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바스티유 데이>
'프랑스 혁명기념일'을 뜻하는 <바스티유>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영화, 제목만큼 거창할까? 다분히 의도된 만큼 킬링타임용이자 팝콘무비다운 작지만 매운 맛을 보여줄까? ⓒ롯데엔터테인먼트
프랑스 혁명기념일 하루 전,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 폭탄이 터져 4명이 사망한다. 테러를 자행한 집단은 36시간 뒤에 또 다른 폭탄 테러를 자행할 것을 공표한다. 용의자는 파리에서는 전과가 없지만 여러 범죄를 저질러온 미국인 소매치기범 마이클 메이슨. CIA 파리 지부의 션 브라이어 요원이 메이슨을 쫓는다. 그런데 메이슨은 폭탄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그가 훔친 가방에 공교롭게도 폭탄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그가 훔친 가방의 주인인 조이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했다. 브라이어와 메이슨은 어느새 브로맨스를 자랑하며 함께 조이를 찾으러 다닌다. 36시간 뒤에 일어날 폭탄 테러를 막기 위해서다. 그들은 그 뒤에 숨겨진 거대한 진실에 한 발자국씩 다가간다. CIA와 프랑스 경찰, 테러리스트 집단, 테러리스트로 오해 받은 소매치기범까지 연류된 것이다.
'프랑스 혁명기념일'을 뜻하는 <바스티유 데이>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나온 이 영화는 CIA가 등장하니 첩보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심장을 쫄깃하게 하거나 눈을 즐겁게 하지는 못한다. 다만, 브라이어의 묵직한 액션과 메이슨의 화려한 소매치기 기술이 은근히 주의를 끈다. 기대는 하지 않고 보면 좋은데,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 킬림타임용, 팝콘무비로 나쁘지 않다.
얄팍하거나 진중하거나, 거대하거나 어이 없거나
영화는 초반이 볼 만하다. 다른 말로 거창하다. 그러나 초반이 지나면 조금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간다. 그러고선 얄팍함과 진중함이 교차로 보인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초반에 꽤 많은 공력을 들였다. 팝콘무비답지 않게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에, 구구절절 설명 없이 사건이 진행된다. 폭탄이 터지고 메이슨이 테러리스트로 몰리고 브라이어가 메이슨을 쫓기까지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러고 나서는 한 템포 쉬더니 스토리와 캐릭터들이 가미되고 영화는 조금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간다.
뭔가 훨씬 거대하거나 아예 다른 방향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한듯, 아니면 알고 서도 애써 부정할 만큼 어이 없는 음모인듯.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 음모는 상당히 어이 없는 음모였다. 제목과 분위기에 어울릴 만한 거대함이 아예 없다고도 할 수 있었다.
영화는 얄팍함과 진중함을 교차로 보여준다. 두 주인공이 나올 때는 얄팍함을 숨길 수 없고, 주인공을 둘러싼 세력들이 나올 때는 진중하기 짝이 없다. 애초에 두 주인공의 인연이 얄팍하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순간 한 몸처럼 움직이게 되었는지 이유를 알기 힘들다. 단 하나의 이유라치면, 브라이어가 메이슨이 테러의 진짜 범인이 아님을 알았다는 거다. 그리고 조이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것.
반면 그들을 둘러싼 세력들은 다름 아닌 그들 때문에 진중하다. CIA 파리 지부는 브라이어의 막무가내 성격을 제어하고자, 프랑스 경찰은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메이슨을 처치하고자 하면서도 그들만의 모종의 음모를 진행시키기 위해, 테러리스트 집단은 36시간 내의 테러를 실행시키기 위해. 그리고 조이는 사방으로부터 도망치랴, 자신 때문에 4명이 죽었다고 자책하랴, 가벼울 틈이 없다.
