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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퍼펙트 센스> 감각의 실종, 그리고 일찍이 접하지 못한 감동과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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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퍼펙트 센스>



영화 <퍼펙트 센스> 포스터 ⓒKT&G 상상마당



사랑에 대한 영화, 정말 많다. 사랑에 대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의 모든 걸 다루었다. 이제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을 듯하지만 여전히 사랑은 모든 콘텐츠의 핵심이다. 인간은 사랑 만으로 살 수 있는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는가? 개인적인 생각으로 인간은 사랑 만으로 살 수 있고,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것 같다. 


여기서 뜬금없이 질병 창궐에 대해 말해 본다. 알 수 없는 질병에 관한 영화 또한 무수히 많다. 질병 때문에 인류가 망해가고, 질병 때문에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간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 싸운다. 여기에 사랑이 낄 틈은 없어 보인다. 일단 살아야 하니까. 


감각의 실종, 그리고 사랑


영화 <퍼펙트 센스>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사랑'과 '질병'을 소재로 썼다. 아픈 상처로 인해 더 이상 사람을, 사랑을 믿지 못하는 두 사람이 만나 이제껏 해보지 못한 그들만의 진정한 사랑을 만끽한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질병이 창궐해 사람들의 감각을 앗아간다. 후각이 마비되고, 미각이 마비되고, 청각이 마비된다. 그리고 감각의 실종은 계속된다. 과연 그들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마이클(이완 맥그리거 분)은 레스토랑 셰프다. 그는 과거의 아픈 상처로 인해 더 이상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없는 상태이다. 결혼하려고 했던 여자친구가 병에 걸려 많이 아팠을 때 견디지 못하고 그녀한테서 도망쳤다. 그리고 그녀가 죽었고 그는 점차 잊어갔다. 수잔(에버 그린 분)은 인류를 위협하는 알 수 없는 질병을 연구하는 과학자이다. 그녀는 언니의 사촌들이 가끔 너무나 싫다. 난소에 이상이 있어 애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이 만나 사랑을 키워간다. 


때마침 알 수 없는 질병이 창궐한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밀어닥치고 그로 인해 후각이 사라진다. 마이클의 레스토랑은 당연히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후각을 잃은 이들을 위한 음식을 개발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질병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공포는 곧 참을 수 없는 허기로 변해 사람들로 하여금 닥치는 대로 먹게 한다. 그리고 미각을 앗아간다. 이제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밀가루와 지방 만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래도 삶과 사랑은 계속된다. 



영화 <퍼펙트 센스>의 한 장면. ⓒKT&G 상상마당



기존의 질병 창궐 영화와는 다르다


영화는 기존의 질병 창궐 영화와는 큰 차별점을 둔다. 다름 아닌 질병의 설정인데, '감각의 상실'이라는 기막힌 설정이 그것이다. 최소한 필자가 본 영화 중에 이런 소재는 없었다. 아마도 그만큼 감각의 상실 이후의 연기를 하기가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후각이, 미각이, 청각이 사라지면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그런 상상력의 연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보이는 이로 하여금 잘 전달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걸 완벽하게 해낸 것 같다. 감각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미각이 사라지자 비누를 게걸스럽게 먹는 장면은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전초적으로 보여지는 증상들이 잘 표현되어 있다. 슬픔이 후각 마비, 공포와 허기가 미각 마비, 분노가 청각 마비를. 


무엇보다 잘 표현된 건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영화는 그걸 레스토랑을 통해 보여주는데, 후각과 미각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지방과 밀가루 그 이상의 것을 만들고 청각이 사라져도 종이에 글을 써가며 다시 일을 시작한다. 그렇지만 사랑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마이클과 수잔의 사랑은 감각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위협 받는다. 최대의 위기는 청각을 잃기 전의 증상인 분노, 화, 증오가 찾아 왔을 때인데, 그들은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말과 행동을 남긴다. 그리고 청각을 잃게 되고 서로를 찾기 힘들어 진다. 얼마 후면 시각이 사라질 것이 뻔한 상황에서 이들의 사랑은 어떻게 될지...



영화 <퍼펙트 센스>의 한 장면. ⓒKT&G 상상마당



그래도 삶은 계속될까? 사랑이 계속될 수 있을까?


그래도 삶은 계속될까? 사랑이 계속될 수 있을까? 최악의 상황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때에도? 언제 시각이 사라져 암흑 천지가 될지 모르는 이때에도? 영화는 말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최선을 희망한다고. 그저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고. 모든 감각을 다 잃게 되어도, 따듯함, 이해, 포용력, 용서, 사랑을 얻게 될 거라고. 


영화가 보내는 메시지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수잔이 하는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데, 영화의 핵심이다. 그때마다 같이 하는 OST가 일품이다. 듣고 만 있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두렵다. 그런 상황이 찾아온다면 과연 삶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을까. 감동적인 한편 이렇게도 무서운 영화는 일찍이 접하지 못했다. 


한편 드는 생각은 아파도 견딜 수 있고 아파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게 마음에 걸린다. 분명 감동적이기는 하나, 버티기만 하는 삶이 정답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최악을 준비하고 최선을 희망하는 사람들만이 정답인 것처럼 나오는데, 뭘 할지 몰라하는 사람들과 또한 세상에 종말이 올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틀린 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최악의 상황에서 삶을 계속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삶을 포기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결코 '틀린' 건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