에겐 씨알도 안 먹힐 공산이 크다. 당사자와 관계자에게 죽음은 슬픔과 아픔의 끝이다. 죽음과 멀리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지 않을까. 작품 속 아인즈처럼 세상을 제대로 살아보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했다면 말이다. 사하똔 박사와 가족들을 윤리적·종교적으로 비난할 순 있을지언정, 개인적으로 판단할 수 없거니와 인간적으로 위로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그라면? 아인즈를 냉동인간 보존하지 않을 거라 장담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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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과학자, 냉동 보존, 냉동인간, 부모, 사랑, 알코르, 이성, 죽음, 태국, 희망을 얼리다: 환생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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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의 남녀가 아닌, 그때 그 시절의 '남녀' <유열의 음악앨범>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9. 10.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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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유열의 음악앨범>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포스터. ⓒCGV아트하우스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라인업이 발표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구로사와 기요시, 자비에 돌란, 봉준호, 켄 로치 등 거장의 최신 작품들을 비롯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레미제라블>,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나는 집에 있었지만>도 기대가 되고 <결혼 이야기> <더 킹: 헨리 5세>를 비롯한 넷플릭스 작품들도 기대를 모은다. 와중에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이해 많은 한국영화들이 상영된다. 


알 만한 한국영화들은 주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를 통해 상영되는데, <엑시트> <극한직업> <미성년> <강변호텔> <유열의 음악앨범> 등이 눈에 띈다. 물론 우리가 이 영화제에서 보다 눈여겨봐야 할 한국영화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영화들일 것이다. 한국영화의 미래를 이끌고 책임질 영화들 말이다. 다만 이번에 살펴보고 들여다볼 영화는 <유열의 음악앨범>이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은 1994년에 시작해 2007년까지 계속된 KBS cool FM 음악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 '유열의 음악앨범'을 모티브로 한 감성멜로이다. 레트로(복고풍)를 한껏 자극하는 감성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거시적 시대상과 미시적 개인상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차리리 <응답하라> 시리즈를 다시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수와 현우의 만남과 이별


1994년 10월 1일 KBS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앨범'이 '유열의 음악앨범'으로 새롭게 시작된다. 가족 같은 종업원 언니 은자와 함께 엄마가 남겨준 빵집을 꾸려가는 21살 미수, 우연히 찾아왔다가 곧 아르바이트로 함께 하게 되는 현우. 둘은 설레는 감정을 갖고 기억에 남을 만한 나날들을 보내지만, 어느 날 현우가 친구들과 함께 떠나고는 돌아오지 않는다. 


3년이 지난 1997년, 미수는 빵집 문을 닫고 인쇄공장 사무직으로 취직해 꿈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 한편 현우도 먼 길을 돌아왔지만 이삿짐 센터에서 일하며 다시 시작하려 하고 있다. 그들은 우연히 문 닫은 빵집 앞에서 재회한다. 여전히 설레는 감정을 공유하고 있던 미수와 현우, 하지만 다음 날 현우는 군대에 입대하고 우연 아닌 필연의 재회를 위해 미수가 연락처를 전하지만 실수로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는다. 


현우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재회하는 미수와 현우, 시간은 어느덧 흐르고 흘러 2000년대가 되었다. 재회가 계속되는 그들의 만남의 시간은 또 얼마나 짧을 것이며, 이별이 계속되는 그들의 헤어짐의 시간은 또 얼마나 길 것인지. 부디 헤어지지 말고 좋은 만남을 계속 이어나갔으면 하지만, 운명의 장난은 그들을 또 떼어놓을 것만 같다. 


감성과 스토리


<유열의 음악앨범>은 <해피엔드> <은교> <4등> 등으로 이름 높은 정지우 감독과 김고은, 정해인 투톱 주연으로 많은 기대를 받고 '유열의 음악앨범'으로 대표되는 1990~2000년대 레트로 감성으로 많이 회자되었던 것에 비해, 많은 인기를 끌진 못했다. 비평적으론 상당한 호평을 받았지만, 대중에겐 외면받아 손익분기점을 한참 못 미친 흥행성적을 기록한 것이다. 왜 이런 간극이 있었을까?


영화는 주지했다시피 3년 차로 만남과 이별을 계속하는 두 남녀가 이야기의 주인공이기에, 전체를 관통하는 큰 줄기가 각각의 다른 스토리들을 이어주며 지탱해줄 수는 있을지언정 정작 각각의 짧은 스토리들은 자체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성인 것이다. 하여, 영화를 감성과 전체적 감각으로 대한 이들은 만족했을 테고 스토리와 디테일한 감정으로 대한 이들은 불만족했을 테다. 


분명 영화의 전체를 훑는 감성은 훌륭했다. 지금은 보기 힘들거나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그때 그 시절을 상징하는 것들이 너무 튀지 않고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는 듯했다. 특이점을 갖는 감성에 통속적인 대중가요가 흐르며 '누구나'의 멜로가 되었다. 무난한 걸 찾기 힘든 시대에 감히 도전장을 낸 무난한 감성멜로인 것이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문제는 지금 이 시대의 레트로 성향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이 영화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벌새>도 1994년을 그리지만 그때 그 시절을 훨씬 더 구체적으로 디테일하게 무엇보다 영화에 맞닿게 그려냈다. 반면 <유열의 음악앨범>은 적어도 그때 그 시절을 기대했던 이들에겐 와닿지 않았던 게 생각보다 많다. 심지어 주인공 두 남녀의 재회와 이별의 모습이, 그때 그 시절만의 어쩔 수 없는 점 때문이 아니라 우연으로 점철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인 것이다. 그때 그 시절만의 모습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건 전체적 감성을 받아들일 땐 장점으로 작용했지만, 구체적 스토리라인에선 단점으로 작용했다. 


