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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다른 모든 걸 덮어버리는 '상실'에 대하여 <싱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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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톰 포드의 <싱글맨>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의 데뷔작 <싱글맨>. 그만이 가진 장기를 유감 없이 발휘했다. 새로운 색감의 대가이다. 그걸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와인스타인 컴퍼니



짧고 잔잔한 영화 한 편으로 인생의 한 부분이나마 이야기하는 건 정녕 어려운 일이다. 인생뿐이랴. 인생을 말하고자 영상과 색감을 알게 모르게 이용하는 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타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문자로 보여주기 어려운, 영상으로만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쉬운 부분이니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지만, 그만큼 심여를 기울여야 한다. 어설프면 안 하느니 못하지 않겠나. 


영화 <싱글맨>은 이를 완벽에 가깝게 해냈다. 스토리야 완벽에 가까운 원작이 있으니 크게 우려할 부분이 없겠지만, 그걸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엄청난 부담이 지어졌을 게 분명하다. 자연스레 감독이 궁금해진다. 색감의 대가 웨스 앤더슨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이 생각났다. <싱글맨>의 감독은 누구일까. 


'톰 포드'라고 한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더라니, 패션 디자이너란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던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구찌'를 부활시킨 장본인. 그가 10년 넘게 몸담은 구찌를 나와 '성장'과 '진화'를 거듭하고자 하는, 그 신호탄 중 하나가 영화 <싱글맨>이다. 구찌에 도시적이고 젊은 관능성을 장착시켜 부활시켰듯이, 영화를 통해서도 그의 디자인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다른 모든 걸 덮어버리는 '상실'에 대하여


1960년대 초 미국, 오래된 연인의 죽임에 한 없이 힘들어 하는 대학교수 조지(콜린 퍼스 분)가 있다. 아침에 눈을 뜨기 싫다. 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기 시작하는 연인의 모습. 자그마치 16년이다. 어느 날 문득 혼자가 되어 과거 속에서만 살아가는 조지, 하루하루가 순간순간이 고역이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들이 부유할 뿐이다. 


그는 다름 아닌 동성애자다. 그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살아생전 연인 짐을 열렬히 사랑할 순 있었겠지만, 그의 죽음 앞에선... 그를 더욱 절망 속으로 밀어넣은 건, 짐의 죽음을 함께 할 수 없었다는 것일 테다. 16년 간 함께 해왔지만, 조지는 짐의 '가족'일 수 없었다. 조지는 누구한테고 드러낼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을 안고 홀로 속절없이 무너질 뿐이었다. 


<싱글맨>은 퀴어 영화이지만, 굉장히 보편적인 감정을 말하고자 하는 영화다. 다름 아닌 '상실'. 이 영화는 상실에 대한 영화다. ⓒ와인스타인 컴퍼니



<싱글맨>은 분명 퀴어 영화지만, 동성애가 조지의 '상실'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다분하다. 비단 여자 연인이었더라도 가족이었더라도 반려동물이었더라도 상실의 슬픔은 어마어마하게 덮쳐 오지 않겠나. 그렇지만 시대의 특성 상, '동성애'가 갖는 특성 상 그 상실의 슬픔은 다른 무엇을 뛰어 넘을 거다. <싱글맨>은 다른 모든 걸 덮어 버리는 '상실'에 대한 영화다. 


상실은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상실을 무엇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 그 자리를 다른 무엇으로 채울 수 있긴 한 걸까. 그저 '다음 버스를 기다리면' 되는 것일까. 그렇게 간단하면 소설, 영화로 끊임없이 재창조되어 사람들을 '괴롭'히고, 당사자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가는 게 설명되지 않는다. 이 영화를 보면 상실이 한없이 무서워진다. 


우울함에서 생기가 감도는 색감 영상으로


조지에게 그 하루는 특별하다. 권총과 총알을 준비한다. 상실의 슬픔이 결국 삶을 무너뜨린 것이다. 인생을 끝내기로 한다. 그래도 하루를 온전히 보내야 한다. 다른 날과 다름 없는 하루를 시작하고 사람들도 만나야 한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감흥도 없다. 오직 순간순간 덮쳐오는 짐과의 기억만 의미가 있고 감흥이 있다. 


