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포스터 ⓒ외유내강
2000년대 초반, 영화 <친구>를 필두로 일명 '조폭 영화'가 범람한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법, 그만큼 인기도 많이 끌어서 나오는 족족 흥행에 성공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국 영화의 파이가 커진 게 그쯤이 아닌가 싶다. 개중엔 조폭을 미화한 경우가 많았는데, 사회적 반향이 작지 않았다. 그만큼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것이었다. 즉, 필수적이리만치 리얼리즘에 반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1990년대에 훨씬 날 것의 조폭 영화가 있었다. <초록 물고기>다. 물론 대형 스타들이 즐비했기에 완전한 날 것을 연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회는 좋아하지만, 날 것의 영화는 좋아하기 쉽지 않다. 날 것은 생활에서 접할 수 있겠지만, 영화에서까지 접할 필요가 있겠는가. 영화는 영화다워야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초록 물고기>를 티끌 하나 없는 접시에 놓인 맛있는 회로 비유하자면, 2000년대 이후에 나온 조폭 영화들은 티끌 하나 없는 접시에 놓인 맛있는 회무침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회를 초장 맛으로 먹는 사람이 은근히 많거니와 한 번 그 맛에 발을 들여놓으면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2000년에 나온 류승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자 류승범의 데뷔작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은 더럽다기 보다는 깨끗하지 않은 접시에 놓인 싱싱하기 그지없는 회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초장 같은 건 필요 없다. 회 그 자체로 맛이 일품이니까. 다만 쉽게 접하기 힘들다. 날 것의 비릿함이나 미끈함을 즐기지 않을 수도 있고, 회만이 갖는 그 어떤 카리스마에 주눅이 들 수도 있겠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과연 어떤 영화일까.
돌아올 수 없는 치명적 비극으로의 길
영화는 4개의 짧은 단편 연작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각각의 제목은 '패싸움' '악몽' '현대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인데, 이 비극의 시작은 사소했다. '패싸움'. 당구장에서 공고생 석환(류승완 분)과 성빈은 예고 학생들에게 '공돌이'라고 비웃음을 받고 있다. 이에 분노를 터뜨리는 석환과 말리는 성빈. 그때 후배가 피투성이가 된 채 당구장으로 들어온다. 누가 그랬냐는 질문에 예고 학생의 두목 격인 현수를 가리킨다. 즉시 석환에 의해 패싸움이 시작되고, 실수로 성빈이 현수를 살해하게 된다.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한 장면 ⓒ외유내강
'악몽' 출소하게 된 성빈과 강력계 형사가 된 석환. 성빈은 매일 밤 죽은 현수가 나오는 악몽에 시달린다. 카센터 일을 하며 성실하게 살아보려 하지만, 의도치 않게 건달의 길을 가게 되는 성빈. 그런 오래된 친구 성빈을 피하는 석환. 더 벌어진 이들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불러오는 씨앗이 된다.
'현대인' 아무도 없는 공사장에서 마주친 성빈의 두목과 석환의 물러설 수 없는 싸움. 이들의 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누가 형사고 누가 깡패인지 분간할 수 없다. 그들 말마따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고, 할 수 있는 게 싸움밖에 없어서 그 길을 택한 거다. 다만, 한 명은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으로 다른 한 명은 법의 테두리 밖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보면 한 끗 차이라고 할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꿈 없이 살아가는 양아치 고등학생 상환(류승범 분). 그는 석환의 동생이다. 매일 하는 일 없이 싸움질이나 하러 다니는 상환은 잘 나가는 건달이 된 성빈을 보고 한 눈에 반해 그의 조직에 가입한다. 성빈은 그가 석환의 동생이라는 걸 알고 고민한다. 그 고민은 이 비극의 결정적 한 방이었다. 이 비극의 결말은 무엇일까.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한 장면 ⓒ외유내강
지금 이런 류의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연기와 세트로 시작되는 영화는 뒤로 갈수록 무엇을 말하려는지 무엇을 전하려는지 점점 명확해지면서 그야말로 환골탈태한다. 회가 너무 맛있기 때문에 그걸 담은 그릇이 어떤 상태인지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회가 맛있는 건 기본이고, 담은 그릇의 질과 데코레이션의 화려함 그리고 회를 서빙할 때의 친절함, 조명, 분위기, 냄새까지 완벽해야 하는 요즘과는 확연히 다른 시대의 것이라는 게 느껴진다. 정확히는 회만 맛있으면 승부를 걸어볼 만한 여건이 되었던 시대의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이 영화가 만들어진 때다. 류승완 감독이 아직 조감독인 시절 사제를 들여 만든 단편들이 있는데 그것이 장편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중 앞의 3편이고, 그때가 1990년 후반이다. 거의 20년 전인 만큼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제대로 된 감정을 할 수 없다. 특히 조폭 영화가 막 범람하려는 그 시기에 이런 류의 조폭 영화는 모험이자 혁명이다.
날 것의 액션은 '현대인'에서 극에 달한다. 류승완 감독이 앞으로 보여줄 영화들의 액션 방향을 확실히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대역 없이 액션을 소화하는 건 신기하다는 감정과 함께 감탄을 불러 일으키고, 순수한 타격의 연속이 보는 이로 하여금 '무섭다'고 느낄 정도인 것이다. '진짜'가 '가짜'보다 더 무서운 법이다.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한 장면 ⓒ외유내강
한편, 영화는 형사나 깡패가 하는 짓이 거기서 거기라는 걸 보여주면서도 깡패는 할 짓이 못 된다는 걸 확연히 보여준다. 깡패라는 게 조폭 영화에서 보듯 멋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고나 할까. 성빈은 조폭 생활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고, 두목이 되어서도 '전쟁' 대기를 허름한 분식집에서 하며, 경찰뿐만 아니라 각 국가 공무원 집단의 시달림(?)을 받아야 한다. 두목이 되기도 전에 '칼받이'로 개죽음 당하기 일쑤이다. 그럼 그냥 인생이 끝나는 것이다. 영화 제목대로, 깡패가 되어 조직폭력배 생활을 하는 건 죽는 거 아니면 그에 버금가는 나쁜 결과밖에 도출되지 않는다.
지금 이런 류의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독립 영화들에서조차 날 것의 맛을 맛보기 힘들다. 독립 영화도 더 많이 알려 관객들을 불러모아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인데, 그러기 위해선 적은 자본이 허락하는 한 최고의 포장이 필요하다. 오히려 상업 영화보다 더 치밀하고 꼼꼼한 포장이 필요할 것이다. 상업 영화는 두 말 하면 이름 아프고. 예전이 그립다기 보다는 관객의 입장에서 현실이 가슴 아프다. 우리는 더 다양한 종류의 영화를 볼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긴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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