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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의 예술, 만화

피 터지는 전쟁이야긴데, 이상하게 따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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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에마뉘엘 기베르의 그래픽 노블 <앨런의 전쟁>'전쟁'은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온다. 20세기에 일어났던 전쟁 중 상당수의 당사자(제2차 세계대전, 한국 전쟁 등) 또는 참가자(베트남 전쟁, 걸프전, 이라크전쟁 등)이기도 하겠지만, 여전히 전쟁의 위험성이 다분한 시대상황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특별히 다가온다. 한국 남자라면 대부분 군대를 경험하고, 제대를 한 후에도 예비군으로 편성되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설정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몰라도 군대를 가기 전에도 군대를 다녀온 후에도 '전쟁 영화'를 좋아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영화는 거의 섭렵한 것 같다. 개 중에는 광기와 분노를 표출하거나 상황을 담담하게 표출해 전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 전쟁의 끔찍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전쟁에 반대하는 영화, 무지막지하게 피 터지는 액션 위주의 영화, 전쟁 속에서 피어나는 전우애나 우정 또는 사랑을 그려낸 휴머니즘 영화 등이 있다. 이처럼 '전쟁'은 인간과 세계를 그려낼 수 있는 훌륭한 주제와 소재를 지니고 있기에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전쟁 속의 앨런'이 아닌 '앨런의 전쟁'

<앨런의 전쟁> 표지 ⓒ 휴머니스트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한 노인의 회고를 담담한 글과 독특한 그림으로 그려낸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 <앨런의 전쟁>(휴머니스트)은, 굳이 고르자면 전쟁 속에서 피어나는 전우애나 우정 또는 사랑을 그려낸 휴머니즘 서사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저자인 에마뉘엘 기베르는 거리에서 길을 묻다가 우연히 만난 앨런의 진실성 있는 이야기에 매료되어 책으로 만들게 되었다. 사실 전쟁을 경험하고 이를 책으로 옮긴 전쟁 에세이는 전쟁 영화만큼이나 많다. 이를 알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저자는 서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을 <앨런의 전쟁>이라 붙였지만, 독자들이 이 이야기를 제2차 세계대전 때 참전했던 한 미군의 단순한 에세이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만 앨런 코프라는 한 인간이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50년 후에 털어놓는 회고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생각나는 대로 붓가는 대로 체험이나 감상을 적은 단순한 에세이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이다. 한 인간이 온전히 경험했던 모든 것들을 오랜 세월이 지나 회고함으로써, '인생'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인생의 단면에 '전쟁'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하기에 제목이 '전쟁 속의 앨런'이 아닌 '앨런의 전쟁'인 것이다. 저자는 전쟁이라는 거대하고 끔찍한 상황에서도 휴머니즘을 잃지 않고 처연히 자신의 인생길을 걸어간 앨런의 회고를 듣고 이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부지불식간에 전쟁에 던져지는 사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앨런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17세 신문배달부였다. 그러던 1941년 12월 7일 일본에 의한 진주만 공습이 있었고, 미국은 참전을 결정한다. 이듬해 앨런도 미국의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군에 징병되어 어디론가 향하게 된다. 

전우애와 우정, 사랑, 풍경... 차라리 대서사시

앨런의 회고를 보노라면 전쟁이 전혀 무섭지 않게 느껴진다. 약간은 우울한 듯한 그림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50년이 지난 후의 회고에서 오는 여유로움인가?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부제인 '제2차 세계대전으로 송두리째 바뀐 소년병 코프의 인생 여정'이나 전쟁에 참전해서 "떨지 않을 것이며, 비극이라고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라는" 앨런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회고이자 만화는 전쟁에서의 앨런이 아닌 앨런의 인생 여정에서의 전쟁을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앨런은 보병과, 전차병, 무전병, 기갑병, 행정병을 오가며 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 또한 잘 적응해서 남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뽐내기도 하였다. 이는 18세 앨런이라는 소년의 성장기로 읽히기도 한다. <톰 소여의 모험>이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는 강과 숲과 도시가 있고,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나 <데미안>에는 정신적 고통과 방황의 방이 있으며, <데이비드 코퍼필드>에는 현실적 고통과 방황의 방이 있는 것처럼 <앨런의 전쟁>에는 전쟁이 있는 것이다. 전쟁에는 죽음과 공포, 분노만 있는 것이 아닌 한 인간의 성장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앨런의 전쟁>의 첫 장면. 담담한 회고와 독특한 그림체가 흥미롭다. ⓒ 휴머니스트

