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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천재' 라마누잔과 '그를 알아준' 하디 교수의 특별한 관계 이야기 <무한대를 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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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무한대를 본 남자>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천재' 영화. 이번에는 어떤 천재를 그려낼까? 그에게서 천재말고 어떤 특별함을 찾아낼 수 있을까? ⓒ판씨네마(주)



천재에 관한 영화를 꽤 봐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아마데우스>는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에 관한 영화이고, 주기적으로 다시 보는 <굿 윌 헌팅>, <뷰티풀 마인도>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천재 영화이다. 재작년과 작년과 올해에도 천재 영화를 봤는데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이미테이션 게임> <세기의 매치>가 그것이다. 역시 모두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다. 


2016년이 저무는 지금, 또 하나의 천재 영화가 나왔다. 인도가 낳은 세계적인 천재 수학자 '라마누잔'의 삶을 옮긴 <무한대를 본 남자>. 라마누잔의 천재성을 알아준 '하디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라마누잔은 다름 아닌 영국에 의해 점령당한 식민지 인도 출신인 것이다. 반면 하디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 교수이자 왕립학회 회원이고. 정녕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둘은 라마누잔과 하디였지만, 누군가에겐 '식민지 유색인종'과 '영국의 저명인사'였다. 


빈민가에서 죽어갔을지 모를 '천재' 라마누잔



역사에 길이남을 수학 천재 중 한 명인 '라마누잔'. 그는 인도 빈민가에서 평생 지내다 그렇게 죽어갈 운명이었다. 그런 그에게, 그리고 수학계와 인류에게 빛이 되는 존재가 있으니, 대영제국의 하디 교수다. ⓒ판씨네마(주)



영화는 '천재' 라마누잔의 삶을 엿보며, 라마누잔과 하디 교수의 특별한 관계를 조명한다. 당대 수학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라마누잔, 그는 하디 교수가 아니었으면 식민지 인도의 어느 빈민가에서 죽어갔을 것이다. 한편, 하디 교수 또한 라마누잔을 발견해내 따로 또 같이 연구함으로써 세계 수학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파트너였다. 


라마누잔은 인도 마드라스의 빈민가에서 일자리를 찾아다닌다. 숫자에 관해선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실력을 갖춘 그는 회계 일을 하고 싶어했고, 인도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거절을 당한 끝에 우체국 회계과에서 일을 한다. 그곳에서 만난 인도인 상사는 그의 천재적인 수학 실력을 알아채고 더 큰 세계인 영국으로 떠날 것을 중용한다. 누구 한 사람만 알아주라는 기대로, 수없이 많은 편지를 날리는 라마누잔. 그 편지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하디 교수한테까지 전해진다. 


단번에 라마누잔의 천재성을 알아챈 하디 교수는 동료 교수와 합심해 라마누잔을 데려온다. 라마누잔은 머릿속에서 춤추는 수많은 수학 공식과 숫자들을 뿜어내기 위해 갓 새신부와 어머니를 뒤로 한 채 영국으로 간다. 그는 매일 하디 교수의 집무실로 찾아가 개인 교습, 토론, 연구를 계속한다. 하디 교수는 라마누잔이라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다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한편 라마누잔은 유색인종, 종교로 괴롭힘을 당하고, 집과 가족이 너무 그리워 앓기도 하는 와중에도 열심히 정진하지만, 급기야 결핵에 걸리고 마는데...


라마누잔를 발견해낸 하디 교수


대영제국의 왕립협회 회원이자 저명한 교수인 하디 교수. 그는 식민지 인도의 일개 회계원의 천재성을 간파하고 그를 영국으로 불러와 함께 수학의 차원을 몇 단계 올리는 일에 매진한다. ⓒ판씨네마(주)



거의 매년 만들어다시피 하는 천재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엔 얼마나 많은 천재가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러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천재 이야기에 열광하는가 궁금해진다. 대부분의 일반인이 천재가 아니기 때문일 텐데, 그들에게 천재란 '특별'하고 '다른' 삶일 것이다. 평생 직접 겪어볼 수 없기에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보고 싶은 게 아닐까. 그래서 천재 이야기는 오락성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천재 이야기는 많은 경우 실화이고, 실화는 오락성을 표출하기에 한계가 있기에 정극으로 가곤 한다. 그럼에도 천재의 삶이 대부분 평범하지 않고 우여곡절이 많기에, 그 자체로도 극적인 요소를 많이 담고 있다. <무한대를 본 남자>도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천재라는 사실을 감안하고서라도 라마누잔의 삶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기 힘든 경험이 주를 이룬다. 


