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맨 인 더 다크>
기존에 봐왔던 공포영화와는 또다른 차원에 있는 <맨 인 더 다크>. 거기에는 열광하지 않을 수 없는 요소가 있다. 뭘까? ⓒUPI코리아
본 지 열흘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생각만 하면 숨이 막힌다. 공포영화를 엔간히 봐왔던 사람으로, 말 그대로 '숨 막히는' 공포를 체험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는 걸 잘 안다. 공포영화는 웬만하면 깜짝깜짝 놀라며 소름 돋기 바쁘다. 때론 구역질이 나기도 할 거다. <컨저링>의 '깜짝' 박수소리는 지금도 생생하다. <캐빈 인 더 우즈>를 보고난 후 느꼈던 구역질도 여전히 생생하다.
영화 <맨 인 다크>는 여러 모로 다른 차원의 영화다. 공포영화답게 상대적으로 짧은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건 비슷하지만, 피해자가 공포의 대상이 되고 가해자가 당하는 입장에 처한다. 또한 공포의 대상, 즉 가해를 하려는 피해자가 '장님'이라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사건의 배경이 되는 곳은 다름 아닌 그 장님의 집이다.
숨도 쉴 수 없게 만드는 눈 먼 노인의 추격
사지 멀쩡한 세 명의 젊은 빈집털이범, 그에 맞서는 퇴역군인 출신의 눈 먼 노인. 믿기 힘들지만 눈 먼 노인이 빈집털이범을 일방적으로 쫓는다. ⓒUPI코리아
록키, 알렉스, 머니는 가정 보안 업체를 운영하는 알렉스가 마스터키를 훔쳐와 빈집털이를 아무 무리 없이 성공한다. 록키와 머니는 이대로만 몇 번 더 하면 이곳 디트로이트를 떠날 수 있다고 좋아한다. 알렉스는 회의적이다. 그런 그들에게 머니가 어둠의 경로로 거래하는 이한테서 고급정보를 물어온다. 주위에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마을에서 홀로 집을 지키는 노인이 있는데, 예전 딸을 죽게한 이한테서 거액의 보험금을 타낸 적이 있다는 정보였다. 더군다나 노인은 눈이 멀었다고 한다.
3총사는 형량의 급이 달라지기 때문에 물품도 1만 달러 이상은 안 되고, 현금 절도는 절대 안 된다는 그들만의 원칙을 깨고 한밤중에 눈 먼 노인이 홀로 사는 집으로 향한다. 일을 손쉽게 마무리할 줄 알았던 그들, 하지만 돈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힘들다. 그때 머니의 작업으로 기절한 줄 알았던 노인이 나타난다. 총을 들고 설친 머니는 별다른 힘을 못 쓰고 오히려 노인에게 총을 맞고 마는데... 남은 두 명의 존재를 눈치 챈 노인은 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집 문을 잠가버리고, 독 안에 든 쥐를 쫓는 격이 된다.
<맨 인 더 다크>의 원제는 'Don't Breathe'이다. 앞엣것은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는 배경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한밤중 집 안의 눈 먼 노인, 그에게 쫓기는 빈집털이범들. 뒤엣것은 다분히 눈 먼 노인에게 쫓기는 빈집털이범들의 입장에서 기술되었다. 관객 또한 당연히 그들의 입장이 더 와닿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노인의 집을 털려고 했지만,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가해와 피해가 뒤엉킨 혼돈의 도가니
분명 빈집털이범들이 가해자다. 눈 먼 노인이 피해자이고. 하지만 곧 뒤바뀐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또다른 가해와 피해의 뒤엉킴이 존재한다. ⓒUPI코리아
영화는 누구를 응원(?)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구도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혼용시키며 질문을 던진다.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와 돈을 훔치려 하는 그들은 죽어 마땅한가. 더군다나 그 중 한 명은 총까지 들고와 집주인을 위협했다. 사실 그 순간부터 정당방위는 성립되는 게 아닌가. 만약 영화가 그 정도에서 머물렀다면 굉장히 허접했을 것이다. 단순무식하기 짝이 없는 억지 공포 조장 영화가 되었을 듯.
