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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완벽한 장르 영화이자 반전 영화, 이런 영화 또 나올까? <프라이멀 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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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프라이멀 피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말에서 오는 충격과 쾌감, '반전 영화'. 그 기라성 같은 영화 중에서도 <프라이멀 피어>는 단연 최고급에 든다. ⓒ파라마운트 픽처스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우후죽순 격으로 쏟아져 나왔던 영화 장르가 있다. 일명 '반전(反轉) 영화'인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말을 선사해주는 경우가 많다. 나도 한때 반전 영화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때가 있었다. 그 충격에서 오는 쾌감 하나를 위해 영화를 보곤 했다.그래서 영화는 기억나지 않고 반전만 기억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많은 이들이 그런 우를 범했을 텐데, 제대로 된 반전 영화란 반전 자체가 장르가 되어서는 안 되고 영화가 가진 장르 안에 반전이 자연스레 스며들어야 한다. 특성상 공포, 스릴러, 범죄 장르가 많다. 몇몇 완벽한 반전 영화가 생각난다. <유주얼 서스펙트> <세븐> <식스 센스> <파이트 클럽> <메멘토> <디 아더스> <아이덴티티> <데이비드 게일> <쏘우> <맨 프롬 어스> 등. 


2010년대 이후에 생각나는 반전 영화는 거의 없다. 어떤 반전을 선보여도 10년, 20년 전에 나온 영화들의 클리셰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전쟁 영화가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와 같다. 그렇지만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지나간 영화들을 보면 되니까, 더불어 그 영화들만 보면 충분하니까. 


법률 영화로도 흠잡을 데 없는 '반전' 영화


이번에 다룰 영화는 1996년작 <프라이멀 피어>다. 엄연히 영화의 한 장르인 '법률 영화'로, 존경받는 카톨릭 대주교 살해 용의자로 지목된 아론 스탬플러(에드워드 노튼 분)를 둘러 싸고 벌어지는 법정 공방을 다뤘다.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최악의 범죄 변호사 마틴 베일(리차드 기어 분)과 그의 옛 애인이자 검사 동료였던 자넷 베너블(로라 리니)의 공방이 주를 이룬다. 


살해 현장에서 피해자의 피를 온몸에 도배한 채 도피해 모든 이들이 범인이라고 당연한 듯 지목한 아론, 하지만 그는 한사코 순진하기 그지 없는 얼굴과 행동으로 범행 사실을 부인한다. 그러며 그 자리에 제3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얼마 후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가 밝혀진다. 그는 '해리성 인격장애(이인증)'를 앓고 있었다. 범인은 아론 자신이 아니라 또 다른 인격인 로이라고 말한다. 법정 공방은 2라운드를 알린다. 


법률 영화로서도 흠잡을 곳이 없다. 하지만 반전에 반전을 '당하고' 보면, 모든 기억이 사라지며 멍해질 뿐이다. ⓒ파라마운트 픽처스



영화는 법률 영화로서 흠잡을 곳이 없다. 검사로 재직하다가 나쁜 짓을 저지르는 걸 참을 수 없어 통칭 사기꾼이라고 알려진 변호사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베일의 고뇌, 그는 꼭 나쁜 놈들만 범죄를 저지르는 건 아니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치명적인 아론의 변호도 그렇게 맡게 된 것이다. 그런 한편, 모든 것들이 그가 살인자라는 걸 증명하고 있지만 결정적으로 동기를 찾을 수 없어 원고 측에선 확고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와중에 원고 측에게 치명적이지만, 확실한 동기가 되는 걸 찾게 되는데...


역시 베일과 자넷의 끝없는 설전은 이 법률 영화의 묘미 중 하나다. 나라면 누구의 변호를 하고 있을까, 저 국면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누가 이기게 될까 등. 휴정 기간에 오가는 뒷공작도 빼놓지 않는다. 사실 그때 이루어지는 설전과 공작이 진짜 싸움이라는 걸 알 것이다. 영화는 반전에 힘을 쏟는답시고 영화 자체를 허투루 하는 우를 범하진 않는다. 그건 그렇고 반전은 언제쯤? 이인증도 충분히 충격이었는데.


정신병이면 무조건 무죄?


