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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의 진면목은 고결한 신사이자 무장독립 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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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삼웅의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심리학에서 프레임을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라 일컫는다. 사람마다 제각기 관점, 사고방식, 고정관념 등으로 다르게 해석함을 말한다. 동일한 개체를 보아도 다르게 해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8일 MBC <100분 토론>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두고 변희재씨가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운운하며 '5·18광주사태'라고 말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한 것도, 그의 프레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른 패널들은 그의 발언에 대해,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알아 들었고 결코 틀린 말은 아니나 명백한 증거와 자료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일간베스트저장소' 사이트와 몇몇 종편 채널의 근거없는 프레임으로 바라본 '5·18광주민주화운동' 논란으로, 자칫 왜곡과 왜소화가 있을까 심히 걱정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에 이어 2011년에 안창호 선생의 '강산개조론'을 강조·인용하며 산림의 중요성을 설파한 적이 있다. 그러며 4대강 사업이야말로 안창호 선생의 '강산개조론'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당시 이 발언은 엄청난 논란에 휩싸였고, 여야는 정반대로 '강산개조론'을 해석하여 당시 4대강 사업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흥사단 측은 이 대통령이 곡학아세했다고 비판하였다. 안창호 선생의 전 생애와 사상을 오롯이 추렴해보지 않고, 단문의 연설이 마치 선생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을 두고 한 비판이겠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건 분명 자유이지만, 그것이 가져올 파장이 크다는 걸 안다면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주장이 사실이 아니든 또는 그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사람의 본 뜻을 왜곡하든, 처음 접하거나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을 때는 완전한 왜곡이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정권에서 실행했던 바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국사(國史)'를 접할 수 없게끔 한 것이다. 그렇게되면 왜곡되거나 왜소화된 사실들이 마치 사실인 양 판을 쳐도 원래대로 돌려놓을 방법이 없게 된다.

도산 안창호의 본모습

도산 안창호 선생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반면 그의 이름 석자가 아닌 그의 삶과 사상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 또한 거의 없을 것이다. 그가 나의 모교 경신고등학교(1896년 안창호 선생 입학 당시 밀러학당) 출신이기 때문에 조금은 더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음에도, 선생이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라는 것 이상을 알지 못했다.

중고등학교를 보내며 안창호 선생에 대해 배운 건, 그가 실력 양성론을 주장하여 교육을 중요시했고 민주주의를 신봉했다는 정도였다. 사실 수려하고 깔끔한 외모 탓에 신사적인 이미지가 제일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사실 무장독립투사였고, 민족유일당 운동의 최전선에서 뛰었으며, 강직하고 올곧은 사람이었다. 물론 무장독립투쟁을 위해서는 실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설파하였다. 또한 민주주의 신봉자였다는 것도 맞는 사실이다. 평소에는 신사적인 이미지가 강했다는 것도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안창호 선생은 왜 그렇게 온화하고 인자하며 성인군자 같은 이미지이기만 한 것일까. 그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중립을 지키려 하고 중재하는 역할만을 맡았기 때문일까? 무장독립투쟁을 위한 준비만 하다가 독립을 맞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도산의 진면목과 업적은 추상화된 경우가 적지 않다. 누구 못지않은 무장전쟁론자인데도 실력양성론, 점진론의 온건론자로 인식되고, 독립운동의 '투사'의 측면보다 점잖은 인격자 '신사'로 자리 매김되었다. 또한 추종자 일부가 친일 변절자가 되고, 그들이 집필한 도산의 전기가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추종자 중에는 미군정을 비롯하여 독재정권에 참여함으로써 도산의 이미지에 흠집을 남기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 본문 속에서)

안창호 다시 읽기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 표지 ⓒ 현암사

그런 내가 김삼웅 선생의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현암사)을 손에 들었다. 얼마전 접했던 <한국의 레지스탕스>(생각정원)로 안창호 선생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뀐 상태여서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신민회', '의열단'을 비롯한 여러 비밀결사를 재조명하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뿌리, 나아가 지금 한국의 뿌리라 칭하고 있다. 그러며 당당하게 안창호 선생을 독립투사로 그리고 있다. 이덕일 소장도 연재물 '근대를 말하다'를 통해 안창호 선생이 한 측면에서는 무장투쟁론자였다고 말하고 있다. 안창호가 의열단의 식민통치기구 파괴 공작의 뒤를 봐주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투사와 신사 안창호 평전> 또한 안창호 선생의 '투사'적인 측면이 강조하고 있다. 저자의 손에 의해 다시 그려지는 안창호는 결코 점잖기만 한 신사가 아니다. 누구 못지않은 무장전쟁론자라는 것이다.

안창호 선생은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립협회'를 조직한다. 공립협회 소속 단원 중 이재명은 이완용 암살을 기도하였다가 실패하고 처형당했고, 장인환과 전명운 등은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를 암살하였다. 또한 이 단체의 국내 지부는 후일 확대되어 항일 비밀 결사인 신민회로 발전하였다.

