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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전쟁 영화 재밌게 봐왔지? 이걸로 이제 그만 <풀 메탈 자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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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풀 메탈 자켓>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은 한창 전쟁 영화에 빠져 있던 당시의 나에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했다. 10년만에 다시 찾으니,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전쟁 영화를 한 번에 정리해버렸다. ⓒ워너브라더스



군대 가기 전이었다. 온갖 전쟁 영화를 다 챙겨 봤다. 비록 드라마지만 웬만한 영화 이상가는 퀄리티를 자랑하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필두로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전쟁 대작 <라이언 일병 구하기> <씬 레드 라인>, 70~80년대를 대표하는 <지옥의 묵시록> <플래툰>, 그보다 윗 세대의 <패튼 대전차 군단> <콰이강의 다리>까지. 그리고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 중 하나인 <전함 포템킨>도. 이밖에 수없이 많은 전쟁 영화를 챙겨봤다. 지금은? 신작은 안 보고 예전 전쟁 영화를 가끔 보곤 한다. 


전쟁 영화는 몇 가지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일명 '국봉(?)'.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숭고한 이들의 헌신을 다룬다. 주로 이데올로기 얘기가 들어가 있다. '반전'. 전쟁의 참상과 허무함과 쓸 데 없음을 사실적이고 때론 풍자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전쟁을 반대하거나 전쟁의 불필요함을 역설한다. '액션'. 전쟁이 가지는 블록버스터적인 요소를 끄집어 내어 극대화 한다. '고민'. 전쟁에 대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다 죽거나 병신이 되어 살아남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얽힘을 얘기한다. 


액션에 눈이 가게 마련이다. 거기에 적당한 고민이 섞이면 괜찮다. 반전 요소가 있으면 아이러니하게도 액션이 더 풍부하다. 전쟁을 더 참혹하게 더 사실적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 영화 하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생각하는 게 그런 이유에서다. 나도 어김 없이 그랬다. 


전쟁 영화 재밌게 봐왔지? 이제 그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켓>은 그 당시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았다. 수많은 영화인들에게 극찬을 받은 작품이라지만, 전투신다운 전투신 하나 없는 이 영화가 과연 제대로 된 전쟁 영화인지 보는 내내 의문만 들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본 이 작품은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전쟁 영화를 정리해주었다. '그동안 전쟁 영화 재밌게 봐왔지? 이걸로 이제 그만.'


영화는 크게 2부로 나눌 수 있다. 도입부라고도 할 수 있는 1부는 베트남전쟁 당시 미 해병대 신병교육대 이야기다. 신병들을 인간 병기로 개조한다는 취지 하에 신병들을 인간 쓰레기 취급하는 하트만 상사, 나름 순조롭게 그들은 미해병대 인간 병기로 거듭난다. 한 명만 빼고. 


일명 '뚱땡이' 레오나드 로렌스는 무슨 수를 써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정신력도 꽝이다. 하트만은 그를 동기 조커에게 맡긴다. 한동안 잘 하는 듯했지만, 다시 돌아온 뚱땡이. 결국 하트만은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뚱땡이가 사고를 칠 때마다 동기 전체가 벌을 받게끔 한 것이다. 이후 사건이 벌어지고 뚱땡이는 환골탈태를 하게 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뚱땡이'가 살인 기계가 되어간다. 그의 환골탈태는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워너브라더스



묻고 싶다. 감독은 이 신병교육대 이야기를 통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아마 감독도 묻고 싶을 거다. 이 신병교육대에서 도대체 그 어떤 '전쟁'을 발견할 수 있는 걸까?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린애 장난 같은 이 교육들이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전쟁에 도대체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하트만의 말처럼 킬러가 되면 되는 걸까. 누구를 죽이든 상관 없이. 특등 사수의 예를 365m 높이에서 14명을 쏴죽인 살인마로 든 걸 보면 알 수 있다. 나아가 베트남전쟁의 의미까지 유추할 수 있다. 


