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책 다시 읽기]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표지 ⓒ책공장더불어
울컥합니다.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때만 생각하면 가슴 한 편이 먹먹합니다. 일부러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비극은 여전히 저를 괴롭히네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이런 비극이 있을까요. 제발 없기를 바랍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부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에 이은 쓰나미와 예상치 못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그로 인해 방사능이 대량으로 유출되어 그 일대는 곧 아무도 살지 못하는 곳이 됩니다. 사고 후 원전 20킬로미터 이내 지역이 경계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난을 떠났기 때문이죠. 말 그대로 ‘죽음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미처 챙기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동물’들. 그 죽음의 땅에 버려지거나 남겨진 동물들 말입니다. 예상치 못한 대재앙에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서 동물들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나 봅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그들의 상황을 보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예전의 기록이라고 해도 말입니다.
남겨진 동물들을 만나러 죽음의 땅으로 가다
사진 작가 오오타 야스스케는 그 죽음의 땅으로 들어가 남겨진 동물들을 찍었습니다. 그가 촬영 당시 평소 사람들이 노출되는 방사선량의 약 2000배가 넘는 수치를 기록한 그 위험천만한 곳에 간 이유는 명약관화합니다. 그 ‘죽어가는’ 동물들을 위해서 였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진을 찍는 것밖에 없었다. 사진을 찍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그게 지금 죽어가는 소들을 위해 내가 할 일이었다.” (56쪽)
그렇게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이 나왔고 동일본 대지진이 남긴 또 하나의 참상을 목격하게 되었네요. 다수의 사진을 곁들인 이 소책자를 몇 번이고 계속 들추게 되는 이유는, 4년 전에 일어난 일을 4년 전에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 이어지는 순수하게 인간적인 감정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러니들의 향연, 그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작가가 찍은 사진에는 정확하게 개, 고양이, 소, 돼지, 말이 나옵니다. 그야말로 인간과 가장 가깝게 지내는 동물들이죠. 주로 그런 동물들이 남겨졌다는 건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 죽음의 땅에 남겨진 동물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몇 안 될 사람 중 하나인 작가가 오히려 힘겨워하고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합니다. 그가 찍은 사진들을 역설적으로 참 아름답다는 것도 아이러니하고요. 결정적으로 아무 잘못도 없는 동물들만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다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아이러니들의 향연, 그 향연의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그런 아이러니들만 계속 된다면 결국 남는 건 종말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다행히 많은 동물들이 구조되었다고 합니다. 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아이들도 있고 새로운 가족을 찾은 아이들도 있다고 하네요. 문제는 그러지 못한 아이들도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죽음과 함께 땅을 지키며 꿋꿋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가족들을 말이에요. 물론 피난민들 또한 그날을 기다리고 있죠. 세상에 이런 비극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들은 선택할 여지도 없이 헤어짐을 당하고 말았지요. 누가 책임질 것입니까?
작가는 책을 통해, 그 죽음의 땅에 남겨진 동물들을 통해 ‘죽음’과 ‘기다림’을 이야기합니다. 익사해서 죽은 소들, 굶어 죽은 개와 고양이들, 살처분으로 죽은 돼지들이 매 장면마다 나옵니다. 가는 곳마다 죽은 동물들, 죽어가는 동물들, 구하지 않으면 죽을 운명인 동물들이 있을 뿐입니다.
여전히 '지옥'인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작가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사진을 찍어 알리고, 포획하여 데리고 가는 것 뿐입니다. 그렇지만 전부를 구할 수 없죠. 그러니 그가 대하는 동물들의 태반이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해’뿐입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그렇다면 동물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요. 앞서 말했던 바와 같이 기다리는 것 뿐입니다. 그게 주인일 수도 있고, 도움의 손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기다리는 건 죽음이겠죠. 책임져야 할 당사자들이 그들을 죽이기도 하고, 책임져야 할 이들이 외면해 죽어가기도 합니다.
4년이 지난 지금이라고 달라졌을까요? 전혀 그러지 않았을 겁니다. 여전히 피난민들은 그 죽음의 땅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곳에 남겨진 동물들 또한 좋은 쪽의 기다림을 성사 시키지 못했을 겁니다. 대신 나쁜 쪽의 기다림은 성사되기 쉬웠겠죠. 작가가 영문도 모른 채 굶어 죽어 가는 동물들을 보고 ‘최소한 안락사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게 될 정도의 ‘지옥’인 그곳에서 라면 말입니다.
이 책은 저에게 오히려 동물들보다 인간들에 대한 생각을 바뀌게 했습니다. 책을 한 쪽 한 쪽, 사진을 한 컷 한 컷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불쌍한 동물들...’보다 ‘빌어먹을 인간들!’이었습니다. 도대체 인간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만 들 뿐이었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어떠했는지는 차치하고라도 말입니다.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이가 할 수 있는 건 기억입니다. 내가 할 수 없었으니 누군가라도 하게끔 기억을 옮겨야 합니다. 아니, 그보다 먼저 그곳에 남겨진 동물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려야 합니다. 그 이후에 그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미증유의 대재앙인 동일본 대지진으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 부분입니다. 그 기록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건 이 책을 읽은 이들의 몫이겠죠. 사태 해결의 요원함으로 지쳐 멀리 떠나지 말고 항상 그곳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곳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이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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