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22세기 세계>
<22세기 세계> 표지 ⓒ황소걸음
디스토피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그린 유토피아의 반대말이다. 부정의 극치, 암울하기 그지 없는 세계를 그린다. 그 미래 세계는 현실의 연장선 상에 있기에, 현실의 비판적 투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최악의 부정은 피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게 더 유용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미래를 보다 제대로 들여다보고 논의하기 위해서는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모두가 필요하다. 누구나 디스토피아 세계를 최대한 피해서 유토피아 세계를 원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피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목적을 명확히 하는 것도 중요한 것이다. 디스토피아만 논의한다면, 최악은 면할지 몰라도 차악은 면하지 못할 상황이 올지 모른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그때 당시의 세계를 기준으로, 지금은 디스토피아인가 유토피아인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 같은 면모를 상당히 보여주지 않았는가? 노예제도가 폐지되었고, 여성해방을 이룩했다. 지금에 와서 당연한 것들이지만, 세상을 뒤흔든 혁명을 거쳐 이룩한 것들이다.
멀지 않은 미래, 22세기를 말하다
<22세기 세계>(황소걸음)은 22세기의 멀지 않은 미래 사회를 자유롭게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며 혼란상과 이상향 등을 자유로운 어조와 논조로 상상력과 낙천주의를 발휘해서 쓴 여덟 작품의 모음집이다. 이 작품들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예상해본 미래의 모습을 묘사한 것과 2112년에 쓰인 글이라는 가정 하에 그 시점에서 현재 진행되는 변화를 본 것이다. 전자도 흥미롭지만, 후자가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미래에서 본 현재를 현재 사람이 상상력으로 쓴 것인데, 당연히 현실에 다분히 기반을 두고 있을 듯하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연구보다 창작에 가깝기 때문에, 그 기발함과 톡톡 튀는 게 아주 재밌게 다가올 수 있다. 상상력의 깊이가 생각지도 못하게 아주 깊어서, 그저 따라가기만 해도 눈에 떠지는 기쁨을 맛볼 수도 있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재미가 없을 수도, 눈에 아예 안 들어올 수도 있다. 현실에 기반을 두고 현실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생각해보지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들이 많을 것이다. 수위를 조절하지 못하면 흥미를 잃는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22세기 세계>의 작품들은 절반 정도의 성공을 거둔 것 같다. 너무 멀리 가버린 작품들이 몇몇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 눈을 뜨게 해준 작품이 몇몇 있었는데 소득 격차 상한선, 제비뽑기 선거, 결혼제도 폐지가 실현된 미래를 그린 작품이 그것이다. 일단 소재만 들어도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겠으니,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고 찬성을 하느냐 반대를 하느냐 거북함을 느꼈느냐 하는 건 이차적인 문제이고, 먼저 알기 쉬워야 하지 않겠는가 싶다.
현실에 기반한 미래의 이상향들
'소득 격차 상한선이 정해졌을 때'라는 작품에서 작가는 말한다. 2008~2015년에 불거진 다양한 위기가 정의의 기준에 대한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다고 말이다. 그로 인해 결국 불평등의 골을 깊게 만드는 주요소이자 지구적 원인이 되어버린 민간 금융 분야가 국유화되어 완전 통제되었다고. 그리고 소득 상한제는 과거에도 존재했다며, 불평등 심화가 극심한 경제 위기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로 판명 났을 때 소득 격차 상한선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결정적으로 소득 격차 상한선이 정해져 여러 통계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현저히 개선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모습이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그리고 가치가 있는 방법이다.
'제비뽑기 혁명'이라는 작품은 선거를 제비뽑기로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비뽑기 방식은 정치에 몸담은 이들, 정치란 타인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자기들의 영역이라 간주하던 이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었다. 또한 그렇게 해서 뽑힌 이들이 이룩한 제도는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했고, 민주적 토론의 질을 높였으며, 정치계의 자기 폐쇄적 구조를 개선할 수 있었다. 실제로 얼마 전에 나온 책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에서 저자 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는 대의제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제비뽑기 방식을 도입하는 게 대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코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왜 결혼 제도를 폐지했나'라는 작품은 결혼 제도를 폐지하고 가족을 없앤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이유로 두 사람이 함께하는 삶의 방식은 본질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결혼 제도가 존속하는 한 두 사람 간의 불평등이라는 숙명을 깨부술 수 없다는 것. 여기서 본질적으로 중요한 건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의 분류이다. 이 작품에서 결혼 제도를 폐지한다는 건 곧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분류를 폐지한다는 걸 의미한다. 여기서 그리는 이상향은, 성별이 개인을 정의하는 데 전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계이다. 차후 1세기 안에 실현 가능할까? 아마 여기에서 그려낸 이상향 중에 제일 오랜 뒤에 실현될, 혹은 실현되지 못할 세계가 아닌가 싶다.
미래를 그리는 일은 필수이며 중요한 작업이다
"이 책은 현재를 의심하는 데서 출발하여 현재의 확신을 버리고 이를 확실히 깨버리면서 미래를 상상한다." (본문 6쪽)
미래는 멀지만 우리가 가야 할 그 어디, 언제이다. 그래서 멀지 않다. 멀다고 안이하게 생각하는 순간, 이미 그곳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세계가 바뀌는 건 한순간이지 않은가? 변화하는 시간의 폭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걸 느끼는 지금이다. 과거 수백 년, 수십 년의 변화가 지금은 수 년, 수십 일로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미래를 그리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건 자유라고 했지만, 이제는 필수다.
1세기 후의 멀지 않는 미래를 그리는 것, 현실을 바탕으로 최대한의 실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래를 그리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특히, 어느새 '세상 참 좋아졌어'보다 '참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네'가 더 맹위를 떨치는 비관주의 세계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분명 이 시대는 과거에서 볼 때 이상향적인 측면이 있겠지만, 사실 그 이상향의 모습을 이룩한 건 예전이 아닌가. 현재 우리가 이룩하는 것들은 상당 부분 이상향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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