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도시는 풍요로워졌지만 사람은 더 외로워졌다

반응형

 
[영화 리뷰] <애정만세>

 

영화 <애정만세> 포스터. ⓒ엠엔엠인터내셔널㈜

 

대만 타이베이, 장례식장의 유골함 안치 칸을 판매하는 일을 하는 청년 샤오강은 우연히 어느 분양되지 않은 고급 아파트의 집 열쇠를 훔친다. 그러곤 그곳에서 몰래 기거하기 시작한다. 분명 관리인이 있거나 곧 새로운 주인이 나타날 터, 불안한 나날을 보낸다.

한편 그 분양되지 않은 고급 아파트를 관리하며 어떻게든 분양되게끔 애쓰는 부동산 중개업자 메이 역시 그곳을 몰래 사용하긴 마찬가지다. 그녀는 주로 쉼을 갖는데 일회성 만남을 갖는 경우도 왕왕 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거리에서 불법 노점으로 옷을 파는 청년 아중은 우연히 만난 메이와 분양되지 않은 고급 아파트에서 은밀한 하룻밤을 보낸다. 이후 그는 아파트 열쇠를 복사해 아지트처럼 자유자재로 드나든다. 메이와의 관계나 빈 아파트를 드나드는 것에 별생각 없어 보인다.

'사랑만세'라는 가장 슬픈 제목

샤오강, 메이, 아중의 세 청년은 비어 있는 고급 아파트를 따로 또 같이 드나들지만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알게 되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이 기묘한 동거의 모습은 1990년대 대만 타이베이의 모습과 이어진다. 고독하고 메말랐으며 결핍된 양상 말이다.

영화 <애정만세>는 1990년대 대만 영화계를 혁신한 '뉴웨이브'의 기수 차이밍량의 초기 대표작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베니스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는데, 당대를 넘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제목부터 짚고 넘어가자면 '애정만세', 즉 '사랑만세'라는 제목이 주는 분위기가 영화의 삭막함을 배가시킨다. 정작 영화에는 사랑은커녕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세 청년은 서로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제스처도 없으며 자연스레 관심도 없다. 그러니 이런 극단적인 반어의 제목은 너무나도 적절하다.

하지만 재밌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대사도 많지 않거니와 인물의 표현, 활동도 극히 적고 줄거리도 뚜렷하지 않으며 영화를 이루는 요소들인 편집, 음악, 미술 등도 최대한으로 배제했다. 느림과 배제도 극단까지 치달으면 감각적일 수 있다는 걸 이 영화를 비로소 알 수 있다. 영화를 대하는 새로운 감각이랄까.

도시가 남긴 것은 풍요가 아니라 고독이었다


1990년대 대만의 타이베이는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으로 성장을 거듭했다. 활황기에는 사람들이 몰려들 테니 외로울 새도, 고독을 즐길 새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여유도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철저히 고립되어 간다. 무엇보다 나를 천착하고 내 것에 집착하지 않는가.

나아가 작품의 주공간이 '비어 있는 고급 아파트'라는 점이 주요하게 작용한다. 집이야말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궁극적인 안식을 주는 공간일 텐데 세 청년에겐 그 반대에 맞닿아 있다. 불안하고 불쾌하고 불편한 곳이 바로 그곳이다.

1990년대 타이베이의 주거는 경제 활황에 맞춰 가격리 치솟았다. 수요가 몰렸지만 공급이 따라 주지 못했고, 더 이상 집은 거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했으며 부동산 투자 그리고 거래의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애정만세>의 탁월한 점은 현대인의 고독과 단절을 다름 아닌 '집'이라는 공간에서 풀어냈다는 것이다.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짚어냈다.

수박을 갖고 행하는 샤오강의 이상 행동 또는 무의미한 행동과 메이가 미완공된 공원의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가 오열하는 장면은 다른 듯 비슷하다. 형용할 수 없는 무료함과 슬픔, 피로의 방출이랄 수 있는데 도시의 현대인들이 겪었고 겪고 있으며 겪을 것이다. 누구라도 도망치기 여의치 않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