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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큰 허점과 진한 아쉬움에도 이 영화가 갖는 힘! <세기의 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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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세기의 매치>



영화 <세기의 매치> 포스터 ⓒ판시네마(주)


1972년, 냉전 한복판에서 제3차 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체스 세계 선수권 대회 결승. 그 주인공은 미국의 체스 천재 '바비 피셔'와 러시아의 체스 황제 '보리스 스파스키'. 6세에 체스 입문, 13세에 미국을 제패하고, 15세에 그랜드마스터의 칭호를 획득한 바비 피셔는 30세에 세계 챔피언에 도전한다. 보리스 스파스키는 30세에 그랜드마스터가 되었고 33세인 1969년부터 1972년까지 무적의 체스 황제로 군림하고 있었다. 


천재 대 황제의 대결에서는 천재가 이기곤 한다. 그렇게 한 시대가 흐르는 것이다. 그렇지만 천재에겐 우여곡절이 많다. 체스를 예로 들면, 천재는 오로지 체스만 잘 할 뿐이다. 체스 이외의 것에는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문제는 천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그들은 체스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고 잘 알지 못한다. 천재가 체스를 잘 해서 이기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영화 <세기의 매치>의 한 장면 ⓒ판시네마(주)



미국과 소련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제3차 세계대전을 방불케 할 정도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 1972년 체스 세계 선수권 대회 결승은, 천재 바비 피셔에게 너무나 큰 시련이었다. 그건 보리스 스파스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체스로 상대방을 이기고 챔피언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시대는 그것 만을 원하지 않았다. 미국과 소련은, 자국 선수의 승리를 자국의 승리로 여겼다. 


예민함과 외로움이 천재적인 체스 재능으로


영화 <세기의 매치>는 바비 피셔의 어린 시절부터 1972년 체스 세계 선수권 대회 결승까지, 그의 체스 일대기를 다뤘다. 바비 피셔(토비 맥과이어 분)는 혁명을 주창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당연히 감시가 따라다녔고 피셔에게 감시는 평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몹쓸 것이었다. 그 때문에 피셔는 어릴 때부터 극도로 예민했고 외로웠으며, 그 예민함과 외로움이 체스로 옮겨졌다. 


곧 체스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피셔, 일사천리로 미국을 재패하고 세계 재패로의 길을 떠난다. 그렇지만 어릴 때의 트라우마는 계속 그를 따라다닌다. 그가 실력을 100% 낼 수 없게 만들었다. 드디어 세계 챔피언 보리스 스파스키에게 도전한 피셔, 하지만 첫 번째 도전은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영화 <세기의 매치>의 한 장면 ⓒ판시네마(주)



이듬해 다시 도전장을 내민 피셔, 전 세계의 수많은 그랜드마스터들을 꺾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피셔는 당당히 그들을 모두 꺾고 다시금 보리스 스파스키 앞에 선다. 그의 실력은 이미 세계 최고, 그가 넘어서야 할 대상은 보리스 스파스키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적, 트라우마를 넘어서야 했다. 그러다 보니 그는 주최 측과 상대방에게 여러 무리한 요구를 한다. 과연 이번에는 이길 수 있을까?


시대의 희생양이 된 개인의 아픔, 제대로 그리지 못하다


<세기의 매치>는 15년 전인 2001년 작품인 론 하워드 감독의 <뷰티풀 마인드>가 생각나게 한다. <뷰티풀 마인드>는 <세기의 매치>와 마찬가지로 천재와 냉전에 관한 이야기로, 미국의 수학 천재가 소련의 암호 해독 프로젝트에 비밀리에 투입되었다가 소련 스파이가 미행하고 감시한다는 망령에 사로잡힌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랑으로 이겨냈고 노벨상을 타기에 이른다. 그의 이론은 전 세계 수많은 것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영화 또한 시대의 희생양이 된 한 개인의 아픔을 그려내고자 했다. 혁명의 이면에 있는 감시와 미행으로 괴로워했고 냉전 시대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어 가는 개인의 정신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온전히 그려내지 못한 것 같다. 분위기, 메시지 등이 <뷰티풀 마인드>와 비교되지 않았다. 


연출력과 시나리오는 괜찮았지만, 무엇을 전달하려고 한 것인지 뚜렷하지 못했다. 알았다고 해도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결국은 주인공인 바비 피셔에 대한 이야기인데, 피셔가 어릴 때 당했던 감시와 미행은 혁명에 의한 것임에 반해 나중에 망상으로 감시와 미행을 당하는 것처럼 느끼는 건 무엇인가? 단순한 한 개인의 트라우마인가? 아니면 냉전 시대의 국가주의로 인한 감시와 미행인가? 하지만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감시와 미행을 당할 만한 짓을 한 적이 없다. 적어도 영화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서로 호응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영화를 이끌어가는 제일 중요한 부분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영화 <세기의 매치>의 한 장면 ⓒ판시네마(주)



여러 아쉬움에도, 실화를 다룬 영화는 환영한다


큰 허점에도 이 영화는 힘을 갖고 있다. 다름 아닌 '실화' 덕분이다. 일종의 인간 승리 스토리이다. 그가 세계 챔피언이 되었든 되지 못했든 한 곳 만을 바라보고 전진하는 인간의 숭고함은 인간을 공감의 장으로 불러들여 울리게 마련이다. 바비 피셔가 왜 힘들어 했는지 생각하기 보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한다면,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바비 피셔에게는 두 조력자가 있었다. 한 사람은 자칭 애국자인 변호사 마샬과 전직 체스 선수인 신부 롬바디이다. 마샬은 체스를 잘 모르지만 피셔를 스타로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기에 계속해서 그를 압박하고 이용하려 들었다. 반면 롬바디는 그를 이해해주는 인물이다. 그가 힘들어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면 체스로 풀어주었다. 영화는 이 두 조력자의 입장 차로 다른 면으로 피셔의 상태와 맞물려 바라보려 했는데, 그 또한 매끄럽지 않았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크게 남은 영화 <세기의 매치>. 개인적으로 결정적인 요인은 길게 남지 않은 여운이었다. 실화라면 아무래도 여운이 길게 남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러지 못했다. 해피엔딩이라고 하기에도, 새드엔딩이라고 하기에도, 어정쩡한 결말 때문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에 접한 천재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도 그리 길지 않은 여운이었는데, 이 영화는 그 길이가 더욱 짧은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천재의 실화를 다룬 영화를 언제나 환영한다. 실존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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