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세븐>
영화 <세븐> ⓒ뉴라인
할리우드 감독 데이빗 핀처와 배우 브래드 피트는 각별한 사이라고 할 만하다. 데이빗 핀처의 두 번째 작품인 <세븐>(1995년 작)을 함께 했고, 1999년에는 <파이트 클럽>을 함께 했다. 또한 2008년에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까지 함께 하였다.
여기서 각별한 사이라고 칭한 이유는, 편수가 아닌 작품의 질에 있다. 세 편 모두 평론가와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이끌며 감독과 배우 모두에게 영광을 안겼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며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논쟁거리를 던졌으니,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 분명하다.
그 중에서 이들이 처음 함께 한 작품인 <세븐>은 개봉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흔히들 ‘스릴러·범죄 영화의 교과서’로 불리고 있을 정도이다. 거기에 흥행까지 성공했으니, 여러 의미에서 성공작인 것이다. 데뷔작 <에일리언 3>(1992년 작)으로 기존 에일리언 시리즈와는 완연히 다른 종류의 액션 스릴러 공포물을 선사한 데이빗 핀처 감독은, 과연 <세븐>으로 어떤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을까? 자고로 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보든 하나부터 열까지 그 의미를 살피며 자세히 보든, 재미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삭막하고 무관심이 판치는 동네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미리 밝혀두지만, 이 영화의 정확한 장소와 때는 알 수 없다. 다만 비가 자주 내리고 그래서 하늘이 항상 어두컴컴하고 삭막하기 이를 데 없으며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동네라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세븐>의 한 장면. ⓒ뉴라인
그곳에서 은퇴를 정확히 일주일 앞둔 고참 형사 서머셋(모건 프리먼 분)이 월요일 아침부터 일어난 살인사건 때문에 조사를 나왔다. 그리고 다른 곳에서 근무하다가 사건다운 사건을 맡기 위해 자원해서 온 밀스 형사(브래드 피트 분)가 있다. 이들은 매일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조사하던 도중, 이 사건이 연쇄 살인 사건임을 간파한다. 정확히는 서머셋 형사가.
하지만 서머셋 형사는 이 사건을 맡기 싫어한다. 그는 이 삭막하고 무관심이 판을 치는 동네에서 더 이상 형사질을 해먹기가 역겨웠던 것이다. 강간이 일어나면 아무도 도와주지도 관심도 갖지 않지만, 불이 났다고 하면 관심을 갖고 도망치려 하는 이 동네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사건의 본질을 간파해 밀스 형사에게 도움을 주는 정도로만으로 대체한다.
7대 죄악을 근거로 한 살인
그런데 이 연쇄살인범의 살인방법과 이유가 그로 하여금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연쇄살인범(케빈 스페이시 분)은 총 5명을 무참히 살해하거나 또는 죽기 직전의 상태로 만드는데, 그 이유가 7대 죄악에 있었다. 7대 죄악이라 하면, 단테의 <신곡>과 밀턴의 <실락원>과 초서의 <캔터베리 서사시> 등에 나오는 탐식(Gluttony), 탐욕(Greed), 나태(Sloth), 정욕(Lust), 교만(Pride), 시기(Envy), 분노(Wrath)이다. 살인범은 이 7대 죄악을 근거로 서머셋 형사의 은퇴 7일 전부터 하루에 한 명씩 살인을 행한 것이다.
<세븐>의 한 장면. ⓒ뉴라인
그런 도중 살인범과 대치하는 서머셋과 밀스. 살인범은 교묘한 술수로 밀스 형사를 사지로 몰아넣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살인범은 밀스를 살려준다. 그리고 며칠 뒤에 스스로 경찰서로 찾아와 자수하는 살인범. 그러며 그는 남는 2명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다고 한다. 단, 서머셋과 밀스만을 대동한 채 말이다.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과연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곳에서 벌어질 일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일로, 이 영화에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센스>에 버금가는 최고의 반전 영화 타이틀을 달아준다. (물론 이건 순전히 필자의 기준이다.) 결국은 7대 죄악에 정확히 맞춘 7명의 ‘죄인’을 살인범이 살해했다는 것만 알아두시길.
이 영화는 이런 식으로 스토리와 캐릭터에만 집중해 보아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이다. 분위기와 사건 전개와 캐릭터가 훌륭히 조합되어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묘미가 있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 반전을 맛본다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가 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감독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건 주로 배우들의 생각과 표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세계의 축소판과 같은 이 동네이다.
"죄악이 시도 때도 없이 우릴 찾고 있어, 본보기가 필요하지"
서머셋은 연쇄살인범이 그저 평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며, 무관심이 미덕이 되고 있는 사회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고 역설한다. 반면 밀스는 연쇄살인범을 미치광이 내지 악마로 취급하면서 그를 이기고 그를 잡고 싶어 안달이다. 그리고 그는 정신적 미성숙이 문제가 아니라 미치광이 살인마가 문제라고 말한다.
이건 얼핏 이 영화의 사건 줄기인 연쇄살인과는 동떨어진 것 같지만, 오히려 가장 밀접하게 이어져 있는 생각과 대화이다. 그건 바로 연쇄살인범의 살해 동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범의 말은 서머셋의 생각과 일맥상통한 면이 있어 보인다.
“죄가 없다고? 정말 웃기는 말이군... 그런 사람들을 죄 없는 무고한 인간이라 할 수 있나? 엄청난 죄악이 온 거리마다 가정마다 뿌리를 내리고 있어. 흔하다는 이유로 그걸 눈감아 주고 있고 일상이 되어 버렸지. 죄악이 시도 때도 없이 우릴 찾고 있어. 더 이상은 안 돼. 본보기가 필요하지. 모든 사람들이 내가 한 일을 기억하며 연구하고 교훈으로 삼게 될 거야, 영원히.”
<세븐>의 한 장면. ⓒ뉴라인
단지 서머셋은 사랑과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고, 살인범은 아예 삭제해버림으로써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의식은 동일하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밀스의 생각에 있다. 그는 무관심이 편하다고 말한다. 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며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사실 그에게 있어 ‘왜’는 필요 없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요즘 들어 연배가 있으신 어른들께 그런 말을 많이 듣는 것 같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회에 관심도 없고 용기도 없어. 그냥 자기 밥그릇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같아. 내가 젊었을 때는 그러지 않았었는데...” 이를 세대 전체로 귀결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대체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는 다는 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이 영화의 또 다른 면이 보인다. 연쇄살인범이 행하려 했던 7대 죄악에 근거한 살인을 두 형사가 파헤쳤다면, 우리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또 다른 면을 파헤칠 필요가 있다. 7대 죄악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적 의미의 죄악이라고 한다면, ‘무관심’은 새로운 시대의 죄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서머셋 형사의 말은 둘째 치고, 연쇄살인범의 말에 자꾸 눈이 가는 이유는 뭘까? 그의 방법론에는 동의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의 문제의식에는 반박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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