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책 다시읽기] 애거서 크리스티의 <살인을 예고합니다>
<살인을 예고합니다> 표지 ⓒ황금가지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 세계 추리 소설계를 대표하는 동시에 역사상 가장 많은 소설을 판 소설가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무지막지한 재미를 선사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에는 이야기와 함께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도 있으니, 이보다 완벽한 소설가의 예는 전무후무하지 않을까.
그녀는 1920년 첫 소설을 시작으로 살아생전 60년 가까이 동안 80여 편의 작품을 썼는데, 말년에 스스로 가장 좋은 작품 10편을 선정한 바 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 등 그녀의 전성기인 1920~40년대 초중기 작품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와중에 50년대 이후 작품들이 몇몇 눈에 띈다.
그중 하나인 <살인을 예고합니다>는 1950년작으로 그녀의 전성기 끝자락에 나온 소설이다. 이후에도 족히 30편의 소설을 내놓았지만, 최소한 50년대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서 유명세가 떨어진다. <예고 살인>이라고도 불리는 이 소설에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창조한 두 명탐정 중 하나인 제인 마플 양이 출현한다.
적어도 마플 양이 출현한 소설 중에서는 단연 으뜸인 <살인을 예고합니다>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치명적 선언인 "이 안에 범인이 있다!"와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 에르퀼 푸아로가 선사한 기품있는 추리와 해결의 다른 버전이 함께 한다. 읽는 재미는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여타 작품들처럼 말도 안 되게 뛰어나다.
장난처럼 시작된 살인 게임, 실제가 되다
치핑 클레그혼의 모든 집은 <노스 벤햄 뉴스 앤드 치핑 클레그혼 가제트>, 줄여서 <가제트>라고 부르는 신문을 받아보았다. 거기에는 이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관심사가 한데 뭉뚱그려져 있었다. 10월 29일 금요일,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마을사람들은 그날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살인을 예고하는 광고.
광고는 다음과 같았다. '살인을 예고합니다. 시각은 10월 29일 금요일 6:30 P.M. 장소는 리틀 패덕스. 친구들은 이번 한 번뿐인 통지를 숙지하기 바랍니다.' 이 엉뚱한 광고를 접한 이들은 어떤 이유로든 그곳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리틀 패덕스의 주인은 예순 살 가량의 블랙록 양으로, 친구 도라 버너 양과 사촌남매인 패트릭과 줄리아 그리고 난민 출신 식모 미치가 함께 살았다.
그들은 함께 그들이 사는 곳에 있을 '살인 게임 파티'에 맞춰 올 사람들을 맞이하는 준비를 했다. 블랙록 양은 그것이 파티도 아니고 초대하지도 않았다고 했지만, 이 한적한 곳에 사는 사람들의 호기심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리틀 패덕스에는 13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약속된 6시 30분이 되자 모든 전등이 꺼진다.
즐거운 탄성과 흥분된 비명이 터지고 곧이어 문이 열린다. 그러곤 어떤 남자가 소리치고 실제로 리볼버 총성이 울린다. 한 번, 두 번, 이건 더 이상 게임이 아니다. 그리고 세 번째 총성이 울리면서 남자가 쓰러진다. 처음 두 번의 총성은 블랙록 양으로 향해 그녀의 귀를 다치게 했고, 세 번째 총성은 남자를 죽게 했다. 리틀 패덕스는 혼란에 빠진다... 죽은 남자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는 누가 죽였는가!
'인간'을 향한 심리학적 고찰
에르퀼 푸아로 추리 해결 방식이 굉장한 귀족적 품위 하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반면, 마플 양의 추리 해결 방식은 인문학적이고 직관적이다. 인간 세계의 학문을 구성하는 가장 큰 두 축을, 애거서 크리스티는 추리 해결 방식에 대입시켜 그것들을 각각 대표하는 명탐정을 창조한 것이다. 그래서 마플 양이 나오는 이 소설은 굉장히 심리학적이다. 치밀한 추리도 추리지만 살 떨리고 공포스러운 서스펜스보다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사연의 공감과 이해가 우선된다.
이 소설의 범인은, 이제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피해자들 속에 있다. 즉, 범인은 이 안에 있다. 경찰은 사건에 단편/단면적으로 접근한다. 경찰에게 사건은 그가 행하는 수많은 일 중에 하나이기에 사건 그 자체를 바라보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반면, 명탐정들은 사건과 함께 사람과 상황을 바라본다. 마플 양의 경우 '사람'이다.
누구나 사연이 있다. 그 사연 때문에 살인을 했다면, 그 사연의 절대적/상대적 깊음은 얼마만 하겠는가. 그(그녀)가 행한 살인 자체, 과정, 추리보다 사연을 들여다보는 건 끝없는 딜레마를 불러일으킬 요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다름 아닌 그 딜레마가 인간으로 하여금 근원적인 물음과 고민을 계속하게 한다. 그리고 추리소설을 단순히 추리적 재미로 보는 게 아닌, 인간적 성찰의 일환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사연과 사연의 치명적 부딪힘
이 소설 <살인을 예고합니다>에서 '살인 예고'라는 충격적 이벤트와 '실제 살인'이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과 추리, 해결, 범인 등 추리소설이 가지는 기본적이거니와 중요한 사항들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이면의 사연, 즉 주요 등장인물들의 말 못할 사연들과 심지어 범인의 치명적인 사연이다.
마플 양은 그 사연들에 집중하고 그 사연들로 추리하며 그 사연들 덕분에 해결한다. 그녀는 밝혀진 범인에게 연민을 갖는다. 원래 밝고 정이 많은 성격이었는데 그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정상적인 삶'과 '좋은 사람'에서 멀어졌다. 한편 범인은 감상적이고 나약하기도 하였는데, 마플 양은 그런 사람이 더 위험하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원한을 품으면 일말의 윤리마저 잊고, 궁지에 몰리면 두려운 나머지 잔인하게 변하고 절제를 못하는 법이라는 것이다.
살인범이기 전에 인간... 우리는 추리소설이나 범죄영화를 접할 때 살인방법의 독특함과 그에 대응하는 추리방법의 기상천외함, 피해자의 절절한 사연과 그에 필적하는 또는 상응하는 살인범의 사연을 듣고 싶어 한다. 특히, 살인범이 된 피해자의, 과거 가해자를 향한 '정당한' 복수의 사연은 용인할 수 없는 살인의 용인하고 싶은 색채를 띈다. 거기서 우린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이 소설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치명적인 '복수'의 사연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욱 인간 본성/본연을 건드리는 단순하고 정확한 욕망의 사연 말이다. 거기엔 '돈'과 도덕성 흠결의 용인이 조금씩 올라가 절정에 다다르는 운명적 욕망의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보상'의 당연성이라는 욕망은 누구든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당연하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보상은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 그런 사람은 세상을 원망하며 참으로 위험하다. 그보다 훨씬 고생을 많이 한 사람도 자기 인생에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장담컨대, 그런 사람들이 훨씬 많다. 결국, 행복과 불행은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 아닐까... 불행이 불행의 꼬리를 무는 이 고리가 부디 끊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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