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십수 년 전 한창 예체능 붐이 일었습니다. 그 여파로 소위 3대 예체능 학원인 '태권도(검도)' '피아노' '미술' 학원을 다녀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단언합니다. 저도 그 피해자(?)로, 초등학교 5~6학년 때 태권도 학원과 피아노 학원을 1년 정도씩 다녔었습니다. 그것도 동시에 말이죠. 두 학원이 서로 5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가능했었죠.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예전에 망하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알아보니 PC방으로 변해있는지가 오래 되었네요. 왠지 씁쓸합니다.)
저는 상남자 스타일은 아닙니다만 아니 오히려 미소년(?!)에 가까운 스타일입니다만, 손이 굉장히 우락부락하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손의 움직임이 상당히 느린 편이죠. (가까운 예로, 저는 '스타크래프트'를 굉장히 잘 합니니다만 손이 굉장히 느린 걸로도 유명했습니다.) 당연히 피아노 학원은 적성에 맞지 않았죠. 외우기는 좋아해서 이론 수업은 곧잘 따라갔지만, 실기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피아노를 쳤다하면 선생님께 손등을 맞기 일쑤였죠. 그래도 불굴의 의지로 꿋꿋이 다녀서 체르니 100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30을 한 지 오래였는데 말이죠... 당시의 심정을 알아볼 요령으로 일기를 찾아봤는데,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반면 태권도는 제 적성에 완전히 맞았습니다. 3살 터울인 동생과 같이 다녔는데, 하교해서 집에 돌아오자 마자 도복으로 갈아입고 맨발의 슬리퍼 차림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버지와 동생과 제가 손을 붙잡고 집 근처에 있는 태권도 학원에 가서 처음으로 등록을 하던 날.
1995년 6월 23일 금요일
제목: 태권도
오늘 처음으로 태권도 학원에 가서 태권도를 배웠다.
어제 아빠와 동생과 같이 태권도 학원에 가서 입학을 했다.
태권도 학원에 입학한 이유는 커서도 도움이 되고,
아버지께서 태권도 학원에 입학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태권도에 입학 하지 실었다.
그래도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근처에 살고 같은 유치원을 다녔고 같은 초등학교도 다니고 있었던 절친한 친구도 같이 다녔습니다. 그 친구와 어울리느냐고 동생은 뒷전이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또 그 친구와 함께 집으로 오는 길에 어김없이 포장마차에 들러 떡볶이며 순대를 먹던 기억도요. 새삼 그 친구가 보고 싶어 집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그 친구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헤어지게 되었는데 말이죠. 벌써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저는 태권도 학원에 아주 잘 적응했습니다. 승급심사에서도 떨어지지 않았죠.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떨어지게 되면 한 달치 학원비가 날아가 버렸기에 기를 쓰고 해야 했었죠. 당시에 성인부도 있었던 걸로 봐서는 지금 나이에도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지금은 아예 태권도 학원을 찾아보기가 힘드네요. 우리 동네만 그런건가요?
1996년 5월 26일 일요일
제목: 국가원심사
오늘은 국기원에서 심사를 봤다.
왜냐하면 풍띠를 따기 위해서이다.
풍띠는 빨간색과 검정색이 반씩 썪여 있는 띠이다.
검정띠 다음으로 높은 것이다.
먼저 품새를 한 다음 겨루기를 하고,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참 즐겁고 재미있는 하루라고 생각된다.
국기원 건물
저는 1장부터 8장을 모두 다 외워서 승급심사를 모두 통과하였고, '고려, 금강, 태백, 평원' 순의 품새에서 고려를 외워서 1품까지 딸 수 있었습니다. 품을 따기 위해서는 직접 국기원에 가서 심사를 봤어야 했는데요. 일기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심사 시간과 당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두치와 뿌꾸'의 방영 시간이 거의 겹처서 심사는 뒷전인 때도 있었습니다. 친구와 저는 엄청난 속도로 심사를 치른 뒤 필사적으로 컴 백 홈을 했던 것입니다. 재미있고 귀여운 일화죠. (아래는 태권도에 대한 마지막 일기입니다.)
1996년 8월 30일 금요일
제목: 태권도 심사
오늘은 태권도에서 심사를 봤다.
그래서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도복을 입고 태권도 학원에 갔다.
가서 먼저 국민의례를 한 다음 이름을 부르는 순서대로 나와
먼저 품새를 한 다음 싸우라비를 쳤다.
나는 최고기록(파괴력) 218점이 나와 친구를 데리고와 싸우라비를 찰 수 있는 티켔을 주셨다.
그래서 나는 참 좋았다.
다음 심사 때는 더 좋은 점수에 도전해 보아서 도전에 성공하겠다.
저에게 태권도 학원은 지치고 힘들었던 학교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땀 흘리며 뛰고, 무언가를 있는 힘껏 발로 차고, 무도인(?)으로써의 우정을 다지면서 말이죠. 추억이 따로 없습니다. 이런 게 바로 인생을 관통하는 특별한 추억인 것이죠.
함께 읽어볼만한 "책으로 책하다"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2013/11/05 -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 식목일과 제헌절
2013/10/31 -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KBS 토요명화
'보고 또보고 계속보기 >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노인 부부, 무언의 대화 (12) | 2013.12.10 |
---|---|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추억의 놀이-야외 (14) | 2013.11.28 |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 식목일과 제헌절 (10) | 2013.11.05 |
일기로 읽는 히스토리: KBS 토요명화 (14) | 2013.10.31 |