그렇지만 영화가 '천재'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천재' 라마누잔과 그를 알아준 하디 교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천재 '라마누잔'과 '그를 알아준' 하디 교수의 이야기인 것이다. 제목이 내포하고 있는 바와는 거리가 좀 있어 보인다. 재미는 많이 퇴색되고, 감동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것이 괜찮은 선택이었는지는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할 듯하다. 


개인적으론 무난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수학' 천재가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진 않을 거다. 음악, 미술, 건축과는 달리 오직 그들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치열함이나 그의 위대함이 제대로 비춰질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럴 바엔 그 부분을 줄이는 게 좋을지 모른다. 반면, 천재만의 특별하고 다른 세상을 제대로 드러내 보이지 않은 건 또 그런 영화만이 가지는 장점을 퇴색시켜버린 게 된다. 그 경계선에서 줄타기를 잘 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난했다는 건 경계선을 많이 침범하곤 했다는 의미이다. 


라마누잔과 하디 교수의 특별한 관계 이야기


수학계를 몇 단계 끌어올린 라마누잔의 천재성은 역사가 보증한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을 알아봐준 하디 교수야말로 정녕 위대한 인물이다. 그런 그들의 특별한 관계는 아름답다. ⓒ판씨네마(주)



이 영화가 승부를 본 건 다름 아닌 '관계'이다. 라마누잔과 하디 교수의,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관계 말이다. 첫째로 그들은 제국 영국인과 식민지 인도인 사이다. 둘째로 왕립협회 회원의 교수와 무명인 사이다. 셋째로 그들은 절대적 무신론자와 독실한 종교인 사이다. 당시로선 그야말로 하늘과 땅 사이보다 더 먼 사이인 것이다. 그런 그들 사이에 '관계'라는 말이 들어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그 기적은 라마누잔의 천재성보단 하디 교수의 태도에 기인한다. 


라마누잔과 하디 교수가 만나면서 영화는 '천재' 이야기에서 '관계' 이야기로 무게의 중심이 옮겨진다. 여기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영화로 소개되지 않았던 또 다른 천재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조금은 다른 방향에서 보여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그들만의 특별한 관계의 세계로 들어온다면 후회하지 않을 거다.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 


하디 교수의 라마누잔을 향한 관심과 애정은 지극히 사적인 것 같지만 사실 지극히 공적이다. 천재인 그를 총애해 그를 향해서만 애정을 쏟으며 자신의 시간과 공력을 투자해 가르치고 그의 공식이 공신력을 얻을 수 있게 발벗고 나선다. 라마누잔에겐 기적과도 같은 이런 상황을, 어째서 하디 교수는 정력적으로 만들게 되었을까. 그건 라마누잔으로 하여금 수학계를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게 하려는 의도의 발현이다. 그것이 아니고는 하디 교수의 라마누잔을 향한 관심과 애정을 설명할 다른 도리가 없다. 돈? 명예? 권력? 모두 아니다. 


한편 라마누잔은 어떨까. 그는 머릿속에서 춤추는 무한대의 숫자와 공식들을 밖으로 보여내기 위해 하디 교수를 찾았다. 말그대로 그의 머릿속엔 수학 말고는 다른 무엇이 들어 있지 않았다. 가족도 뒤로 한 채, 자신의 나라를 식민지로 둔 제국의 한복판으로 오지 않았는가. 그때 이미 결정이 난 것이리라. 그의 인생에서 다른 무엇도 필요 없다는 것을. 그 부분에서 라마누잔과 하디 교수는 일치단결했다. 


올바른 관계 설정은 정말 어렵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법 아닌가. 어려울 때 도와준 이에게 평생 감사하며 은혜를 베푸는 게 또 인간의 도리 아니겠는가.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지만, 공이라는 게 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진짜 문제는 이런 것들이 아닐 거다. 우리는 알고 있다.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없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지극히 잘 알고 있는 그 선을 지키며 나아가는 게 어려울까. 관계 설정은 어려울지 모르나, 설정이 끝난 뒤 선을 긋는 건 '선(善)'과 '악(惡)'의 차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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