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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의 예술, 만화

고난하지만 아름다운 우리들의 일터를 그리다,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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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윤태호의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올해로 연재 30주년이 되는 만화 <시마과장> 시리즈. 일본 만화계 뿐만 아니라 샐러리맨계(?)에서도 전설이 된 '시마 코사쿠'의 샐러리맨 신화를 다루고 있는 만화입니다. 일본 고도 성장기를 함께하며 보여주는 합리적이고 소신있는 모습, 외국인 앞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모습(수준급 영어 실력), 어리숙해보이지만 해야할 때 보여주는 프로다운 모습, 그러면서도 주위에 여성들이 끊이지 않는 모습까지. 지난 30년, 시대의 샐러리 맨들의 로망을 매우 현실감있게 보여준 대작이라 할 수 있죠. 2012년, 이런 대작의 면모를 풍기는 한국 만화가 나타났습니다. 

이번엔 바둑 관련 만화를 살펴보시죠. 이번에 소개할 만화인 <미생>(위즈덤하우스)도 샐러리 맨과 전혀 관련이 없지는 않을 듯합니다. 2000년, 한국과 일본 만화계를 강타한 만화가 있었습니다. <데스노트>(대원씨아이)로 유명한 작가의 <고스트 바둑왕>(서울문화사). 

한 소년의 성장만화로, 우연한 기회에 바둑을 알게 되고 전설 속의 바둑 명인 영혼을 만나 '신의 한수'를 찾아 바둑 기사로 성장하는 내용입니다. 한국에는 <바둑 삼국지>(랜덤하우스코리아)가 있습니다. 2006년부터 파란닷컴에 연재되어, 많은 인기를 끈 바 있죠. 조훈현 9단을 주인공으로 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중일 삼국을 대표하는 실제 기사들의 역사적 사건을 감동적으로 그렸습니다.

한편 < TV 손자병법 >이라는 샐러리 맨 드라마를 알고 있는가요? KBS에서 1987년 방영을 시작해 1993년 막을 내릴 때까지 6년 동안 안방 극장을 책임졌던 드라마로, 직장인들의 모습을 코믹하고 현실감있게 그려내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습니다. 후속작으로 <신 손자병법>과 <싱싱 손자병법>이 나왔었습니다. 올해 초 SBS에서 <샐러리맨 초한지>라는 드라마가 방영돼 많은 사랑을 받은 적이 있지만, 실상 내용은 직장인들의 현실을 다루고 있지는 못했죠. 진정 직장인들을 위한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는 더 이상 탄생하지 않는 것인가요?
2012년 1월 20일, '다음 만화속세상'에 첫선을 보인 웹툰이 있습니다. 허영만 화백의 수제자로 ,이미 'yahoo' 등으로 단행본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냈었고 2007년 최고 중 하나였던 <이끼>로 많은 사랑은 받은 바 있던 있던 윤태호 작가의 신작이었습니다.

미생 1권 표지 ⓒ 위즈덤하우스

이후 최장기간 평점 1위를 고수 중이지요. <미생>(위즈덤하우스)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 만화, 정체가 무엇일까요? <미생>이라 함은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 있지 않음. 또는 그런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말이죠. 

줄거리는 상당히 심플합니다. 열한 살에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 프로기사를 목표로 살아가던 소년 장그래가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결국 입단에 실패하고 '회사'(종합상사)에 계약직 인턴사원으로 입사해 성장해 나가죠. 
이와 함께 또 다른 줄거리가 존재합니다. 1989년 9월 제1회 응씨배 결승 5번기 제5국(최종)에서 조훈현 9단(한국)과  녜웨이핑 9단(중국)이 맞붙습니다. 조훈현 9단이 한국 바둑 역사상 최초로 세계 챔피언에 올랐던 그 대국인데요. 그 대국이 <미생>의 또 다른 배경으로 쓰입니다. 즉, 1수=1회가 되는 것이죠. '바둑 올림픽'이라고도 불리는 이 대회에서의 우승은 당시 세계 바둑계의 지도를 바꿔버린 대 사건이었습니다. 실제 대국은 145수만에 끝이 나고 마는데요. 만화도 145회로 끝을 맞이할까요? 

작가는 왜 이 만화에 바둑 대국을 연결시켰을까요. 단지 극 중에서 주인공 장그래가 기원 연구생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라고 하기엔 뭔가 어색하죠? 아마도 1989년 제1회 응씨배 결승 5번기 제5국(최종) 당시 조훈현 9단의 모습을 장그래로 치환시키려 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고 스스로도 포기에 가까운 심정이었던 조훈현 9단의 모습이 극 중에서 장그래의 초반 모습과 겹쳐집니다. 하지만 점점 좋은 모습을 보여 어엿한 직장인으로 성장해가는 장그래를 보니 만화가 끝날 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대국이 끝날 때, 조훈현 9단이 녜웨이핑을 물리치는 순간처럼 짜릿할까요?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20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흔히 바둑을 인생에 비유하곤 하는데, 풀어쓰면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인생이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바둑에서는 두 집을 만들어야 '완생'이라고 합니다. 그 전에는 '미생'이라 칭하죠. 우리 모두는 열심히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 인생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율은 가히 어마어마하죠. 

하루의 2/3을 일터에서 보낼 것입니다. 하지만 '일'에서 어떤 의미를 찾거나 의미를 부여하거나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윤태호 작가는 이 점에서 착안해 직장생활 자체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고 합니다. 미생에서 시작해 완생으로 가는 고단하지만 아름다운 여정을요.

3화에 나오는 대사를 읊어봅니다. 

삶의 무거운 짐을 체험한 적 있는가?
그것은 매순간 어깨를 짓누르고,
내 입을 틀어 막으며,
땅끝 무저갱으로
이끄는 삶의 짐.
턱걸이를 만만히 보고
매달려 보면 알게 돼.
내 몸이 얼마나 무거운지.
현실에 던져져 보면 알게 돼.
내 삶이 얼마나 버거운지.
피로는 도처에 머문다.

그래도 모두들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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