'시대'의 남녀 아닌 시대의 '남녀'


우리는 살아가며 매시간, 매일, 매주, 매달, 매년마다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한다. 참으로 많은 애를 쓰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 시간들은 조금만 지나면 다 잊힌다. 기억에 선명히 남는 건 특별하거나 특이한 몇몇 순간들뿐이고 대부분은 추억이라는 이름 하에 뭉뚱그려서 남아 있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이라고 하는 청춘, 10대 20대 30대 말이다. 


영화는 74년생 두 남녀의 1994~2005년을 담았으니 20~30대겠고 2019년 현재로선 40대 중반이겠다. 그분들에게조차 이 영화는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의 이야기가 아닌 가장 힘든 시절의 이야기처럼 비춰질 요량이 크다 하겠다. 영화가 그 '시대'의 두 남녀가 아니라 그 시대의 '두 남녀'로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자의 삶도 힘들거니와 긴 이별 끝에 짧은 만남만을 계속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안타깝지만 한편 정지우 감독의 다음 멜로가 기다려진다. 차라리 이 영화에서 레트로를 걷고 그때 그 시절이 아닌 지금을 배경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것이다. 우연에 의한 재회와 이별이 계속되며 결국 그 모양새가 어쩔 수 없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거라면 말이다. 사랑에 절대 필연도 절대 우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과 진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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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남녀, 레트로, 멜로, 시대, 유열의 음악앨범, 정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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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주가 도망쳐야 하나,잘못한 게 없는데... <한공주>

오래된 리뷰 2017. 1.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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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한공주>


압도적일 게 없을 것 같은 연출로 그 어느 영화보다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었다. 영화가 갖는 소재도 소재이지만, 그 소재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무비꼴라주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어른들에게 둘러싸인 한 소녀, 꾹꾹 눌러왔던 말 한마디를 애써 웃음 띤 얼굴로 내뱉는다. 그런데 이내 그녀는 선생님과 전학 수속을 밟으러 다른 학교를 찾는다. 잘못한 게 없다는 그녀가 떠나는 것이다. 명백한 모순이 아닌가, 이 상황은. 무서워서 피하는 건가, 더러워서 피하는 건가. 아직까진 알 수 없다. 그녀의 앞날을 지켜보는 수밖에. 


그녀의 이름은 '한공주', 하필 공주다. 그녀의 시련은 전 인생에 걸쳐 있다. 부모님은 이혼해서 엄마는 다른 이와 살림을 차렸고 아빠는 일 때문에 몇 달에 한 번 볼까 말까이다. 그래도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그녀, 편의점 사장 아들, 딸과 친하게 지내며 의지도 되어준다. 이겨낼 수 있을 정도의 시련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전학을 가게 된 공주, 분위기가 전과는 완연히 다르다. 뭔가 얼이 빠진 느낌이랄까.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음악뿐인 듯하다. 음악 덕분에 친구도 생긴다 또 수영을 배우는 그녀, 이유가 살고 싶어질 때를 대비해서란다. 뭔가 그 사이에 크나큰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전 학교 담임 선생님 집에서 선생님의 엄마와 지내게 된 공주, 운영하는 마트 일도 도와주며 호감을 얻는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실날 같은 희망을 자신도 모르게 품게 된 공주, 하지만 학교로 찾아온 어른들로부터 도망치는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왜 도망쳐야 할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피해자가 도망치는 현실, 이게 현실이다


왜 공주가 도망쳐야 할까, 왜 피해자인 공주가 도망쳐야 하는 것일까, 왜 급기야 공주가 가해자처럼 되어버린 것일까.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무비꼴라주


지난 2014년 4월 17일, 세월호가 침몰된 지 하루 뒤에 개봉한 영화 <한공주>는 국민적인 공분을 사며 뛰어난 연출과 연기에 힘입어 흥행과 비평에 성공했다. 독립영화의 영역을 뛰어넘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당시 보지 못한 건, 대략의 내용을 알고서 도저히 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탓이었다. 또한 그동안 생각해왔던 가해자와 피해자의 뒤바뀐 양상을 또 다른 시각으로 완벽하게 보여준 탓이겠다. 


영화는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피해자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보여주었던 기존의 독립영화론에 일종의 반기를 든다. 그동안 피해자는 세상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개인으로부터 받은 끔찍한 피해를 '가해자'가 되어 되돌려주려 했다. 아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도를 찾을 수 없는,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폭력의 뫼비우스 띠. 