'빌리 밀리건'이라는 사람이 있다. 1970년대 후반, 수많은 범죄를 저질러 체포되기에 이른다. 변호 과정에서 정신 심리 검사를 받았고, 영화에서처럼 해리성 인격장애로 판명된다. 자그마치 24개의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결국 그는 정신 이상을 이유로 모든 사건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고 치료에 들어 간다. 10년 후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몸이 범죄를 저지른 건 사실이지만, 그의 인격이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더불어 그를 죗값을 치러야 할 범죄자 이전에 치료해야 마땅한 환자로 보았다. 


영화는 아무래도 이 유명한 사건에서 영향을 받은 듯, 동일한 양상으로 흘러간다. 정신의학자까지 증인으로 나서서 아론을 환자로 두둔한다. 그렇지만 결코 쉽지 않다. 누가 봐도 믿기 힘들고 설령 믿는다 하더라도 논란의 여지가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내 몸이 살인을 저지른 건 맞는데, 범인은 내가 아니고 내 몸에 함께 있는 또 다른 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나'가 아니고. 


정신병이 있으면 무조건 무죄일까? 특히 이 영화의 정신병인 '해리성 인격장애'는 인권까지 건드린다. 실제로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다.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할까. ⓒ파라마운트 픽처스



'유정무죄'라는 신조어가 있다. 정신병이 있으면 무조건 무죄 판결을 받는다는 상황을 비꼰 거다. 최근 들어 여기저기에서 그런 소식들이 들려온다. 하다못해 술을 진탕 마시고 벌인 범죄도 무죄가 되곤 하는데, 그 사례 또한 술 취한 상태는 온전한 정신이 아니라는 판단 하에서 내린 판결이다. 악용될 소지도 충분하거니와, 그럼 정신병에 걸리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말인지 심히 의문이 간다. 


영화에서는 원고 또한 돌이킬 수 없는 죄를, 그것도 피고에게 행했기 때문에 논란의 파장은 훨씬 커질 수 있다. 어느 누가 완벽한 판정을 내릴 수 있겠냐만은, 이런 경우는 완벽의 근처도 가지 못할 것 같다. 한편, 이토록 완벽한 딜레마를 조성해 놓은 영화의 감독 및 작가에게 찬사를 보낸다. 이 영화의 진정한 반전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이 <프라이멀 피어>가 할리우드 대표 연기파 배우 '에드워드 노튼'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한 번 에드워드 노튼을 데뷔시킨 감독 및 작가에게 찬사를 보낸다. 


완벽한 장르 영화이자 반전 영화, 이런 영화 또 나올까?


'한 편의 잘 짜인 영화를 본 것 같다'는 말을 종종 한다. 다름 아닌 이 영화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을 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다. 반전 영화라는 걸 공시한 이상, 마지막 5분까지도 긴장을 느춰선 안 된다는 걸 알려드린다. 하지만 영화에 푹 빠져 있다 보면 자연스레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 올 테다. 영화는 바로 그때를 놓치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도 또 찾는 반전 영화는 드물다. 개인적으로 반전 자체는 최고지만 한 번 보고 다시 찾지 않는 영화가 있다. <식스 센스> <디 아워스> <아이덴티티> 같은 류, 반전을 위한 반전 영화라 하겠다. 영화 전체가 오직 반전을 향해 달려간다. <유주얼 서스펙트> <맨 프롬 어스>도 그런 종류지만, 이야기 자체가 너무 재미있다. <세븐> <파이트 클럽> <데이비드 게일> 그리고 <프라이멀 피어>는 반전을 빼고 영화 자체를 즐겨도 하나의 완벽한 장르 영화로 손색이 없다. 보고 또 보게 되는 영화들이다. 


반전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영화를 즐겨도, 충분하다. 충분히 완벽하다. 그래도 계속 기다린다, 반전을. 반전 영화를. ⓒ파라마운트 픽처스



이런 류의 영화, 완벽한 장르 영화이자 그 모든 걸 뒤엎고도 남을 충격적인 반전을 아주 기묘한 타이밍에 선사하는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계속 만들어질 거다. 하지만 그만큼 눈이 높아졌기에 기대를 충족시킬지는 의문이다. 그러다 보니 주류에서 상당히 밀려난 느낌이다. 나온다 해도 마니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영화가 나올 것이다. 


안타깝지만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역사가 돌고 도는 것처럼 영화도 돌고 도는 법. 시대의 조류가 다시 반전의 손을 잡아 끌 때가 올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참신한 도전이 계속되어야 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런 종류의 반전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반전. 응원하며 기다리고, 찾아보며 비평하고, 반가워하며 다음을 기약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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