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래된 리뷰

<블랙 호크 다운> 이 영화가 '명작'이라 불리는 이유는?

반응형




[오래된 리뷰] <블랙 호크 다운>


영화 <블랙 호크 다운> ⓒ소니/콜롬비아


실제 하지 않을 것만 같은 극적인 사건들은 소설로, 영화로, 드라마로 콘텐츠화 되곤 한다. 다분히 극적이진 않더라도, 내러티브가 있고 어느 정도의 감동이 있으면 충분하다. 거기에 창작자가 극적 장면과 호기심 일게 하는 스토리 얼개와 개성 강한 캐릭터를 투입하면 되는 것이다. 특히 이를 영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블랙 호크 다운>은 2000년 <글래디에이터>로 세계적 명장의 반열에 올라선 '리들리 스콧' 감독이 2001년에 <한니발>에 이어 호기롭게 만든 영화로, 실제 했던 사건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사실 '리들리 스콧'하면 일찍이 1970~80년대 <에일리언>, <블레이드 러너> 등으로 SF의 전설로 자기매김한 인물이다. 여기에 제작자는 그 유명한 '제리 브룩하이머'. 일찍이 만난 적이 없던 이들 간의 시너지가 어떻게 터져 나올지 기대가 되었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하다. '제1차 모가디슈 전투'. 1992년 동아프리카에 위치한 소말리아는 무법천지였다.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가 대통령을 축출한 뒤 소말리아는 정치적 혼란에 빠졌고 거기에 최악의 가뭄까지 겹쳐 30만의 인명이 희생되었다. 이에 미군을 위시한 유엔 평화유지군은 소말리아에 전투부대를 파병하고 아이디드 체포를 최우선적인 목표로 잡는다. '베트남 전쟁'으로 역사적인 망신을 당한 미국이 '걸프전'으로 어느 정도 자존심을 회복하고 다시금 세계 곳곳에 손을 뻗고 있는 시기였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한 장면. ⓒ소니/콜롬비아


그러던 1993년 어느 날 미군은 아이디드 최측근의 위치를 파악하고 체포를 위해 레인저 부대, 델타포스 부대, 블랙 호크 헬기가 포함된 특수전 항공연대를 출동 시킨다. 비록 더 이상의 지원 없이 적지 한 가운데로 투입되는 위험천만한 작전이었지만, 작전 예상 시간은 불과 30분에 불과한 비교적 간단한 작전이었다. 델타 부대는 최고의 전력 답게 아주 간단히 아이디드 최측근들을 체포한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 최강 '블랙 호크'가 연달아 추락하면서 발생한다. 이에 사령관은 생존자 구출을 위해 추락 지점으로 대다수 부대들을 급파한다. 하지만 추락 지점으로 가는 도중, 추락 지점에서 많은 수의 대원들이 다치고 죽고 고립되고 만다. 과연 이들은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영화 제목이자 '블랙 호크'가 추락할 때 파일럿이 외치는 보고인 '블랙 호크 다운'은 다분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세계 최고의 경제력, 정치력, 군사력을 자랑하고 세계의 파수꾼을 자처하는 미국의 입지가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은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제1차 모가디슈 전투'에서 유엔 다국적군의 도움으로 간신히 고립된 대원들을 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미국의 무모함과 무력감을 아주 약하게 깔면서, 그 대신 '전우애'와 '휴머니즘'을 듬뿍 투입 시킨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 작전 예상 시간이 불과 30분에 불과한 아주 '간단하지만' 아주 '무모한' 작전에 대해서는 단지 이 작전을 지상에서 이끌 소령과 몇몇 부하들의 불평·불만으로 어물쩍 넘어가고 있다. 반면 전우들 간의 진한 '전우애'와 '휴머니즘'은 블랙 호크 헬기가 추락한 뒤 사령관이 절대적으로 시행할 것을 명령한 '모든 대원들의 귀환'과 그 명령을 행할 때 보이는 대원들 간의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통해서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한 장면. ⓒ소니/콜롬비아


영화 자체로는 더 없이 훌륭한 명작이라 칭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화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을 볼 때 위와 같은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주지했듯 영화 자체로는 소위 '명작'이라 칭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 전쟁 영화 중에서 현대전을 다룬 최고의 영화라 해도 무방하다. 그 이유는 거의 이 영화의 '극사실주의' 연출에 있다. 기존 전쟁 영화가 가지는 리얼리티의 특징인, '피 튀기는 현실감' 대신 장면 자체에 현실감을 부여했다. 


예를 들어 실제 군인처럼 보이기 위해 배우들은 실전 훈련을 마다하지 않았고, 1993년 모가디슈 전투에 실제 투입된 기체들을 가져와 사용했으며, 이후 다양한 전쟁 영화에서 차용한 탁월한 촬영 기법으로 전투의 세세한 장면들을 굉장히 미시적으로 접근해 현실감을 극대화 시켰다. 이 밖에도 영화 곳곳에서 리들리 스콧이 리얼리티 구축을 위해 쏟은 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영화가 '명작'이라 불리는 이유는 단지 극도의 리얼리티에만 있지만 않다. 만약 그랬다면 아주 훌륭한 다큐멘터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비하하자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대중을 겨냥한 상업 영화에 맞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리들리 스콧은 극도의 리얼리티 말고 또 무엇을 보여주었을까? 그것은 위에서 말한 '전우애'와 '휴머니즘'에서 기인한다. 비록 영화 외적으로 볼 때 많은 논란을 낳을 여지가 있지만, 영화 내적으로 볼 때 이는 굉장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한 장면. ⓒ소니/콜롬비아


그리 개성적이지는 않지만 캐릭터들이 틈틈이 보여주는 행동과 속내는 이 영화에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것이다. 특히 총에 맞아 쓰러져 있는 전우를 구하려다 오히려 총에 맞아 결국 죽고 마는 장면은, 비록 굉장히 진부하지만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또한 대원들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괴로워 하는 레인저 부대 분대장과 이 모습을 보며 너의 잘못이 아니며 전쟁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니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말하는 델타 부대 장교의 대조 되는 모습도 은은한 감동을 자아낸다. 전투가 끝난 뒤 곧바로 다시 전투에 투입되는 델타 부대 장교가, 이 모습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레인저 부대 분대장에게 하는 말은 결정타이다. 


"대원들이 남아 있어. 고향 사람들이 묻더군. '그 짓을 왜 해, 후트?' '전쟁이 그리 좋아?' 

난 대꾸 안 해. 왜냐하면 이해를 못 하거든. 우리가 싸우는 건 바로 전우애 때문이란 걸 말이야. 

바로 그거야. 그게 전쟁이지."


보는 이의 성향에 따라서 이 영화의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릴 것이다. 단, 이 영화를 '명작'이라고 생각하고 보는, 또는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은 한 가지를 명심하고 있거나 명심해야 한다. 적어도 이 영화를 볼 때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다른 누구의 입장도 아닌 다분히 미국의 입장에서 서술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그런 다음, 영화가 보여주는 극도의 리얼리티 속에 푹 빠지면 더할 나위 없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