신민회는 비밀 결사인 만큼 엄격한 기준으로 회원을 받아들였고, 교육과 계몽을 비롯해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궁극적인 목적은 '독립전쟁에 대비하는 만주 이민계획과 무관양성'에 있었다.

안창호 선생은 준비가 되지 않는 상태에서 즉각적으로 독립전쟁을 추진하는 입장이 아니었기에 상대적으로 온건적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이다. 목적은 같은 바, 방법론이 달랐을 뿐이다. 그를 평가할 때 그의 방법론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분명 그의 삶과 사상을 왜곡, 왜소화시키는 것이다. 안창호를 다시 보아야할 이유이다.

여전히 이승만 프레임에 갇혀 무장독립 운동가들을 과격파 또는 좌파로 치부하면서, '투사'와 '신사'의 조화를 이루었던 안창호의 삶을 왜곡하는 건 옳지 못한 일이다. 이는 친일파 행적의 큰 줄기로 그를 끌어당기려 한 것이나 다름없다. 안창호 선생의 사상을 빌려 친일파 행적 물타기를 시도한 것이다. 그만큼 안창호 선생이 위대하다는 말도 될 테지만, 그의 오롯한 삶을 보고 싶다.

왜곡에 대한 역왜곡을 해서는 안돼

왜곡이 있다고 해서 그에 대한 역왜곡을 해서는 안 된다. 주관적인 해석에 맞서 주관적인 해석이 아닌 객관적인 시각과 해석을 선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저자 김삼웅 선생은 객관적인 시각을 잃지 않는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본래 그의 이미지인 '신사'에, 재조명하고 있는 이미지인 '투사'. 하지만 본래 이미지인 신사도 왜곡된 면이 없지 않아 있다는 것이다. 신사하면 도덕군자같이 얌전하고 느긋하고 수동적인 이미지를 생각하기 쉽지만 안창호 선생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도덕주의의 울타리에서 진취적이고 능동적이며 실천을 강조하였다고 말한다. 안창호의 '신사'는 그의 성실하고 고결한 마음가짐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 안창호의 투사적인 측면은 그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안창호 선생은 신민회 산하에 청년학우회를 두었고 이를 '흥사단(興士團)'으로 발전시킨다. 흥사단은 올해 2013년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단체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상을 오롯이 투영하고 있다.

저자는 도산 선생을 왜소화해온 석공들이 흥사단의 사를 '선비 사' 자로만 이해했다고 말한다. 그러며 도산의 심중에 무사의 사와 선비의 사가 함께 살아 있었음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도산은 "흥사단은 수양 단체가 아니라 한국의 혁명을 중심으로 하여 투사의 자격을 양성코자 하는 혁명 훈련 단체이다"라고 말하였다.

도산 선생의 인품, 능력, 역할, 업적을 종합 평가하여 나름대로 정의하자면, '투사와 신사'가 아닐까 싶다. '투사'와 '신사'는 '둥근 삼각형'처럼 형용모순이지만, 도산에게는 이것이 가능했다.(본문 속에서)

저자의 목소리가 들어 있는 이 책의 의미는 특별하다. 단순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고 배워본 적도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배웠고 충분히 알만 한 내용이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눈과 귀가 가려져 볼 수 없게 된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우의 왜곡에 맞선 좌의 역왜곡, 또는 좌의 왜곡에 맞선 우의 역왜곡. 이런 식의 프레임이 아닌 안창호 선생의 올곧은 신념인 '대공주의'와 같이 객관적이고 통합적인 시각으로 안창호 선생의 삶과 사상을 서술하고 있다. 

역사를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올바른 역사를 알리는 것도 쉽지가 않다. 거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세력들의 이해가 뒤엉켜 있다. 누군가가 나서서 바로잡지 않는 이상, 그 실타래를 풀기란 너무나 힘들다. 하지만 이마저도 엄청난 희생이 뒤따른다.

김삼웅 선생은 인터뷰를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다름이 아니라 그 때문에 바깥의 일이 뚝 끊겨서 열심히 글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덩달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덕분에 올바른 역사의 일면을 차근차근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저자 김삼웅 선생은 <오마이뉴스>를 통해 계속해서 올바르고 올곧은 신념으로 한 시대를 살다간 이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안창호 평전'을 매듭짓고, 얼마 전부터 '홍범도 평전'을 집필 중이다. '봉오동 전투'의 영웅이라는 것 말고는 거의 알지 못하는 홍범도의 진면목을 기대해본다. 올바르고 올곧은 이들을 제대로 알리는 일은 그의 몫이지만, 그걸 받아들여 널리 알리고 또한 후대에 전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오마이뉴스" 2013.5.30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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