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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칠드런 오브 맨> 전장에 울려 퍼지는 희망의 울음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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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칠드런 오브 맨>


<칠드런 오브 맨> ⓒUPI


전장에 울려 퍼지는 아이의 울음 소리는 전쟁의 폐해이자 전쟁으로 인한 절망을 상징한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할 수 있는 게 우는 것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물론 어른에게도 통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의 전장에 울려 퍼지는 아이의 울음 소리는, 이와는 완연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희망'.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듣는 순간, 피 튀기는 전장의 모든 소음이 일순간 멈추는 기적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칠드런 오브 맨>은 어떤 특정한 서사적 줄거리를 갖추지 않은 채 오직 마지막 남은 '희망'인 아이의 구제를 위한 방향으로 따라가기만 한다.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인물들과 영화의 스토리와 심지어 카메라 워킹까지 그 아이에게 시선을 두는 것이다. 이는 감독의 철저한 연출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감독은 '알폰소 쿠아론'이다. <그래비티>로 2014년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포함해 7관왕을 수상한 바 있다. 그가 <그래비티>에서 보여준 연출은 상당 부분 <칠드런 오브 맨>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암울한 상황 설정, 스토리보다 캐릭터에게 초점을 맞추는 설정, 비록 영화는 전체적으로 정적이지만 순간적으로 굉장한 동적 연출을 시행하는 설정, 그리고 '희망'에 모든 것을 거는 설정까지. 그래서 <칠드런 오브 맨>은 알폰소 쿠아론에게도 터닝포인트이자 하나의 희망이기도 했을 것이다. 


Children.of.Men.2006.1080p.BRrip.x264.YIFY.mp4_20140305_223345.1<칠드런 오브 맨>의 한 장면. 전장에 울려 퍼지는 희망의 울음 소리. ⓒUPI



특히 감독의 연출력이 빛났던 장면이 있다. 영화 후반부 주인공들이 전투에 말려 들어간 장면이다. 이 씬에서 카메라는 주인공 테오를 따라가면서 '핸드헬드 촬영 기법'(카메라가 기계적 안전 장치에 부착되지 않아 불안정한 상태를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음)을 이용해 찍고 있다. 전투의 한 가운데에 있어 두렵지만 반드시 행해야 하는 바가 있는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다가 아이가 울자 모든 전투가 멈추고 소음이 멎으며 한 마음으로 아이의 안녕을 바랄 때는 카메라의 워킹이 안정을 찾는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집약적으로 보여줌과 동시에, 감독의 연출력이 빛났던 장면이다. 


영화의 배경은 2027년 영국 런던이다. 이 세계에는 '희망'이 없다. 인류는 더 이상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남아 있던 18세의 소년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절망은 인류를 재앙과 자멸의 시대로 인도했다. 곳곳에서 테러가 발발하고, 무정부주의자들은 폭력으로 국가를 질책하며, 도처에 불법 이민자들이 넘처난다. 사람들은 평온한 죽음을 맞이 하기 위해 자살약을 섭취하곤 한다. 


Children.of.Men.2006.1080p.BRrip.x264.YIFY.mp4_20140305_223539.8<칠드런 오브 맨>의 한 장면. 곳곳에서 테러가 발발하는 재앙과 자멸의 시대. ⓒUPI



이런 와중에 테오(클라이브 오웬 분)는 관료주의자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찾아온 옛 여인 줄리엔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줄리엔은 과격한 무정부주의자로, 런던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녀가 테오를 찾아온 이유는, 테오의 고위직 사촌의 힘을 이용해 한 소녀의 여행증을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테오는 여행증을 구해주었는데,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소녀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테오는 이 사실을 알고 '희망'의 안전한 운반을 위해 목숨을 거는 선택을 한다. 그녀가 흑인이든, 불법이민자든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사항이었다. 과 자신과 줄리엔의 아이가 죽어갔던 전력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사회운동가 출신이기 때문일까. 둘 다 아닐 것이다. 영화는 테오의 선택이 모든 이들의 바람이자 선택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를 영화화한 존 힐코트 감독의 <더 로드>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불을 운반하는 사람들이야"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해버린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남을 것이라 생각되는) 이들은 마지막 남은 '희망'을 운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는 죽고 아들이 살아남아 '희망'의 운반은 성공한다. <칠드런 오브 맨>은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제우스가 판도라에게 상자를 선물하며 절대로 열어 보지 말라고 말한다. 이에 판도라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상자를 열고 만다. 그곳에서 나온 수많은 끔찍한 재앙들. 그녀는 황급히 상자를 닫는다. 그 때문에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희망'이었다. 


혹자는 희망이 있어 절망 속에서도 살아간다고 하고, 혹자는 희망때문에 헛된 기대를 품고 결국 실망으로 귀결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전자에 해당된다. 후자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 희망이 나중에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영화는 단지 그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이 지독하게 절망적인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희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부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영화에서 비춰지는 마지막 희망이 가지는 의미가 너무나도 뚜렷하고 어마어마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영화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아이'. 


Children.of.Men.2006.1080p.BRrip.x264.YIFY.mp4_20140305_223449.6<칠드런 오브 맨>의 한 장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잉태하다. ⓒUPI



"아이를 지켜. 무슨 일이 있던 남들이 뭐라 하던, 아이를 지켜"


한편, 이 영화는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2027년이라는 멀지 않은 미래를 그린 것도 그렇지만, 영화의 세계에서 보여지는 면면들은 지금 이미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테러, 폭력, 불법, 전쟁, 기아, 바이러스 등. 그리고 무엇보다 출산율 저하는 3포 세대(취업, 결혼, 출산 포기)로 일컬어지는 현재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가다보면 2027년쯤 영화 속 세계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아니,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누구나 직감하고 있지 않은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아마 여러 정답 중 하나는, 공존공생의 길이 아닐까 싶다. 그 방법론까지 논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그 공존공생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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