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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한국 대표 소설 읽기

<원미동 시인> 여성 특유의 감성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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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소설 읽기] <원미동 시인>



<원미동 시인> ⓒ아시아



1990년대였던 거 같다. 고모할머니가 봉천동에서 슈퍼를 운영하셔서 자주 갔었다. 내가 사는 동네도 만만치 않은 달동네였기에 신기하거나 이상하다는 감정은 없었다. 20년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달동네가 풍기는 꾀죄죄함과 정겨움. 너무 멀고 힘들다는 느낌 정도. 지금 가보면 이런 생각이 들겠지.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


1980년대는 경제적으로는 최고의 안정기, 정치적으로는 최악의 혼란기를 겪었다. 시대를 그리려는 소설가들에게는 최고의 시기였을까. 명작들이 소설들이 쏟아져 나온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조명하려는 대하역사소설, 정치의 혼란기에서 꿋꿋이 재 몫을 하면서 또 노동자로서의 가치를 일으켜 세우려는 이들을 그린 노동소설, 경제 호황의 거대한 그림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그린 작품들, 특유의 현실 감각과 필치 그리고 감성을 그린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까지. 


여성 특유의 감성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그리다


소설가 양귀자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로 특유의 감성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그렸다. 그러면서 경제와 정치에도 발을 걸치고 있다. 그 감성으로 복잡다단한 세계를 그리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원미동 사람들>이라는 연작소설집은 그 세계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히 구사해냈다. 그 중에서도 '원미동 시인'이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과연 원미동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80년대 원미동은 서울 외곽의 변두리를 대표하는 공간이다. 동시에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패자들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이 속한 <원미동 사람들>의 시작이 '멀고 아름다운 동네'라는 소설인데, 그 소설에서 주인공은 서울에서 집을 갖지 못하고 희망을 갖기 위해 서울을 떠나 멀고 아름다운 동네인 원미동으로 향한다. 그들은 서울에서 살고 싶었지만 서울은 그들을 쫓아냈다. 


그런 동네인 원미동의 시인이라니 마냥 처량하게 느껴진다. 왠지 모르게 누군지 알 수 없는 그 시인의 시는, 패자들의 도시인 원미동을 닮아 있을 것 같다. 그런 원미동을 노래하고 있을 것 같다. 아무도 그의 시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7살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군상


'원미동 시인'은 7살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원미동 사람들의 인간군상을 그린다. 아이가 그리는 원미동 시인은 '몽달씨'인데, 항상 퀭한 두 눈에 부스스한 머리칼 그리고 물들인 군용점퍼와 낡은 청바지를 껴입고 있다. 약간 돌았다고 한다. 그에게 친구가 있다면 아마 7살 짜리 아이가 유일할 거라 한다. 그는 "너는 나더러 개새끼, 개새끼라고만 그러는구나"라며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곤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또 하나의 총각 친구가 있는데, 형제슈퍼의 '김반장'이다. 그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재미있다. 아이한테 굉장히 잘 대해주는데, 아주 예쁘다는 아이네 집 셋째 딸을 사모하고 있어서 일 것이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아이지만 아무래도 몽달씨보다는 김반장에게 호감이 가는 게 사실이다.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몽달씨는 김반장의 슈퍼 일을 거들어주곤 한다. 그럴 때면 김반장이 칭찬을 해준다. 다름 아닌 그의 '시'를. 언젠가 몽달씨의 시를 천천히 읽어봄을 다짐 시킨다. 그러면 몽달씨는 신이 나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아이는 김반장이 몽달씨의 시를 읽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몽달씨가 알 수 없는 사내들에게 복 날 개패듯 맞고 있었다. 몽달씨는 겨우 도망쳐 김반장의 형제슈퍼로 피했는데, 여지 없이 사내들이 쫓아왔다. 김반장은 어떻게 처신했을까? 평소 몽달씨와 친하게 지내기도 했거니와 몽달씨가 김반장의 슈퍼 일을 이것저것 도와주었으니, 그도 몽달씨를 도와주었을까? 김반장은 단 두 마디를 했을 뿐이다. 


"무, 무슨 소리요? 난 몰라요! 상관없는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으니까 나가서들 하시오."

"나가요! 어서들 나가요! 싸우든가 말든가 장사 망치지 말고 어서 나가요!"


몽달씨를 구해준 건 뜬금없는 지물포 주씨 아저씨였다. 그러자 사내들이 도망쳤는데, 잽싸게 나와 거드는 김반장이었다. 그의 말은 가히 가관이었다. 방금 전의 그 모습은 어디 가고?


"하여간 저놈들을 잡아 넘겼어야 하는 건데... 좀 어때? 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어서 집으로 가세. 내가 데려다줄게."


이후 누구보다 몽달씨에게 관심을 갖고 잘 보살피는 김반장. 그는 어느새 원미동의 '진국'이 되었다. 심지어 당사자인 몽달씨조차 그때의 일을 다 잊어버린 듯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의 진짜 모습을 본 아이는 도무지 김반장에게 정을 붙일 수 없었다. 그리고는 몽달씨에게 더 정이 가는 것이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때로 아이의 눈은 날카롭다. 그 순수함은 감춰지고 쉬쉬하는 구린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춰낸다. 깡패 같이 정치권력(알 수 없는 사내들)에 일방적으로 당하는 소외된 소시민(몽달씨), 그 권력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는 소시민(김반장). 그리고 그 무서움을 몰라서 인지 아니면 용감한 건지 권력에 웅크리지 않은 이(지물포 주씨). 하지만 그는 바보인 듯하다. 김반장을 원미동의 진국으로 추켜세운 사람이 다름 아닌 지물포 주씨니까. 


정녕 완벽한 배경 설정과 구도이다.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녹아 있다. 원미동으로 상징 되는 경제 호황의 어두운 그림자, 소설 내의 유일한 사건을 통해 알게 되는 국가적 정치 상황, 당하는 사람이나 그걸 모른 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나 도와준 사람이나 하나같이 소외된 사람이자 소시민이라는 점까지. 


30년이 지난 지금이라고 다를까? 달라졌을까? 몽달씨 같이 나잇살 먹어서도 재구실 못하는 사람이 지금은 없을까? 김반장 같이 위험이 닥치면 자기 안전만 생각하다가 기회를 봐서 갈아타는 사람이 지금은 없을까? 결정적으로 서울에서 집을 구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쫓겨나다시피 하는 사람이 지금은 없을까? 


백 번 양보해서 한국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이런 사람이 당연히 존재한다고 치자. 문제는 줄어들지도 유지하지도 못하고, 지금보다 당연히 훨씬 못살았을 것 같은 30년 전보다 지금이 훨씬 더 많이 양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모두들 그 상황에 철저히 적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몽달씨와 김반장이라는 인간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고 미래이다.


아시아 출판사에서 후원하는 '한국 대표 소설 읽기'의 일환입니다.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시리즈와 함께 앞으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