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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나의 도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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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것이 나의 도끼다>


<이것이 나의 도끼다> 표지 ⓒ은행나무



3년 전쯤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굉장히 의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지난 수십 년간 '파리 리뷰'라는 세계적인 문학잡지에서 20, 21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를 인터뷰해왔는데, 도서출판 다른에서 설문을 통해 가려내 단행본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1, 2, 3권 각각 12명씩 소개했고 내가 본 건 1권, 거기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움베르토 에코를 비롯해 무라카미 하루키, 밀란 쿤데라,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이 있었다. 


그야말로 소설가들 위에 군림하는 소설가들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건 의외였는데, 소설 쓰는 건 '노동'이라는 것이었다. 흔히 소설가를 비롯 예술가를 생각하면 연상되는 신의 어깨 위에 올라탄 천재의 이미지와는 정반대. 충격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개인적으로 한때나마 소설가를 꿈꾼 적이 있기에, 둔재도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과 안도감을 심어준 고마운 책이었다. 


이 책을 보고 나면 우리나라에도 있었으면, 우리나라 작가들의 인터뷰집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당연할듯, 이 책의 영향인지 나의 바람을 들었는지 2015년 7월에 'Axt'라는 소설 서평 잡지가 생겼고 소설가 심층 인터뷰가 커버 스토리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번에 10명 분을 모아 단행본으로 나왔다. <이것이 나의 도끼다>(은행나무). <작가란 무엇인가>가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를 표방했다면 이 책은 '소설가들이 소설가를 인터뷰'를 표방한다. 비전문적일지 모르나 더 심도 있고 심층적일 수 있겠다.


장르문학과 순문학의 경계


이 책에서 인터뷰한 10명의 작가는 나름대로 구분이 되어 있는 것 같다. 파스칼 키냐르(프랑스)와 다와다 요코(일본, 독일)는 외국 작가라는 공통점 외에 인터뷰가 상대적으로 너무 짧았고 또 직접 대면하지 않은 관계로 심층적인 대화를 하지 못한 것 같아 제외하기로 하고, 남은 8명은 4명씩 구분되어 진다고 생각한다. 철지난 구분일지 모르지만, 순문학과 장르문학으로 말이다. 공지영, 이장욱, 김연수, 윤대녕은 순문학에, 천명관, 듀나, 정유정, 김탁환은 장르문학에 가까운 것 같다. 


그들 자신은 부정할지 모르지만 외부에서 보기엔 순문학 쪽은 문단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게 아니더라도 문단에서 수여하는 문학상들을 다수 수상한 작가들인 건 분명하다. 이 네 명 중 이장욱을 제외한 세 명이 국내 최고 권위 문학상이라 할 만한 이상 문학상을 수상했다. 반면 장르문학 쪽은 문단과는 크게 관련 없이 대중과 밀접한 글을 쓰는 것 같다. 작가나 소설가라는 호칭보다 '이야기꾼'이 어울린다고나 할까?


물론 여기 실린 작가들은 하나같이 국내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소설가들이다. 더불어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글을 뽑아내는 장인들이다. 그게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이겠다. 개인적으로 장르문학 혹은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에 서 있는 두 기수 천명관과 정유정 인터뷰가 의미 있게 다가왔다. 공지영, 김연수는 그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많이 할애했고, 이장욱, 윤대녕은 재미없었으며, 듀나는 알 수 없었다. 김탁환은 평소 긍정적이지만은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좋은 인터뷰였다. 그는 장인이었다.


소설가 천명관과 정유정이 말하는 소설


'문학을 계속 사랑하기 위해선 일단 밥벌이가 되어야 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천명관, 시종일관 한국 문단에 맹폭을 날리며 사이다 발언을 이어간다. 시스템이 만들어낸 작가는 이미 세상에서의 유효성을 상실했고, 절대 무너지지 않는 권력인 문단마피아가 그 원인이며, 그 대안으로 대중 위에 군림하는 대신 대중과 소통하며 모든 걸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인터뷰어는 그를 문단 외부와 내부의 경계, 또 순문학과 장르문학 경계에 서 있는 이라고 했는데, 결코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나 또한 천명관의 글을 좋아하는데, 결코 막힘이 없고 고민조차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한편 힘 있고 의미도 있는 무엇보다 재미있는 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래>의 충격은 앞으로도 오래오래 갈 것이다. 소설의 한 축을 지탱하는 데 충분한 작품이고 작가이다. 앞으로도 대부분의 작가들이 문단을 통해 데뷔하고 활동을 이어가겠지만 그와 같은 생각과 활동을 하는 작가도 나와주길 바래본다. 


'힘 있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꿈꾼다'는 작가 정유정,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으로 이어지는 최근 한국소설로는 찾아보기 힘든 베스트셀러 행진의 주인공이다. 이중 <7년의 밤>을 읽었고 나머지 둘은 아직 읽지 못했는데, 그 어마무시한 흡입력 때문에 고민이 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너무 빨려들어갈 것 같아서 말이다. 그의 소설은 시간 있을 때 읽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읽어야 한다. 


그는 소설이나 글보다 '이야기'를 말한다. 재미와 의미의 조화로서의 이야기를 통해, 세계에 대한 시선을 확장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만들어주고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는다. 비록 그의 소설은 한 편밖에 읽지 못했지만 그 안에는 그가 말한 것들이 충분히 녹아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소설가의 피나는 노력 하의 핍진한 소설 쓰기가 거기에 있었다. 그는 그저 소설로 모든 걸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가가 되려는 이에게 정유정의 인터뷰는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매우 실제적인 도움을 말이다. 소설가로서의, 소설로서의, 그리고 소설가가 만드는 소설로서의. 반면 천명관의 인터뷰는 소설계 내부와 소설 독자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길 것이다. 그의 남다른 스케일을 가늠하며, 그를 더 자주 찾게 만들 게 분명하다. 


소설, 소설가, 소설계, 소설 독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최근 몇 년간 여러 불미스러운 사태 때문에 안 그래도 침체 일로인 한국 문학계가 더욱 침체된 감이 있다. 이 책은 그 진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일종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초석으로 만들어진 것일 테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다시 소설' '그래도 소설' '결국 소설' '오직 소설'이 아닐까 싶다.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는 더욱 피나는 '소설'로서의 침잠,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소설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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