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포스터 ⓒ유니버셜 픽쳐스
오랫동안 풀지 않았던 숙제를 푼 기분이다. 오랜 숙원을 푼 기분이다.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본 후 느낀 기분이다. 영화를 즐겨 보는 만큼, 추천도 받고 추천도 많이 해준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영화를 추천 받아 볼 때는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맛 본 것 같다. 추천해준 이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좋은 영화 한 편에는 뭔가 있는 게 분명하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분께 영화 추천을 받는 경우가 드문데, 두 분께 받은 두 편의 영화가 생각 난다. 중학교 2학년 때 큰이모부께서 추천해주셨던 영화, <포레스트 검프>. 이 영화 덕분에 톰 행크스를 좋아하게 되었고, 이후 그의 영화를 챙겨봤었다. 그리고 <포레스트 검프>는 그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영화로 남아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리고 15년 이후 첫 회사의 사장님께서 추천해주셨던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몇 번에 걸쳐 꼭 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름 영화에 대한 지식이 많이 쌓였다고 자부하고 있던 터에 뜬금없이 추천을 받았던 탓인지, 아니면 회사 사장님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는지, 애써 무시하고 오랫동안 보지 않았다. 그거 아니고도 봐야 할 영화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 않던가?
과연 명불허전, 또 하나의 내 인생 영화
애써 무시하고 외면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묵혀 두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던 차에 무심코 보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어른이 추천해준 영화는 반드시 봐야겠구나.' 그 오랜 경험과 연륜의 관문을 통과한 영화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이 영화 또한 내 인생의 영화가 될 게 분명하다.
에블린(케시 베이츠 분)은 남편한테 사랑 받지 못해 괴롭다. 더구나 양로원에 있는 숙모를 주기적으로 찾아가는데, 갈 때마다 그녀만 쫓겨나곤 한다. 여성 강좌에 나가기도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스트레스 때문에 식성은 늘어나고 여자로서 나아가 인간으로서 자괴감까지 드는 것이다. 그때 80대의 노파 닌니가 다가와 집안의 옛 이야기를 꺼낸다.
때는 1900년대 초중반 미국의 남부. 10대 초반의 잇지는 말광량이다. 그녀는 오빠 버드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 그런 버드가 사랑하는 이가 루스였는데 셋이 어울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루스의 모자가 바람에 휘날려 기찻길로 날아간다. 버드는 모자를 낚아 채지만 발이 기찻길에 껴 기차를 피하지 못하고 죽고 만다. 이후부터 잇지는 당시 정상적인 여자의 모습을 벗어난 생활을 한다.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한 장면 ⓒ유니버셜 픽쳐스
어느 날 다시 나타난 루스. 루스는 잇지를 바른 길(?)로 인도하라는 명을 받은 상태였다. 잇지에게 천천히 다가가는 그녀. 그런데 루스는 잇지를 인도하지는 못할 망정 그녀에게 빠지고 만다. 그녀의 행동은 여성스럽지만 않을 뿐이었지 굉장히 멋있었고 또 나쁘지만 의로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루스는 부모님이 정해준 상대인 결혼을 해야 했다. 그 결혼 생활은 어땠을까? 루스를 찾아간 잇지는 루스의 얼굴에 있는 상처를 발견하고 얼마 안 있어 임신한 그녀를 데려온다. 그러곤 '휫슬 스탑'이라는 카페를 만들어 함께 운영한다.
여성의 참정권 요구 운동과 흑인 폭력 문제
1900년대 초기, 여성은 태어나기를 여성으로 태어나 죽기까지 여성으로 존재해야 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천지개벽할 변화가 있지만, 적어도 의식의 변화는 크지 않다. 17~18세기 유럽의 시민혁명으로 민주주의가 대두 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하지만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역할만 강요 당할 뿐, 민주주의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권리인 참정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에 여성의 참정권 요구 운동이 시작된다. 각 영역에서 여성의 해방을 목표로 하는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이기도 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의 경우 1920년에 비로소 남녀에게 동등하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남녀평등의 시발점이다.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한 여성 또는 두 여성의 삶을, 그것도 여성 참정권이 주어진 즈음의 시대를 서사로 풀면서 그 자체로 페미니즘을 외치고 있는 듯 보인다.
문제는 이들이 흑인들을 고용하는 것도 모자라 흑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성이라는 한계를 뛰어 넘는 행동을 보여 왔던 잇지 였지만, 흑인들과 관련된 건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위험했던 거였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만다. 루스의 남편이 KKK단과 함께 흑인을 문제 삼으며 테러를 가한 것이다.
남북 전쟁 이후 남부의 백인우월주의자들에 의한 흑인 폭력이 1960년대까지 계속되었는데, 그 한 가운데 1866년 조직된 '쿠 쿠룩스 클랜(KKK)'가 있었다. 그럼에도 잇지는 흑인 친구들을 버리지 않았다. 여전히 사내 대장부 같은 포스를 뿜으며 카페를 꾸려 나갔고 모두를 지켰다.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한 장면 ⓒ유니버셜 픽쳐스
평등과 자유에의 투쟁은 사랑으로 귀결된다
이 영화가 페미니즘 만을 외치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평등이라는 큰 틀 안에서 페미니즘 뿐만 아니라 흑인과 백인의 평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흑인 평등에 관한 법이라면 가볍게 무시하는 남부를 배경으로 말이다. 남부에서의 흑인의 삶이란 링컨의 역사적인 노예 해방 때로부터 100년이 지나가도록 나아진 게 없었다. 오히려 백인들의 위협으로 나빠지면 나빠진 상황이었다.
단적인 예로, 백인과 흑인은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없었고 화장실도 같이 쓸 수 없었다. 어딜 가서 무엇을 하든 웬만한 것들을 같이 이용할 수 없었다. 그런 남부에서 흑인 평등에 관한 법률이 강화되기 전인 1900년대 초중반을 배경으로, 그것도 남자가 아닌 여자가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목숨이 몇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영화는 그런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의 한 장면 ⓒ유니버셜 픽쳐스
닌니로부터 일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에블린은 변화해 나간다. 처음엔 여자로서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진취성을, 그리고 나서는 그 이상의 자유롭고 깨어 있는 발상을,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인간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결국 잇지가 보여준 평등과 자유에의 투쟁은 사랑으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그렇게 살아가게 된 이유 중 제일 큰 게 바로 가장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었기 때문이리라. 그 사랑을 누군가에게 후회 없이 쏟아붓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 대상이 누구든지 간에. 여자와 남자, 흑인과 백인, 정상인과 장애인, 부자와 거지를 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인간으로 사랑하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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