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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세상에서 가장 지질한 상류층 인간의 정신이상 일지 <아메리칸 사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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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아메리칸 사이코>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 포스터 ⓒ21세기 엔터테인먼트


하얀 바탕으로 진한 빨간 색의 피가 흐른다. 하얀 바탕은 곧 접시가 되고 피는 곧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의 핏물이 된다. 그곳은 상류층이 즐비한 레스토랑이다. 종업원인지 셰프인지 손님들에게 요리를 내주며 코스를 설명한다. 상류층으로 보이는 손님들은 경청한다. 나만 그렇게 보이는가? 그들의 행세가 매우 지질해 보인다. 그들의 학력은 매우 높을 테고 매우 잘 살고 있으며 또 사회적 지위와 명망도 높을 테지만. 


세상에서 가장 지질한 상류층 인간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는 이처럼 메시지를 던지며 시작된다. 피와 핏물의 동질성, 상류층의 지질함. 그리고 그걸 보는 제3자의 시선까지.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만(크리스찬 베일 분) 또한 이 상류층의 일원이다. 그는 아버지가 사장으로 있는 월스트리트 중심가 금융사 P&P의 부사장이다. 27세의 젊은이로, 학력도 높고 잘 생기고 돈도 많으며 무엇보다 자신을 잘 가꿀 줄 안다. 


패트릭은 여지 없이 초고층의 거의 꼭대기에서 근무하며, 순백색의 잘 가꿔진 집에서 산다. 그는 자신을 매우 사랑하고, 그런 자신을 내세우기 좋아하며, 그 이상으로 남에게 지는 걸 싫어한다. 영화가 시작되면 패트릭의 그런 일련의 특징들을 죽 보여준다. 


규칙적인 운동 후에 웬만한 여성보다 더 많은 스킨 케어 화장품으로 자신을 가꾼다. 그는 그런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그러곤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 즉 아버지를 잘 둔 젊은 부사장들 모임에 참여해 그야말로 쓸 데 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축 낸다. 하지만 그들 자신에게는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 하나라도 더 아는 채 하려는 것. 


남에게 지는 걸 싫어하는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름 아닌 명함 자랑이다. 형압으로 팠다느니, 계란 껍질을 이용했다느니, 그 어느 것보다도 예쁜 색깔이라느니. 명함을 건네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이번에 명함을 새로 장만했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한 허세다. 그런데 패트릭 만이 각각의 명함 등급을 알아보고 혼자 손을 떨고 식은땀을 흘린다. 자신의 것보다 더 좋은 명함들을 보고서.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한 장면. ⓒ21세기 엔터테인먼트



우월함의 증명, 세상에 대한 증오, 결국 살인까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증세(?)들을 겪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가꿔서 내놓아 자랑하고 싶고 또 그 중에 제일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 그러면서 절대 지지 않고 싶고, 졌다는 걸 알고 내색하지 않으려는 의지. 일반적으로 같은 증세라도 해도 상류층이면 상류층다운 증세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영화는 정반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상류층답게 지질의 급도 높다고 해야 할까. 참 한심하다. 실제로도 그럴까.


패트릭은 같은 일원이지만 제3자적 시선을 드러낸다. 그들은 상류층이면서도 급 높은 지질함을 자랑하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80년대의 유수 노래들이 많이 나오는데, 모두 패트릭이 신봉해 마지 않는 노래들이다. 패트릭은 수많은 노래들을 듣고 비평한다. 이것은 그가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증거 중 하나이다. 


이 격렬한 증세들과 더불어 우월주의는 결국 살인으로까지 이어진다. 노숙자를 살인하면서 시작된 살인 행각은 여성들로 이어진다. 그러는 와중에 돈으로 산 여자들과 섹스 비디오를 찍기도 하는데, 여지 없이 나르시시즘의 모습을 보이고 자기 과욕이 극에 달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걸 증명해 보이려는 수작이 아닌가 싶다.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한 장면. ⓒ21세기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중반 이후가 되면서 패트릭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에 초점을 맞춘다. 자신도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그걸 자각하지만 더 이상 손 쓸 도리가 없다. 같은 상류층에 위치한 이들에 대한 증오와 함께 자신보다 아래에 위치한 이들에 대한 증오, 즉 세상에 대한 증오가 뿌리 깊어진 것이다. 그는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일까. 감독이 의도한 바는 무엇일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피해자도 많아졌고, 괴물도 많아졌다


제목에서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겠다. 아메리칸 사이코, 즉 미국인 정신병자. 때는 80년대 냉정 막바지. 미국은 세계 패권을 거의 손에 넣었다고 볼 수 있겠다. 승리자가 된 것이다. 그런 곳에서도 상류층인 이들이 누리는 호사는 상상을 초월한다. 돈, 명예, 명성, 특권 등. 거기에 영화는 약물과 여자를 추가한다. 문제는 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느냐는 점이다. 여기서 교육이라 함은 '인성' 교육을 말한다.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곳에서 인성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이 든다. 받지 않았을 거라 추측된다. 


그런 상태로 최고의 위치에 오른다면 당연히 어떤 문제고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살인 행각은, 그것도 아주 엽기적인 살인 행각은 그렇게 생겨난 문제의 최악의 표출이라 할 수 있겠다. 인성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에 대한 사랑만이 드높고 드러내는 것만 익숙하다. 그러면서 같은 부류의 이들과 행하는 지질하지만 진지한 경쟁, 그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채 아래 부류의 이들과 행하는 자기 우월 표출 의식. 결국 경쟁과 우월 표출이 살인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패트릭도 피해자일까. 이 시대가, 이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일까. 그의 행각 자체를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렇다고 볼 수 있겠다.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 영화가 던지는 중요하지만 협소한 메시지는 더욱 중요해지고 더 확대되었다. 피해자도 많아졌고, 괴물도 많아졌으며, 피해자이자 괴물인 이들도 많아졌다. 개인적으로 피해자이자 괴물인 이들은, 그것도 하류층이 아닌 상류층이 이들은 피해자임에도 가차 없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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