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여고생>
한국 영화 교육의 요람,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2016년 기획전의 한 작품인 <여고생>. 어떤 영화일까? 그동안 선보였던 영화들을 보자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CGV아트하우스
한국영화아카데미, 일명 'KAFA'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교육기관으로 2009년을 시작으로 매년 기획전을 연다. 장편영화제작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를 선보이는 자리로, 일종의 졸업 작품 전시회라고 할 수도 있겠다. 우린 은근히 이 기획전에 선보인 영화들을 많이 봐왔다.
작년에는 홍석재 감독이 SNS 마녀사냥을 소재로 한 <소셜포비아>를 선보였다. 한국 다양성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안국진 감독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선보였다. 이 영화는 한국 독립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기며, 흥행과 비평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주연배우 이정현은 이 영화로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2011년에는 윤성현 감독이 <파수꾼>이라는 한국영화계에 길이남을 명작을 남기며 그해 신인감독상을 휩쓸었다. 2014년의 <들개>라는 작품도 생각난다.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KAFA 기획전', 2016년에도 어김없이 돌아와 관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4작품 중 <양치기들>은 얼마 전에 보았다. 흥미로운 소재와 알찬 연기가 인상적이었는데, 딱히 좋다 나쁘다 할 만한 게 없었고 끄집어낼 요소가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 보게 된 작품이 <여고생>이다. 어떤 매력을 선보였을까?
신선하고 패기 넘치는 감독과 배우들의 앙상블이 이 작품에도 잘 드러났을지 기대된다. 신인 감독의 작품인 만큼 신선함과 패기를 앞세우고 발전의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 중엔 완벽에 가까운 솜씨를 뽐내는 이도 있겠지만, 어설프게 기존의 영화 공식을 답습하며 '완벽'을 꿈꾸려 하면 안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고생>은 많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아주 괜찮은 영화였다.
여고생 둘, 없어진 엄마 찾아 가다
'여고생 둘의 좌충우돌 엄마 찾기' 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영화는 '좌충우돌 엄마 찾기'에 돌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나 다름없다. ⓒCGV아트하우스
영화는 혼자 사는 여고생 진숙이 하루를 시작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일단 궁금하다. 그녀는 어린 나이임에도 왜 혼자 사는 걸까? 여하튼 그녀는 학교에 등교한다. 듣고 보니 전학을 온 거였고, 알고 보니 전 학교에서 사고를 쳐서 강제로 전학을 오게 된 거였다. 그녀는 대형 문제아였던 것이다. 그런 그녀 앞에 같은 반 은영이 스윽 나타난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엔 뜬금없이 엄마하고 같이 며칠 집에서 지내고 싶단다. 이유는 모르지만 차마 거절은 할 수 없는 진숙은 허락한다.
한편 낮에는 학교, 밤 늦게까지 편의점 알바를 하는 진숙은 열심히 돈을 모은다. 아일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겠다는 꿈. 하지만 세상은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학교 선생은 그녀를 불러내 훈계하고, 돈문제로 얽힌 패거리들은 그녀를 계속 찾으러 다닌다. 급기야 며칠 기거를 허락해준 은영의 엄마가 어느 날 모아둔 돈과 함께 사라져 버린 게 아닌가.
진숙과 은영은 함께 은영의 엄마를 찾으러 다닌다. 무뚝뚝하고 쌀쌀 맞지만 터프하고 임기응변이 뛰어난 진숙과, 소심하고 울보에 진저리치게 쑥맥 같지만 잘 웃고 친절하고 엔돌핀이 돌게 만드는 은영의 콤비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알아간다.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님이 안 계시는 진숙, 부모님의 이혼 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힘겹게 살아가는 은영. 그들은 은영의 엄마를 찾아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영화는 그들이 은영의 엄마를 찾으러 나서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나 다름없다. 추적하다 보니 은영의 엄마에 연관된, 나아가 은영에 연관된 사건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어설프게나마 사건의 진실에 가깝게 다가가는 그들의 운명은 어떤 식의 국면을 맞이하게 될까? 그 뒤에 숨겨진 사건이 궁금하다.
조금 떨어지지만,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영화
영화 <여고생>은 그동안 봐왔던 수작 독립영화보다 객관적으로 조금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발전 가능성은 훨씬 농후하다. 실험적인 정신과 패기가 돋보이기 때문. ⓒCGV아트하우스
좋게 생각할 수도 한없이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는, <여고생>은 그런 영화다. 짜임새가 형편없을 정도의 수준을 자랑(?)하는데, 또 그게 굉장히 실험적으로 비춰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90여 분 정도의 짧은 러닝타임 안에 상당한 장르들이 연이어 이어진다. 그렇지만 OST 등으로 끌고 가는 전체적 분위기 자체는 샤랄라 하기까지 하다. 그러다 보니 장면과 사건들 간에 개연성이 떨어진다. 설명이 잘 되지 않는 것이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한두 가지가 아닌 듯하다.
하지만 'KAFA 기획전'이라는 타이틀이 추구하는, 추구해야 하는 '신선함'과 '패기'엔 어떤 작품보다 걸맞다고 할 수 있겠다. 여러 장르와 메시지가 공존한다. 진숙이가 은영과 은영의 엄마에게서 스리슬쩍 느낀 '가족의 마음', 드라마 장르다. 진숙과 은영이 패거리들과 대치하며 도망가는 장면, 액션 장르다. 진숙과 은영이 은영의 엄마를 찾으러 가는 과정, 추적 액션 스릴러 장르다. 그 와중에 살인 사건을 목격하고 휘말리기도 하니, 스릴러 장르다. 은영의 엄마와 연관된 사건의 전말, 사회 고발 장르와 더불어 블랙 코미디 장르다. 더 대라면 댈 수 있지만 이쯤에서 그만하겠다.
정녕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다양한 장르의 나열인데, 짧은 시간 안에 보여주려다 보니 짤막할 수밖에 없었다. 짤막하다고 당연히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순 없을 거다. 오히려 촌철살인의 묘미를 던져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렇게까지 하지 못했다. 흥미롭고 실험적인 도전에 머물렀다고 말하고 싶다. 장르가 바뀔 때마다 '장'을 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스친다. 더더욱 실험적이면서 대놓고 하고자 하는 말을 전할 수 있었을 텐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정 반대에 위치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두 개체, 진숙과 은영의 '연대'는 소중하다. 더불어 진숙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독립적인 개체로서의 '여성'의 모습도 소중하다. 또한 비록 어설프고 투박하지만 돈에 대한 기가 막힐 정도의 '욕망'과, 이미 돈에 눈을 떴지만서도 단칼에 '거부'하는 그들의 모습도 소중하다. 이 영화는 이처럼 소중한 것들을 상당히 보여주었다.
그동안 봐왔던 수없이 많은 '좋은' 독립영화들보다는 전체적으로 조금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통해 보여준 여러 모습들을 봤을 때 발전의 가능성은 농후하다. 오히려 여러 수작 독립영화의 감독들보다도 훨씬 더 그렇다. 어찌 보면 이 작품 <여고생>이야말로 독립영화다운 영화가 아니었을까, 싶다. 한국독립영화에서 일종의 정석처럼 여겨지게 된 '가해자와 피해자의 얽히고설힘을 통해 보여지는 한국사회의 속살 고발' 형식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정해진 형식은 계속 파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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