이 영화는 어떤가. 공주가 당한 건 끔찍하다 못해 악마적인 행위. 입으로도 손으로도 언급하기 역겨운 43명에 의한 집단 성폭행. 피해자 공주는 어떤가. 홀로 강하게 큰 그녀이지만, 한없이 약한 그녀이기도 하다. 그녀는 가해자가 되기는커녕 도망 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또 다른 가해자들인 가해자들의 부모, 자기 아들 삶을 망가뜨리지 말라는 협박과 호소와 부탁 때문이다. 차라리 공주가 가해자가 되어 그 악마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무엇을 남길 수 있다면, 그러면 내 마음이 덜 아플 것 같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건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이었던 것, 현실은 이렇다. 


끔찍한 와중에 다가오는 포근하고 아련한 감성


그 와중에 포근하고 아련한 감성을 선보인다는 건 거의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아... 공주가 가엽다. 공주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진다. ⓒ무비꼴라주


이 영화가 대단한 이유는 비단 이것 뿐이 아니다. 마음이 뒤틀리는 공주의 상황을 알게 됨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지극히 감성적으로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건 공주가 진정 하고 싶었지만 이제 다시는 할 수 없는 '음악'에서 기인된다. 공주가 음악과 함께 일 때 느껴지는 감성은 한없이 포근하고 아련하다. 


이 감성은 <파수꾼>에서 기태가 함께이고 싶었지만 다시는 그럴 수 없는 친구들과의 즐거운 시간,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 시완이 계속되길 원했지만 다시는 그럴 수 없게 된 가족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수남이 열심히 일해서 장만하고 싶었지만 결국 빛으로 사게 된 집과 궤를 같이 한다. 


그렇지만 <한공주>에서 공주가 보여주는 감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바, 그녀가 당한 짓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극은 극으로밖에 해결하지 못한다는 걸 말하고자 하는 걸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엔 아이러니 하게도 공주의 괴로운 모습이 아니라 즐거운 모습이 뇌리에 남는다. 


우린 공주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공주의 괴로움을 뒤로 하고 즐거움을 취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수롭지도 않게. 그러면서 그녀 안에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괴로움을 조금씩 치료해주면서 말이다. 아마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공주가 전학 간 학교에서 큰 관심을 보이는 은희도 결국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지 않았는가. 이게 현실이라는 말을 다시금 하게 된다. 


'혼자'라는 사실보다 더 잔혹하고 가혹한 게 있을까


공주의 모든 걸 알고 온전히 그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영화에선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그 아픔이 너무도 큰 탓에 나도 휩쓸릴 것 같기 때문일 테다. 그렇지만 현실은... 현실도 마찬가지일 터. 과연 나는? ⓒ무비꼴라주


이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은, 생각해보고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잔혹하고 가혹하다. 백도 없고 집도 없고 부모님도 없고 친구도 없는 어린 여고생이 할 수 있는 게 무언가. 뭐라도 해서 희망의 불씨가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나, 싶은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하지만 그건 공염불에 불과하지 않나. 실상은 이런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그녀에게는 그녀의 아픔을 가슴 절절히 공감하고 외치고 기억해줄 이가 아무도 없다. 누군가는 다수의 가해자가 한 목소리로 외치는 '개소리'를 듣고 가해자를 옹호하고, 누군가는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며, 누군가는 한순간의 망설임으로 그녀를 떠나보낸다. 그녀는 혼자다. 


많고 많은 사람이 사는 이 크나는 세상에 '혼자'라는 사실보다 더 잔혹하고 가혹한 게 있을까. 더욱이 잘못한 게 없는데, 오히려 피해를 당했는데, 누군가에게는 가해자로 인식되기까지 하다니. 숨이 턱턱 막히고 알 수 없는 소름이 덮친다. 가만히 있기가 힘들다. 세상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도 귀찮다. 그저 사라지고 싶다.


그런데, 공주는 수영을 배운다. 다시 살고 싶을까봐, 다시 시작하고 싶을까봐. 그러면 너무 억울하니까. 그녀는 알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마지막을 선택하게 될 거라는 걸. 그때를 대비해 수영을 배운 것이다. 이건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무너져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를 보고 결심한 게 있다. 받아들이겠다고 말이다. 타의에 의해 세상으로부터 버려져 혼자가 된 이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정녕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한다. 다름 아닌 내가 하고 싶다. 이 영화 <한공주>를 보고 난 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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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감성, 성폭행, 수영, 음악, 피해자, 한공주, 현실,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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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동 시인> 여성 특유의 감성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그리다

지나간 책 다시읽기/한국 대표 소설 읽기 2015. 5.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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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소설 읽기] <원미동 시인>



<원미동 시인> ⓒ아시아



1990년대였던 거 같다. 고모할머니가 봉천동에서 슈퍼를 운영하셔서 자주 갔었다. 내가 사는 동네도 만만치 않은 달동네였기에 신기하거나 이상하다는 감정은 없었다. 20년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달동네가 풍기는 꾀죄죄함과 정겨움. 너무 멀고 힘들다는 느낌 정도. 지금 가보면 이런 생각이 들겠지.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


1980년대는 경제적으로는 최고의 안정기, 정치적으로는 최악의 혼란기를 겪었다. 시대를 그리려는 소설가들에게는 최고의 시기였을까. 명작들이 소설들이 쏟아져 나온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조명하려는 대하역사소설, 정치의 혼란기에서 꿋꿋이 재 몫을 하면서 또 노동자로서의 가치를 일으켜 세우려는 이들을 그린 노동소설, 경제 호황의 거대한 그림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그린 작품들, 특유의 현실 감각과 필치 그리고 감성을 그린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까지. 


