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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보고 싶은 이야기로 변모했을까? <작전명 발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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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브라이언 싱어의 <작전명 발키리>


1944년 7월 20일에 일어난 20세기 가장 극적인 사건 '히틀러 암살 계획'. <작전명 발키리>는 이 사건을 다루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역사에 '만약'은 있을 수 없다. 설령 미래의 누군가가 타임머신을 타고 와 역사를 바꾼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가 속한 차원에서의 일일 것이다. 모든 차원을 관통하는 역사의 수정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역사를 보면 '만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많다. 21세기는 채 20년도 되지 않았으니, 20세기를 한번 보자. 


수많은 위인들이 20세기를 수놓았지만, 그중 단연 으뜸의 위치에 있는 이는 '히틀러'다. 그가 무슨 짓을 했든 그 영향력과 파급 면에서 따라올 자가 없다. 그는 살아생전 15번의 암살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독일민족을 구할 진정한 지도자'로 생각하는 만큼, '독일민족을 구하기 위해 반드시 사라져야 할 인물'로 생각했다. 그중 단연 유명한 암살 미수 사건은 나치 패망 1년 여 전인 1944년 7월 20일 사건이다. 가장 극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보고 싶은 이야기로 변모했을까?


반전 영화의 기원격인 <유주얼 서스펙트>와 현대 슈퍼 히어로 영화의 시초격인 <엑스맨>을 연출한 브라이언 싱어의 <작전명 발키리>는 다름 아닌 이 사건을 그린다. 사건 이름만 봐도 결과를 알 수 있는 이 사건을, 반전 영화의 대부가 왜 살려낸 것일까. 영화 외적으로 나치 독일의 만행을 간접적으로 알리고 싶었을까, 영화 내적으로 사건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극적인 요소가 훌륭하다고 판단해서 였을까. 둘 다일까. 


영화는 실제 인물의 행적으로 고스란히 추적한다. 먼저 반나치주의자들의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을 맛보기로 보여준다. 긴박감 넘치는 액션은 없고 인물들 간의 숨막히는 고요와 어설픈 심리 게임이 주를 이룬다. 과연 본 사건으로 넘어가서는 긴박감이 추가될지? 이대로 숨막히는 고요와 어설픈 심리 게임만 계속된다면 조금은 실망이다. 


브라이언 싱어는 누구나 알고 있을 만한 사건인 '작전명 발키리'를 왜 영화로 살려냈을까? 과연 보고 싶은 이야기로 훌륭하게 살려냈을까?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슈타펜베르크 대령은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활약 중이다. 그런데 나치스 SS 친위대들의 만행을 전해 듣고 치를 떨며 '반나치'의 길을 걷고자 다짐한다. 얼마 뒤, 영국군의 기습 공격으로 부상을 당해 왼쪽 눈과 오른손 전체, 왼쪽 손가락 두 개를 잃고 본국으로 귀환한다. 요양 후 히틀러 제거 계획 모임에 가담하며 베를린 국방군 본부에 예비군 참모장으로 임명된다. 이후 어떤 고뇌도 없이 오직 히틀러 제거를 위해 내달린다. 


영화는 충분히 보여줄 만한 요소인 슈타펜베르크의 고뇌를 과감히 삭제한다. 또한 히틀러와 나치가 무슨 짓을 했는지, 히틀러 제거를 위한 반나치 세력이 누군지, 슈타펜베르크가 어떤 사람인지 일절 알려주지 않는다. 오로지 독일의 현 상태와 그에 따른 히틀러 제거 계획만이 영화의 대상이다. 누구나 알고 있고 또 오래된 이야기이기에 굉장히 지루할 것만 같은 소재는, 굉장히 서스펜스 넘치고 보고 싶은 이야기로 변모한다. 감독의 역량일 것이다. 동시에 그에 부흥할지 기대를 갖고 임하게 된다. 박진감이나 숨막힘 등의 서스펜스에 온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일단 그쪽으로 집중하게 하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 


