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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경계를 넘나들고, 경계가 무너지는 대단하고 충격적인 경험 <경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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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경계선>


영화 <경계선> 포스터.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스웨덴 출입국 세관원으로 일하는 티나, 그녀는 냄새로 감정을 읽어내어 손쉽게 불법 입국자를 적발한다. 일 잘하고 신뢰 가는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괴물 같은 외형을 가져 스스로를 타인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킨다. 차를 타고 한참을 들어간 숲 속에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도박꾼과 함께 살아가는 게 그 일환이라 할 만하다. 


그녀는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출근해 불법 입국자 적발에 여념이 없다. SD카드에 아동 포르노를 잔뜩 넣은 멀쑥한 남자 한 명을 잡고는, 또 한 명의 남자를 잡고자 한다. 그런데, 그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음 날 또 만난 그, 역시 잡아들였지만 문제가 없었다. 분명, 불법의 냄새가 났는데 말이다. 사실 그에게서 나는 냄새에는 알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뭔가 본능적으로 끌리는... 그리고 그의 외모 또한 자신과 비슷했다. 


한편, 티나는 아동 포르노 사건의 뒤를 캐는 데 그녀만의 능력으로 도와준다. 그런가 하면, 알 수 없는 그 보레가 기거하는 호스텔로 찾아가선 얘기하다가 벌레를 먹게 된다. 이제까지 살아오며 아리송했던 자신의 정체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급기야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선 함께 살자고 제안하는 티나, 그들은 곧 사랑에 빠진다. 보레와의 사랑은 티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티나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동 포르노 사건 뒤에 보레가 있다는 걸 알고 고민에 빠진다. 그녀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경계를 넘나들다


영화 <경계선>은 이란 출신의 스웨덴 감독 알리 아바시의 2018년작으로, 제71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의 쾌거를 이룩했다. 한국엔 2019년 10월 말에야 개봉되었으니, 최초 개봉 이후 1년 반만에 늦게 소개된 것이리라. 뛰어난 작품성과는 별개로, 쉬이 가시지 않는 충격이 작품을 휘감고 있기 때문에 수입하기까지 오랜 고심이 필요했으리라고 추측해본다. 


영화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거니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한 명작 스웨덴 영화 <렛 미 인>의 원작자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동명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북유럽 특유의 자연 경관 배경, 기기묘묘한 스토리, 아름답고 슬픈 서정적 로맨스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경계선> 또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보다 심도 깊게 생각할 거리가 넘치고 넘치는 게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괴물의 외형을 한 티나와 보레를 중심으로, 영화 내적으론 인간과 비인간, 남성과 여성, 아름다움과 추함,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의 경계를 넘나들고 영화 외적으론 신화와 현실, 판타지와 스릴러를 넘나든다. 그런가 하면, 경계에 대해 정답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는 나름대로의 해답을 내놓기도 한다. 


스웨덴 난민 문제로의 확장


티나로 말할 것 같으면, '못생겼다' 정도가 아닌 '괴물 같다' 정도의 외형을 가졌다. 냄새로 감정을 읽고, 사람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며, 숲속에서 평안을 찾고, 동물과 가까이 지낸다. 보레가 말하길 티나는 인간이 아닌 멸종 위기에 처한 종족 '트롤'이라는데, 사실이라면 티나의 모든 걸 합당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그녀' 티나는 여성으로서의 성관계를 할 수 없었던 게 남성의 생식기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티나라는 존재 자체가 경계선을 말한다. 태생으로 저쪽에 속하지만 후천적으로 이쪽에서 지내왔기에, 뭐라고 한마디로 지칭할 수가 없다. 어떤 존재를 두고 반드시 한마디로 지칭해야만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게 만드는 게 이 영화의 목적일 텐데, 100%에 가깝게 달성했다 해도 무방하다. 티나는 그도 그녀도 되고 인간도 트롤도 된다. 티나와 보레는 추하지만 아름답다. 보레는 옮지 않은 일을 하지만, 인간의 시선에서일 뿐이다. 


영화 밖으로 확장시켜 보면, 이란 태생으로 스웨덴에서 활동하고 있는 알리 아바시 감독이 보이고 나아가 스웨덴의 난민 수용 갈등이 보인다. 알리 아바시 감독에 대해선 잘 모르니 뭐라 말할 순 없겠으나, 스웨덴의 경우 문제시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북유럽하면 떠오르는 포용, 화합, 융합의 정책이 최근 몇 년간 유럽을 강타한 난민 문제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모로 흔들리는 사회와 경제의 원인을 이민자와 난민자들에게 전가시키는 모양새라고 한다. <경계선>을 스웨덴의 현실에 적용시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미묘한 경계 도는 경계의 미묘함


문제작으로서의 작품 외향적 분석과 함께, 작품성으로서의 내면 분석도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영화는 뇌리에서 쉬이 지워질 것 같지 않은 굉장한 캐릭터성이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런데, 정작 활동성 있고 와일드한 액션을 취하지 않는 정적 연기를 펼친다. 와중에 카메라는 주인공의 표정과 움직임을 살피는 데 수시로 클로즈업을 사용하는데, 그 미묘함을 포착하고자 한 것 같다. 미묘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경계'를 표현하는 주된 소재가 아닐까 싶다. 알게 모르게 '미묘한 경계' 또는 '경계의 미묘함'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비록 한순간일지도 모르지만 한 발 떨어져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오직 나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순식간에 차원과 시간과 공간을 넘어 통합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바라본 인간은 '한낱'이라고 표현해도 과분한 존재가 아닐까.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본 수많은 경계들이 허물어지는 대단한 경험을 한다. 곧 극중 티나의 경험이다. 


영화의 중반, 가히 충격적이고 불쾌하기까지 하지만 일면 이해가 되는 순간 아름다운 광경으로 재탄생하는 장면을 목격할 것이다. 영화가 끝날 때쯤엔 괴물 같이 추했던 티나가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영화의 모든 면면들이, 우리의 시선을 강탈하고 머릿속을 헤집어놓으려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열어주기 위한 것임을 깨닫길 바란다. 물론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각의 몫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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