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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통속하다 못해 저급하기만 한데, 사랑받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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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리지 않는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표지 ⓒ 민음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목록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익숙한 제목을 발견했다. 나의 머리 속에서 "이 작품이 유명하고 익숙한 건 사실이지만, 고전문학의 반열에 오를만한 작품인가?"라는 반문이 자리 잡는다. 그럼에도 출판사에 대한 믿음과 묘한 매력으로 끌어당기는 제목때문에 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먼저 책의 제목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제목이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이다. 여기저기 검색해보니, 이 소설은 몇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개봉할 당시 포스트맨을 '우체부'로 번역하였는데, 그 때문에 이미지가 실추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 우체부들이 항의 소송을 냈다고 한다. 결국 제목은 '포스트맨'으로 그대로 가게 되었다.


이 사실로 유추해보니, 내용이 결코 밝지 않다는 것과 주인공이 그리 좋은 인물은 아니라는 결론이 섰다. 1934년도에 쓰인 작품이라니 알만하다. 당시 미국은 1929년 대공항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지 않은가. 그 암흑의 심연이 고스란히 작품에 담겨져 있을 것이었다.


통속적인 욕망


소설의 내용은 통속적이다. 통속적이다 못해 저급하다. 매일같이 날아오는 신문 몇 면인가의 한 편을 소중히 장식하는, 그러나 별 관심을 끌지 못하는 사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실제로 작가는 당시 타블로이드 신문에 실려있는 지극히 통속적인 사건을 모티브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왜 이 작품이 지금까지 오래토록 사랑 받는 것일까. 왜 나는 이 작품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는가.


캘리포니아에 도착한 부랑자 프랭크는 어느 선술집에 들어간다. 그리스인 주인은 프랭크에게 일자리를 제안한다. 프랭크는 거절하지만, 주인의 아내 코라를 보고 수락한다. 지극히 통속적인 욕망이 꿈틀대고 있다. 누구나 그 상황에서 그럴만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비극으로 치닫지 않을까.


어느 날 바람 때문에 간판이 떨어졌고, 그리스인 주인이 간판을 사러 간 사이에 프랭크와 코라는 격렬히 서로를 탐한다. 이후 그들은 그리스인 주인 즉, 코라의 남편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운다.


첫 번째로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그들. 정전이 된 양 꾸민 다음 목욕탕에서 코라가 남편을 목졸라 죽이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하필 고양이가 스위치를 만져 불이 켜졌고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다행히 남편은 정황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의심 받을 수밖에 없는 그들. 결국 프랭크는 떠나게 된다.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산 어느 날, 프랭크는 그리스인과 조우하게 된다. 다시 만나게 된 프랭크와 코라. 그들은 다시 서로를 탐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리스인 살해 계획을 세운다. 이번엔 나름 치밀하게 하려 한다. 훗날을 위해 남편 앞으로 보험까지 들어 놓고.


두 번째로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그들. 그리스인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그리스인을 만취하게 만들고 이번엔 프랭크의 손으로 처단한다. 계획은 멋지게 성공하고 그리스인은 죽고 만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프랭크도 심하게 다치고 만다. 소설은 후반으로 넘어가고,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건 다들 알다시피 비극이다. 비극은 어떻게 완성될까.


그리고 비극


비극 또한 욕망만큼 통속적으로 완성된다. 흔하디흔한 배신과 치정. 먼저 그들은 서로를 배신한다. 서로에게 잘못을 덮어 씌운 것이다. 비극의 씨앗이 점점 물꼬를 트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정말 사랑했다고 말하지만, 자신을 더욱 사랑했나 보다. 그럼에도 그들은 기적적으로 무죄로 풀려난다.


이들의 삶은 충분히 희극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무죄로 풀려나면서 사실 거의 100% 희극이 완성된 것이다. 물론 중간에 위협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했는가. 두 번의 살해 계획 끝에 실행에 옮길 수 있었듯, 두 번의 비극 기회가 찾아 오나 보다. 그래서 제목을 저렇게 지었나 보다.


프랭크의 치정이 소설의 대미를 장식한다. 코라가 어머니의 부고로 집을 비운 사이, 프랭크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게 된 것이다. 처음엔 들키지 않았지만, 결국 들키고 말았다. 이후 프랭크와 코라는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를 죽이려 한다.


이미 비극은 거의 완성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랑의 힘으로 비극의 운명을 비켜 가려 한다. 그들은 모든 걸 뒤로 하고 차를 몰아 간다. 그리고 사고가 난다. 코라는 죽고 만다. 프랭크는 코라의 죽음과 이전의 모든 혐의까지 얹혀져 사형 당하고 만다.


뭘 해도 안 되는 시대


암울하기 그지없는 내용과 분위기가 시종일관 괴롭혔다. 단숨에 읽어나간 이유로 하드보일드의 읽고 이해하기 쉬운 문체의 특성도 있겠지만, 빨리 읽어버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계속 읽고 있기가 불편했다.


계속해서 닥치는 비극적 운명의 소용돌이. 읽는 내내, 충분히 비극을 빗겨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읽고 나니, 인간의 힘으론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뭘 해도 안 되는 날이 있다. 그런가 하면 시대적으로 뭘 해도 안 되는 때가 있다. 이 소설이 쓰인 그때가 그런 때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그런 때인 것 같다. 뭘 해도 안 되는 시대, 어떻게 해도 피해갈 수 없는 비극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를 보게 된다. 또한 시대성 짙은 어두운 욕망을 솔직하게 그려내고 있는 작가의 모습에서 이 시대의 몇몇 작가들이 보인다. 다시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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