여성 특유의 감성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그리다


소설가 양귀자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특유의 감성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그렸다. 그러면서 경제와 정치에도 발을 걸치고 있다. 그 감성으로 복잡다단한 세계를 그리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원미동 사람들>이라는 연작소설집은 그 세계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히 구사해냈다. 그 중에서도 '원미동 시인'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과연 원미동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80년대 원미동은 서울 외곽의 변두리를 대표하는 공간이다. 동시에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패자들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이 속한 <원미동 사람들>의 시작이 '멀고 아름다운 동네'라는 소설인데, 그 소설에서 주인공은 서울에서 집을 갖지 못하고 희망을 갖기 위해 서울을 떠나 멀고 아름다운 동네인 원미동으로 향한다. 그들은 서울에서 살고 싶었지만 서울은 그들을 쫓아냈다. 


그런 동네인 원미동의 시인이라니 마냥 처량하게 느껴진다. 왠지 모르게 누군지 알 수 없는 그 시인의 시는, 패자들의 도시인 원미동을 닮아 있을 것 같다. 그런 원미동을 노래하고 있을 것 같다. 아무도 그의 시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7살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군상


'원미동 시인'은 7살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원미동 사람들의 인간군상을 그린다. 아이가 그리는 원미동 시인은 '몽달씨'인데, 항상 퀭한 두 눈에 부스스한 머리칼 그리고 물들인 군용점퍼와 낡은 청바지를 껴입고 있다. 약간 돌았다고 한다. 그에게 친구가 있다면 아마 7살 짜리 아이가 유일할 거라 한다. 그는 "너는 나더러 개새끼, 개새끼라고만 그러는구나"라며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곤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또 하나의 총각 친구가 있는데, 형제슈퍼의 '김반장'이다. 그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재미있다. 아이한테 굉장히 잘 대해주는데, 아주 예쁘다는 아이네 집 셋째 딸을 사모하고 있어서 일 것이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아이지만 아무래도 몽달씨보다는 김반장에게 호감이 가는 게 사실이다.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몽달씨는 김반장의 슈퍼 일을 거들어주곤 한다. 그럴 때면 김반장이 칭찬을 해준다. 다름 아닌 그의 '시'를. 언젠가 몽달씨의 시를 천천히 읽어봄을 다짐 시킨다. 그러면 몽달씨는 신이 나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아이는 김반장이 몽달씨의 시를 읽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몽달씨가 알 수 없는 사내들에게 복 날 개패듯 맞고 있었다. 몽달씨는 겨우 도망쳐 김반장의 형제슈퍼로 피했는데, 여지 없이 사내들이 쫓아왔다. 김반장은 어떻게 처신했을까? 평소 몽달씨와 친하게 지내기도 했거니와 몽달씨가 김반장의 슈퍼 일을 이것저것 도와주었으니, 그도 몽달씨를 도와주었을까? 김반장은 단 두 마디를 했을 뿐이다. 


"무, 무슨 소리요? 난 몰라요! 상관없는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으니까 나가서들 하시오."

"나가요! 어서들 나가요! 싸우든가 말든가 장사 망치지 말고 어서 나가요!"


몽달씨를 구해준 건 뜬금없는 지물포 주씨 아저씨였다. 그러자 사내들이 도망쳤는데, 잽싸게 나와 거드는 김반장이었다. 그의 말은 가히 가관이었다. 방금 전의 그 모습은 어디 가고?


"하여간 저놈들을 잡아 넘겼어야 하는 건데... 좀 어때? 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어서 집으로 가세. 내가 데려다줄게."


이후 누구보다 몽달씨에게 관심을 갖고 잘 보살피는 김반장. 그는 어느새 원미동의 '진국'이 되었다. 심지어 당사자인 몽달씨조차 그때의 일을 다 잊어버린 듯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의 진짜 모습을 본 아이는 도무지 김반장에게 정을 붙일 수 없었다. 그리고는 몽달씨에게 더 정이 가는 것이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때로 아이의 눈은 날카롭다. 그 순수함은 감춰지고 쉬쉬하는 구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춰낸다. 깡패 같이 정치권력(알 수 없는 사내들)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소외된 소시민(몽달씨), 그 권력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는 소시민(김반장). 그리고 그 무서움을 몰라서 인지 아니면 용감한 건지 권력에 웅크리지 않은 이(지물포 주씨). 하지만 그는 바보인 듯하다. 김반장을 원미동의 진국으로 추켜세운 사람이 다름 아닌 지물포 주씨니까. 


정녕 완벽한 배경 설정과 구도이다.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녹아 있다. 원미동으로 상징 되는 경제 호황의 어두운 그림자, 소설 내의 유일한 사건을 통해 알게 되는 국가적 정치 상황, 당하는 사람이나 그걸 모른 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나 도와준 사람이나 하나같이 소외된 사람이자 소시민이라는 점까지. 


30년이 지난 지금이라고 다를까? 달라졌을까? 몽달씨 같이 나잇살 먹어서도 재구실 못하는 사람이 지금은 없을까? 김반장 같이 위험이 닥치면 자기 안전만 생각하다가 기회를 봐서 갈아타는 사람이 지금은 없을까? 결정적으로 서울에서 집을 구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쫓겨나다시피 하는 사람이 지금은 없을까? 