참으로 대단한 킬링타임용 영화
이 아저씨의 액션이 기억에 남는다. 많이 맞고 많이 때리면서 묵직하게 앞으로 전진하는 느낌, 또 다른 주인공인 소매치기범의 화려하다고 할 수 있는 손기술과 조화를 이룬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첩보물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액션이다. 화려하거나 묵직하거나 엄청나거나. 이 영화에서의 액션은 거의 브라이어 담당인데, 화려하지도 엄청나지도 않다. 도구를 이용하거나 아슬아슬한 가운데 싸우지도 않고, 상공에서 해상에서 도로에서 싸우지도 않는다. 그저 몸으로 묵직하게 싸울 뿐이다. 싸울 때마다 많이 맞고 많이 때리는데, 즐기기에 나쁘지 않다. 외려 현실적이랄까.
메이슨은 도망치는 거랑 숨는 거랑 훔치는 걸 담당한다. 액션이라면 액션일 수 있겠는데, 훔치는 것 빼곤 허술하기 짝이 없다. 캐릭터가 그러하니 알맞은 모습이겠다. 훔치는 건 신의 경지에 오른 듯 꽤나 요긴하게 쓰이는데, 정작 제대로 된 손기술은 보여주지 않는다. <나우 유 씨 미> 같은 기술은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딱 그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에 악역다운 악역이 나오지 않아 아쉽기도 하고 속 시원하기도 하다. 진정한 악역에는 남모를 사연이 있는 바 주인공 못지 않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한층 갈등의 재미를 부각시킬 수 있는 반면, 이 정도 영화에 나오는 악역이면 비슷비슷하니 오히려 없으니 못하다는 생각도 들 수 있겠다. 물론 악역이 없을 순 없으니 등장은 하지만, 굉장히 비열하고 치졸하기만 한 악역이다. 주인공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더욱 밀어주니 괜찮은 선택이라 하겠다.
영화의 주요 줄거리는 분명, 테러 36시간 후로 공표된 다음 테러를 막기 위한 사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36시간은 큰 의미가 없어지고 거대한 음모는 생뚱맞은 음모로 치환된다. 그리고 그 음모를 처리하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미국인 CIA 요원 브라이어와 미국인 소매치기범 메이슨이다. 이처럼 은근히 구멍들이 보이지만 그 구멍들조차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게끔 하는 데 일조한다. 참으로 대단한 킬링타임이다.
그들이 '테러'를 자행하는 이유
그들이 테러를 자행하는 이유를, 우린 알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건 의미가 없다 하겠다. ⓒ롯데엔터테인먼트
2016년 7월 14일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테러가 있었다. 튀니지계 남성이 인도로 트럭을 돌진해서 총기를 난사해 80여 명이 죽은 대참사였다. 하필 그때가 프랑스 혁명기념일이었던 바, 이 영화에서 테러를 공표한 날과 같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는 2016년 7월 14일 프랑스에서 개봉했는데, 하필 그런 일이 일어나 바로 내렸다고 한다. 사실, 영화가 진짜로 보여주는 내용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을 것이다. 북미에는 아예 제목을 바꿔서 개봉할 예정이다.
영화에서 테러리스트들이 '투쟁'하는 대상은 파시스트이다. 여기서 말하는 파시스트란 다름 아닌 프랑스 극우파를 말할진대, 그들이 반 이민자 정책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기 때문일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은 반 이민자 정책으로 피해를 받은 이들의 극렬분자라고 할 수 있겠다.
참으로 애매하고 함부로 말하기 힘든 문제이다. 내가, 우리가, 우리나라가 현재로선 그런 테러의 직접적 대상국이 아니거니와, 테러리스트들이 주로 속해 있는 나라나 인종,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도리를 들자면 테러라는 게 절대 용서받지 못할 짓이다. 그것도 직접적으로 죄 없는 민간인을 향한 테러는 말이다. 그건 도저히 이해할 수도, 이해해서도 안 되는 행위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반드시 있다. 나 또한 그 이유를 '종교' 때문이라고만 알고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이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테러는 전쟁을 불러 오고 전쟁은 또 다른 테러를 불러 온다. 이것들이 현생 인류가 소통하는 방법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에 가서는 교묘히 '테러'가 가지는 의미를 빗겨 가는데, 팝콘무비다운 약싹빠른 대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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