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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낯섦과 함께, 양극단에서 줄타기 하는 짜릿함을 만끽하다 <용의자의 야간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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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용의자의 야간열차>



<용의자의 야간열차> 표지 ⓒ문학동네


언젠가 새벽에 기차를 타게 된 적이 있다. 자정은 넘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대전 인근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였으니 한 새벽에 도착했었으리라. 몇 년이나 지난 그때의 길지 않은 야간 여정이 아직도 생각나는 이유는 분위기 때문이다. 객실을 통째로 빌린듯 듬성듬성 보이는 사람들, 어둠 뿐인 밖에는 종종 여린 빛만 보이고, 그렇게 언제고 그 시간 그 자리에 있고 싶었다. 


뇌리에 남아 있는 또 하나의 기차 여정은 중국에서 장장 10시간 동안 탔던 침대 기차 여정이다. 창춘에서 베이징까지 갈 때 이용했는데, 기본적으로 앉아 있는 대신 누워가는 거였다. 밖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수많은 사람들만 보였다. 언제고 내 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 언제쯤 목적지에 도착하려나 하는 끝없는 기다림, 지루함과 몽롱함까지. 그 시간을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나에게 기차는 그렇게 양극단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설레지만 지루하고, 아련하지만 요란하고, 기대감에 충족되어 있다가도 어느새 몽롱해지고 마는 것이다. 이 모든 걸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평소에는 느껴보기 힘든 감정들의 나열. '낯섦'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온갖 낯섦과 함께 하는 기차 여정


기차 여정에는 낯선 감정들, 그리고 낯선 이들, 낯선 상황들 또한 함께 한다. 다른 이동 수단과 비교해 보면, '자동차 여정'이나 '비행기 여정'이라고 하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거기엔 낯섦이 없고 여정이나 여행도 없다. 목적지로의 이동이 있을 뿐이다. 반면 기차는 다르다. 여정이고 여행이다. <용의자의 야간열차>(문학동네)가 얼핏 난해하고 기기묘묘하며 서사적 구조가 약해보임에도, 매혹적으로 읽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여행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당신'이라고 지칭되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일본인 무용수의 야간 기차 여행을 담았다. 유럽, 러시아, 중국 각지를 다닌다.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가 터지고, 생각지 못한 곳에서 내려 생각지도 못한 음식을 먹기도 하며, 별의별 사람들을 만난다. 기차, 그것도 침대칸이 배정되는 야간열차를 탔기 때문에 겪게 되는 것들이 많다. 


"역 분위기가 문가 심상찮다. 플랫폼에 이상하게 사람이 적다. 게다가 역무원들이 왠지 소란스러운 게 무슨 비밀이라도 감추고 있는 것 같다. 역무원을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뭣하니, 그저 묵묵히 관찰할 수밖에 없다. 역 전체가 가면을 들쓰고 있지만, 당신은 그것을 벗겨내지 못한다." (본문 9쪽 중에서)


이런 야간열차만의 특징은 제목에서의 '용의자'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평범하지 않은, 일상에서 조금은 거리가 멀다고 해야 할까. 용의자라는 단어에서 가장 크게 다가오는 건 '의심'인데, 주인공은 다양한 나라의 도시들을 통과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도 말이 통하지 않아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된다. 주인공에게 그들은 모두 용의자인 것이다. 반면 주인공이 용의자로 의심받을 때도 있다. 그야말로 용의자들의 야간열차가 아닌가. 그 안에서 나는 누구이고 우리는 누구인가. 


불안감과 설렘의 양극단에서 교묘히 줄타기 하다


주인공이 횡단하는 야간 기차 여정은 우리네 인생과 다를 게 없다. '인생은 여정과 같다'는 진부한 표현은 둘째치고라도, 의심하고 의심받으면서 불안에 떨어도 믿고 같이 갈 수밖에 없지 않냐 이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기차 여정을 '인생의 축소판'으로 볼 순 없을 것 같다. 주인공은 지극히 소극적이고 관찰자적이며, 그(그녀)가 관찰하는 인간들이 '인간군상'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하다기 보다 하나 같이 기기묘묘하다. 충분히 의심받을 만한 이들이다.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지만. 


소설은 난해만 면이 다분하다. 기존의 소설 문법으로 읽기가 쉽지 않고, 무엇보다 주인공을 1인칭인 '나' 또는 3인칭인 '그'가 아닌 2인칭 '당신'으로 지칭하는 게 적응하는 데 녹록치 않다. 그 이유가 마지막에 밝혀지지만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이 또한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낯섦'이라는 키워드로 읽히도록 작가가 의도한 것 같은데, 가히 천재적인 솜씨라고 하겠다. 제목, 문법, 서사, 배경, 인물 뭐 하나 낯설지 않은 게 없으니 말이다. 완벽하게 기획된 범위 내에서 자유로운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잘 읽히는 건 기기묘묘한 사건 사고 때문이 아닌가 싶다. 기기묘묘하면서도 한 번쯤은 겪어봤음직하고 기차를 타면 왠지 겪어보고 싶기도 하다. 그것이 설렘으로 다가오는 에피소드가 있고 불안감으로 다가오는 에피소가 있었다. 작가가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교묘히 해서 책을 놓치 않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슬아슬함은 불편함과 불안감을 주기도 하지만, 설렘과 짜릿함을 주기도 한다. 하나라도 제대로 안겨 주기 힘든데, 동시에 상반된 두 가지를 주니 어지럽지만 황홀할 따름이다. 이제 보니 이 상반된 두 가지는 한 면만 따로 다니진 않는 모양이다. 항상 같이 다니며 같이 다가오나 보다. 동전이라고 해야 할까.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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