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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참으로 거대한 이야기, 끝을 잘 맺어야 할 텐데... <하트 오브 더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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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하트 오브 더 씨>



영화 <하트 오브 더 씨> 포스터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어두운 밤, 젊은 남자가 늙은 남자의 집을 찾는다. 젊은 남자는 전재산을 늙은 남자 앞에 내밀며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부탁한다. 늙은 남자는 한사코 강하게 거절한다. 이에 젊은 남자도 강하게 밀어붙이지만 결국 거절 당한다. 그때 늙은 남자의 아내가 나선다. 그녀도 평생 듣고 싶었지만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다. 아내의 부탁으로 늙은 남자는 입을 연다. 


젊은 남자는 훗날 늙은 남자가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모비딕>이라는 희대의 걸작을 탄생 시킨다. 젊은 남자는 다름 아닌 '허먼 멜빌'이다. 늙은 남자는 1819년 여름, 미국 낸터킷 섬에서 출항했던 포경선 에식스호에 승선한 21명의 선원 중 한 명이다. 그는 에식스호에서 세상 누구도 겪어보지 못했을 그런 일을 겪었고, 그 이야기를 허먼 멜빌에게 해준다. 늙은 남자는 '토마스 니커슨'이다. 


해양 블록버스터에서 조난으로


영화 <하트 오브 더 씨>는 이처럼 참으로 재미없게 시작한다. 해양 블록버스터에서 조난으로 이어지는 스토리라는 걸 알고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같은 시작은 그리 반길 만하지 못하다. 중요한 건 얼마나 스펙터클한 장면을 선사할 것인지,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생존을 얼마나 처절하게 그려낼 것인지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현재와 함께 정확히 시간의 순서대로의 회상을 번갈아 이어간다. 


포경선 에식스호에는 본래 오웬 체이스(크리스 헴스워스 분)이 선장으로 약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체이스는 귀족 출신이 아닌 바, 약속은 약속일 뿐이었다. 선주는 체이스를 일등 항해사로 삼고 선장 대신 많은 돈을 주기로 약속한다. 단, 기준 이상의 많은 향유를 가지고 와야 했다. 한편, 선장은 유명한 귀족 가문의 조지 폴라드(벤자민 워커 분)가 되었다. 체이스가 보기에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에 불과했다. 마치 온갖 전투에서 잔뼈가 굵은 상사 급이 이제 막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높으신 분의 아들 소위를 상사로 모시고 전투를 치르러 가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떠난 여정, 얼마 가지 못해 고래 사냥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강한 풍랑을 만난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선장 대신, 일등 항해사 체이스와 이등 항해사 조이가 진두지휘 한다. 자존심에 상한 폴라드 선장은 무리하게 전진한다. 선장으로의 자존심, 어떻게든 향유를 얻어야 한다는 조바심, 자연의 무서움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무지함이 드러난 참사와 같은 결정이었다. 



영화 <하트 오브 더 씨>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거대한 자연이냐, 육지의 왕 인간이냐


계속되는 전진 끝에 에식스호는 소기의 목적을 이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흰고래의 습격으로 배가 한순간에 침몰한다. 선원들은 조그만 한 배에 옮겨 타 여정을 계속한다. 계속 쫓아오는 흰고래의 습격으로 무인도에 조난을 당하기도 한다. 그곳에서 폴라드와 체이스는 대립한다. 흰고래의 습격을 받고도 작살을 던지지 못한 체이스였다. 


체이스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먼지보다 못한 존재다"라고 말을 건넨다. 이에 폴라드는 "우리는 육지의 왕이며, 싸울 기회가 생긴다면 남자답게 싸우며 죽겠다 "라고 받아 친다. 누구의 말이 정답인지는 알기 힘들지만, 영화는 체이스의 말이 맞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영화는 해양 블록버스터의 느낌을 물씬 풍기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건 다름 아닌 자연과의 치열한 사투이다. 그 사투를 누구보다 많이 경험한 체이스, 그러하기에 누구보다 잘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서도 도무지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산물 흰고래가 계속해서 나타났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작살은 쓸모 없거니와, 그저 자연에 순응한다는 생각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영화는 해양 블록버스터에서 조난 혹은 재난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적막에 휩싸인다. 



영화 <하트 오브 더 씨>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정녕 실망인 반전, 그래도 '론 하워드'


조난의 여정은 참으로 오래 이어진다. 94일 간 7,200km의 표류. 희망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이 절망 만이 계속되는 망망대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기다리는 거였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자신들을 구조해줄 배를 만나는 거, 또는 육지가 보이는 거. 그렇지만 너무 오래 지속되는 표류의 나날은 그 기다림의 희망도 온 데 간 데 없게 했다. 그렇게 그들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르게 된다. 가장 비극적인. 


문제는 막상 그 비극적인 선택의 전말을 알게 되면, 참으로 허무하기 짝이 없다는 거다. 이미 보지 않았는가? 영화 <파이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다. 이 거대한 여정의 끝에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하게 된 그 비극의 전말이 늙은 토마스 니커슨이 평생 숨기며 살았던 사실이며, 그것이 이 서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반전이라면 실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녕 실망이다. 안타깝기 그지 없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 반전이 이 영화에서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감동의 층위를 깎아내리며,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고래와 인간을 더 심층적으로, 사실과는 다르더라도 다른 측면으로 그려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아예 정통 스타일로, 바다 위에서의 자연과 인간의 사투를 그려냈어도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가 갖는 분위기, '론 하워드' 감독 만의 꼼꼼한 연출, 전혀 엉성함이 보이지 않는 영상 등에선 흠잡을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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