소년에서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서 전쟁을 맞이한 앨런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많은 것을 배워간다. 정글과 같은 곳에서 피 터지고 살이 찢기는 고통을 직시하며 인생의 쓴 맛(?)을 미리 경험한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의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대하며 인간에 대한 재정립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궁지에 몰렸을 때 하는 행동을 보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기도 한다. 아니, 이런 경험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만화에서는 이런 경험을 거의 언급하지 않거나, 언급한다 해도 거칠지 않고 유려하게 보여준다. 그보다 소년은 아이러니하게 전쟁에서 진실된 인간성을 느낀다. 전우들과의 진한 전우애와 우정, 여인들과의 진한 사랑, 지나쳐가는 풍경 속에서 느끼는 여유로움…. 이건 차라리 대서사시이다. 책을 덮으면 단순한 에세이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저자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전쟁'을 압도해버리는 한 '인간'의 회고

개인적으로 그래픽 노블을 많이 접하진 않았지만, 가장 유명한 작품은 알고 있다. 만화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아트 슈피겔만의 <쥐>(아름드리미디어)가 바로 그 작품이다. <쥐>도 제2차 세계대전을 그리고 있는 바, <앨런의 전쟁>과 비교 아닌 비교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쥐>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생각나게끔 한다(<쥐>가 <쉰들러 리스트>보다 훨씬 빨리 나왔다는 사실을 감안하시길). 

이 만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의 참상을, 슈피겔만이 아버지의 경험을 그대로 옮겨 놓음으로써 사실적으로 표현해내었다. 이 만화를 위에서 언급한 전쟁 영화의 종류에 굳이 대입해 보자면, 전쟁의 끔찍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전쟁에 반대하는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무시무시한 사실적 묘사와 그로 인해 야기되는 전쟁에 대한 반감이 인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지 못한 느낌이 든다. 전쟁이 아니라면 이 만화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에 <앨런의 전쟁>은 전쟁이 보이지 않고 인간이 보인다. 그리고 거기엔 소년이 보고자 하는 따뜻함이 보인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산을 어떻게든 정복하려고 하지 않고 살포시 비켜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남들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느낄 수 있다. 

앨런이 계속 보직을 옮겨가며 다양한 경험을 쌓듯이, 앨런이 속한 군은 유럽을 횡단하다시피 한다. 미국에서도 여러 도시를 지나, 배를 타고 프랑스로, 체코로, 독일로, 다시 미국으로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전쟁에 임한 군인에게 여정은 결코 여정이 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에겐 여정으로 생각되었다. 역사 속 개인과 개인의 역사가 얽히는 대서사시라는 말을 다시금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접하니,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전쟁'에 대한 생각이 송두리째 바뀌는 느낌이다. 전쟁 영화나 전쟁 다큐멘터리를 접하며, 전쟁에 압도당하는 내 자신을 너무도 당연하게 느끼곤 했던 지난 날이 후회스럽다는 건 아니다. 대신 '전쟁'을 압도해버리는 한 '인간'의 회고에 압도당하는 내 자신의 작음이 만족스럽지 않을 뿐이다. 문득 '내 인생에 있어서 나는 주인공인가?' 하는 진부한 물음을 던져 본다. 앨런은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끌고 나갔는데 말이다.


"오마이뉴스" 2013.3.27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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