한순간 눈에 띄는 이가 있지만 지나갈 뿐이다. 짐을 대신할 수 없다. 죽음을 결심한 시간이 다가왔다. 자신의 처지를 아는 유일한 사람인 찰리의 전화가 그 결심을 중지시킨다. '그녀'와의 약속 시간이다. 그녀와 과거 한때 사랑을 '노력'해보려 했지만 실패하고 지금은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녀와의 만남은, 그녀와의 불가능한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었을 뿐이다. 혼란스런 그에 눈에 누군가가 띈다. 제자인 케니. 우연히 만난 '그'와 충동적인 하룻밤을 보내고자 하는데...


영화는 색감으로 주인공의 심경 변화를 보여준다. 아주 명확하고 선명하게. 우울함이 지배했던 초반의 무채색 색감은 후반부에 생기가 감도는 감도 높은 단도 영상으로 변한다. 무엇을 뜻하는 걸까. ⓒ와인스타인 컴퍼니



영화는 시종일관 우울함이 지배하는 영상을 선보인다. 조지의 심경을 그래도 투영한 듯 무채색이다. 조지가 도무지 살아 있는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날따라 그에게 많은 '살아 있는' 것들이 보여 감상한다. 죽음을 결심한, '살아 있지 않은' 이에게만 보이는 살아 있음의 결정체인가 보다. 그 장면들을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해 살아 있음을 극대화했다. 보는 이에 따라 작위적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 


케니가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는 따로 설명이 불필요하다. 색감을 보면 되니까. 우울함이 지배하는 무채색 영상이 생기가 감도는 감도 높은 단도 영상이 된 것이다. 조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심지어 '색깔'이라는 게 감돈다. 케니에게도 집에도 마찬가지다. 감독이기 이전에 디자이너 톰 포드의 디자인 철학이 바로 여기에서 발휘된다. '내가 톰 포드요 '하면서. 우린 거기에서 젊은 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실로 오랜만에 상실을 제대로 느껴보다


2015년 <킹스맨>에서 수트의 진면목을 선보인 바 있는 콜린 퍼스, 그 이전에 2010년 <킹스 스피치>가 있었다. '영국 신사의 수트란 이런 것이다'를 제대로 보여줬다 하겠다. 그런데 그 앞에 2009년 <싱글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의 수트를 입은 게 아니겠는가. 그 어떤 영화보다 멋있는, 남자가 봐도 한눈에 반할 수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싱글맨>이다.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서도 '관능'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상실로 영혼을 잃은 껍데기. 수트는 그 껍데기를 완벽히 커버한다. 그래서 더 돋보이는 면도 있다. '수트 입은 남자란 이런 것이다'가 아닌 '수트란 이런 것이다' ⓒ와인스타인 컴퍼니



역설적으로 상실의 슬픔이 관능을 극대화시킨 것 같다. 모든 걸 내려놓은 채 수트에 의지한 영혼 잃은 껍데기. 껍데기를 완벽하게 커버하는 수트의 미학이다. 물론 모든 걸 가진 이의 수트도 뭐라 말 할 수 없이 멋있지만 수트가 빛을 발 할 때도 있다. 옷이 날개일 때도 있지만, 허름한 옷을 걸쳐도 돋보이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이 영화는 디자인만이 갖는 것을 극대화 했다. 


우린 사실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이보다 풍요로운 시대가 언제 있었을까 싶은,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군중 속의 고독'처럼 '풍요 속의 빈곤'이 점점 그 세를 불리고 있지만, 상실만큼은 상실 그대로 받아들일 만한 여지가 없다. 의도하지 않아도 곧바로 다른 무엇이 채워지니까. <싱글맨>을 통해 오랜만에 상실을 제대로 느껴봤다. '오랜만'이라고 표현한 건, 기억에서 흐려졌지만 언젠간 그 무엇의 상실을 뼛속 깊이 슬퍼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한 번 더 느껴볼 때가 있을까. 비록 치명적일지 몰라도, '내가 인간이구나'라는 걸 제대로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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