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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물 흘러 가듯 거스를 수 없는 것'에 순응하는 위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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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포스터 ⓒ(주)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여배우는 어디서든 특별한 존재이다. 특별하게 취급을 받는다. 자신도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이들이 그녀를 우러러본다. 젊음과 아름다움의 특권을 가장 완벽하게 소화할 줄 안다. 남자 배우를 '남배우'라고 칭하지 않지만, 여자 배우는 '여배우'라고 칭하지 않는가? 


젊고 예쁜 여배우에게 주연은 당연한 거다. 그녀에게 조연을 맡긴다는 건 한 물 갔다는 증표이다. 한 물 갔다는 건 나이가 들어서 아름다움이 퇴색되었다는 뜻이다. 예를 들자면, 지금 엄마, 시어머니, 할머니, 옆집 아줌마, 보모 등의 조연급으로 자주 얼굴을 비추는 중년 여배우 대부분이 소싯적에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단지 나이에 밀려서 미모에 밀려서 스포트라이트를 넘긴 것이다. 


사실 수많은 주연 여배우들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은퇴의 길에 접어든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갖고 키우고 살림을 해야 하니 반강제적인 측면이 있다. 이런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기본적 무기로 세상을 쥐락펴락 했던 이가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자신에게만 비춰오던 스포트라이트가 다른 젊고 아름다운 이로 넘어가는 걸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말이다. 


특별한 존재, 여배우에 대한 이야기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는 특별한 존재인 여배우에 대한 이야기다. 한때 세상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최고의 여배우, 젊음과 아름다움과 연기력까지 두루 갖춘 완벽한 여배우가 자신과의 격렬하고 치열하지만 조용하고 고요한 싸움 끝에 스포트라이트를 넘겨주게 되는 이야기다. 젊음과 늙음, 과거와 미래, 주연과 조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흘러가는 구름,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물처럼 거스를 수 없는 세계의 법칙에 순응하는 이야기이다. 그 순응의 위대함을 이야기한다. 진정 아름답다.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한 장면 ⓒ(주)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연극 <말로야 스네이크>에서 동성의 상사 '헬레나'를 유혹하고 나서 그녀를 이용해 권력을 획득한 다음 무참히 차버림으로써 그녀를 자살로 몰고 가는 '시그리드' 역으로 데뷔해 단숨에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던 대배우 마리아 엔더스(줄리엣 비노쉬 분)는 비서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 분)과 함께 한 시상식에서 <말로야 스네이크>의 감독의 대리 수상을 하러 간다. 가는 도중 감독의 부고 소식을 받고 만다. 


그런 그녀에게 하필이면 <말로야 스네이크>의 리메이크를 제안해 오는 젊고 유능한 감독이 있다. 그 감독은 과거 '시그리드' 역을 했던 마리아에게 '헬레나' 역을 맡기려 한다. 마리아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제안이 아닌가. 아무리 20년이 지나 자신이 나이가 상당히 먹었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비참하거니와 조연급의 역을 맡길 수 있는가? 더욱이 자신은 평생 '시그리드'로 살아 왔다. 


하지만 감독의 '헬레나와 시그리드는 결국 같은 인물이에요.'라는 주장과 자신이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해준 <말로야 스네이크>의 리메이크작이라는 점 등 때문에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비서 발렌틴이 옆에서 계속 부추기지 않는가? 그렇게 그녀들은 스위스 실스마리아로 가서 대본 연습을 한다. 


