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2016년 공쿠르상 <달콤한 노래>
소설 <달콤한 노래> 표지 ⓒ아르테
프랑스 파리 10구 오트빌 가의 근사한 아파트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한 보모가 자신이 기르던 아이 둘을 살해하고 자신 또한 죽으려 했다. 남자 아기는 즉사했고 여자 아이는 병원으로 가던 도중 사망했다. 이 충격의 시작점은 어디인가. 보모는 왜 그런 짓을 저질렀을까. 아이들은 왜 죽었어야 했을까. 시간은 아이들의 부모가 버티다 못해 보모를 들이려는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폴과 미리암은 둘째를 낳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알았다. 무리해서라도 보모를 들여야 했다. 루이즈는 완벽한 보모다. 처음 본 순간부터 아이들을 완벽히 다루었다. 하지만 그녀의 실생활은 너무도 불안하다. 집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일터로 가서 아이들을 케어하고 일터를 완벽히 꾸며놓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뿐.
덕분에 폴과 미리암은 자신의 일터에 완벽히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루이즈는 요정이었다. 그래서 루이즈를 가족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순간들이 지나간다. 하지만 영원할 순 없다. 그들은 루이즈가 얼마나 필요한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를 견디기 힘들다. 너무 완벽하고 예민해서 가끔 혐오감 같은 게 드는 것이다.
폴과 미리암이 자신들의 편함을 위해 아이들을 루이즈에게 맡긴다. 루이즈는 보모 역할을 완벽히 수행할 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완벽히 수행한다. 폴과 미리암, 아이들 그리고 루이즈 모두 행복하다. 그런데 어느새 이 집과 아이들은 루이즈의 것이 되었다. 미리암은 아이들을 뺏긴 것 같다. 그런 미리암의 생각이 루이즈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게 루이즈는 결국 거절당하고 마는 것인가.
참혹한 서늘함, 그 중심엔 알 수 없는 루이즈...
2016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공쿠르상 수상작 <달콤한 노래>(아르테)는, 레일라 슬라마니의 불과 두 번째 소설이다. 그녀는 이 소설로 완벽하리만치 참혹한 서늘함을 선사한다. 동시에 한없이 안으로 안으로 천착해 들어가는 소용돌이의 궤적을 느낄 수 있다. 결국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는 이 소설에 나오는 누구보다 루이즈에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루이즈에 대해 많이 듣게 될 수밖에 없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현재를 살아가며 어떤 마음이고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자세히 알게 된다. 하지만 우린 그녀를 잘 모른다. 그녀가 왜 아이들을 죽였는지부터 시작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규정짓지 못한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 일터에서 비로소 자신의 가치를 찾아 발현할 수 있는 사람, 그는 일터를 떠나는 순간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불행한 삶을 살수록, 삶의 본연 외의 것에서 자신을 찾고 가치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다른 건 잘 몰라도 루이즈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다.
또 이런 생각도 가능하다. 아이들을 완벽히 보살피고 집안을 완벽히 케어하고 폴과 미리암의 행복을 지켜보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루이즈는, 일평생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던 것들을 이 집에서 성공시키려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럴 때 이 집은 그녀에게 일터가 아닌 또 다른 삶의 공간이다.
씨줄과 날줄로 엮어져 있는 감정선들
소설은 온갖 감정선들이 씨줄과 날줄로 치밀하게 엮어져 있다. 그중 가장 치열하게 부딪히는 선들은 엄마와 보모와 아이들의 것들이다. 엄마 미리암, 또 다른 엄마인 보모 루이즈, 그리고 아이들. 아이들은 이성보다 감정 아니 본능에 가깝다. 그들은 엄마보다 보모를 따른다. 엄마 이상의 애착을 느낀다.
엄마는, 적어도 이 소설에서 엄마 미리암은 이성에 가깝다. 남편 폴이 음악을 공부하면서 이성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캐릭터라면, 반면 그녀는 법을 공부했기에 이성에 가까운 캐릭터로 그려진다. 어찌 되었든 그녀는 아이들보다 자신의 삶을 선택했다. 아이들과 멀어지는 건 당연한 게 아닌가.
루이즈는 아이들 너무나도 잘 다룬다. 아이들이 원하는 게 뭔지 잘 안다. 감정에 가까운 그녀다. 그러면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부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까지도 정확히 캐치한다. 감정적이지만 이성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이런 상태는 깨지기 쉽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 괜찮지만, 그녀의 삶이라는 게 극단과 극단을 오가지 않는가. 그녀가 분해되면서 날아간 파편들은 관계된 모든 이들에게 향한다.
이토록 특징 없고 존재감 없고 어떤 사람인지조차 잘 알지 못하는 캐릭터가, 이토록 큰 임팩트와 여운을 남기는 경우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그리고 소설은 시종일관 단 한순간도 여지없이 온갖 부정적인 느낌을 이어간다. 긍정적인 느낌을 한순간이라도 느낀다면 그건 더 큰 부정을 위한 도움닫기일 뿐이다. 공포, 공포의 궁극이 아닌 공포의 보편, 소용돌이쳐 안으로 안으로 말려 들어간 그 끝에 있는 건 공포의 심연이 아닌 공포에 휩싸인 광활한 대지가 있을 것이다.
달콤한 노래 -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arte(아르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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