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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 생의 마지막 그림, 그들의 삶과 죽음이 거기에 있다 <화가의 마지막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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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화가의 마지막 그림>


<화가의 마지막 그림> 표지 ⓒ서해문집



여섯 살 때 찾아온 척수성 소아마비, 18살 때 당한 끔찍한 교통사고로 평생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고 살았던 프리다 칼로. 그녀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그림에 '삶이여, 만세'라는 메시지를 남긴다. 오롯이 고통으로 점철된 삶이었기에 오히려 삶에 집착하였던 것이리라. 하지만 그녀가 쓴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이라 적혀 있었다 한다. 


화가들 생의 마지막 그림으로 삶을 유추하다


가수는 노래로 말하고, 작가는 글로 말하며,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 화가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에는 어떤 특별한 뜻이 담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생각해봄직하다. 처음 그린 그림보다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에 그가 더 많이 담겨져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화가의 마지막 그림>(서해문집)은 제목 그대로 누구나 알 만한 유명한 화가들의 생의 마지막 그림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삶을 유추한다. 


책에 소개되는 19명의 화가들, 그 중에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위태롭고 가장 불행했을 듯한 그녀의 삶이, 가장 빛나 보이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기에. 그건 아마 그녀의 마지막 그림에 담긴 메시지가 죽음이 아닌 삶을 말했기 때문이다. 다른 18명의 화가들이 남긴 생의 마지막 그림들은 어떨까?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을까. 삶이 담겨 있을까, 죽음이 담겨 있을까.


고통스럽고 불행한 삶을 산 화가들


화가 하면 천재가 떠오른다. 천재 하면 고독하지만 화려하고 화창한 삶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어찌 그리도 하나같이 불행했을까. 책에서 소개하는 19명의 화가들이 물론 수없이 많은 화가들의 삶을 완전히 대변하진 못하지만, 그들은 누가 뭐래도 그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이었다. 


누구나 알 것 같지만 실상 잘 알지 못하는 이중섭의 삶과 죽음을 들여다보자. 이중섭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화가다. 그렇지만 그는 평생 가난에 시달렸다. 그 와중에 일본인 아내를 두었는데 한국 전쟁이 발발해 남쪽으로 피신을 간다. 결국 아내를 일본으로 돌려 보내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잠시 떨어져 있기로 결정하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이후 그들은 잠깐 만났을 뿐 가난 때문에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이중섭은 그 때문에 삶을 망치고 허망하게 죽는다. 역동적인 그림을 그리곤 했던 그의 마지막 그림이 굉장히 조용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절박한 그리움, 기다림. 


또 한 명의 유명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오랫동안 우리는 그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고 알고 있었다. 이는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다. 저자는 전문가의 최근 연구를 바탕으로 그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을리 없다고 주장한다. 그의 마지막 그림이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일반적으로 고흐의 마지막 그림을 <까마귀가 나는 밀밭>으로 알고 있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나무 뿌리> 미완성본이라는 것이다. 그 작품은 다름 아닌 '생명'을 말하고 있는데, 자살을 하려는 사람이 생명의 메시지를 그린다는 게 어딘지 이상하지 않은가. 여러 정황상 동네에 살던 소년 세크레탕에 의한 타살이 유력하다고 한다. 


사랑과 희망이 가난으로 꺾이고 파괴당한 이들이다. 비단 가난 뿐이겠는가. '삶이 곧 고통'이라는, 삶의 변하지 않는 한 면이자 진리를 몸소 보여준 게 아닌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고 어쩌지 못하는 바, 그저 안타까워하며 기릴 뿐이다. 그래도 그들의 이름은 영원히 남았으니 괜찮다고 해야 할까.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으니, 예술가로서의 인생을 살다간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괜찮다고 해야 할까. 그토록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지라도. 


고통스럽지만은 않은 삶과 죽음의 화가들


이처럼 고통스러운 삶과 죽음만 있는 건 아닐 거다. 그러면 어느 누가 살고 싶을까. 어느 누가 예술을 하고 싶어 할까. 어느 누가 화가가 되고 싶어 할까. 20세기 미국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주로 현대인의 고독을 화폭에 담았지만 그 자신은 헌신적인 아내 덕분에 외롭지 않게 살았다. 그는 아내 조세핀을 만나 그녀의 도움 덕분에 무명화가에서 단숨에 유명화가가 되었다. 조세핀은 호퍼의 반려자이자 모델이자 친구이자 조력자이자 멘토였다. 85세 천수를 누리고 조세핀이 보는 앞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호퍼의 사망 10개월 후 조세핀 또한 세상을 떠났으니, 이보다 더 좋은 삶이 있을까. 그의 마지막 그림 <두 코미디언>의 모델이 호퍼 자신과 조세핀이었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다.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정확한 인체 비례와 대칭 구도로 조각된 작품들로 균형과 조화를 완벽하게 규현해냈다. 그는 어렸을 때 함께 공부하던 동료와 싸웠는데, 그때 코가 주저 앉는 큰 부상을 당했다. 그 흔적은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외모 콤플렉스를 야기시켰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는 '미(美)'에 집착한다. 그가 '미적인 표현을 신의 섭리로 보는' 르네상스 신플라톤주의에 감화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동성애자이기도 했는데, 당시 동성애는 당연히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행위였다. 남색은 사형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다. 아마 평생을 두고 고민했을 것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을 향한 시선과 독신할 그리스도교적 믿음 사이에서 말이다. 결국 그는 마지막 그림을 통해 독실한 그리스도교적 믿음을 남긴다. 20대 때 조각한 이상미의 극치 <피에타>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상기시키는 <론다니니 피에타>를 통해서. 


그래도 이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선 고통스럽지만은 않은 삶과 살았고 죽음을 맞이했다. 미켈란젤로의 경우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는 살아생전 금지된 사랑을 당당히 밝히고 살았다.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니. 그 또한 호퍼와 마찬가지로 90세의 천수를 누리고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천수'라는 단어는커녕 화가로서의 능력이 아닌 인간으로서 제대로 누리지도 못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들이 태반인 19인 중에, 그래도 삶다운 삶을 살다간 이들이다. 


고통스러운 삶과 죽음을 마지막 그림으로 보상받다


우린 죽음보다 삶에 관심이 많고, 그가 천재이자 예술가라면 죽음이나 삶보다 작품에 관심이 많다. 반대인 경우엔, 그의 죽음과 삶이 영화보다 극적일 것이다. 책에 소개된 19인들은 어떠한가. 아마 이 모든 걸 충족시켜 줄 거다. 그의 작품도, 삶도, 죽음도 모두 극적이다. 그런 이들의 마지막 작품이라면 더 말할 게 무엇이랴. 그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을 테다. 


나의 마지막은 어떨지 상상해본다.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편안하게 숨을 거두는 마지막일까,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 맞는 포근한 마지막일까, 나조차 모르는 새 급작스럽게 맞는 마지막일까, 너무나도 억울하게 맞는 고통스러운 마지막일까. 어렸을 땐 모든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편안하게 숨을 거두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죽음이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최상의 죽음이 아닌가. 


죽음의 형태를 내가 선택할 수 없다면, 이들처럼 죽기 전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어떤 것을. 그것으로 나의 삶을 반추해볼 수 있도록. 이 또한 하늘이 내릴 수 있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들 19인의 고통스러운 삶과 죽음 또한 마지막 작품으로 보상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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