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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민낯> 왜곡된 한국 현대사는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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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 현대사의 민낯>



<한국 현대사의 민낯> ⓒ철수와영희



어릴 때부터 역사를 워낙 좋아해서 한때 역사학자라는 거창하지만 아주 구체적인 장래의 직업을 상정해 놓고 있었던 적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람 이름, 사건, 날짜, 지도를 좋아했던 것 같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하며 지나가면 마음 편하겠지만, 마냥 그것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나에게 역사란 단순히 유명한 사람들의 유명한 사건들 나열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왜 그랬는지는 전혀 관심 밖이었다. 마냥 그들이 행했던 무엇을 외우는 게 재미있었던 거다. 커서 어른이 되면 그들처럼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들의 삶과 그 사건이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처럼 재밌게 읽혔던 것 뿐일까? 알고 보면 사실 역사를 좋아한 게 아니었던 걸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도 유명한 사람들과 유명한 사건들을 좋아하는 건 여전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감춰진 진짜 모습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진짜 모습을 알기가 참으로 힘들다. 이념적 갈등이 너무나 극렬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 역사 시간에 들었던 한국 근현대사 이야기들이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다. 그 민낯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역사에 무지했던 사실이 드러난다. 단적인 예로, 1948년에 대한민국이 건국 되었다고 배웠다는 것. 이게 맞는 사실인가?


진실을 규명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독립운동가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인 김상웅과 출판평론가이자 북칼럼니스트인 장동석이 만나 진실을 규명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한국 현대사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였는데, <한국 현대사의 민낯>이 그 책이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서 한국 현대사의 진짜 모습을 많이 접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은 책이 또 한 번 단계를 넘어서게 해주었다. 


책을 몇 페이지 읽지도 않았는데, 몇 단계나 넘는 경험을 했다. 나라를 세운 아버지라는 뜻의 '국부' 이승만을 두고 신채호 선생이 한 말 때문이다. 3·1 운동이 일어나기 전 미국에 있던 이승만이 미국에 한국의 위임통치안을 제시했을 때, 이를 두고 신채호 선생은 "이완용은 있는 나라를 팔아 먹었는데 이승만은 아직 있지도 않은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승만을 우리는 국부라고 칭하며 '건국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나. 정확히는 그렇게 부르도록 교육을 받은 것이고. 이승만의 파행은 비단 이것 뿐만이 아니다. 해방 전후, 전쟁 전후 한국의 비극 중 이승만과 연관된 게 부지기수이다.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가히 괴물 같았던 그는, 한국 초대 헌법 초안이었던 내각책임제조차 대통령제로 바꿔 자신의 권력욕을 산화 시키지 않고 발화 시켰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한국 현대사 최대 비극을 연달아 연출한다. 친일파를 처단할 수 있는 기회였던 반민특위를 해체 시켜 버렸고, 전쟁을 막지 못한 건 둘째 치고 전쟁이 터지자 마자 남쪽으로 도망가며 한강 철교를 폭파 시켜 버린 것이다. 그 북쪽에 있던 사람들, 당시 한강 철교를 건너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그리고 남쪽으로 피신을 가서도 자신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해 국회위원을 잡아 들이기까지 하면서 다시 한 번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헌법도 바꾸고, 선거도 불법으로 하는 건 기본이었다. 


인물들과 사건들이 곧 역사를 구성한다


이 책은 이렇듯 짧은 분량에서도 이승만에 대해 많이 다룬다. 그만큼 그의 재조명이 필요하고, 재조명을 할 시 한국 현대사의 민낯에서 가장 더러운 부분을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여운형, 김구, 조봉암, 장준하 등을 다룬다. 이들은 하나 같이 비극적인 죽음의 주인공들인데, 개인적으로 여운형의 죽음이 제일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당시 국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신망을 받은 정치가로서, 살아서 그 뜻을 올바르게 펼쳤다면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완전히 바뀌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뒷부분에는 이승만과 더불어 한국 현대사의 민낯을 다뤄야 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박정희가 다뤄지는데, 몰랐던 사실이 드러난다. 박정희가 행했던 쿠데타는 1번으로 1961년의 5·16만 알고 있는데, 사실 10 여 년 전인 1952년에 쿠데타 모의가 있었다고 한다. 6·25 전쟁이 한창인 당시, 이승만 정권을 타도할 목적으로 쿠데타를 모의 했는데 수뇌부의 동의를 얻지 못해 좌절되고 말았다. 


박정희 독재 정권 반대의 최선봉에 있었던 장준하 선생. 그의 의문스러운 죽음은, 이전의 여운형, 김구, 조봉암의 죽음과 궤를 같이하는 느낌이다. 배후를 알 수 없는 죽음, 배후는 알지만 미심쩍은 죽음, 이유도 있고 배후도 있고 미심쩍지도 않지만 안타깝기 그지 없는 죽음까지. 한국 현대사에서는 왜 이렇게 안타까운 죽음이 많은지, 왜 이렇게 세상을 바꿀 만한 이들의 석연찮은 죽음이 많은지. 


이들의 죽음, 그 진상만 제대로 밝혀져도 왜곡된 한국 현대사를 어느 정도 바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또는 이들의 삶이라도 제대로 서술 되어지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유명한 인물과 사건들이 곧 역사를 구성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내가 역사를 보고 느끼는 방식이 그렇게 잘못된 건 아닐 테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제대로 밝혀야 할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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