허무하고 애처롭고 참혹하다


"어떻게 여자와 어린 아이를 죽일 수 있습니까?"

"쉽지. 느리니까 그냥 갈기면 돼. 그럼 죽어. 크하하하."


종군기자가 된 조커 병장이 헬리콥터를 타고 전선으로 떠나면서 기관총 사수한테 물어본다. 어떻게 여자와 어린 아이를 죽일 수 있느냐고, 그러면 안 되지 않느냐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죽이기 쉽다는 말이다. why에 해당하는 물음에 how로 답하는, 그의 머리엔 오로지 '살(殺)'만 있다. 신병교육대에서 배운 게 그런 걸까. 베트남전쟁의 목적이 그런 걸까. 


후방의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포성과 총성을 듣고 싶어 하는 조커, 허세로 중무장한 그가 원하던 대로 전선에 와 있다. 그곳엔 온갖 허세로 완전 무장한 이들이 득시글하다. 그들이 전쟁을 알까. 말본새나 행동 거지를 봐선 제대로 된 전투를 치러보지 못한 듯하다. 알면 어떻게 또 모르면 어떠랴. 베트남전쟁 자체가 아무 짝에도 쓸데 없거니와 일어나선 안 되는 전쟁이었던 것을.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도 포성이나 총성, 피와 살점이 난무하지 않지만,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 참혹하다. 고수의 손길이 느껴진다. ⓒ워너브라더스



허무하고 애처롭고 참혹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다시는 전쟁 영화를 보지 못할 것만 같다.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 약한 장면들이 나오지만,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 참혹하다. 포성과 총성이 끊임없이 오가고, 피와 살점이 휫날리는 참혹한 장면을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충분히 구역질 나는 전쟁의 참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를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보여주는, 그리하여 전쟁에 진심으로 치를 떨게 만든다. 영화적으로 생각하면 고수의 손길이 느껴진다. 


스탠리 큐브릭의 사실상 마지막 작품


20세기 최고의 거장이라 일컬어 지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후기작 <풀 메탈 자켓>. 그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10년 넘게 영화를 만들지 않았고, 이후 <아이드 와이즈 셧> 편집본을 넘기고는 타계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살아생전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이 영화에도 역시 그의 완벽한 사실주의가 살아 있다. 


배경 한 컷, 소품 한 점 하나 소홀히 하지 않은 티가 난다. 재현한 건 물론이고 연기 또한 가감이 없다. 과하지도 모나지도 않다. 부담이 없다는 거다. 하물며 분위기랴? 베트남전쟁 당시를 그대로 옮겨놓은 거나 다름 없다. 전쟁은 인간 본성을 극치로 보여주게 만든다. 죽음의 공포가 눈앞에 그려지는데, 본성을 억누르긴 힘들 게 아닌가. 감독은 만들어진 인간상이 아닌 인간 군상 그 자체를 옮긴 것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풍자다. 그런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극사실주의의 거장, 베트남전쟁을 그대로 보여줬을 뿐이다. 그대로가 풍자라니... ⓒ워너브라더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풍자 일색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풍자다. 하지만 개중에 사실 아닌 것이 없다는 게 참으로 슬프다. 과장되지도 않게 모나지도 않게 사실 그대로를 옮겼을 뿐인데 그것이 풍자라니. 그것이 베트남전쟁의 인간 군상 그 자체라니.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아이러니,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아작낸 전쟁의 비극이다. 엄연한 역사지만 지우고 싶다. 역겨워 구역질이 나고 슬퍼서 웃음이 날 지경이다. 그런 한편 빼놓을 수 없는 생각 한 가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역시 대단하구나'


역사는 되풀이 되고, 인간의 실수 또한 수없이 되풀이 된다. 역사를 통해 우린 많은 걸 알고 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아마 전쟁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고, 베트남전쟁 같은 의미없는 짓도 계속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서. 그 피해를 누가 입게 되는 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이제 더 이상 이런 짓을 하지 않길 바란다는 말은 못 하겠다. 다만, 진실은 가려지지 않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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