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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1960년대 미국과 아웃사이더 가해자를 들여다보다 <인 콜드 블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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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 읽기]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인 콜드 블러드> 표지 ⓒ시공사



1959년 11월 15일, 미국 서부 캔자스 주의 작은 마을 홀컴에서 클러터 일가족 네 명이 근거리에서 엽총에 맞아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들은 모두 밧줄에 묶여 있었으며 각기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단서를 찾기 힘들었던 바 확실한 증거를 찾기 힘든 완전범죄에 가까웠다. 


캔자스 주에서 명성이 자자한 클러터의 집인 만큼 범인들이 훔쳐간 게 엄청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집에서 없어진 건 고작 4~50달러의 현금과 라디오, 만원경 따위였다. 이 믿기지 않는 살해 동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범인의 자백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을 터였다. 이에 범인들은 캔자스 주로 다시 돌아오는 모험을 저지르는데...


한편, 홀컴 마을은 이 사건 이후 범인이 잡힐 때까지 서로 못 믿고, 무서워서 죽을 만큼 서로 겁주는 흉흉한 동네가 되었다. 몇몇은 마을을 떠났고,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전에 없이 철두철미하게 집을 지키려 했다. 캔자스 주 수사국에서 가든시티 책임자이자 서부 캔자스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던 앨빈 애덤스 듀이는 이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는다. 일찍이 본 적도 없는 극악한 사건, 하지만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 유명한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저자 트루먼 카포티는 클러터 일가족 살인 사건이 일어난 1959년 11월 어느 날 '뉴욕 타임스'의 짤막한 기사를 읽고 흥미를 느껴 직접 조사하기 위해 친구 하퍼 리(<앵무새 죽이기> 저자)와 함께 홀컴으로 향한다. 이후 6년 만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뒤흔들 작품을 내놓았으니 <인 콜드 블러드>다. 


이상적인 희생자, 아웃사이더 가해자


저자는 마치 창조한 듯한 이상적이고 완벽한 가족인 희생자 클러터 일가를 다루는 데 작품 초중반을 할애한다. 그들은 그렇게 살해당해서는 안 되었고 그렇게 살해당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캔자스 주에서 보기 드물게 존경받고 올곧은 삶을 살아가는 클러터 일가, 그들은 왜 끔찍한 죽임을 당해야 했는가. 


그렇지만 카포티는 그들 희생자보다 가해자인 딕과 페리에게 천착한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학창 시절을 보냈음에도 평생 범죄를 저질러 왔던 딕, 그에 반해 불우하기 짝이 없는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을 보냈음에도 풍부한 감수성을 유지했지만 그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 페리. 


딕은 몰라도 페리야말로 특별한 케이스이다. 그의 살인에는 사회적 맥락이 맞닿아 있는 것이다. 불우한 가정환경, 체로키 인디언 엄마와 백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라는 정체성, 작은 키에 유독 짧은 다리의 신체, 거기에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절기까지 하는 장애인. 그야말로 그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저자는 나름 중립을 지키며 죽은 사람들, 죽인 사람들, 죽인 사람들을 쫓는 사람들, 남겨진 사람들, 그밖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문학적 감수성과 철저하게 객관적인 자료와 인터뷰를 혼합해, 지극히 주관적인 논픽션을 내놓았지만, 그와 철저히 닮은 듯한 페리에게 끌릴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그러다 보니 보는 이들도 페리에게 끌리고 일말 일순간 동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이 나온 지가 50년이 지나는 동안, 페리에게서 영감을 받은 범죄자를 등장시킨 콘텐츠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사회적으로 철저히 버림받은 이가 정신분열증을 일으켜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는 내용. 이 괴물을 만든 이는 누구인가,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라는 주제. 무작정 동조하기도, 그렇다고 무작정 방치하고 무시하기도 힘들다. 이 책의 위대한 점이 바로 그 부분을 굉장히 다양한 관점과 소견과 견해와 감정을 혼합해 쉽게 풀 수 없게 했다는 점일 테다.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논픽션 노블'로 들여다보는 1960년대 미국


<인 콜드 블러드>는 저자와 맞닿아 있는 페리를 들여다보며 객체로서의 개인이 아닌 집합체 사회 안에서의 개인을 끄집어내어 경종을 울리는 한편, 1950~60년대 미국 사회를 해부하며 사회 자체에 경종을 울린다. 일면 평화로운 시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지나 베트남전쟁 사이의 화려한 시대, 중산층이 비상하고 히피문화가 활황하는 와중 냉전 한복판에서의 세계 최강대국 미국.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이 시대, 이 사회를 저자는 홀컴이라는 작은 마을로 수렴시켜, 명망 높은 한 가족에 닥친 끔찍한 사태가 온 동네를 휩쓸어가는 모습을 포착한다. 일면 단단해 보였던 사회의 구조물은 실상 아주 부실한 구조로 쌓아올려졌던 것이다. 그들 모두 갈팡질팡 어쩌질 못한다. 


카포티는 이 책을 오로지 사실만으로, 또는 완전한 픽션만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논픽션 노블'이라는 전혀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면서 거짓으로 진실을 들여다보기도 하는 모순이 공존하는 이와 같은 책을 쓴 이유는, 페리로 대표되는 개인과 홀컴으로 대표되는 사회를 복합적으로 효과있게 그러면서 임팩트있게 들여다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이 작품을 통해 참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인간-개인-사회-시대라는 전체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부터, 삶-죽음이라는 핵심 가치의 개념을 지나, 살인-수사-사형이라는 범죄 특성상의 전문 개념까지 아우르다 보니, 살아가다 맞닦드리는 생각의 굉장히 많은 부분을 이 작품으로만 충당할 수 있는 것이다. 


<인 콜드 블러드>의 부제는 '일가족 살인사건과 수사과정을 다룬 진실한 기록'이다. 우선, 일가족 살인'사건'을 다뤘다. 범죄소설의 외형이다. 다음으로 '수사'과정을 다룬다. 개인과 사회를 들여다보는 개념의 일환이다. 마지막으로 '진실'한 기록이다. 아웃사이더 저자에 의한 아웃사이더 페리를 위한, 거짓같은 진실과 진실같은 거짓이 오가는 기록이다. 이 책과 함께 트루먼 카포티가 <인 콜드 블러드>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 <카포티>를 보면 더 많은,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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