백 번 양보해서 한국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이런 사람이 당연히 존재한다고 치자. 문제는 줄어들지도 유지하지도 못하고, 지금보다 당연히 훨씬 못살았을 것 같은 30년 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많이 양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모두들 그 상황에 철저히 적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몽달씨와 김반장이라는 인간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고 미래이다.


아시아 출판사에서 후원하는 '한국 대표 소설 읽기'의 일환입니다.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시리즈와 함께 앞으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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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경제, 소외, 양귀자, 여성작가, 원미동 시인, 정치
  • BlogIcon 空空(공공)
    2015.05.22 10:33 신고

    예전에 한국 문학..소설을 많이 읽었었는데
    요즘은 거의 못 읽었네요

    • BlogIcon singenv
      2015.05.27 18:08 신고

      저와는 반대셔요 ㅎㅎ 저는 예전에 한국 문학을 소홀히 했었는데, 요즘 하나 둘 찾아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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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시간 그녀> 단숨에 읽히는 젊은 날의 기억

제9의 예술, 만화 2013. 12. 23.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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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웹툰 <수업시간 그녀>


<수업시간 그녀> ⓒ애니북스



흔한 사랑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드린다. 왠지 남자라면 누구나 해봤을, 통과의례와도 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안에는 여지없이 사랑에 대한 모든 것들이 녹아들어 있다는 걸 아는가? 설렘과 흥분, 희망과 좌절, 억측과 반목, 엇갈림과 기다림, 분노와 후회, 아쉬움과 안타까움 등.


대학생이 된 어느 남자. 수업시간 때 우연히 옆에 앉게 된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다. 말을 건네보고 싶지만 여의치가 않다. 친구들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하지만, 돌아오는 건 욕지거리 뿐. 그래도 응원의 메시지는 잊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 그녀와 같은 조가 되어 같이 조활동을 하게 된 그. 조활동을 핑계로 둘 만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숫기없는 그는 실수를 연발한다.


한편 그에게는 아주 편하게 지내는 여자친구가 있다. 여지없이 그녀는 그를 좋아한다. 그녀가 혼자였을 때 도움을 준 유일한 이가 그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모른다. 단, 그의 마음 속에는 이미 그녀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단지 여자가 아닌 친구로 생각할 뿐이다. 과연 남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자신이 좋아해마지 않는 수업시간의 그녀를 선택할까? 아니면 오랜 세월 곁에서 함께 해오며 자신을 좋아하는 편한 친구를 선택할까? 그것도 아니면 둘 다 놓치고 말까?


아주 단순하면서도 전형적인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이다. 어디서 본듯한 이 이야기는 네이버 웹툰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박수봉의 <수업시간 그녀>의 스토리이기도 하다. 이번에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원래 박수봉 작가의 개인 블로그에서 연재되던 것이, 네이버 웹툰에 입성하게 되었고, 이어서 애니북스 출판사에 의해 단행본으로까지 나온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로 이렇듯 전문가들의 눈을 사로잡은 이유는 분명 따로 있을 것이었다. 무엇일까?


이 만화의 사뭇 다른 특성들


만화는 엄연히 시각의 콘텐츠이다. 스토리텔링으로써의 콘텐츠가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 못지 않게 시각적인 콘텐츠는 전통적으로 강자의 위치에서 군림해왔다. 그래서 만화는 스토리텔링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집중을 해야 한다. <수업시간 그녀>는 일단 시각적으로 여타의 만화들과는 차별점을 두고 있다. 무엇인고 하면, 스케치로만 만화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수업시간 그녀>의 첫 장면. ⓒ애니북스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봤을 때 오로지 펜촉으로만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칫 성의없어 보이고 느슨해 보일 수 있는데,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자연스레 컬러감이 전혀 없는 만화가 되었다. 자칫 무미건조해 보일 수 있는데, 이 또한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으니 더더욱 신기할 따름이다. 생각해보니 이 만화가 가지는 '감성'과 '스토리라인'이 커버해주고 있었다. 적당한 풋풋함과 반전과 현실성과 코믹 요소 등. 


거기에 이 만화의 캐릭터들에는 결정적으로 눈이 없다. 일본으로부터 건너온 만화 그림체에 영향을 받았다면 무엇보다도 눈을 선명히 그려야 할텐데, 그 부분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초강수를 뒀다. 또한 종종 눈에 띄는 어설픈 듯 거슬리지 않는 '비유'. 예를 들면, 주인공 남자가 비참한 상황에 놓였거나 스스로 아주 바보갔다고 느꼈을 때, 피를 뚝뚝 흘리며 가는 모습들이다. 


그리고 캐릭터의 시선으로 카메라 워킹을 시도하는 영화적 기법도 도입한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그렇게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앞서 말한 영화적 기법에 더해 과거 회상 씬까지 들어가기 때문이다. 정말 다채롭고 색다른 시도를 결코 추하지 않게 잘 활용하였다. 