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후반에 눈 먼 노인의 감춰진 무엇이 밝혀지며 급반전하는 것이다. 빈집털이범들이 남의 집을 터는 가해를 저질렀고, 집주인인 노인이 그들을 쫓고 죽이는 가해를 저질렀다. 그렇지만 노인의 가해는 정당한 가해이니 만큼 참작의 여지가 있다. 문제는 후반에 나오는 노인의 진정한 가해의 흔적이다. 물론 그들을 향한 가해가 아니라 그들이 애초에 벌인 가해가 없어지진 않지만, 이 노인이 저지른 가해에 비해선 새 발의 피다. 그러나 이 노인의 가해 또한 누군가의 가해로 인해 받은 피해가 만든 것이었으니...
그때 그들은 그동안 해왔던 고민을 말끔히 씻는다. 살기 위해 경찰에 신고 했을 때 이 집에서 훔친 거액의 돈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딜레마를 청산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범행보다 이 노인의 범행이 훨씬 더 심할 거라고 판단해, 경찰에 신고하고도 돈을 가지고 가려 한다. 과연 노인이 그들을 가게 놔둘까?
이 영화가 공포스러울 수 있었던 이유
이 영화가 특히 공포스러울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집'이다. 눈 먼 노인이 마치 눈 뜬 것처럼 다니는, 그렇지만 굉장히 복잡한 구성의 집. 아이러니한 숨바꼭질이 공포스럽다. ⓒUPI코리아
영화는 빈집털이범 3명과 눈 먼 노인 1명이 출연자의 거의 전부다. 여기에 머니는 초반에 죽었으니, 사실 3명이라 하겠다. 5명의 단역이 추가로 나오지만, 정녕 엄청나게 적은 인원이다. 적은 인원인 만큼, 잘 하면 영화가 정말 재밌을 테고 잘못하면 영화가 정말 빈털털이가 될 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최고급이었다. 거기엔 여러 것들의 조화가 있었다.
초반은 카메라의 구도와 워킹이 큰 몫을 했다. 본격적인 진행이 아직 시작되기 전이기에 긴장감을 조성해야 하는데, 카메라의 움직임이 거의 전부를 맡았다. 주인공들을 숨어서 관찰하는 듯한 구도, 앞으로 주요 배경이 될 집 안을 '스윽스윽' 살피는 듯한 움직임은 앞날에 있을 무시무시한 사건을 암시하는 것 같다. 중반 이후부터는 음악과 조명, 그리고 눈 먼 노인이 담당했다. 음악과 조명이야 공포영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절대필수적 요소이다. 또한 공포의 대상이 되는 인물 또는 무엇 또한 절대적 요소이다. 눈 먼 노인은 퇴역군인 출신다운 단단함과 담력, 카리스마를 장작하고 침입범들을 가차 없이 때려부순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공포스러울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집'에 있다. 그것도 눈 먼 노인이 눈 뜬 청년보다 훨씬 더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집 구조 말이다. 마치 이 집과 눈 먼 노인이 한통속이 되어 침입범들을 응징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거기엔 그 어떤 초자연적인 기괴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복잡다단한 집과 눈 먼 노인이 있을 뿐이다.
눈 먼 노인과 코앞에서 대치하는 침입범들의 모습은 정녕 숨을 쉴 수 없게 만든다. 내가 숨쉬면 눈 먼 노인에 의해서 그들이 죽어 나자빠질 것 같다. 영화 종반부, 눈 먼 노인이 집 안 전체의 불빛을 차단시켜 버리고는 침입범들을 쫓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가히 압권이라 할 만하다. 눈 먼 노인과 눈 뜬 청년의 '인 더 다크'는 당연 눈 먼 노인의 승리가 아닐까. 화면상이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공포의 순간이었다.
시종일관 사정없이 몰아부치며 매끄럽게 흘러간 공포, 마지막에 석연치 않은 여운을 남겨두는 미덕을 잊지 않았다. 아마도 2편을 염두에 둔 것이리라. 영화를 본 이라면 그걸 덥석 물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곤 오매불망 기다린다. 비록 공포의 대상이자 돌이킬 수 없는 가해를 저지른 이지만, 눈 먼 노인이 다시 나와 침입자들을 사정없이 패버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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