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봉신연의: 영웅의 귀환>
어렸을 때 재밌게 본 만화이자 중국 고전 중 하나인 <봉신연의>. 영화로 나왔다니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세계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참으로 오랫동안 미국의 '할리우드'가 있었다. 영화라는 게 유럽에서 생기고, 세계 3대 영화제(베를린, 칸, 베니스)가 전부 유럽에 있음에도 말이다. 거기엔 역시 '돈'이 작용했을 거다. 한편 인도의 '발리우드'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양으로 세계 영화계에서 또다른 독보적인 위치에 위치해 있다. 일 년에 1000편 이상을 제작하며, 전 세계 영화의 1/4 이상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그 뒤에도 역시 '돈'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다름 아닌 '황사머니' 중국의 출현이다. 그 시작은 아마도 2008년에 있었던 미국 발 금융위기 때가 아닌가 싶다. 미국 경제가 내리막길을 걸으며 반대급부로 중국이 전에 없는 막강한 머니파워를 자랑하게 된 것이다. 그에 힘입어 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 2위로 급부상했으며, 영화 제작에 있어서도 인도, 미국에 이어 3위(일 년에 500편 이상)로 올라섰다. 급기야 미국 할리우드의 유수 영화들에 손을 뻗치고 있다. 북미에서 망해도 중국에서 성공해 차기작의 발판을 마련한 영화들이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그 반대도 있다.
올해 두드러졌는데, '엑스맨' 시리즈 최고의 흥행작이자 엄청난 호평을 받은 수작 <데드풀>은 중국에서 개봉을 하지 못해 8억 불의 고지를 밟지 못했다. 여타 히어로 영화들의 중국 흥행 역사를 볼 때 10억 불 돌파도 가능했을 거다. 한편 북미에서 5천만 불도 찍지 못한 망작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은 중국에서만 2억 불을 넘게 벌어 월드와이드 4억 불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중국이 향후 수 년 안에 세계 영화 시장 1위에 오를 거라는 전망은 기정사실화된 거나 다름 없다.
대수롭지 않은 영화, 어마어마한 제작비
영화는 중국영화사에도 길이 남을 제작비가 들었다고 하는데, 장면 장면들을 보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중국영화에 부는 황사머니는 제작비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데, 역대 최고 제작비 5위가 약 8000만 불이라고 한다. 지난 2008년에 개봉했던 <적벽대전>의 제작비가 약 7000만 불로, 당시 아시아 영화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기록했는데 절묘하게 미국 발 금융위기 즈음이었다. 우리나라는 역대 1위가 <설국열차>의 약 4000만 불 정도이다. 참고로 중국 역대 1위는 2억 불이 넘는다고 한다.
올해 개봉한, 개봉할 영화 중 두 편이 중국영화 역대 제작비 순위를 흔들었고 흔들 예정이다. 그 중 하나가 <봉신연의: 영웅의 귀환>이다. 자그마치 8000만 불의 제작비를 쏟아부었다고 하는데, 흥행은 잘 되었는지? 시작은 좋았으나 급격하게 하락하며 채 3억 위안을 벌어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돈으로 900억 가까이 들여 만들어, 채 500억을 벌지 못한 것이다. 왠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뿐인지?
영화는 그 자체로도 참으로 대수롭지 않다. 많은 이들이 중국 4대 기서(<삼국지연의>, <서유기>, <수호전>, <금병매> 혹은 <홍루몽>)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 발치에도 가지 못하는 <봉신연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을 거다. 만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꽤 익숙할 텐데, 대히트작 일본 만화 <봉신연의>가 떠오른다. 아마 그 만화를 재밌게 본 이라면 이 영화 또한 일말의 기대를 안고 봤을 테다.
때는 기원전 1100년 경 상나라 말의 주왕 시대다. 본래 현명하고 참된 황제였던 주왕은 요물 달기(판빙빙 분)로 인해 주지육림에 빠진다. 그 자신 또한 어릴 때 흑룡과의 불온한 계약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주나라 희창의 태공망은 그들을 저지하고자 덤볐지만 주술에 걸려 간신히 도망쳤을 뿐이다. 이내 봉신계획을 발동하며 뇌진자, 나타, 양전으로 하여금 흑룡과 달기에 맞설 수 있는 '광명의 검'을 찾게 한다. 과연 그들은 광명의 검을 찾아 인간계에 광명을 찾아줄 수 있을까? 한편 주술에 걸린 태공망은 어떻게 될까?
이 영화, 무엇이 문제일까?
