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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인간이야말로 포악하고 야비하고 나쁘다 <울지 않는 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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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 읽기] <울지 않는 늑대>



<울지 않는 늑대> 표지 ⓒ돌베개


많은 동물 중에 하필 늑대일까. 왜 인간은 늑대를 무서워할까. 왜 인간은 늑대를 미워할까. 늑대는 분명 보기만 해도 오줌이 지릴 것만 같은 강렬한 눈빛과, 단 한 번에 목숨을 끊어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이빨과, 절대로 길들여지지 않을 것 같은 야생성 다분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밤에 주로 활동한다. 그야말로 인간에게 알려진 동물 중 가장 공포와 미움의 대상이 될 만하다. 


그럼에도 늑대는 인간에게 친숙한 편이다. 웬만한 판타지 콘텐츠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늑대인간'이 그러하고, 아무래도 갯과 동물이기에 개와 비슷하게 생긴 외모가 친숙하다. 여우를 생각할 때면 늑대가 항상 붙어 다녀 '늑대와 여우'라는 명제가 자연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친숙하다고 해서 마냥 좋은 의미는 아니다. 미움의 대상인 것까진 잘 모르겠지만, 공포의 대상인 건 확실하다. 옛날 할머니께서 해주신 말씀을 기억하시는가. '뚝 안 그치면 늑대가 잡아간다.'


평소 늑대를 관심 있게 지켜보거나 한 건 아니지만, 가장 친한 지인이 늑대를 좋아하는 지라 관련된 여러 말들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늑대는 가족들에게 엄청나게 헌신적이고, 평생 한 늑대만 사랑하며, 알고 보면 엄청 착하고 너그럽다는 것. 쉽게 믿을 수 없는 얘기라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려니...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뭐? 나하고 무슨 상관인가? 


공포와 미움의 대상 늑대 대신 탐욕과 포악의 대명사 인간이 있다. 


우연치 않게 <울지 않는 늑대>(돌베개)라는 책을 접했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지인이 말했던 것과 거의 동일했다. 지인한테 이 책을 봤느냐고 물어봤는데 보지 못했다고 한다. 지인이 말한 게 사실로 밝혀졌고, 알고 보니 이 책이 늑대의 고정관념을 깬 첫 번째 콘텐츠였다. 이 책을 시작으로, 이 책 덕분에 늑대는 자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난 부끄럽지만 늑대를 좋아하게 되었다. 


저자 팔리 모왓은 캐나다 최고의 작가이자 자연학자라고 한다. 그동안 환경과 동물의 권리에 천착하여 글을 써왔는데, 그에 더해 인간과 문명의 탐욕을 유머스럽게 비판해왔다. 이 책은 그 총체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가 어느 해 여름부터 1년 동안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인간과 문명의 늑대에 대한 탐욕과 늑대의 진실, 그리고 공존. 그곳엔 공포와 미움의 대상 늑대 대신, 탐욕과 포악의 대명사 인간이 있었다. 


그는 캐나다 자치령 야생생물보호국의 소환을 받았다. 어느 여름날 그는 현장에 투입된다. 현장이란 다름 아닌 '늑대 문제'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위해 가야 하는 북극권 이하의 불모지대 어딘가 였다. 우여곡절 끝에 그곳에 다다른 그는, 에스키모와 백인의 혼혈 마이크를 만나 그의 오두막에 지내게 된다. 그러곤 늑대의 습성을 살피기 위해 본격적으로 조사 및 관찰에 들어간다. 


그가 알고 있는 늑대가 아니다


조사와 관찰을 하면 할수록 점입가경이다. 늑대가, 그가 알고 있는 늑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늑대는 그를 충분히 찢어발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전혀 그러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늑대들의 집을 공격하고 어린 새끼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것처럼 보였을 텐데도 말이다. 오히려 그를 완전히 무시함으로써 그에게 모욕을 주었다. 그렇지만 그걸로 그는 늑대에 대한 통념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가 조사해야 하는 '늑대 문제'는 궁극적으로 순록과 관계가 있었다. 순록의 멸종에 가까운 급감이 늑대의 약탈 때문이고, 상부는 볼모지대에서 이루어지는 늑대와 순록의 관계에 대한 연구 조사가 논쟁의 증거를 내놓을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열심히 임무를 수행했다. 그런데 그런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늑대는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사는 걸까? 늑대라면 순록 정도는 잡아 먹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가 조사해본 바로 늑대는 주로 쥐를 잡아 먹고 살았다. 늑대의 이미지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실이고, 적어도 순록의 여름철 서식지 밖에서 가족을 부양하는 불모지대의 모든 늑대들은, 거의 쥐를 주식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그가 원정을 온 이유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상관들이 만족하는 결과를 내놓을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이 순록도 죽이고 늑대도 죽이다


책은 비단 늑대의 진실 만을 밝히는 데 방점을 두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진실을 밝히고 있다. 늑대에 대한 잘못된 신화는 인간이 만든 것이고, 늑대를 '죽여 마땅한' 동물로 인식하게 하여 돈을 벌고자 한다는 것. 그에 앞서 늑대가 멸종 시켰다고 떠들고 있는 순록 또한 인간에 의해 그렇게 된 것이었다. 인간이 순록을 죽여 놓고 늑대에게 뒤집어 씌운 다음 늑대를 죽이는 계획을 짰다. 대단한 계획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인간이야말로 이처럼 포악하고 야비하며 나쁘다. 


한편 이 책은 굉장히 독특한데, 가장 큰 이유가 유머러스한 풍자에 있다. 책의 화자는 자신이 늑대에 대해 그래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고 현장에 투입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는 늑대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자연스레 시종일관 바보 같은 생각과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생각과 행동을 저자이자 화자는 솔직하게 표현한다. 독자가 그 모습을 보면, 인간이야말로 저토록 무지하고 대책 없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인간에 대한 비판을 꾀한다. 


몰랐던 사실을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와, 유머러스한 풍자가 주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이야기로서도, 소설로서도, 비판서로서도, 자연과학서로서도, 교양인문학서로서도 그 가치와 재미가 충분한데, 흔히 접하기 힘든 책이다. 두고두고 몇 번을 읽으면서 그 의미를 여러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고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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