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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3명만 도와줘도 세상은 바뀔 수 있다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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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포스터 ⓒ워너브라더스



중학교에 입학하게 된 트레버(할리 조엘 오스먼트 분). 첫 느낌이 좋지는 않다. 이 학교는 제대로 된 게 없는 것 같다. 그는 첫날부터 몇 명에게 둘러싸여 위기에 처한 친구를 구해준다. 첫날 첫 수업은 사회 시간. 그런데 사회 선생님 시모셋(케빈 스페이시 분)도 이상한 것 같다. 얼굴 하관 쪽이 화상으로 일그러졌는데, 그건 그렇다 치고 첫날부터 이상한 과제를 내주는 게 아닌가?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에 옮길 것!'


이 과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트레버는 궁리 끝에 빈민가를 찾아가 노숙자 한 명을 집으로 데려온 후 먹고 씻고 자게 해준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일까? 아무래도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로 노숙자를 데려온 것 같은데,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한편 기자 크리스는 범죄 현장에 갔다가 범인에 의해 차가 박살이 나는 참사를 당한다. 침울해 하고 있는 그에게 어떤 중년 신사가 오더니 고가의 재규어를 선뜻 내주는 게 아닌가? 크리스는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자다운 근성으로 끈질긴 취재에 돌입한다. 알고 보니 그 중년 신사는 거물급 변호사였는데, 어떤 이한테 큰 도움을 받았고 그로부터 3명한테 무조건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고 전언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크리스한테 아무런 조건 없이 도움을 주었다 라는 이야기. 


'3명 도와주기'로 세상을 바꾸자!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는 2가지 이야기가 병렬식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트레버 이야기이고, 하나는 크리스의 취재 이야기이다. 트레버는 시모셋 선생님의 과제를 위해 '3명 도와주기'를 방법론으로 제시한다. 내가 3명을 도와주면 3명 각각이 3명 씩을 도와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무한대의 도움주기가 가능하다. 그렇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다. 


크리스가 취재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도 이 '3명 도와주기'였다. 그들은 자신에게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남긴 말을 실천할 뿐이다. 무조건 3명을 도와주라는 말. 크리스는 이 '운동'의 시작을 알기 위해 계속해서 나아간다. 변호사를 찾아갔다가, 감옥을 찾아가기도 하는 한편, 빈민가를 찾아가기도 한다.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트레버의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된 3명 도와주기는 과연 가능할까? 이를 현실에 대입해 실천해 보고자 하니, 생각만 해도 너무나 아름다울 것 같다. 지금 세계는 연대가 약해져 어떤 상황에서도 '도움'을 주는 법이 없다. 도움을 주려 하면 옆 사람이 '네 앞가림이나 잘해.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남을 도우려고 하냐?'라며 핀잔을 줄 것이다. 또 '도움'을 청하는 법도 없다. 도움을 청하려 하면 마음 속에서 '괜히 도움을 청했다가 이상하게 얽혀서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목소리가 들려오곤 한다. 


신자유주의가 경제를 최고치로 올려 놓으면서, 그 과정에서 개인으로 포커스가 맞춰졌다. 그 전에는 경제가 좋지 않아도 개인보다 사회가 중요했다. 그래서 개인이 홀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봐주는 일종의 그물망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그물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최고치를 찍은 경제의 앞에는 내리막 길 밖에 존재하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3명 도와주기'가 가능하다면 그 자체로 세상을 바꾸는 게 확실하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다. 트레버도 번번이 실패한다. 제일 먼저 빈민가에서 데려온 캐리를 도와주려 했다. 그에게 얼마의 돈을 쥐어 주었고 일자리도 얻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마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두 번째로 시모셋 선생님을 도우려 했다. 엄마 알린(헬렌 헌트 분)을 소개 시켜줘서 다친 마음을 치료하고 앞으로는 좋은 시절을 주려 했다. 하지만 미숙하고 섣부른 진행으로 실패했다. 세 번째는 매일 같이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 아담을 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3명을 물리칠 힘이 없었다. 구경만 했어야 했고 실패하고 만다. 


명백한 실패로 보인다. 성공하려면 세상을 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아주 사소한 도움만 주어야 하는 걸까? 그런 형식적인 도움은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건 그야말로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한 것일까? 반 친구들이 말하듯 허황된 꿈인 것일까? 


도와주기는 실패했지만, 그 방법과 생각은 계속된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트레버가 스스로 실패했다고 자책한 후에 나온다. 트레버로부터 도움을 받고 그의 설명을 자세히 들은 이들이 시간이 흐른 후에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빈민가 캐리의 경우, 눈앞에서 자살하려는 젊은 여성에게 다가가 오히려 '부탁이에요. 날 구제해 주세요.'라며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도움을 준다. 


큰 맘 먹고 도움을 주려 할 때 상대방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은 나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 당신이 뭔데 나를 도와? 어떻게 도울 건데? 어설픈 도움은 필요 없으니까 꺼져.'하는 식이다. 이럴 때 오히려 도움을 청한다면? 도움을 받는 것보다 도움을 청하는 게 더 어렵다고 하며, 또 도움을 줄 때 자신의 존재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하기에 캐리의 방법은 상당히 적절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무조건적인 도움이 무조건적으로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어설프게 도와주려 했다가 오히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도 있고, 자신에게 상처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되면 트라우마가 생겨 다시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경우도, 도움을 받는 경우도 없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도움에 실패하게 되면, 자신의 능력에 의심을 품으며 자책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영화에서 말하는 '3명 도움주기'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방법론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희생이 따를 텐데, 위엣것들은 그 희생의 모습들일 것이다. 그런 이해 하에서 '3명 도움주기'는 상당히 매력적인 방법이다. 나의 도움은 실패했더라도 그 방법 자체는 전해질 수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내가 도우려 했다가 실패한 그 사람은 그 방법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 할 수 있다. 즉, 어떤 올바른 생각이 공유되고 전파될 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