단숨에 읽히는 젊은 날의 기억


이 만화의 키워드는 스토리텔링도 아닌 그림체도 아닌 캐릭터도 아닌, '느낌'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편집자가 우연히 작가의 블로그에서 만화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다 읽어버린 다음 곧바로 출판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나 또한 550여 쪽에 달하는 이 만화책을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또 읽게 되면서,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며 느끼는 돌아가고 싶다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젊은 날의 일기를 조금은 아쉬운 기분으로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그땐 그랬었지 하는 그런 느낌. 거기엔 차라리 몰랐었으면 하는 사실들도 있고, 왜 그래야만 했었는지 하는 안타까움도 있고, 조금만 더라고 되뇌이는 아쉬움도 있다. 


그땐 왜 그리도 못났는지, 왜 그리도 몰랐는지, 왜 그리도 좁은 사람이었는지. 그런데 이 만화의 배경이 '그때'인 건 아니다. 나한테만 그렇게 느껴졌을 뿐, 누군가에겐 지금일 수 있다. 나 또한 훗날에, 지금의 나를 다시 들여다본다면 얼마나 못나 보일까? 얼마나 답답해 보일까? 그래도 결국 하는 말은 같을 것이다. "그땐 그랬지. 그때가 좋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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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네이버 웹툰, 느낌, 사랑 이야기, 수업시간 그녀, 스케치, 스토리라인, 스토리텔링, 웹툰, 일기, 콘텐츠
  • BlogIcon mindman
    2013.12.23 07:55 신고

    저는 두번의 짝사랑과 두번의 사랑을 해봤습니다.
    첫사랑을 할 때는 더 이상 짝사랑으로 고민하지 않겠다고 용기를 내었지요.

    그래서, 그 아이에게 보낸 편지 '날 사랑해라!' 요렇게 다섯 글자!
    그리고 백일동안 매일 편지를 보냈지요.

    그러면서 많이 아팠답니다.
    가슴을 흔드는 아픔의 어원은 patio예요. 바로 passion(열정)의 어근이죠.
    그러므로 사랑은 열정을 낳고 그 열정은 아픔을 낳는 겁니다.
    아직도 그 시절 생각하면 가슴이 조금 얼얼합니다. ^.^

    한 주의 시작입니다. 멋진 월요일 되세요.

    • BlogIcon singenv
      2013.12.23 21:25 신고

      아, 첫사랑이 남긴 얼얼한 아픔.
      통과의례 같은 것이겠죠?
      그래서 더 아름다운 것일까요.

  • BlogIcon 오렌지수박
    2013.12.23 09:14 신고

    풋풋한 느낌이 드네요. 화려하고 색감이 진한 만화들에 비해 조금 단조롭지만 오히려 감성적인 느낌이 듭니다.

    • BlogIcon singenv
      2013.12.23 21:28 신고

      다른 만화들의 경우 화려함에 눈을 빼앗겨 정신없이 보게 되는데 반해,
      이 만화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보다보니 오히려 더 눈에 잘 들어오더군요~

  •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3.12.23 09:36 신고

    단숨에 읽어버릴만큼 공감대도 많은 책인듯하네요
    서평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singenv
      2013.12.23 21:28 신고

      정말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어요 ㅋㅋ 550여쪽을요!

  • BlogIcon Hansik's Drink
    2013.12.23 12:40 신고

    저도 재미나게 봤답니다 ㅎㅎ
    공감가네요~~

    • BlogIcon singenv
      2013.12.23 21:28 신고

      그렇죠?ㅋㅋ~
      재밌었어요!

  • BlogIcon 오감세
    2013.12.23 19:20 신고

    우와 축하드립니다.
    다음뷰 오늘의 블로거시네요. ^^

    • BlogIcon singenv
      2013.12.23 21:29 신고

      아, 감사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오늘의 블로거를 ㅋㅋ

  • BlogIcon 포장지기
    2013.12.24 01:20 신고

    늘 현재는 과거를 돌아볼때 지금이 그때보다 부족한것 같은 느낌이 잘 들죠...
    메리 크리스마스..잘보고 갑니다^^


  • 2014.01.03 14:36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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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통속적이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오래된 리뷰 2013. 12. 1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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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장이머우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


영화 <집으로 가는 길> ⓒsony classics



대학생 때 ‘중국 현대 문학과 영화’라는 수업을 들었다. 기억나는 몇몇 영화들. <붉은 수수밭>, <인생>, <홍등>... 기억나는 영화들이 하나같이 ‘장이머우’(장예모) 감독의 작품이다. 이들 영화는 감독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작품임과 동시에, 원작자들의 활동에서도 정점을 찍게 해준 작품들이다. 각각 현대 중국 문학계의 거목인 모옌, 위화, 수퉁의 작품들이다.


장이머우는 위의 작품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의 영화들은 감상주의에 빠져있다는 비판을 얻기도 했다. 훌륭한 문학 작품을 스크린으로 훌륭하게 옮겨놓았지만, 자신의 색깔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어 감상주의가 섬세한 표현과 터치로 바뀌어갔다.


시점은 현재인데, 흑백인 이유는?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그 정점에 이른 작품들이 1999년에 나온 <책상 서랍 속의 동화>와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는 화려함에만 천착해 예전의 감상주의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집으로 가는 길>은 장쯔이의 주연 데뷔작으로 훗날 더욱 더 유명해졌다. 또한 장이머우의 작품 세계에서 한 시기를 마무리하는 영화라고 할 수도 있어 중요하게 여겨진다.