이연걸이 태공망 역을 맡았다. 판빙빙이 달기 역을 맡았다. 안젤라 베이비까지. 중국이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캐스팅이나 진배없다.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 이 영화.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영화는 그야말로 '돈지랄' 한 티가 한 장면도 빠짐 없이 팍팍 난다. 과장이 아니고, 사람이 화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CG가 차지하는 비중이 족히 90%는 될 것이다. 물론 그런 류의 중국영화는 이 영화 뿐이 아니다. 중국 역대급 흥행돌풍을 일으킨 <미인어> <몽키킹>도 거의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그것들은 이 영화만큼 제작비가 들어가지 않았으면서 이 영화보다 훨씬 더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들에 비해서 캐스팅이 별로였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연걸, 판빙빙, 안젤라 베이비, 고천락, 향좌 등 중국이 자랑하는 초호화 캐스팅이었다. 캐스팅으로만 본다면 앞엣것들을 앞선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이 영화는 <봉신연의>라는 누구나 알 만한 이야기를,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동안 한 번도 선보이지 않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기에 대중에게 알리기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을 거다.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이 <봉신연의>라고만 하면 되는 수준인 것이다. 중국에선 여전히 인기가 많은 고전, 역사, 무협 이야기이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중국에선 역대급 흥행 성적을 올려도 하등 이상하지 않았을 거란 얘기다.
배우들의 연기가 심각한 수준이었나?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이 10%에 불과한 영화에서 어떻게 배우들의 연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다들 손발이 오그라드는 분장을 하고 나와 CG에 몸을 맡기는 판국에 말이다. 아마 아무도 그들의 연기에 기대를 하지 않았을 거다. 그러면 남는 건 내용이다. 도무지 봐줄 수 없는 내용이라 여긴 게 아닐까. 그리고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CG의 수준도.
주인공이 뜬금없는데, 그 주인공이 매력이 없기도 하다. 또한 '영웅의 귀환'이니만큼 귀환하기까지의 모험이 재밌어야 하는데, 모험이랄 것까지도 없는 황당한 일들의 연속이다. 가장 재밌어야 할 게 가장 지루하고 만 것이다. 그 부분만 신경 써서 제대로 보여주었으면 이렇게까지 실망할 영화는 아니었을 거다. 러닝타임을 좀 더 늘리며 쓸 데 없이 코믹한 장면들은 과감히 삭제하고 진지한 생각과 상념에 젖을 만한 장면을 추가했어야 했다.
이도저도 아닌 것의 절정
이런 류의 중국영화를 볼 때면 항상 기대하는 '느낌'이 있다. 다름 아닌 중국풍인데, 역시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중국을 벗어나지도 못한, 이도저도 아닌 느낌일 뿐이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촉산전>으로 기억한다. 15년 정도 됐으려나, 중국풍 액션에 CG가 가미된 최초의 '아름다운' 기억 말이다. 그 전에도 <풍운>이니 <중화영웅>이니 하는 영화가 있었다. 다만 스타일이 조금 달랐고 지금까지 뇌리에 남아 있진 않다. <촉산전>은 달랐다. 분명 <봉신연의> 버금가는 CG가 화면을 뒤덮었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는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충분하다. 천지를 진동하는 액션에서 피어난 연인의 슬픈 사랑, 모든 걸 버리고 둘만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은 마음, 그에 어울리는 화면을 구성한 CG와 OST, 화면은 화려한 원색과 파스텔 톤이 조화를 이룬다.
아마도 <봉신연의>에서 <촉산전>의 느낌을 기대했었는지 모른다. 아니, 이런 류의 중국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그 느낌을 상기시켰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느낌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중화주의 색채를 지우고 보편적인 색채를 입히고자 하는 노력인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중국풍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으니 이도저도 아닌 게 되어버리고 만다. <봉신연의>는 이도저도 아닌 것의 절정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무리일 거다. 여전히 거의 중국 내수 시장으로만 흥행하는 중국영화이니 만큼 세계로 뻗어나가고 싶어할 것이기 때문이다. <와호장룡>처럼 지극히 중국적인 중국영화가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끈 사례가 있다. 그렇지만 그 또한 2000년대 초반의 일이거니와, 결정적으로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영화 중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적인 중국영화의 세계 진출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것 같은 <봉신연의>. 2부 예고편 같은 쿠키 영상까지 있는데, 과연 후속편이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흥행도 참패를 한 게 아닌가. 물론 그렇게까지 돈이 들어갈 이유가 하나도 없는 영화에, 그토록 엄청난 돈이 들어간 걸 보니 투자 여력이 엄청난 것 같다. 그래도, 2편은 사양이다. 그래도 나오면 혹시 보게 될려나? <촉산전>의 그 느낌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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