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빚으로 지은 집>
<빚으로 지은 집> 표지 ⓒ열린책들
어떤 책은 읽는 즐거움이 있다. 읽는 내내 그 재미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책을 덮은 후 기억에 오래도록 남지 않을지 모르지만 과정에 만족했기에 상관 없다. 반면 책을 덮으면서 밀려 오는 깊은 감동을 지닌 책이 있다. 읽는 과정이 결코 수월하지 않았을 것이다. 감동이란 게 벅차면 벅찰수록 몸과 마음이 반응하는 바를 우리는 따라갈 수 없다.
이와는 별개로 책을 읽는 내내 힘들고 큰 재미와 큰 감동을 딱히 주지 않는 책이 있다. 필자는 이런 책을 접할 때 어떤 목적을 갖는데, 바로 '지식 함양' 이다. 즉, 책을 읽는 다기 보다는 그 안에 든 콘텐츠를 보며 지식을 습득하려는 목적인 것이다. 아무래도 과학기술이나 경제경영의 실용서에 가까운 책이 이 범주 안에 들지 않나 싶다.
'가계 부채에 의존한 성장은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전하다
<빚으로 지은 집>(열린책들)이야말로 완전히 지식 함양의 목적에 부합하는 책이다. 이런 책은 필자의 이번 경우와 같이 목적 지향적인 독자를 겨냥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목만 봐도 어떤 주제와 소재를 갖고 어떤 주장을 펼치려 하는지 알 수 있다. 저자나 독자나 서로를 정확히 파악하고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아무래도 수 년 동안 우리네 삶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바로 그 '금융 위기'를 소재로 '빚'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것 같다.
개인적인, 아니 모두의 빚 얘기를 해보자. 우리나라에 빚 없는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단 20살이 되어 대학생이 되면서 빚이 생긴다. '대학교 등록금' 때문이다. 이때를 무사히(?) 넘어 간 사람들은 다시 30살 쯤 되어 빚이 생긴다. '결혼'과 아울러 '집' 때문이다. 어찌어찌해서 이때를 넘기려 해도 곧 아기가 태어난다. 그리고 대략 30년이 지날 때까지 겨우 겨우 아기를 성년으로 성장 시킨다. 그 아이의 이름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내주고 결혼을 시키고 집을 마련해준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대략의 빚 인생이 이렇다.
빚은 이렇듯 우리 인생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런데 이 책이 빚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빚 없는 인생을 주장하는 것이라면 솔직히 볼 가치가 없는 책이다. 역시 이 책은 빚을 부정하지 못한다. 다만 수월한 빚 인생을 설계해주려는 의도인 것 같다.
저자들이 책을 통해 주장하는 바는 명약관화하다. '가계 부채에 의존한 성장은 매우 위험하다'이다. 미국 발 금융 위기의 원인이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가계 부채에 있다는 강력한 주장으로 시작하는 책은, 시종 일관 빚의 빚에 의한 빚을 위한(?) 주장으로 가득 차 있다. 총 12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책의 4장 제목이기도 한 '레버드 로스'는 이 책의 핵심 중 핵심이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빚 때문에 발생했으며 그로 인해 피해가 증폭된 손실'이다.
가계 부채와 금융 위기
금융 위기와 가계 부채를 연관해 간략히 요약을 하면 다음과 같다. 가계 부채는 소비를 급격히 위축시킨다. 위축된 소비는 물가를 내리게 하고 내려간 물가는 임금을 떨어뜨리거나 고용을 막는다. 이는 다시 소비를 위축시킨다. 한편 가계 부채는 압류를 불러오고, 압류는 집값을 떨어뜨린다. 떨어진 집값으로 인해 빚으로 집을 소유하게 된 가계는 소비가 급격히 위축된다. 그야말로 어디가 시작인지 모를 뫼비우스의 띠이다.
책은 이 뫼비우스의 띠의 시작을 주목한다. 이 시작을 한 쪽에서는 채무자의 탓으로만 돌린다. 말인즉슨, 왜 굳이 무리하게 대출을 받으면서 까지 집을 사거나 평수를 늘리려 했느냐? 그 뒷감당을 온국민이 왜 나눠야 하느냐? 하는 생각의 발로 이다. 충분히 일리가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들은 이 생각들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불황의 긴 터널을 지속 시키고 있는 큰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말한다. 채무자의 탓으로만 돌릴 것이 아니라, 채권자도 책임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이 불황의 고통을 채무자와 채권자가 같이 함께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채권자의 무분별한 대출 확대를 꼽는다.
왜 돈을 갚지 못할 것 같은 사람들에게 까지도 대출을 해주려 하는가? 채권자들의 생각은 그렇다. 어차피 그들한테 돈을 받지 못해도 자신들은 큰 손해가 아닌 것이다. 집값이 떨어져도 그 떨어진 값의 손해는 고스란히 채무자가 짊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채무자가 1억 짜리 집을 사려고 할 때 2000만원은 자비로 8000만원은 대출로 했다고 치자. 집값이 20% 폭락해서 8000만원 짜리 집이 되었다. 이때 채무자 즉 집 소유자는 순자산 2000만원을 날리고 여전히 빚이 8000만원 남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가계 부채는 비로소 그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한다.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바로 이런 상황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사태인 것이다. 문제는 이때 채권자들은 정부가 아닌 민간이었다는 점이다. 애초에 그들의 무분별한 대출 러시를 막기 힘들었다.
여기서 저자들이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이렇듯 집값 붕괴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지 않았음에도 그 파장이 전체적으로 퍼졌다는 점이다. 어느 한 지역이 붕괴되어 수많은 기업이 파산하고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의 피해를 입는다. 갑작스러운 집값 폭락은 이렇듯 어마어마한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타고 있으니 제발 고통을 분담하자
저자들은 이런 일련의 가계 부채에 관련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은 순차적으로 논리적으로 그리고 미시적 통계를 이용해 집요하게 파헤친다. 그러며 반복해서 외친다. 우리는 모두 한 배를 타고 있으니 제발 고통을 분담하자고 말이다. 바로 위에서 설명한 집값 폭락과 가계 부채에 따른 파장이 전체로 퍼지고 있는 사례를 중점적으로 들어가면서.
이 책이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건 빚의 부정(不定)이 아니다. 빚의 분산이다. 그리고 그 빚의 분산의 골자는 빚을 줄이고 주식 성격의 자금 조달을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취지의 새로운 금융 시스템이다. 즉, 이익도 손해도 분산하자는 말이다. 앞서 말한 모기지론으로 간단히 예를 들면 이렇다. 지금까지는 채무자가 모든 손해를 독박으로 받았는데, 그것을 바꿔서 손해가 나면 그 손해가 난 %만큼 상환 원금도 내려 달라는 말이다. 반면 집값이 올라 이익이 나도 원금을 더 내지 않고 대신 이익의 5%를 채권자에게 주라는 얘기다.
채권자가 들으면 노발대발 할 얘기지만, 저자의 주장은 그래야만 다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금융 시스템은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에게 좋을 거라는 취지에서 제안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제안이 받아 들여지기란 하늘의 별 따기 같다. 아무리 그들이 수많은 통계 자료와 저명한 경제학자, 관료들의 말과 주장과 이론을 인용해도 말이다. 그들도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책을 덮을 때 허무하고 공허하다는 느낌이 든다. 결국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어느 누군가가 보기에는 먼 어딘가의 변방에서 개가 짖고 있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이 어느 책보다도 금융 위기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고 또 모두를 위한 주장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과연 바뀔까? 결국은 정치적인 얘기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경제 얘기. 이 책도 크게 다를 바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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