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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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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부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2년이 지났다. 10살 때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으니 20년 동안 혼자 사신 건데, 그럼에도 외할아버지는 정말 건강하셨다. 돌아가시기 1년 전에 쓰려지셔서 투병 생활을 하시다가, 건강을 되찾고 집으로 돌아오셨다고 했다. 그러고는 얼마 안 있어서 다시금 쓰러지시곤 일어나지 못하셨다.  


그때 집안 어른들은 외할아버지를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호스피스 병원으로 모셨다. 그리고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관계된 모든 가족들이 한 번씩 왔다 갈 때까지 살아 계셨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임종을 맞이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당신 생의 마지막에 만족하셨을까? 혹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가족들을 원망하셨을까?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모두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생의 끝까지 죽음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과 이별 후에 남겨질 슬픔, 그리움을 견디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발전해 왔다고 한다. 생명 연장의 꿈! 그 꿈은 거의 현실이 되었다. 비록 엄청난 돈과 노력이 들겠지만, 무슨 수를 쓰던지 생명을 연장 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 의학이 오히려 죽음의 순간을 망가뜨린다


문제는 죽음을 적으로 인식하고 어떻게 하든 피하려고 만 할 뿐, 죽음을 자연스러운 이치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부키)는 여기서 시작한다. 죽음이 비록 우리의 적일지 모르지만, 자연스러운 이치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지하면서 말이다. 이런 인식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는 지금, 현대 의학은 오히려 죽음의 순간을 망가뜨리고 있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 의학이 해결하지 못할 건 없어 보인다. 하지만 해결하지 못할 문제에 달려 들어 환자들의 죽음을 단지 의학적 경험으로 생각해 인위적인 생명 연장을 실행한다면? 분명 엄청난 고통을 초래하게 되고 말 것이다. 


저자는 이 문제를 다양한 사례와 함께 철학적으로 접근한다. 그는 먼저 자신을 포함한 의료계 종사자들에게 말한다. '건강과 생존'을 보장하는 것 그 이상의 일을 해내야 한다고. 그건 바로 환자의 '행복'을 보장해 부는 것이다. 그 방법론으로 '완화치료'가 떠올랐고, 저자는 이 방법으로 환자의 마지막을 보살펴준다면 분명 환자에게 놀라운 혜택을 가져다 줄 거라고 믿는다. 


그 믿음에는 수많은 실제 사례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그 사례들의 주인공인 환자들은 하나같이 생의 마지막을 고통스럽게 보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죽음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사람들과 함께, 온갖 의료 기기들에 둘러싸여 생명만 부지하며, 죽기 직전까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건 병원 뿐만 아니라 요양원도 마찬가지다. 앨리스 할머니는 "집이 아니라 병원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요양원도 환자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문제는 여기에도 존재한다. 집에서 보살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노인 환자들의 경우, 병원이 아닌 요양원으로 보내지곤 한다. 치료 보다는 요양을 통해서 보살핌을 받고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요양원에서의 보살핌은 환자가 원하는 보살핌이 아니라고 말한다. 환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 다는 것이다. 


"우리는 저물어 가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가 편안한 일상을 보낼 수 있게, 곁에 있는 누군가와 마음을 나눌 수 있게, 그리고 그저 수수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도 생의 마지막까지 '삶의 질'을 우선시한다는 것, 환자가 아닌 인간으로 대해주길 바란다는 것, 그리고 그저 안식을 원하고 누군가 옆에 있어 주길 바란다는 것. 하지만 이 문제를 기존의 병원이나 요양원이 완전히 이행할 수 없다는 것. 저자는 이를 위해 새로운 개념을 소개하며 그 개념을 지지한다. 앞서 말한 '완화치료' 방법론을 실행에 옮긴 것이리라. 


1990년대 초, 미국 오리건주의 케런 브라운 윌슨은 '어시스티드 리빙'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집이라는 환경 안에 환자들이 원한 바를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개념은 '보호시설에 감금됐다고 느끼지 않도록 하자'는 데 목표를 두었다. 환자는 없었고, 거주민 만 있을 뿐이었다. '집'과 다를 바 없는 시설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걸 비롯해 거의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다만 단지 내에 항상 간호사가 대기해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게 하였다. 


삶의 질을 추구하기 위한 생의 마지막에 대한 구상


이 실험을 비롯한 '생의 마지막에 대한 구상'의 개념은 성공한 듯 보인다. 오히려 기대 수명이 늘어 났고, 무조건적인 생명 연장에 따른 의료 비용이 줄었기 때문에 종말기 의료 비용도 엄청나게 줄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질을 추구했기에 환자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는 사망률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저자는 이 결과가 가장 중요하진 않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제공했다는 것 그 자체다. 그들은 의미 있고 기쁘고 만족스러운 삶을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얼마나 더 오래 사는 지에 더 중점을 둘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것은 의학이 만들어낸 가면이 아닐까? 


"의료 전문가들은 마음과 영혼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신체적인 건강을 복구하는 데 집중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삶이 기울어 가는 마지막 단계에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을 의료 전문가들에게 맡겨버렸다." (본문 중에서)


시선은 호스피스로 옮겨간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가톨릭계 병원에서 실시하고 있는데, 그래서 인지 호스피스 하면 종교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저자는 호스피스를 엄연한 의학의 한 부분으로,  지난 10년 동안의 '연명치료' 실험을 뒤로 하고 심각한 질병을 앓는 환자들을 대할 때 중요한 접근법이라고 말한다. 이 또한 앞서 언급했던 '완화치료' 개념의 실행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책은 '독립적인 삶'에서 시작해 '용기'로 끝난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서인 것 같은데, 반대로 해도 이상할 건 없어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우리는 삶의 주인으로서 자율성(자유)을 유지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핵심적 가치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독립적인 삶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죽음 또한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유는 신봉하고 그 자유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면서도, 정작 죽음과는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는다. 그건 의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저자는 마지막에 '용기'를 말하는 것 같다. 죽음을 피하지 않고 대하는 용기 말이다. 


과연 나에게 마지막 순간이 오면 용기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삶의 질을 우선하여 생명 연장을 위한 어떤 기술도 행하지 않겠다며, 그렇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혹여 치료를 해서 완치가 된다면? 완치는 안 되더라도 단 며칠, 몇 개월, 몇 년을 더 살 수 있다고 한다면? 물론 엄청난 고통이 뒤따르더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삶이 고통의 연속 아니던가? 


선택의 독자의 몫이고 우리의 몫이다. 이는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 바, 삶에서 선택의 순간들이 자신들의 몫이었듯 죽음의 순간도 자신들의 몫이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 미국은 2010년 이미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한 비율이 70%를 넘었다고 한다. 이는 의식을 회복할 수 없을 때 환자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으로, 연명치료를 포기한다는 문서이다. 


우리나라에도 '웰다잉(Well-dying)'이라는 개념으로 차츰 정착되고 있다. 지난 2009년 고 김수환 추기경이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존엄사를 몸소 실천한 바 있다. 죽음은 결코 친숙해지기 쉽지 않다. 죽음에는 '혼자'라는 개념이 깊숙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외롭지 않은 죽음이라면 어떨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관심을 갖고 생각은 해봐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10점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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