대배우 '줄리엣 비노쉬', 영화에 완벽히 녹아들다


마리아 엔더스 역을 맡은 '줄리엣 비노쉬'는 실제로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를린, 베니스)와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을 모두 휩쓴 최초의 여배우이다. 거기에 흥행력 있는 작품까지 출연했던,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역사상 가장 완벽한 여배우 중의 한 명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에는 영화 <고질라>에 '조연' 급으로 출연하기도 할 정도로 그 명성에 걸맞지 않은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자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내력이 있는 여배우이니 만큼 이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 완벽히 녹아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연기인지 실제인지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좋은 연기를 위해서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관찰과 이해에서 출발해 설명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현재의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것이니 그 내공이 얼마나 하겠는가? 그렇지만 당사자야말로 현실과 연기에서 엄청난 혼선을 느꼈을 것이기에 연기 하는 내내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한 장면 ⓒ(주)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영화의 2부는 거의 마리아와 비서 발렌틴의 대본 연습이 주를 이룬다. 집에서도 길을 가다가도 산을 타면서도 대본 연습을 하는 그들. 그런데 마리아는 현실과 연기의 구분이 잘 되지 않는지, 발렌틴에게 그 고통들을 고스란히 내비친다. 일종의 히스테리라고 할까. 그 히스테리의 대부분은 평생을 '시그리드'로 살아온 자신이 '헬레나' 역을 맡게 되는 데에서 오는 괴리감, 상실감, 부러움, 질투심, 우월감 등의 복합적 감정의 발로이다. 


더욱이 리메이크작에서 '시그리드'를 맡게 될 여배우는 조앤(클레이 모레츠 분)이라는 가장 인기 많고 가장 핫하고 가장 문제가 많은 여배우란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이런 질 떨어지는 아이와 한 배를 타야 하다니? 이런 하찮은 아이에게 밀려 늙고 추한 역을 맡아야 하다니? 이렇게 연기도 못하고 얼굴만 앞세우는 아이가 나에게 비추던 스포트라이트를 빼앗아 갈 거라니? 안 그래도 '헬레나' 역은 너무 힘들고 벅차기만 한데 말이다. 괜히 한다고 했나? 이제라도 무를 순 없을까? 이 연극을 해낼 수 있을까?


한편 비서 발렌틴은 모든 것을 다 이룬 대배우 마리아가 부러운 듯하다. 자신은 열정은 앞서지만 하찮고 가진 것 없고 실력은 모자라는 일개 비서일 뿐이다. 인생은 미완성이고 까칠한 여배우 아래에서 온갖 수발을 다 들어주고 있을 뿐이다. 답답하고 불안하다. 참을 수가 없다. 훨훨 날아가고 싶다. 나만의 길을 찾고 싶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물 흘러 가듯 거스를 수 없는 것'에 순응하는 위대함


영화 제목인 <실스마리아의 구름>은 영화 속 연극 제목인 <말로야 스네이크>와 한 쌍을 이룬다. 뱀 형상의 구름이 실스마리아 호수를 뒤덮는 이미지가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모든 걸 뒤덮어버리는 구름으로 인해 사라져버리는 산과 호수. 당연한 듯 찾아오는 구름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그 사라져버리는 모든 것을 바라보며 마리아는 무엇을 느꼈을까. 과거는 흘러 미래가 된다. 젊음은 늙음이 된다. 주연의 자리에 있는 이는, 조연의 자리로 옮겨간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은 추함이 되는가? 


끝없이 젊음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리아의 모습은 여배우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실상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신이 자신 인생의 주연인 듯 울음 대신 웃음을, 두려움 대신 자신감 있는 모습을, 쓸쓸함 대신 화려하게 꾸민 모습을 내보이며 자신을 추스리고 있다. 하지만 내면은 울음과 두려움과 쓸쓸함으로 가득하다.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한 장면 ⓒ(주)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



마리아는 영화 말미에서 큰일을 해낸다. 자신에게 들어온 '시간을 초월하는' 젊은 역할을 마다하고 후배 조앤을 추천하는 것이다. 후배 조앤에게 현실적이지만 쓰디쓴 말을 듣고 난 직후였다. 그녀의 모습에서 늦은 나이에도 한 단계 성장하는 삶, 과거를 내려놓고 미래에 바통을 넘기는 '물 흘러 가듯 거스를 수 없는 것'에 순응하는 위대한 생각의 전환이자 회귀가 엿보인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참으로 아름답다. 실제 스위스 실스마리아의 황홀한 풍경을 한 점 한 점 잡아냈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몽환적 지역이 영화의 주제와 완벽히 맞아 떨어진다.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고민할 때, 나조차 나를 통제하지 못해 힘들어 할 때, 내려놓지 못해 괴로울 때면 이 영화가 생각날 것 같다. 그리고 스위스 실스마리아로 가서 힐링의 시간을 갖고 싶어질 것 같다. 그렇지만 깨닫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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