영화는 도시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루오 유셩(순홍레이 분)이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시골로 돌아오는 길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시점은 현재인데, 특이하게도 흑백이다. 시골의 겨울이 배경이기 때문에, 흑백까지 더하니 1950~60년대 같이 보인다. 하지만 벽에 <타이타닉>의 포스터가 떡 하니 붙여져 있는 걸 보니 최소한 1997년 이후가 분명하다. 이에는 분명 어떤 의도 및 장치가 숨겨져 있다.


유셩의 어머니 쟈오 디는 한사코 남편의 장례를 전통적으로 치르려고 한다. 아버지의 시신을 직접 들고 걸어서 오기 위해서였다. 그 길은 그들 부부에게 아주 특별한 추억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다. 마을에는 젊은 사람이 없고 옆 마을에서 돈을 주고 사람을 사야 했다. 처음에 유셩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 길에 얽힌 옛 이야기를 알게 된 후 많은 돈을 지불하고 전통 장례를 치르게 한다. 40년 전의 옛 이야기는 현재의 흑백을 벗고 화사한 색깔의 옷을 입는다.


통속적이지만 아름다운, 담백한 이들의 사랑이야기


때는 1958년, 오지 마을에 사건 아닌 사건이 터진다. 도시에서 선생님 한 분이 오셔서 마을 유일의 선생님으로 부임한 것이다. 창위라는 이름의 젊은 선생님으로, 마을로 오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이 에워싸며 관심을 보인다. 그 중에서도 쟈오 디의 관심은 특별했다. 이성적인 끌림에 의한 관심이랄까.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하고,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먹이려고 노력하고, 일부러 그가 참여해서 만들고 있는 학교 주변으로 물을 길러가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하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과 같이 가는 길에서 기다렸다가 그를 보려고 한다. 노력과 기다림과 설렘과 기쁨의 연속이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에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의 한 장면. ⓒsony classics



하지만 어김없이 그들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급한 일이 생겨서 창위가 도시로 잠시 가 있어야만 했다. 창위는 쟈오 디에게 예쁜 머리핀을 선물하며, 겨울 방학 전에 온다고 말한다. 쟈오 디는 그를 보고 싶은 마음에 매일같이 도시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서 기다린다. 그렇지만 창위는 한겨울이 도래했는데도 오지 않는다. 쟈오 디는 참을 수 없는 그리움에 눈보라가 치는 한 겨울에 몸소 만두를 들고 도시로 떠난다. 연약한 몸으로 가당치도 않은 발걸음은 얼마 못가 멈추고 만다.


다행히도 지나가는 사람 덕분에 집으로 무사히 돌아온 쟈오 디. 하지만 창위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 그녀는 또 다시 그를 찾으러 갈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창위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쟈오 디의 소식을 듣고, 쟈오 디만을 위해서, 몰래 도망쳐 왔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픈 몸을 이끌고 넘어져가며, 그러나 깃털같이 가벼운 발걸음을 학교로 옮긴다.


창위는 다시 도시로 돌아갔고 쟈오 디는 마냥 기다렸다. 이후 2년여 동안 창위는 쟈오 디의 얼굴을 잠깐 보러 마을로 오고 도시로 가길 반복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한 뒤 이들은 절대 헤어지지 않았다. 통속적이지만 아름다운, 감상주의에 빠질 법하지만 담백한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다시 현실의 칙칙한 흑백으로 돌아온 영화는 쟈오 디, 그리고 아들 유셩의 바람대로 전통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과거 창위의 제자였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앞 다투어 와주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들 중 단 한 사람도 돈을 받지 않고 장례 집행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는 창위의 제자가 아닌 일용 노무자까지도 말이다. 전부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의 한 장면. ⓒsony classics



영화의 다양한 상징성들


극 중의 창위는 과거 만인의 존경을 받던 ‘중국’이라는 나라 또는 중국대륙을 상징한다. 중국은 1800년대 들어 외세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었다.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예전의 위상을 뒤찾지 못하였다가 2000년대 들어서 다시금 세계 강대국의 위상을 찾게 된다. 감독은 이를 만인의 존경을 받던 창위를 통해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감독은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1978년 중국은 전격적으로 개혁과 개방의 기치를 들고 자본주의를 거침없이 받아들인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 완벽한 시장경제체제를 이룩하였다. 중국 경제는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며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었고, 여기저기서 세계적인 부자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역효과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 중에서도 빈부격차 문제가 가장 심할 것이다. 그리고 빈부격차의 핵심에는 도시와 농촌이 있다.


주지했듯이 이 영화는 현재를 흑백으로, 과거를 화려한 색깔로 처리한다. 이는 자본주의 현재의 농촌 마을을 흑백으로 처리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역효과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40년 전의 같은 농촌 마을을 화려한 색깔로 처리함으로써, 자본주의가 들어오기 전의 마을 공동체를 이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온 마을 남자들이 같이 학교를 만들고, 온 마을 여자들이 음식을 만들어 남자들을 챙기는 모습. 누구 한 명이 다치거나 아프면 마을 사람들이 와 안부를 묻고 챙겨주는 모습. 존경하는 선생님을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점심을 챙겨주는 모습. 그리고 현재로 넘어와 존경하는 선생님의 장례를 위해 아무도 돈을 받지 않고 손수 운구 행렬에 참여하는 모습까지. 감독은 중국이 진정한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아닌 과거의 방식이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1958년 당시 중국은 노동력 산업의 추진을 위한 경제성장운동인 대약진운동이 한창이었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선생님에게 관심을 보이고 존경하는 모습을 비춤으로써, 교육의 중요성을 표출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선생님이 와서 가르치는 것은 교과서가 아니라 손수 제작한 책으로, 그 안에는 중국 전통 교육의 핵심이 들어 있다.


