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민음사
유신(維新). 낡은 것들을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시경>의 한 구절이기도 한 이 단어는, 우리에게 상당히 좋지 못한 인상을 풍긴다. 하나는 10월 유신으로, 일명 박정희 대통령 영구 집권 프로젝트라고 할 만한 이 사건은 여러 가지 정치적·경제적으로 위기를 느낀 박정희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기치 하에 일으켰다. 메이지 유신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10월 유신이 모티브를 가져온 일본의 메이지 유신으로, 시작이야 어찌 되었든 그 결과로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강제 합병을 당했다. 반면 일본의 입장에서는 역사적인 대번혁으로 강대국의 초석을 다지게 되었다. 즉, 19세기 당시 동양에서 유일하게 근대화를 이룬 나라가 일본이라는 뜻이다.
우리에게 복잡한 심정을 선사하는 이 메이지 유신이라는 것.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려 하면 정말 신기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도대체 어떻게 19세기 일본에서? 중국이나 한국보다 훨씬 느린 개발 속도를 보인 일본이, 그것도 굉장히 폐쇄적인 외교 노선을 걸었던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서 말이다. 더욱이 '일자무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인 사무라이의 나라에서.
민음사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의 일환으로 출간된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는 그런 궁금증을 일거에 해소해준다. 더불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메이지 유신의 뒷얘기도 들려준다. 논문을 기초로 한 책임에 분명한데, 굉장히 잘 읽히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다. 일반 단행본의 인문역사서로 손색이 없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차근차근 메이지 유신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설명해 주는데, 1장은 메이지 유신이 무너뜨린 도쿠가와 막부 체제에 대한 개설적인 설명이다. 2장은 서양 문명에 대한 일본 반응을 살펴보고 있다. 3장은 도쿠가와 막부가 왜 패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4장 그리고 5장은 메이지 유신 과정에서 유학과 사대부적 정치 문화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저자가 하려는 중심 내용이 4장, 5장에 집중적으로 포진 되어 있다 하겠다.
19세기 일본은 어떻게 그토록 빨리 서양 문물을 받아 들일 수 있었을까?
여기서 눈 여겨 보아야 장은 2장, 4장 그리고 5장일 테다. 먼저 2장을 보자면, 위에서 말했던 바 있는 '도대체 어떻게 19세기 일본에서 그토록 빨리 서양 문물을 받아 들일 수 있었을까? 그것도 굉장히 폐쇄적인 외교 노선을 걸었던 도쿠가와 막부 체제 하에서'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저자는 '강렬하고도 과장된 위기감'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렇지 않지만 당시 일본의 (일부 지식인) 입장에서는, 지금의 사할린과 훗카이도 일대에 러시아인들이 출몰하는 상황을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리고 이런 위기감은 '바야흐로 세계는 전국시대'라는 생각까지 뻗어가기에 이른다. 이처럼 위기의식이 고조된 배경은 무엇일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일본은 약 200년이나 군사적 위기 상황이 거의 없었다. 둘째, 위기감을 배경으로 일본열도에 대한 안보 개념의 전환이 일어났고, 이것이 위기의식을 더욱 부채질했다. 셋째, 안보상의 고립감. 넷째, 당시 일본인들은 서양에 대한 정보를 풍부하게 갖고 있었다. 다섯째, 이 시기에 강해진 일본인의 정체성. 이런 위기 상황에서 일본은 더 이상 '쇄국'이 아닌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적극적인 '체제 번혁'을 시도한다. 이는 메이지 유신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메이지 유신에 유학(儒學)이 큰 역할을 했다고?
모르긴 몰라도 메이지 유신의 제일 큰 요소는 서양에 대한 충격과 작용 반작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유학은 중국의 수 천 년 역사를 대변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이다. 어느 모로 보아도 이 둘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메이지 유신에 유학이 큰 역할을 했다는 말인가? 저자는 메이지 유신에 서양의 충격 이외에 유학, 혹은 동아시아(중국) 국가 모델에 대한 지향이 큰 몫을 차지했다고 말한다. 믿기 힘든 이 주장의 궤를 따라가 본다.
도쿠가와 체제는 대표적인 병영국가이다. 칼로 대변되는 사무라이들이 국가를 이끌어 가는 체제인 것이다. 그런 도쿠가와 체제에 전쟁이 없는 시간이 200년 이상 계속되다 보니 일반 사무라이들은 군인으로서의 존재 의의를 잃어버리고, 관료제의 말단 실무자로 변해 갔다. 그런 그들에게 18세기 말부터 급속히 유학이 확산되었고, 19세기에는 일본 역사상 유학이 가장 번성하게 된다.
그들은 점점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발언을 하며, 학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정치 운동을 벌이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당시 조선에서는 이미 극에 달해 있던 유학적 정치사상을 비로소 실현하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조선에서는 극을 넘어 파행에 달아 붕당이 파하고 세도 정치가 한창일 때였다. 그런 와중에 서양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어떤 활발한 토론이나 국가적인 장치를 마련할 수 없었다.
반면 당시의 일본은 그동안 잠잠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비로소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일자무식에 정치나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없던 사무라이들이 유학을 공부하면서 세상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알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들은 서양의 충격과는 별개로, 유학의 충격을 받아 도쿠가와 체제에 의문을 던진다.
천황과 쇼군, 쇼군과 천황. 그동안은 당연시 해왔던 이들의 오묘한 관계에 비로소 당면하게 된다. 유학적 정치사상 하에서 천황은 왕이라 할 수 있지만, 쇼군은 무엇이란 말인가? 당시 천황은 꼭두각시에 불과했고 쇼군이 실질적 왕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고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수많은 하급 사무라이들은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을 타도하고 천황을 옹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리하여 메이지 유신의 상징과도 같은 '메이지 천황'이 전면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과연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기는 할까? 하는 의문이 남을 수 있다. 그런 것이 없다면 굳이 우리가 메이지 유신을 들여다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흥미를 위주로 읽는 재미가 무지 막지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저자가 말하는 의미를 들어본다.
첫째, 외부의 선진 문명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에 관한 문제이다. 지금은 많이 줄어 들었다 고는 하나 현재 우리 사회도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무엇을 받아들일 때, 어떤 생각으로 어떤 길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이 책은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지배 세력인 엘리트층과 번혁에 관련된 문제이다. 메이지 유신은 특별하게도 지배층에 의한 번혁이 이루어졌다. 아주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구지배층이 주도한 만큼 불필요한 파괴와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전통적 패턴의 혁명인 체제 밖에서 부터의 번혁이 엄청난 파괴와 혼돈과 희생을 유발한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던가.
셋째,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발견해야 할 어떤 입체감에 관한 문제이다. 유학에 관한 것인데, 중국과 조선에서의 유학의 역할과 일본에서의 유학의 역할은 사뭇 달랐다. 우리들은 역사에서 이런 입체감을 놓치면 안 될 것이다. 즉, 역사를 대할 때는 경직되지 않은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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