결정적 순간에 꺼져버린 서스펜스


다양한 논의 끝에 나온 '발키리 작전'. 이는 연합군의 폭격이나 예기치 못한 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을 시 각 지역 국방군 본부에 있는 예비군을 출동시켜 사태를 수습하게 하는 계획이었다. 반나치 세력의 좋은 수단이 된 이 작전을 히틀러가 직접 승인하고, 이들은 히틀러를 암살한 후 이 작전을 발동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는 계획을 세웠다. 최종 목적은 전군을 장악하고 연합군에 휴전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핵심은 단연 히틀러 암살인데, 슈타우펜베르크가 히틀러에게 직접 브리핑할 수 있는 요직에 임명되었기에 직접 처리하기로 마음 먹고 실행에 옮긴다. 그의 불구된 몸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덜 경계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는 전시 최고회의를 기회로 서류 가방으로 위장한 시한 폭탄을 들고 회의장으로 향한다. 거사는 1944년 7월 20일에 감행된다. 성공적인 폭발을 두 눈으로 확인한 슈타우펜베르크는 베를린에 다음 단계로의 이행을 지시한다. 속전속결, 베를린은 예비군을 효율적으로 이용한 반나치 세력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브라이언 싱어가 이 사건을 영화로 살려내며 '영화적 재미'에 충실했을 텐데, 가장 극적인 사건의 가장 극적인 순간에 제대로 충실하지 못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오랫동안 준비해 실행에 옮기는 히틀러 암살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문제는 영화의 사실상 거의 전부나 마찬가지거니와 최고의 하이라이트인 그 장면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끝나버린다는 점이다. 약간의 박진감과 숨막힘이 있었을 뿐, 기대를 상회하는 서스펜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그의 소식을 기다리는 베를린의 반나치 세력의 초조함이 더 와닿았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게 이 영화를 떠받치는 서스펜스는 아니었을 거다. 그 장면에서 보여줬어야 했다. 


'왜'가 삭제되고 '어떻게'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막상 '어떻게'의 실행이 아쉬운 상황이라니, 난감하다 아니할 수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일어난 불상사라고 할까. 가타부타 설명 없이 내달리는 어조를 그 장면에서 만큼은 좀 지양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전체적으론 더할 나위 없었는데. 


'왜'를 과감히 생략했지만, '어떻게'가 충족되지 못했다


익히 알려진 만큼 스포일러도 존재하지 않는다. 히틀러 암살을 확신한 슈타우펜베르크는 반나치 세력과 속전속결로 쿠데타를 감행한다. 하지만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전세는 역전된다. 히틀러가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게 아닌가! 결국 김옥균의 삼일천하만도 못한 반나절천하로 막을 내리고, 관련자들은 자살을 강요당하고 처형 당한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슈타우펜베르크를, 반나치 세력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겠다. 독일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반나치 운동의 대표 인물로 존경을 받게 되었다. 기념비, 거리, 추모관 등으로 그들을 기리고, 영화나 다큐멘터리도 제작되었다. 하지만 독일인이 아닌 입장에서 보면 선뜻 경의를 표시하기가 힘들다. 애매하다. 


'왜' 나치는 나치이고 반나치는 반나치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어떻게'에 심혈을 기울이며 영화적 재미를 극도로 끌어올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이 영화를 본 이유가 그들의 위대한 작전에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의 '흥미롭고 극적인 작전'을 재밌게 감상하며 아울러 20세기 중요한 역사의 한 장면을 새기고 싶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얻고자 하는 걸 얻지 못하니, 엄한 다른 곳으로 시선이 쏠리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어떻게'가 충족되지 못하니 '왜'라도 알아야겠다는 언잖은 기분이랄까. 그 '왜'조차 별로다. 그럼에도 그런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 자체에 충분히 위대함이 있다. 대의를 위해 자신 한 몸을 던진 게 아닌가. 그런 이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을 친다. 


물론 아닌 것도 있다. 얼마 전 개봉한 감독판으로 다시 찾아온 <인천상륙작전>을 보자. <작전명 발키리>와 상당히 유사한 모양새다. 하지만 영화 만듦새만 가지고도 한나절을 떠들 수 있을 만큼 형편 없다. 같은 '애국 영화'이자 '첩보 영화'인데, <인천상륙작전>은 <작전명 발키리> 정도의 스릴과 서스펜스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오로지 밑도 끝도 없는 애국이다. <작전명 발키리>는 애국을 외쳐대지 않고 영화 내적으로 승부를 봤지만,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애국이 충분히 드러난다. 왜 독일의 역사는 그렇게 그려질 수 있고, 우리 역사는 그려질 수 없는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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