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카오스 멍키>
<카오스 멍키> 표지 ⓒ비즈페이퍼
'소설처럼 재미있다'는 말이 경제경영서나 자기계발서만큼 잘 어울리지 않고 통용되지 않는 장르도 드물 것이다. 아무리 읽기 쉽게 변형을 가한다고 해도, 기본이자 본질이 되는 곳에 도사리고 있는 건 언제나 교훈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들은 이야기가 아닌 사례에서 파생된다. 이야기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과 다르게, 사례는 그 자체로 수단이 되어 교훈에 목적이 있다.
경제경영서와 자기계발서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단어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혁신'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장르의 책들은 절대 기존의 것을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한다는 뜻의 혁신을 행하지 않는다, 못한다. 온갖 혁신적인 사례와 교훈을 들먹이며 혁신의 찬가를 불러대도 말이다.
여기 '혁신'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는 책 한 권이 있다. 명색이 경제경영서이지만, 저자 자신의 삶과 저자가 몸담았던 월가 및 실리콘밸리의 민낯을 말그대로 낱낱이 파헤쳐 까발린 책 <카오스 멍키>(비즈페이퍼)다. 신기하고 특이하게도 이 책은 소설보다 더 재미있으면서 왠만한 경제경영서와 자기계발서보다 더 진득한 교훈이 있다.
저자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아마 사실이겠지만, 우리가 다른 건 몰라도 매일같이 몇 시간이고 매달리는 것들이 만들어지고 운영되어지는 실리콘밸리는 '똥구덩이'다. 그동안 수없는 내부고발로 이미 똥구덩이인 줄 잘 알고 있는 정치판이나 금융계완 달리 IT업계는 순수한 이들만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완전히 똑같다는 것이다.
저자의 삶으로 들여다보는 IT업계의 속살
책은 저자의 직업 일대기를 따라 진행된다. 저자가 직접 자신의 삶을 내보이며 자신이 속했던 직업계의 모습모습들로 완벽한 '재미'를 주고 나름의 '교훈'을 주고자 한 것이다. 버클리라는 초일류는 아니지만 충분히 일류에 속하는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를 취득하고 국제금융시장을 대표하는 투자은행 겸 증권회사 골드만삭스에 취업한다. 저자는 기업신용파생상품부에서 가격결정을 담당하는 퀀트였다.
이 똥구덩이에서 여러 개새끼들과 함께 큰 수익을 가져다주는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는 일을 해왔던 저자는, 우연히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에 관한 기사를 접하고 '애드케미'라는 회사에 지원해 입사하게 된다. 그곳은 수학을 이용한 광고 최적화 프로그램 개발사였다. 무너져 내리는 자본주의의 격랑 한복판인 월가에서 나름 격리되어 있고 외떨어진 IT업계야말로 최후까지 살아남으리라 생각했다고 말한다. 과연 그러한가?
하지만 저자가 생각하기에 애드케미 또한 똥구덩이인 건 마찬가지, 얼마 못 버티고 엔지니어 두 명과 함께 스타트업 회사 애드크로크를 창업하며 그곳을 나온다. 그들은 실리콘밸리 최고 최대의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와이 콤비네이터의 우산 아래에서 회사를 시작하고 이끌어간다. 그야말로 모든 걸 내팽겨친 채 회사에만 매달려 열심히 하고 잘 하고자 그들에게 '트위터'가 접근한다.
하지만 저자가 생각했던 금액의 절반 정도밖에 제시하지 않는 트위터와의 협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페이스북에도 제안을 하고, 페이스북은 저자의 동료들이 아닌 한 명만 입사하길 원한다. 이에 애드크로크는 트위터에 인수당하고, 저자는 페이스북의 광고팀에 입사한다. 황당하기 그지없고 앞뒤 없는 무례한 방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리콘밸리에서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모습이란다. 이쯤에서 다시 나오는 똥구덩이...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주도하는 인간쓰레기들
650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절반쯤 도착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저자의 페이스북에서의 치열하고 황당하고 비열하고 당황스럽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현재 전 세계 최고의 기업이자 가장 유명한 기업이자 누구나의 생활 속에 이보다 깊숙이 들어와 있는 기업이 있을 수 없을 만큼의 기적을 일구어낸 기업 페이스북.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2013년 전까지 페이스북의 수익은 한심할 정도였고 광고규모는 놀라우리만큼 작고 매력 없었으며 기성 관리 툴은 버그로 가득해서 쓰기가 괴로울 정도였다.
사실 이 책의 절반 정도는 알 수 없는 말들로 가득 차 있다. 금융계와 IT업계에서만 쓸 법한 수많은 단어들의 향연, 당연히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을 텐데 그럼에도 아주 빠른 속도로 읽고 큰 무리 없이 지나갈 수 있는 건 우리 모두가 알 만한 기업 페이스북과 역시 우리 모두가 알 만한 IT업계의 다양한 이름들 덕분이겠다. 물론 저자의 거침없는 풍자와 자학,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할 정도의 실랄한 내부고발과 실명비판도 큰 몫을 차지한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건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브 잡스 '소시오패스론'이다.
애플 창업 초기 핵심 동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을 비롯 직원들을 등쳐먹고 끝까지 착취했던 스티브 잡스, 경쟁자의 아이디어를 가로채 IBM에 Dos를 납품했던 빌 게이츠, 쌍둥이 형제의 아이디어를 훔쳐 비록 수천만 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했지만 족히 수백억 달러를 버는 지금의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까지. 이들이야말로 대표적인 '카오스 멍키'다. 카오스 멍키는 서버가 늘어선 데이터센터에서 원숭이가 케이블을 뽑고 서버를 부숴 난장판을 만들듯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일부러 프로세스와 서버를 다운시킴으로써 그러한 공격에서 성능 저하 없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실험하는 내부 결함 테스팅 툴로 넷플릭스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저자 또한 그 자신이 카오스 멍키나 다름 없는데, 책은 그들이야말로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주도한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를 포함,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회사와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는 사람과 회사들은 하나같이 '쓰레기'들이지만 그렇게 해야만 이 실리콘밸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야말로 실리콘밸리를 이끌며 떠받치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를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진정한 혁신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고 아마 내부동력으로는 영원히 바꿀 수 없지 않을까.
이들은 우리 모두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우리 자신과 하등 관련이 없다. 단순 물리적으로도 너무 먼 존재이고, 살아생전 절대 만날 수 없을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를 배우듯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듯, 실리콘밸리 신화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삶의 형태가 그들로 인해 바뀌어 왔지 않은가. 단순히 그들의 대외적인 모습만을 숭배하며 받아들일 것인가. 그들의 대내적인 모습을 면밀히 검토하고 받아들일지 말 것인지 결정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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