이 영화의 진정한 가치 '감성'


하지만 이 영화의 가치가 이런 삭막한 ‘해석’에 기인한 것 만이라면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가치는 화면과 연기에서 보이는 ‘감성’에 있다. 산골 마을의 대지(大地)는 광활함보다는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고, 배우들의 연기는 세련되고 정형화되어 있다기보다는 어딘지 어색하지만 사람냄새를 느끼게 한다. 또한 그런 어색함은 연기라고 생각했을 때 느껴지는 것이지, 사실 연기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사실적인 연기이다. 스토리는 사실 굉장히 진부하지만, 오히려 화면과 연기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고도의 연출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옛날로 돌아가자고 외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이다. 자칫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로 도피하는 몰지각한 행동이 될 수 있다. 설사 현실이 너무 힘들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안에서는 곪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현실이 힘듦에도 막을 치고 힘들지 않다고 강제하고 있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과거를 돌아보고 현실에서 훌륭히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꼭 유형의 무엇인 것만은 아니다. 그때 그 시절의 풋풋함, 때 묻지 않은 순수함, 사람냄새 나는 순박함 등의 무형 감성도 포함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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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감성, 대약진운동, 사랑 이야기, 연기, 연출력, 자본주의, 장이머우, 장쯔이, 집으로 가는 길, 흑백
  •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3.12.16 07:34 신고

    요즘 개봉한 영화인줄알았더니...아니군요
    장이머우 감독의 [집으로 가는길] ..오호..제가 참 맘에 들어하는 영화스토리여요
    영화평 잘 읽고 갑니다~

    • BlogIcon singenv
      2013.12.16 19:55 신고

      생각지 못하게 낚시를 해버렸네요ㅠ
      그래도 전혀 꿀리지 않는 영화지요!

  • BlogIcon 오렌지수박
    2013.12.16 07:39 신고

    저는 같은 감독, 배우의 영화 연인을 참 인상깊게 봤는데ㅎㅎ 몰랐는데 집으로 가는 길이 장쯔이의 주연 데뷔작이군요! 수수한 느낌도 나고 조금 감성적인 느낌도 묻어납니다.

    • BlogIcon singenv
      2013.12.16 19:57 신고

      네네, 장쯔이의 주연데뷔작이죠!
      이후 <영웅>, <연인>을 장예모 감독과 같이 했죠~

  • BlogIcon 귀여운걸
    2013.12.16 07:54 신고

    감성 가득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저두 보고싶어지네요~
    순수하고 순박한 감성을 그리며 저두 보아야겠어요^^

    • BlogIcon singenv
      2013.12.16 19:57 신고

      이 겨울에 꼭 어울리는 영화인 거 같아요~

  • BlogIcon 미미르의 샘
    2013.12.16 09:30 신고

    전도연의 집으로 가는길을 생각하고 들어왔다가 오히려 더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를 만났네요 ^^
    구해서 주말에 꼭 봐야겠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BlogIcon singenv
      2013.12.16 19:57 신고

      윽 낚시를 ㅋㅋ;; 그래도 좋은 영화 만나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 BlogIcon mindman
    2013.12.16 10:33 신고

    The road home!~~ 이군요. 사람들은 <home> 자체가 부사라서 전치사가 안붙는다는 걸 잘모르는 경우가 있지요. ^.^
    저라면 A way home이라고 하고 싶은데.....

    좋은 소개 감사합니다.

    좋은 날, 좋은 한 주 맞이하세요.

    • BlogIcon singenv
      2013.12.16 19:58 신고

      그러게요ㅋ 저도 road 대신 way가 더 어울릴 듯한데요.

  • BlogIcon +요롱이+
    2013.12.16 11:56 신고

    기회가 된다면 한번 보고 싶어지는걸요^^

    • BlogIcon singenv
      2013.12.16 19:57 신고

      감사합니다~

  • BlogIcon Hansik's Drink
    2013.12.16 12:22 신고

    잘 보고 간답니다 ^^
    즐거움이 가득한 한 주를 보내세요~

    • BlogIcon singenv
      2013.12.16 19:58 신고

      감사합니다~

  • BlogIcon 포장지기
    2013.12.17 02:50 신고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로 강추입니다^^
    늦게 다녀갑니다..
    좋은 하루 여시기를..

  • 음
    2013.12.20 15:26

    낚시에 걸린 물고기 한마리 추가~
    어찌되었건 좋은 영화 하나 추천받고 갑니다...

    • BlogIcon singenv
      2013.12.20 21:37 신고

      ㅋㅋㅋㅋ;;;;
      죄송합니다ㅋ
      일부러 그런 건 아니예요ㅠ
      그래도 좋은 영화인 건 분명합니다!!!

  • BlogIcon 음
    2015.11.18 07:00

    낚시에 걸린 물고기 육마리 추가~
    어찌되었건 좋은 영화 여셧 추천받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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