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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그랜 토리노> 과거의 위대한 유산은 위대한 미래를 창조하는 데 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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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그랜 토리노>


영화 <그랜 토리노> ⓒ워너브라더스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본래의 의미에서 상당히 빗겨나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과 북으로 갈려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모든 것을 규정하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인데, 보수와 진보라는 거대한 가치가 한국에서는 이데올로기에 먹혀버린 듯한 형상이다. 


보수와 진보는 사실 철학적인 용어로, 각각 변화를 피하고 현체제를 유지하려는 사상이나 태도 그리고 전통적 가치나 정책·체제 등에 반하여 새로운 가치나 정책의 창조를 주장하는 사상이나 태도를 가리킨다. 그래서 이들은 그 자체가 지니는 악이나 선의 개념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조직마다, 나라마다 견지하는 태도가 다를 뿐이다. 그들 각자의 환경에 따라 다르게 추구하는 것 뿐이다. 


전통을 중요시하고 지킬 게 많아지면 자연스레 보수가 되기도 하고, 변화를 중요시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길 원하면 진보가 되기도 한다. 한편 이 둘을 혼합할 수도 있다. 필자도 어느 면에서는 지극히 보수적인 면을 강조하고 추구하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완전한 진보적 가치를 견지하기도 한다. 그건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역사 등 모든 분야에서 다를 것이다. 


영화 <그랜 토리노>는 이 중에서 '보수'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 보수의 본래 의미인, '변화를 피하고 현체제를 유지하려는 사상이나 태도'를 완벽히 수행하는 한 노인의 모습을 그린다. 월트 코왈스키 노인(클린트 이스트우드 분)은 한국전쟁 참전 용사로, 현재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한적한 동네에서 애완견과 함께 조용히 지내고 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그들은 코왈스키의 보수적인 태도를 못 마땅히 여기며 조롱하기만 할 뿐이다. 


한편 그에게는 1972년산 '그랜 토리노' 자동차 한 대가 있다. 포드 자동차에서 50여년을 일한 그에게 그 차는 보물과도 같은 것으로, 매일 같이 관리하고 지켜보고 있다. 지켜야 할 절대적 '선(善)'인 것이다. 그가 지켜야 할 것은 더 있다. 바로 그의 작은 집과 앞마당. 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는 장총을 서슴없이 사람들의 머리 위로 겨눌 수 있다. 


영화 <그랜 토리노>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그는 아마도 자신이 보수주의자인 걸 딱히 인지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단지 '나의 것'을 지키고 가꾸고 보존하려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 또한 그에게는 과거에 겪은 크나큰 사건이 그의 인생 전체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이 과거를 청산하고 동시에 조금은 더 나은 미래를 선물할 기회가 그에게 찾아온다. 


그의 옆집에는 흐몽족(베트남 남부의 소수 민족)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 중에 '타오'라는 아이가 있는데, 같은 흐몽족 갱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곤 한다. 갱들이 와서 자신들과 함께 깽판을 치며 놀아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첫 대상은 바로 옆집 코왈스키 소유의 '그랜 토리노'를 훔치는 것. 하지만 코왈스키의 방어 때문에 실패한 타오는 도망친다. 어느 날 다시 찾아온 갱들, 그들끼리 벌어지는 실랑이, 코왈스키 내 앞마당까지 침범해 벌어지는 실랑이, 장총을 들고 와 방어하는 코왈스키, 엄청난 카리스마에 도망치고 마는 흐몽족 갱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영웅이 된 코왈스키. 그렇게 영웅이 된 코왈스키는 옆집과 점점 더 친해지며 특히 타오와 친해진다. 


영화 <그랜 토리노>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그런데 코왈스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타오의 누나인 수가 길에서 흑인들과 실랑이를 벌일 때, 코왈스키가 나서서 구해준 것이다. 참으로 카리스마 있는 코왈스키의 모습에 멋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다짜고짜 총을 들이대며 위협하는 모습에서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과장된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모습에서 '세계 경찰 미국'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흐몽족 수가 말해주는 종족의 역사를 생각하면 더더욱. 왜 베트남 사람이 미국까지 와서 지내고 있느냐는 말에, 수는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공산당이 흐몽족을 학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흐몽족이 미국의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 영화의 의도를 조금 읽을 수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코왈스키는 타오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갱들을 찾아가 두들겨 패 놓았다. 그는 왜 자신의 것을 넘어 자신을 영웅이라 떠받드는 사람을 지키려 했는가? 


영화 <그랜 토리노>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하지만 이 영화를 드라마로, 과거의 망령에 사로 잡혀 현재를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한 한 노인의 투쟁이라는 시선을 본다면, 감동적이기 그지 없다. 그는 언제고 거기에서 탈출하고 싶어 했는데, 누가 보아도 위대하게 그리고 감동적이게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갱들이 다시금 찾아와 타오네 집에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수는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이에 코왈스키는 오랜 생각 끝에 갱들의 집으로 쳐들어 간다. 그 전에 타오가 오지 못하게 지하실에 가둬 둔다. 그러며 그는 타오에게 말한다. 


"사람 죽일 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지? 그래, 완전 죽이는 기분이지. 한 가지 안 좋은 건, 어린 애들 죽이고 받은 훈장이지. 항복하려는 애들을 말이야. 너처럼 어린 병사들이 겁에 질려 있었어. 나는 그런 아이들 면전에 대고 라이플을 갈겼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 생각 안 나게 돼. 넌 그러면 안 돼. 난 이미 손에 피를 묻혔으니까. 난 이미 더럽혀 졌으니까. 그게 바로 내가 혼자 가는 이유다. 이제 넌 네 인생을 살아라. 난 끝내야 할 것이 있어. 그래서 혼자 가야 하는 거다."


착하고 순수한 청년 타오에게 자신과 같은 후회의 삶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리고 그런 청년들이 자신들의 삶을 살 수 있게 악(惡)을 박멸 하려는 의도까지도. 그러며 자신의 과거를 청산하고 싶었을 것이다. 완벽에 가까운 결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위대한 유산은, 위대한 선택으로, 위대한 미래를 창조하는 데 쓰이게 될 것이다. 


지극히 드라마적인 요소와 캐릭터의 힘 만으로 끌고 가는 이 영화는 어떤 극적인 장면이나 분위기, 반전이 없음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굉장히 재미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뜻하지 않은 큰 웃음이 터져 나오곤 하는데, 의도치 않았겠지만 대놓고 코미디를 표방하는 영화보다 더 큰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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