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물결의 비밀>
<물결의 비밀> 표지 ⓒ아시아
아시아. 세계 최대의 대륙으로, 세계 육지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인구도 가장 많다. 세계에서 10억 넘는 인구를 자랑하는 나라가 둘 있는데, 아시아의 중국과 인도이다. 세계 경제도 쥐락펴락한다. 2015년 현재 세계 경제 순위(GDP 기준) 2, 3, 7, 11위가 각각 아시아의 중국, 일본, 인도, 한국이다. 이밖에도 역사, 문화, 예술 등에서 아시아는 가장 중요한 유산이다.
그런데, 우린 아시아를 잘 모른다. 잘 모를 뿐더러 잘 알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속해 있음에도 낯설고 어색하다. 신비롭고 흥미롭긴 하지만 한없이 멀고 멀다. 그래도 우린 아시아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을. 무작정 가까이 다가갈 순 없다. 섣불리 다가갔다가 더 멀어질 수도 있다. 그럴 땐 그 문화 역사의 총체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문학'을 통하는 게 좋다.
우리는 '아시아 문학'을 아시아 문학이라 부르지 않는다. 중국 문학과 일본 문학을 제외하고는 거의 접하지 않거니와 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총체적으로 접근하기가 힘들다. 이번에 아시아 출판사(계간 아시아) 10주년 기념으로 나온 <물결의 비밀>은 아시아 문학을 훑기에 적절한 책이다.
이 책에 실린 12명의 아시아 작가 대부분을 모를 텐데, 해당 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 중 필리핀의 프란시스코 시오닐 호세, 인도의 마하스웨타 데비와 사다트 하산 만토, 터키의 야샤르 케말 등은 '대문호'라는 칭호가 자연스러운 작가이다. 아시아의 정수를 맛보는 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아시아의 역사와 굴곡을 담다
책에 실린 12편을 모두 자세히 소개하고 싶지만 불가능하니 기억에 남는 몇 편을 소개해본다. 단연 압권은, 표제작이기도 한 '물결의 비밀'이다. 베트남을 대표하는 소설가 바오 닌의 작품으로, 베트남전쟁의 일면을 보여준다. 3쪽 정도의 아주 짧은 분량에 '아시아'의 치명적인 역사와 굴곡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의 시작이자, 책의 시작인 한 문장이 가장 잘 표현해냈다. 곧 아시아다.
"강물은 시간처럼 흐르고, 시간처럼 강물 위에서는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가. 그 어느 때보다 밤이면 내 고향 강물은, 그 표면은 셀 수 없이 많은 신비한 반점들로, 내 생애 은밀한 비밀들로 반짝반짝 빛났다." (9쪽 중에서)
'물결의 비밀'을 포함해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소설이 해당 나라, 나아가 아시아의 역사와 굴곡을 담았다. 처연하고 슬프고 신비롭고 강렬하다. 반면 그러지 않은 소설이 있는데, 그런 소설들이 균형을 잡아주었다. 리앙(대만)의 '꽃피는 계절', 야샤르 케말(터키)의 '하얀 바지' 등이다. 이 소설에는 아시아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캐릭터가 보이고 분위기가 감지된다. 쉬어가는 페이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자체로 완벽하다.
날선 비판과 농익은 유머의 조화
찻 껍찟띠(태국)의 '발로 하는 얼굴마사지'와 레 민 쿠에(베트남)의 '골목 풍경'은 날선 비판 위에 올려진 농익은 유머가 조화를 이루었다. 12편 중에서 가장 잘 읽히는 소설들이다. 재미를 보장하되 감동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읽고 나면 처연함과 쓸쓸함이 몰려온다. 강렬한 여운은 덤이다.
사다트 하산 만토(인도)의 '모젤'은 첨예하기 이를 데 없는 종교 대립을 다루었다. 인도의 시크교와 이슬람교이다. 그 대립에 '사랑'이 끼어든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이 종교를 초월한다. 죽음이 눈 앞에서 춤추는 극한의 대립 상황에서도 '당신의 종교 따위'라며 유머를 발산하는 주인공 모젤은 마치 살아 있는 듯하다. '돈 키호테'만큼 생동감 있는 캐릭터다.
"모젤은 티얼로천의 터번을 자신의 몸으로부터 밀어냈다. "치우세요... 당신의 종교 따위." 그러고 나서 풍만한 가슴 위로 힘없이 팔을 떨어뜨렸다." (292쪽 중에서)
힘들고 힘든 이야기, 그래도 알아야 한다
세계 문학이란 뭔가. 서양 문학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옛 것은 추앙 받고, 고루한 건 신성시 되고, 새로운 건 시대를 선도한다고 말한다. 아시아 문학이란 뭔가. 세계 문학을 양분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텐데, 실상은 신비롭고 낯설 뿐이다. 옛 것도 고루하고, 새로운 것도 고루하다고 말한다. 아시아가 겪어 온 굴곡이 너무나도 험하기에, 그 굴곡과 참상을 고스란히 표현해내는 아시아 문학은 받아들이기 힘들기 마련이다.
여기 12편도 받아들이기 힘들지 모른다. 힘들었던 옛날, 여전히 힘든 오늘날, 굳이 힘든 이야기를 찾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알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를 모르고 다른 누가 알아주기를 바랄 순 없거니와, 다른 누가 우리를 멋대로 재단하는 걸 손 놓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그럴 때 우리조차 우리를 다른 누구의 재단에 맞춰 재단해버린다. 지금까지는 그래 왔다.
그 첫걸음을 문학으로 떼는 건 괜찮은 방법이다. 쉽지 않을 선택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물결의 비밀>에는 비록 읽고 생각하기 어렵고 힘들지만 의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소설들이 집합했다. 부디 소중한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진짜'를 찾으면 많이 퍼뜨려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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